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정신병약 오투여로 숨진 자폐 청년의 비극, 영국 보건복지법을 바꾸다
복지급여 평가 현장 투입 전 필수 이수…한국엔 유사 특화 의무 교육 없어

영국의 노동연금부(DWP)가 최근 자폐인과 학습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복지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 의료 전문가 4000명 이상에게 ‘올리버 맥고완 교육’을 실시했다.
올리버 맥고완 교육은 자폐증을 앓고 있던 학습장애 청년 올리버 맥고완의 이름에서 비롯됐다.
자폐증과 심한 뇌전증을 앓고 있던 그는 그해 10월 요로감염과 변비 치료를 위해 런던 크로이든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병원 측은 그가 보이는 불안·흥분 반응을 ‘도전적 행동’으로 진단했고, 가족의 반대와 경고를 무시한 채 항정신병 약물 리스페리돈을 투여했다.
담당 의료진은 그의 신경과 전문의나 가족과 상의하지 않았고, 뇌전증 환자에게 리스페리돈이 발작 임계치를 낮출 수 있다는 사실도 간과했다. 약물 투여 2시간 30분 만에 올리버는 반복적인 강직-간대 발작을 일으켰고, 구토물이 폐로 넘어가는 흡인성 폐렴이 겹치며 이튿날 숨졌다. 2018년 검시관 조사는 그의 사인을 ‘태만이 기여한 자연사’로 판정했다. 가족과의 소통 부재, 병력 검토 실패, 장애인 취약성에 대한 무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어머니 폴라 맥고완은 아들의 죽음을 계기로 입법 운동에 나섰다. 그는 의료·복지 종사자라면 누구나 자폐와 학습장애에 대한 기본 지식을 의무적으로 갖춰야 하며, 무지로 인한 죽음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올리버의 사례처럼 장애를 이유로 다른 증상을 간과하거나, 장애인 당사자와 가족의 목소리를 묵살하는 관행이 의료 현장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폴라 맥고완의 캠페인은 2022년 보건의료법 개정으로 결실을 맺었고, 자폐·학습장애 종사자 교육이 영국 법에 명문화됐다. 그는 이 공로로 대영제국 훈장(OBE)을 받았다.
이번에 집계된 교육 이수자는 DWP 내부 의료 전문가 231명, 외부 의료 제공 기관 소속 4168명이다. 독립적으로 건강 평가를 수행하는 모든 의료 전문가는 이 교육을 필수로 받아야 한다.
교육의 핵심은 ‘진단적 가려짐’ 문제를 다루는 데 있다. 장애를 이유로 다른 증상을 간과하거나 잘못 귀속시키는 관행을 바로잡고, 복지 급여 신청·평가 과정에서 자폐인과 학습장애인이 실질적인 배려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 평가 시간 연장을 통한 불안 완화, 복잡한 언어를 배제한 쉬운 커뮤니케이션, 감각에 민감한 이용자를 위한 조용한 환경 조성 등이 현장 적용 방안으로 제시됐다.
스티븐 팀스 사회보장 및 장애부 장관은 “올리버 맥고완의 이야기는 서비스가 그 대상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강력하게 상기시켜 준다”며 “자폐인과 학습장애인을 정책 결정의 중심에 두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학습장애 지원 단체 멘캡의 최고경영자 존 스파크스는 “복지 평가 담당자의 이해도를 높이는 것은 더 접근 가능하고 포용적인 복지 시스템을 향한 중요한 진전”이라며 “학습장애인들이 평가 과정에서 적절한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국 정부는 이번 교육과 별도로, 중소 고용주 대상 신경다양성 마스터클래스에 자금을 지원해 1800명 이상의 고용주 대표를 교육했다. 급여 수급자가 급여 손실 위험 없이 일을 시도할 수 있는 법적 권리도 보장한다. 향후 5년간 장애인 30만 명에게 맞춤형 취업 지원을 제공하는 ‘커넥트 투 워크’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며, 10년 내 장애인 고용 지원에 연간 10억 파운드를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한국은 장애인복지법 제25조에 따라 국가기관·공공기관·교육기관이 매년 1회 이상 장애인식개선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교육은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주관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교육은 일반적인 인식 개선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많아, 영국처럼 복지 급여 평가·심사 현장에 특화된 역량 교육과는 거리가 있다.
2024년 기준 국내 등록장애인은 263만 명이며, 이 중 지적·자폐성 발달장애인은 약 25만 명에 달한다. 하지만 이들이 장애연금이나 활동지원급여를 신청·평가받을 때, 담당 의료진이 자폐·발달장애에 특화된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는 법적 의무는 현재 없다. 장애인 고용률도 34.5%로 전체 고용률 63.3%의 절반 수준에 그쳐, 복지와 고용을 잇는 현장의 전문성 강화가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영국의 올리버 맥고완 교육이 주목받는 이유는, 개별 장애인의 특성을 반영한 평가와 배려를 담당자의 역량으로 법제화했다는 데 있다. 올리버의 죽음이 의료진의 무지에서 비롯됐듯, 제도의 빈틈은 언제나 가장 취약한 이들에게 먼저 닿는다.
한국에서도 장애 급여 평가에 참여하는 의료진과 심사 인력을 대상으로 자폐·발달장애 특화 교육을 제도화하고, 그 이수 현황을 공개적으로 관리하는 방향의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