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신기술 특화훈련 인원 연 100명 남짓…디지털훈련센터는 12개소뿐

AI 기술이 빠르게 일상을 바꾸는 사이, 장애인 고용 시장은 조용히 흔들리고 있다. 기업들이 의무고용률을 채우는 수단으로 활용해 온 데이터 라벨링 직무가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무너지면서, 이 일자리에 기대온 중증·발달장애인 노동자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정부의 직업훈련 시스템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고, 기업들은 고용 유지와 자동화 사이에서 갈림길에 서 있다. 본지는 3회에 걸쳐 장애인 고용 위기의 실체를 짚고, 기술 변화 속에서도 장애인 노동자가 도태되지 않을 길을 모색한다.[편집자주]
일자리의 지형이 바뀌고 있지만, 장애인 직업훈련 시스템의 시계는 여전히 과거에 멈춰 있다. 단순 데이터 라벨링 교육은 현장에서 빠르게 실효성을 잃어가고 있는데, 이를 대체할 ‘AI 활용’ 고도화 훈련 과정은 걸음마 단계에도 이르지 못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은 올해 처음으로 ‘AI 신기술 특화훈련’ 사업을 시행하며 국가직무능력표준 기반의 AI 활용 역량 강화 과정을 신설했다. 그러나 공단의 2026년 공모 계획을 뜯어보면, 전국 단위로 모집하는 인원은 연간 100명 안팎에 불과하다. 7월 추가 공모 역시 ’00명 내외’ 수준의 소규모로 진행돼, 사업의 취지와 실제 규모 사이의 간극이 뚜렷하다.
인프라 격차는 더 심각하다. 공단 직속 기관 가운데 첨단 IT·디지털 훈련을 전담하는 디지털훈련센터는 전국 12개소에 그친다. 반면 발달장애인훈련센터는 19개소, 일반 직업능력개발원은 6개소가 운영되고 있어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높다. 문제는 발달장애인훈련센터의 주력 커리큘럼이 여전히 제조기술, 서비스, 사무보조 등 단순 반복 직무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결국 고도화된 AI 활용 과정은 인프라가 갖춰진 소수 거점에서만, 그것도 극소수 인원만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셈이다. 훈련 난이도 역시 NCS 기반 AI 직종을 그대로 따르고 있어, 중증·발달장애인은 이 과정에서 사실상 배제되는 ‘디지털 양극화’가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간·공공 직업훈련기관의 예산 배분 현황은 가장 직접적인 지표다. 현재 개설된 디지털 관련 과정의 상당수는 단순 이미지 바운딩(사각형 표시)이나 텍스트 태깅 등 초급 수준의 데이터 라벨러 양성과정에 머물러 있다. 거대언어모델(LLM)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나 AI 결과물 품질 검증처럼 고도화된 과정은 전문 강사진과 실습 인프라 부족으로 민간 훈련기관이 거의 소화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바리스타, 제과제빵, 시각장애인 헬스키퍼(안마) 등 전통적 현장 직종은 여전히 전체 장애인 직업훈련 예산에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 자료와 공단 정보공개 자료를 통해 최근 3개년 직종별 훈련 예산 배정 현황을 들여다보면, 전통 직종과 신기술 직종 간 예산 격차는 압도적인 수준으로 확인된다.
훈련기관의 수료생을 현장에 투입하기 힘들어지자 기업은 자체 교육으로 돌파에 나섰다. 한 IT 플랫폼 기업은 최근 ‘가품 탐지 AI 모델’의 성능을 평가하는 ‘AI 데이터 품질 검증’ 직무를 신설했다. 정답 데이터셋을 구축하고 검수하는 이 업무는 정확도·재현율 지표 산출 등 고난도 분석 역량을 요구한다. 최초 1명으로 시작한 이 조직은 1년 만에 10명 규모로 확대되며 핵심 직무로 자리 잡았다.
이 기업은 공단과 협력해 채용을 진행했지만, 직무의 전문성 탓에 일반 훈련기관 수료생을 곧바로 현장에 투입하기는 어려웠다. 결국 기업 자체 포용경영팀 등을 통해 실무 적응 교육과 맞춤형 직무 교육을 별도로 거치게 하는 방식을 택했다. 공공 훈련 시스템이 채워주지 못한 간극을, 기업이 스스로 비용을 들여 메우고 있는 셈이다. 앞서 지적된 것처럼 당장 현장에 투입해 AI 툴을 다룰 줄 아는 인재가 필요한데, 훈련기관에서 배출되는 인력은 단순 업무만 가능해 미스매칭이 심하다는 기업 현장의 답답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 같은 미스매치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지만, 해법을 찾는 속도는 확연히 다르다. 해외 주요 빅테크 기업들은 자폐 스펙트럼, ADHD 등 신경다양성 장애인을 단순 보조 인력이 아닌 ‘AI 시대 핵심 인재’로 재정의하고, 채용과 훈련을 하나의 파이프라인으로 통합해 운영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신경다양성 채용 프로그램(Neurodiversity Hiring Program)’을 통해 서류와 대화 중심의 전통적 면접을 전면 폐지했다. 대신 지원자가 수 주간 실제 애저(Azure) 클라우드 고도화, 코파일럿(Copilot) 프롬프트 테스트 등 실무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자연스럽게 역량을 익히고 평가받는 ‘연장된 면접 프로세스(Extended Interview Process)’를 도입했다. 소음 차단 헤드셋, 자극이 적은 조명 등 맞춤형 인프라도 함께 제공한다.
빅데이터·AI 솔루션 기업 팰런티어는 ‘신경다양성 펠로우십(Neurodivergent Fellowship)’을 아예 핵심 인재 확보 전략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거쳐 채용된 인력에게는 연봉 11만~20만 달러(약 1억5천만~2억 7천만 원)와 주식 보상, 사이닝 보너스가 일반 엔지니어와 동일하게 지급되며, 최종 면접은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진행한다. 알렉스 카프 팰런티어 CEO는 “AI 시대에 살아남는 방법은 두 가지다. 직업 훈련을 받거나, 신경다양성을 가졌거나”라고 언급하며 이들의 패턴 인식과 몰입 능력을 AI 시대의 경쟁력으로 평가한 바 있다.
독일 소프트웨어 기업 SAP는 ‘Autism at Work’ 프로그램을 통해 AI 소프트웨어 테스팅과 대규모 데이터 모델 검증·오류 추적 업무에 자폐 성향 인재를 배치하고 있다. 면접 초기 단계에 레고 마인드스톰 로봇 조립 과제를 통해 문제 해결력을 먼저 평가하는 방식을 도입했고, 장애인 IT 훈련 전문 사회적기업 ‘스페셜리스테르네(Specialisterne)’ 및 각국 재활 부처와 협력해 5주간의 실무·사회적 기술 심화 교육을 거친 뒤 현장에 투입한다. 이 프로그램은 미국, 독일, 브라질, 인도 등으로 확대 운영 중이다.
세계경제포럼(WEF)과 EY(언스트앤영) 조사에 따르면 신경다양성 전문가의 약 30%가 AI·빅데이터 분야에서 ‘전문가’ 수준의 숙련도를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영리단체 Disability:IN 조사에서는 장애를 가진 밀레니얼 세대의 85%가 일상 업무에 생성형 AI 도구를 적극 활용하는 것으로 나타나, 베이비부머(50%)나 X세대(57%)보다 훨씬 높은 수치를 보였다. 디지털 보조도구가 결합됐을 때 업무 효율이 크게 오르는 집단이라는 의미다.
한국은 여전히 ‘의무고용률을 채울 단순 직무’라는 틀 안에서 훈련과 채용을 설계하는 반면, 해외 빅테크는 신경다양성을 AI 시대의 경쟁 우위로 규정하고 채용 절차 자체를 재설계했다. 훈련기관이 인재를 길러 기업에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직접 훈련 파트너와 손잡고 필요한 인재를 처음부터 함께 키워낸다.
결국 관건은 단순 라벨링을 가르치던 예산과 인력을 어디로 돌리느냐다. 연 100명 규모의 시범사업과 12개소뿐인 디지털훈련센터로는 급변하는 산업 수요를 따라잡기 어렵다는 것이 현장의 공통된 진단이다. 정부가 준비 중인 산업전환 대응 체계가 거시적 통계를 넘어, 중증·발달장애인의 눈높이에 맞는 실질적 훈련 모델과 기업-훈련기관 간 연계 구조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데이터 라벨링이 저물어가는 지금의 위기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