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지능 700만, 사라진 노동력] ③ 경계선지능인 지원법, 11건 발의 0건 통과
상위법 없이 막히는 지자체, 1개월짜리 시범사업의 한계
11건의 법안이 멈춰 있는 국회, 우리가 바꿔야 할 것들은

지능지수(IQ) 71~84에 해당하는 경계선지능인은 전체 인구의 약 13%를 차지하지만, 장애인에게도 비장애인에게도 속하지 못한 채 고용과 복지 양쪽에서 배제돼 있다. 법적 정의조차 없는 이 700만 명은 저출생·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가 빠르게 줄어드는 한국 사회에서 활용되지 못한 채 방치된 노동력이기도 하다. 해외 주요국은 이미 이들을 노동시장 안으로 끌어들이는 제도를 갖추고 있다. 3회에 걸쳐 경계선지능인의 고용 현실과 해외 사례, 그리고 한국에 필요한 제도적 과제를 짚는다. [편집자주]
경계선지능인 관련 지원 사업이 중앙정부와 지자체에서 조금씩 시작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법적 기반은 여전히 마련되지 않았다. 현재 한국에는 경계선지능인에 대한 법적 정의도, 지원 근거가 되는 전담법도 없다. 22대 국회에 발의된 관련 법안은 11건에 이르지만, 단 한 건도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광역자치단체 차원에서는 17개 시·도 가운데 15곳이 경계선지능인 관련 조례를 제정했다. 그러나 조례만으로 할 수 있는 일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다.
경남도의회가 2024년 경계선지능인 지원 조례안을 발의했다가 심사 보류된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국가 차원의 상위 법령이 없으면 지방의회가 조례를 제정하더라도 예산 편성의 법적 근거가 불안정하고, 전담 조직 신설이나 인력 배치에 제약이 따른다. 2024년 11월 제정된 취약계층청년 자립지원법에 경계선지능 청년이 포함되기는 했지만, 경계선지능인만을 위한 전담법이 아니어서 실효성에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2025년 11월 국회에서 열린 ‘경계선지능인 지원법’ 입법 공청회에서도 “정확한 실태 파악 없이 지원 체계 구축이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재차 나왔다. 보건복지부가 2024년 착수한 전국 단위 실태조사의 결과가 2026년 상반기에 발표될 예정인 만큼, 이 조사 결과가 입법 논의에 어떤 동력을 제공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중앙정부가 편성한 경계선지능 청년 일자리 시범사업은 참여 기간이 1개월에 불과하다. 앞선 연재에서 확인한 것처럼 경계선지능인이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는 데는 3~6개월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 1개월은 업무 파악이 시작되는 시점에 사업이 종료되는 기간이다.
일하는시민연구소는 지원 기간을 36개월로 늘리고, 대상을 중장년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현행 사업은 2039세로 대상이 한정돼 있어, 40대 이후 경계선지능인은 지자체 개별 사업에조차 접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참여수당도 월 20만 원 수준으로, 교통비와 식비를 감안하면 사실상 자비 참여에 가까운 구조라는 현장의 비판이 있다. 일 경험 이후 연계 취업으로 이어지는 체계도 마련돼 있지 않아, 시범사업이 고용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단기 체험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해외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경계선지능인 고용이 작동하려면 두 가지 장치가 핵심이다. 직무 코치와 기능적 평가 체계다.
직무 코치는 경계선지능인이 새로운 사업장에 배치된 뒤 일정 기간 밀착 지원하는 전담 인력이다. 독일의 통합청 모델과 네덜란드의 UWV 직업 코치 제도가 대표적이다. 업무 절차를 단계별로 나눠 설명하고, 동료 및 관리자와의 소통을 중개하며, 적응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조기에 해결하는 역할을 한다. 경계선지능인의 고용 유지율이 낮은 핵심 원인이 적응 기간의 지원 공백이라는 점에서, 직무 코치는 가장 실효성 있는 개입 수단으로 꼽힌다.
기능적 평가는 장애 판정 여부가 아닌 직무 수행 능력을 기준으로 지원 대상을 결정하는 체계다. 호주의 직업능력평가(Job Capacity Assessment)가 대표적인 모델이다. IQ 점수라는 단일 지표가 아니라, 인지 기능·적응 능력·직업 관련 기술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지원의 종류와 수준을 결정한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평가 체계가 도입되면, 현재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아닌 경계에서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제도적으로 해소할 수 있다.
제도적 장치와 함께 고용 현장에서의 변화도 필요하다. 경계선지능인의 강점은 반복 작업에서의 성실성과 꾸준함이다. 복잡한 업무를 단계별로 세분화하고 시각적 매뉴얼을 갖추면, 물류·제조·외식 등 분야에서 안정적인 인력으로 활용될 수 있다.
유니클로의 ‘천천히 함께’ 사업이 보여주듯이, 1대1 맞춤 교육을 받은 경계선지능 아동의 기초학습능력이 평균 21%포인트 향상됐다. 교육 단계에서의 역량 향상이 직업훈련과 고용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만들어지면, 경계선지능인의 노동시장 참여 가능성은 지금보다 훨씬 높아질 수 있다.
고용주에게 인건비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방안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 네덜란드의 임금 보조금 모델처럼 채용 단계에서의 기업 부담을 낮추면, 고용 기피를 줄이는 데 효과적이다.
서미화 의원이 대표발의한 ‘경계선지능인 자립지원 및 권리보장에 관한 법률안’은 경계선지능인의 법적 정의를 명문화하고, 발굴·연계 체계와 생애주기별 맞춤 지원체계를 구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이 통과되면 실태조사, 직업훈련, 고용 연계 사업에 안정적 예산이 배정될 수 있고, 지자체의 조례 제정과 사업 추진에도 법적 근거가 마련된다.
부산연구원 박주홍 책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장애인의 범주가 소극적이고, 장애인복지법 또한 의료적 기준을 적용해 엄격하다”며 “경계선 지능인과 같이 실제로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장애인이 아니더라도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수백만 명에 달하는 이들을 계속 방치하는 것은 복지의 실패인 동시에, 저출생·고령화 시대에 활용 가능한 인력자원을 쓰지 않겠다는 선택이다. 장애인 고용 정책의 사각지대를 점검하는 일이 곧 한국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일과 맞닿아 있다. 11건의 법안이 국회에 멈춰 있는 지금, 문을 여는 것은 결국 법의 몫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