원격근무 물러서는 영국, 장애인 일자리는 어디로

image_print

재택 비율 49%→14% 급감 속 고용 취약계층 실태 짚어보니…한국은 더하다

ai로 생성한 이미지 <사진=장애인일자리신문>

호주 매체 더 컨버세이션은 최근 영국의 장애인·신경다양성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를 인용하며 이 문제를 집중 조명했다. 신경다양성이란 자폐 스펙트럼,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난독증 등 뇌의 기능과 정보처리 방식이 일반적 기준과 다른 특성을 통칭하는 개념이다.

연구에 참여한 한 근로자는 “원격이면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고, 제 관점에선 더 잘 일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는 “집에선 자폐성 특성을 숨길 필요가 없어 전반적 불안과 긴장이 크게 줄었다”고 전했다.

영국 근로연령 인구의 약 24%는 장애인이지만 고용률은 54%에 불과하다. 비장애인과의 격차는 오랫동안 ‘장애인 고용 격차’로 불리며 정책 과제로 남아 있다. 코로나19 시기 재택근무 확산은 이 구조에 균열을 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출퇴근 자체가 장벽이었던 지체장애인, 만성질환자, 정신장애인 등이 직업 세계에 새롭게 진입하거나 기존 일자리를 더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사무실이 아니어도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대규모로 증명된 시기였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팬데믹이 끝나고 사무실 복귀 흐름이 거세지면서 그 흐름이 다시 역전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한국의 수치는 영국보다 낮은 수준이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실시한 2024년 하반기 장애인경제활동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 경제활동참가율은 35.9%로 전년 동기 대비 0.5%p 상승했다. 15~64세 기준으로는 51.4%였다. 고용률은 34.5%, 실업률은 4.0%로 각각 집계됐다. 수치가 소폭 개선됐지만 장애인 다수가 여전히 노동시장 진입 자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진단이 이어진다.

의무고용 이행 실적도 과제로 남아 있다. 고용노동부가 2024년 12월 말 기준으로 집계한 결과, 전체 의무고용기관의 장애인 고용률은 3.21%였다. 공공부문이 3.90%로 상대적으로 높았고 민간부문은 3.03%에 머물렀다. 의무고용률을 실제로 이행한 기업 비율은 기업 규모에 따라 32.0~55.6% 수준으로, 절반 안팎의 기업이 의무를 채우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영계 일각에서는 장애인에게 적합한 직무를 개발하고 근무 환경을 갖추는 데 드는 초기 비용과 준비 기간이 적지 않아 중소기업일수록 이행이 쉽지 않다는 어려움을 호소한다. 고용된 장애인 중 상당수가 단순 노무·보조 직종에 집중돼 있다는 점에서 고용의 양뿐 아니라 질의 문제도 함께 제기된다.

더 컨버세이션은 장애인 직원이 합리적인 이유로 원격근무를 요청할 수 있지만, 낙인이나 승진 불이익, 심지어 실직을 우려해 이를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짚었다. 이 같은 현상은 한국 현장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장애인 근로자들 사이에서는 장애를 공개하고 재택근무를 요청하는 행위 자체가 현장 근무에 어려움이 있다는 신호로 읽힐 수 있다는 두려움이 목소리를 막는다고 한다. 한 장애인 근로자는 “필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먼저 말을 꺼내기가 두렵다”고 털어놓기도 한다. 신경다양성 근로자의 경우 외견상 장애가 드러나지 않아 공개 여부를 둘러싼 고민이 더 복잡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행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은 사업주에게 장애인 근로자에 대한 편의 제공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근로지원인 제도, 보조공학기기 지원 등이 그 수단이다. 그러나 원격근무를 편의 제공의 한 방식으로 명시한 규정은 없다. 재택근무를 요청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모호한 상황이 당사자의 접근을 더 어렵게 만든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재택근무가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고립이 가장 빈번하게 언급되는 문제다. 동료와의 비공식 소통이 줄어들면 직장 내 관계망이 약해지고, 이는 정보 접근과 승진 기회의 불평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아프거나 컨디션이 나쁜데도 쉬지 못하는 이른바 프레젠티즘 문제가 재택 환경에서도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고속 인터넷, 보조공학기기, 접근 가능한 협업 도구가 갖춰지지 않은 환경에서는 원격근무 자체가 새로운 장벽이 될 수 있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더 컨버세이션이 이 문제에서 핵심 변수로 꼽은 것은 라인 관리자의 역할이다. 장애·신경다양성 근로자의 원격근무가 성과로 이어지려면 개별 요구를 이해하고 조정할 수 있는 관리자의 역량이 뒷받침돼야 하지만, 현장에서는 지식과 이해 부족으로 적절한 지침과 조언이 제공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매체는 전했다. 적절한 기술과 장비, 유연한 일정, 접근 가능한 업무 설계, 지원형 라인 관리가 갖춰질 때 비로소 생산성 향상·결근 감소·장기 고용 유지로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한국 기업 환경에서도 관리자 교육의 실효성은 과제로 지목된다. 장애인 고용 관련 교육이 법정 의무화돼 있지만,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등에서도 형식적 운영 문제를 반복적으로 지적해 왔다. 원격 환경에서 장애 근로자를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은 더욱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팬데믹이 열어젖힌 원격근무의 문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 장애인 고용 분야 전문가들은 “원격근무를 장애인에 대한 특혜가 아니라 다양한 특성을 가진 인재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업무를 설계하는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원격근무를 편의 제공 수단으로 명시하는 법적 근거 마련, 관리자 교육의 내실화, 접근 가능한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 어디서 일하느냐보다 어떻게 지원하느냐가 장애인 고용의 질을 가르는 핵심 변수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