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노동의 가치]③ 이제 제도를 다시 설계할 때
최저임금 적용 제외 폐지, 장애인 노동의 새로운 체계 첫 발

이 글은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 13일 발간한 NARS 현안분석 제425호 ‘장애인 노동의 가치는 어떻게 평가되어야 하는가: 장애인 최저임금 적용 제외 제도의 재검토 필요성과 방향성’의 내용을 3회에 걸쳐 소개·분석합니다. 원문의 핵심 논지와 데이터를 충실히 반영하되,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편집자의 설명과 맥락을 더했습니다. [편집자주]
지난 40년간 1만여 명의 장애인 근로자가 월평균 42만원을 받으며 최저임금 밖에 존재해왔다는 사실, 고용 확대라는 명분으로 임금 격차가 방치돼 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최저임금법’ 제7조의 적용 제외 조항을 삭제하면 사라지는 문제일까.
국회입법조사처는 ‘삭제는 필요하다’고 답했다. 물론 그것만으로 충분하진 않다. 조항 하나를 없애는 것은 출발점일 뿐, 임금 격차를 줄이기 위한 훨씬 더 복잡하고 정교한 재설계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설계의 바탕에는 장애인 노동을 바라보는 관점의 근본적 전환도 있어야 한다.
장애인에 대한 최저임금 예외를 두는 나라는 한국만이 아니다. 독일과 영국은 장애인 작업장 같은 복지시설 종사자를 아예 근로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근로자가 아니니 최저임금도 적용되지 않는다. 대신 이들은 사회복지급여 수급자로 분류하는 방식을 쓴다. 미국과 네덜란드, 이스라엘, 호주는 최저임금을 원칙적으로 적용하되, 작업능력에 따라 감액해 지급할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 나라들과 한국에는 다른 점이 있다. 이들 나라에는 장애 수당, 연금, 보충급여 등의 별도 소득보장 제도가 갖춰져 있다는 점이다. 임금이 낮아도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안전망이 존재한다. 한국은 임금도 낮고, 그 공백을 메울 보완 장치도 없다.
특히 주목할 것은 독일·영국의 경우다. 이들은 복지시설 종사 장애인의 근로자성을 부인하지만, 일반 고용시장에서 일하는 장애인에게는 예외 없이 최저임금을 적용한다. 보호고용과 일반고용을 명확히 구분하고, 일반고용 영역에서는 차별을 허용하지 않는다. 한국의 현행 제도는 복지시설 종사자를 근로자로 인정하면서도 최저임금은 적용하지 않는, 어정쩡한 중간 지점에 있다. 근로자의 지위는 주지만 근로자의 권리는 주지 않는 셈이다.
보고서가 제시하는 첫 번째 개선방안은 최저임금법 제7조의 장애인 적용 제외 조항 삭제다. 이유는 세 가지다.
우선 이 조항은 법의 목적에 반한다. 최저임금법은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위해 만들어졌다. 노동시장에서 가장 취약한 위치에 있는 장애인 근로자야말로 이 법의 보호를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을 법 바깥에 두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모순이다.
다음으로 이 조항은 차별이다. 현행법은 장애를 가진 집단을 명시적으로 특정해 제도에서 원천적·일률적으로 배제한다. 정당한 사유 없이 장애를 이유로 불리하게 대우하는 것을 차별로 규정한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마지막으로 이 조항은 효과도 없다. 이 제도가 장애인 고용을 늘린다는 증거는 없다. 명분도 근거도 사라진 셈이다.
그런데 조항을 삭제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일반 사업체와 근로사업장은 곧바로 최저임금 적용 대상이 된다. 근로사업장은 이미 법령상 ‘최저임금 이상을 지급하는 시설’로 규정돼 있으므로 원칙적으로 문제가 없다. 문제는 보호작업장이다.
보고서는 보호작업장의 성격을 냉정하게 진단한다. 보호작업장은 근로를 통한 수익 창출보다 중증장애인에게 일자리 경험 기회를 제공하는 것 자체가 가장 큰 역할이다. 훈련장애인이 근로장애인의 절반에 달하고, 발달장애 비율이 85%를 넘는다. 실질적으로 복지시설에 가깝다. 따라서 보고서는 보호작업장을 독일·영국의 사례처럼 최저임금법 자체가 적용되지 않는 복지시설로 재분류하는 방향을 제안한다. 임금 관계가 아니라 사회보장 관계로 이해하는 것이다. 자활근로나 공익형 노인일자리처럼, 노동의 대가가 아닌 사회복지급여를 수급하는 방식으로 접근하자는 것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일반 사업체는 최저임금 전면 적용, 근로사업장은 최저임금 적용에 고용지원금 등 지원을 강화하고, 보호작업장은 최저임금법 적용에서 제외하되 복지급여 체계로 재편한다. 이것이 보고서가 제시하는 직업재활시설 기능 재편의 큰 그림이다.
두 번째 과제는 작업능력 평가 체계의 재정립이다. 조항을 삭제하고 시설 체계를 재편해도, 그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누가 어디에 배치되는지를 결정하는 기준이 명확해야 한다. 지금은 그 기준이 없다. 시설이 재량으로 결정한다. 보고서는 현행 최저임금 적용 제외 여부를 판단하던 작업능력 평가를 배치 판단을 위한 평가로 역할을 전환할 것을 제안한다. 비장애인 대비 일정 수준 이상의 작업능력을 갖추거나, 그 이하라도 특정 영역에서 훈련을 통해 근로가 가능하다고 판정되면 일반 사업체 취업 우선 지원 또는 근로사업장 배치로, 해당 기준에 미달할 경우 보호작업장 이용 대상으로 구분하는 방식이다.
다만 현행 평가 방식도 함께 개선돼야 한다. 현재의 작업능력 평가는 특정 직무수행 결과만을 측정한다. 이는 장애인의 능력을 과소평가할 가능성이 있다. 보고서는 일본의 사례를 참고해, 직장생활에 필요한 일상적 규칙 이행 정도, 작업 태도, 사회생활과 자기 관리 가능성 등 전반적인 역량을 평가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보호작업장 내에서도 근로장애인과 훈련장애인을 구분하는 객관적 기준이 필요하다. 지금은 이 구분마저 시설이 자체적으로 결정하고, 같은 사람이 상황에 따라 두 신분을 오간다. 보호작업장 급여 기준도 설정이 필요하다. 복지급여 성격으로 보더라도 아무런 최저선이 없으면 현재와 같은 극단적 저임금이 반복될 수 있다. 미국·일본·이스라엘·호주처럼 작업능력 수준에 비례한 급여 기준을 도입하되, 절대적 최저선을 명시해야 한다. 현재 사각지대에 있는 훈련수당도 이 최저 기준에는 맞춰야 한다.
세 번째 과제는 지역 간, 시설 간 격차 해소다. 2편에서 확인했듯 지역에 따라 임금이 3.6배까지 차이 난다. 이 격차를 시장과 시설의 자율에 맡겨두면 해소되지 않는다. 보고서는 국가 차원의 보조금 지원 또는 장애인고용기금의 차등적 배분, 표준적 직업재활시설 모델의 보급, 공공 직업재활시설 및 공공 일자리 확충 등을 제시한다.
특히 공공성 강화에 방점이 찍혀 있다. 현재 전국 792개 장애인 직업재활시설 중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운영하는 곳은 단 5개소, 0.6%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사회복지법인(54.7%)과 사단법인(26.6%)이 운영한다. 공적 책임이 극히 취약한 구조다.
보고서는 스웨덴의 삼할(Samhall AB)을 참고 사례로 제시한다. 삼할은 1977년 정부가 전액 출자해 설립한 국영기업으로, 스웨덴 전역 800개 지점, 1만 2000개 이상의 사업장을 운영하며 2만 4000명 이상이 근무하고 있다. 국가 지원을 받되 자체 수익으로 운영되는 기업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채용은 스웨덴 공공고용서비스를 통해 이뤄진다. 삼할 모델이 장애인을 일반 사회와 과도하게 분리한다는 비판도 있다. 보고서도 이를 인정한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 직영 시설이 0.6%에 불과한 한국의 현실에서,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이 우선적 과제라고 판단한다.
이미 지방 차원의 시도도 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도 예산으로 최저임금과의 차액을 보전해주는 보충급여를 운영 중이다. 서울 동작구는 근로장애인에게 월 40만원, 훈련장애인에게 월 10만원의 보충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먼저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국가가 이를 전국으로 확산할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개선방안을 넘어 보고서가 마지막으로 제기하는 것은 더 근본적인 질문이다. 우리는 장애인의 노동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지금까지의 지배적 관점은 재활 중심이었다. 장애인의 근로능력을 개발하고 훈련해서 비장애인과 경쟁하는 일반 고용시장으로 내보내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생산성과 작업성과로 노동의 가치를 측정한다. 그러나 보호작업장에서 일하는 대다수의 장애인에게 이 관점은 현실적으로 적용하기 어렵다. 근로능력 제고와 일반 고용시장으로의 전이가 구조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그들의 실패가 아니라 현실이다.
보고서는 이 지점에서 관점의 전환을 요구한다. 장애인의 노동은 생산량 같은 가시적 결과만으로 평가될 수 없다. 노동 참여 그 자체에서 얻는 자존감,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소속감, 규칙적인 생활을 통한 신체적·정신적 건강 유지 등의 과정과 비가시적 성과도 노동의 가치에 포함돼야 한다.
최근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확산되는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는 이 관점을 선취하고 있다. 문화예술활동, 권익옹호활동, 인식개선활동 등 전통적 생산성 기준으로는 측정하기 어려운 일을 하는 중증장애인에게 최저임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노동을 생산의 도구가 아닌 권리로 본다는 선언이다. 이 흐름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다.
세 편에 걸쳐 우리는 하나의 제도를 들여다봤다. 40년간 유지된, 그러나 제대로 작동한 적 없는 제도. 이 제도의 핵심 문제는 단순히 임금이 낮다는 것이 아니다. 장애인을 최저임금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면서도, 그로 인한 소득 감소와 생활 불안을 보완할 어떤 장치도 마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배제만 있고 보호는 없었다. 보고서가 이를 ‘제도적 방임’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이제 필요한 것은 세 가지다. 첫째는 최저임금법 제7조 적용 제외 조항의 삭제다. 40년 된 명시적 차별 조항을 없애는 것이 출발점이다. 둘째는 직업재활시설 체계의 전면 재편이다. 근로사업장과 보호작업장을 명확히 구분하고, 각각에 맞는 지원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는 장애인 노동을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다. 생산성 중심의 ‘재활’에서, 참여 자체를 인정하는 ‘권리’로.
조항 하나를 삭제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어려운 것은 그 이후다. 1만여 명의 장애인 근로자가 실질적으로 더 나은 처우를 받을 수 있도록 촘촘한 제도를 만드는 일, 그리고 우리 사회가 장애인의 노동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를 바꾸는 일. 그것이 ‘제도적 방임’을 끝내는 진짜 의미다.
이 시리즈는 국회입법조사처 NARS 현안분석 제425호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원문은 국회입법조사처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