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지능 700만, 사라진 노동력] ③ 경계선지능인 지원법, 11건 발의 0건 통과

상위법 없이 막히는 지자체, 1개월짜리 시범사업의 한계
11건의 법안이 멈춰 있는 국회, 우리가 바꿔야 할 것들은

<사진=Unsplash>

지능지수(IQ) 71~84에 해당하는 경계선지능인은 전체 인구의 약 13%를 차지하지만, 장애인에게도 비장애인에게도 속하지 못한 채 고용과 복지 양쪽에서 배제돼 있다. 법적 정의조차 없는 이 700만 명은 저출생·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가 빠르게 줄어드는 한국 사회에서 활용되지 못한 채 방치된 노동력이기도 하다. 해외 주요국은 이미 이들을 노동시장 안으로 끌어들이는 제도를 갖추고 있다. 3회에 걸쳐 경계선지능인의 고용 현실과 해외 사례, 그리고 한국에 필요한 제도적 과제를 짚는다. [편집자주]

경계선지능인 관련 지원 사업이 중앙정부와 지자체에서 조금씩 시작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법적 기반은 여전히 마련되지 않았다. 현재 한국에는 경계선지능인에 대한 법적 정의도, 지원 근거가 되는 전담법도 없다. 22대 국회에 발의된 관련 법안은 11건에 이르지만, 단 한 건도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광역자치단체 차원에서는 17개 시·도 가운데 15곳이 경계선지능인 관련 조례를 제정했다. 그러나 조례만으로 할 수 있는 일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다.

경남도의회가 2024년 경계선지능인 지원 조례안을 발의했다가 심사 보류된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국가 차원의 상위 법령이 없으면 지방의회가 조례를 제정하더라도 예산 편성의 법적 근거가 불안정하고, 전담 조직 신설이나 인력 배치에 제약이 따른다. 2024년 11월 제정된 취약계층청년 자립지원법에 경계선지능 청년이 포함되기는 했지만, 경계선지능인만을 위한 전담법이 아니어서 실효성에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2025년 11월 국회에서 열린 ‘경계선지능인 지원법’ 입법 공청회에서도 “정확한 실태 파악 없이 지원 체계 구축이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재차 나왔다. 보건복지부가 2024년 착수한 전국 단위 실태조사의 결과가 2026년 상반기에 발표될 예정인 만큼, 이 조사 결과가 입법 논의에 어떤 동력을 제공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중앙정부가 편성한 경계선지능 청년 일자리 시범사업은 참여 기간이 1개월에 불과하다. 앞선 연재에서 확인한 것처럼 경계선지능인이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는 데는 3~6개월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 1개월은 업무 파악이 시작되는 시점에 사업이 종료되는 기간이다.

일하는시민연구소는 지원 기간을 36개월로 늘리고, 대상을 중장년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현행 사업은 2039세로 대상이 한정돼 있어, 40대 이후 경계선지능인은 지자체 개별 사업에조차 접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참여수당도 월 20만 원 수준으로, 교통비와 식비를 감안하면 사실상 자비 참여에 가까운 구조라는 현장의 비판이 있다. 일 경험 이후 연계 취업으로 이어지는 체계도 마련돼 있지 않아, 시범사업이 고용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단기 체험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해외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경계선지능인 고용이 작동하려면 두 가지 장치가 핵심이다. 직무 코치와 기능적 평가 체계다.

직무 코치는 경계선지능인이 새로운 사업장에 배치된 뒤 일정 기간 밀착 지원하는 전담 인력이다. 독일의 통합청 모델과 네덜란드의 UWV 직업 코치 제도가 대표적이다. 업무 절차를 단계별로 나눠 설명하고, 동료 및 관리자와의 소통을 중개하며, 적응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조기에 해결하는 역할을 한다. 경계선지능인의 고용 유지율이 낮은 핵심 원인이 적응 기간의 지원 공백이라는 점에서, 직무 코치는 가장 실효성 있는 개입 수단으로 꼽힌다.

기능적 평가는 장애 판정 여부가 아닌 직무 수행 능력을 기준으로 지원 대상을 결정하는 체계다. 호주의 직업능력평가(Job Capacity Assessment)가 대표적인 모델이다. IQ 점수라는 단일 지표가 아니라, 인지 기능·적응 능력·직업 관련 기술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지원의 종류와 수준을 결정한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평가 체계가 도입되면, 현재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아닌 경계에서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제도적으로 해소할 수 있다.

제도적 장치와 함께 고용 현장에서의 변화도 필요하다. 경계선지능인의 강점은 반복 작업에서의 성실성과 꾸준함이다. 복잡한 업무를 단계별로 세분화하고 시각적 매뉴얼을 갖추면, 물류·제조·외식 등 분야에서 안정적인 인력으로 활용될 수 있다.

유니클로의 ‘천천히 함께’ 사업이 보여주듯이, 1대1 맞춤 교육을 받은 경계선지능 아동의 기초학습능력이 평균 21%포인트 향상됐다. 교육 단계에서의 역량 향상이 직업훈련과 고용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만들어지면, 경계선지능인의 노동시장 참여 가능성은 지금보다 훨씬 높아질 수 있다.

고용주에게 인건비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방안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 네덜란드의 임금 보조금 모델처럼 채용 단계에서의 기업 부담을 낮추면, 고용 기피를 줄이는 데 효과적이다.

서미화 의원이 대표발의한 ‘경계선지능인 자립지원 및 권리보장에 관한 법률안’은 경계선지능인의 법적 정의를 명문화하고, 발굴·연계 체계와 생애주기별 맞춤 지원체계를 구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이 통과되면 실태조사, 직업훈련, 고용 연계 사업에 안정적 예산이 배정될 수 있고, 지자체의 조례 제정과 사업 추진에도 법적 근거가 마련된다.

부산연구원 박주홍 책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장애인의 범주가 소극적이고, 장애인복지법 또한 의료적 기준을 적용해 엄격하다”며 “경계선 지능인과 같이 실제로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장애인이 아니더라도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수백만 명에 달하는 이들을 계속 방치하는 것은 복지의 실패인 동시에, 저출생·고령화 시대에 활용 가능한 인력자원을 쓰지 않겠다는 선택이다. 장애인 고용 정책의 사각지대를 점검하는 일이 곧 한국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일과 맞닿아 있다. 11건의 법안이 국회에 멈춰 있는 지금, 문을 여는 것은 결국 법의 몫이다.




[연중기획-장애인으로 살아가기(4)]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 데이터로 드러난 장애인의 고립

취업과 사회관계에서 두드러진 격차
중증·정신장애인의 고립 심화

<사진=AI Gemini 생성 이미지>

장애는 개인의 신체적 변화로 시작되지만 그 이후의 삶은 건강, 일자리, 소득, 사회관계 등 여러 영역에서 복합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장애인의 삶을 장기적인 데이터로 추적하며 구조적으로 분석한 보도는 많지 않았다. 본지는 장애인 삶 패널조사 연구 자료와 현장 취재를 바탕으로 장애 발생 이후 개인의 삶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리고 제도와 현실 사이에 어떤 간극이 존재하는지를 살펴보는 연중기획 ‘장애인으로 살아가기’를 시작한다. 이 연재에서는 장애인의 건강, 고용, 소득, 사회참여 등 다양한 삶의 지표를 분석하고 정책적 과제를 짚어볼 예정이다.[편집자주]

장애인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차별은 단순한 불편 수준을 넘어 삶의 만족도와 정신건강, 사회참여까지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문제로 나타났다. 특히 취업과 사회관계 영역에서 장애 유형과 정도에 따른 격차가 뚜렷하게 확인되면서 장애인 정책 역시 단순 지원 중심에서 차별 해소 중심으로 전환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이 발표한 ‘장애인삶 패널조사 데이터 품질연구’는 2018년부터 2023년까지 장애인의 삶을 장기 추적한 국가 단위 조사다. 조사 항목에는 고용, 교육, 사회관계, 건강, 심리상태, 인권, 삶의 만족도 등이 포함됐다.

조사 결과 장애인의 사회적 관계 만족도는 10점 만점 기준 2018년 5.09점에서 2023년 5.63점으로 상승했지만, 장애유형과 장애정도에 따라 큰 차이를 보였다. 지체·청각언어 장애인의 만족도가 상대적으로 높았던 반면, 중증장애인의 만족도는 경증장애인보다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는 장애 정도가 심할수록 사회적 관계 형성과 유지에서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회참여 격차도 뚜렷했다. 종교·친목·여가·자원봉사·정치단체 활동 가운데 한 달에 1회 이상 참여한 비율은 2021년 38.12%에서 2023년 54.29%까지 증가했다. 그러나 뇌병변·지적·자폐성·정신장애인의 참여율은 다른 장애유형보다 낮게 나타났다. 사회적 활동 참여 자체가 이동권과 정보 접근성, 지역사회 인식 등에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단순 개인 선택의 문제로 보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취업 영역에서는 구조적 차별 문제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 조사에 따르면 중증장애인의 경우 미취업 상태에서 취업 상태로 전환될 확률이 경증장애인의 절반 수준에 머물렀다. 실제로 2023년 기준 정신장애인의 미취업 유지 비율은 96.36%에 달했다.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미취업 유지 비율 역시 90.18%로 높게 나타났다.

여성 장애인의 고용 취약성도 확인됐다. 보고서는 남성과 여성 모두 미취업 상태가 지속되는 경향을 보였지만, 여성이 남성보다 미취업 상태를 유지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분석했다. 장애와 성별이 결합되며 노동시장 안에서 이중 차별이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경제적 만족도 역시 취업 여부에 따라 큰 차이를 보였다. 2023년 기준 취업 장애인의 수입 만족도는 5.50점이었던 반면, 미취업 장애인은 4.42점에 그쳤다. 단순히 소득 규모의 차이를 넘어, 고용 여부 자체가 삶의 안정감과 자존감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주는 결과다.

차별 경험은 정신적 위축으로도 이어졌다. 보고서의 장애수용 문항에는 “나는 장애 때문에 사람들을 잘 사귀지 못한다”, “나는 장애 때문에 무언가를 할 수 없어 속상하다”와 같은 항목이 포함됐다. 실제 장애수용 점수는 정신장애인의 경우 2023년 2.22점으로 주요 장애유형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 중 하나로 조사됐다. 중증장애인의 장애수용 점수 역시 2.30점으로 경증장애인 2.55점보다 낮았다.

이는 반복되는 차별과 사회적 배제가 단순한 불편을 넘어 자기효능감 저하와 사회적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보여주는 지표로 해석된다.

건강 영역에서도 취업 여부에 따른 격차가 나타났다. 2023년 기준 만성질환 보유 비율은 미취업 장애인이 취업 장애인보다 높게 조사됐다. 사회적 고립과 경제적 불안정이 건강 문제와도 연결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장애인 차별이 특정 개인의 편견 문제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 전반의 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한다. 채용 과정에서의 배제, 학교 현장의 지원 부족, 공공서비스 접근의 어려움, 지역사회 내 관계 단절이 서로 연결되며 장애인의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조사 결과는 차별이 단순히 순간적인 경험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차별은 사회관계 축소와 경제적 불안정, 낮은 삶의 만족도, 정신적 위축으로 이어지며 결국 장애인의 삶 자체를 제한하는 ‘보이지 않는 장벽’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연중기획-장애인으로 살아가기(3)] 장애인 가구의 소득 구조, 노동보다 복지에 의존

근로소득은 제한적… 연금과 수당이 생계를 지탱

<사진=Pexels>

장애는 개인의 신체적 변화로 시작되지만 그 이후의 삶은 건강, 일자리, 소득, 사회관계 등 여러 영역에서 복합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장애인의 삶을 장기적인 데이터로 추적하며 구조적으로 분석한 보도는 많지 않았다. 본지는 장애인 삶 패널조사 연구 자료와 현장 취재를 바탕으로 장애 발생 이후 개인의 삶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리고 제도와 현실 사이에 어떤 간극이 존재하는지를 살펴보는 연중기획 ‘장애인으로 살아가기’를 시작한다. 이 연재에서는 장애인의 건강, 고용, 소득, 사회참여 등 다양한 삶의 지표를 분석하고 정책적 과제를 짚어볼 예정이다.[편집자주]

장애인 가구의 소득 구조를 들여다보면 노동소득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현실이 수치로 드러난다. 일자리 참여가 제한된 상황에서 연금과 각종 수당 등 이전소득이 생활의 중요한 축을 형성하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개인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시장 접근 자체의 장벽과 맞물린 구조적 문제로 해석된다.

최근 장애인 삶 패널조사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장애인 가구의 월 평균 소득은 292만9900원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근로소득은 175만700원으로 전체 소득의 약 59.7%를 차지했고, 나머지 117만9200원은 근로 외 소득에서 발생했다. 근로 외 소득은 연금소득과 공적 이전소득, 사적 이전소득, 금융소득 등으로 구성되며, 실질적으로는 각종 연금과 수당이 가구 소득의 약 40%를 떠받치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구조는 단기간에 형성된 것이 아니다. 근로소득은 2021년 166만600원에서 2022년 171만2900원, 2023년 175만700원으로 완만한 증가세를 보였지만 증가 폭은 크지 않았다. 같은 기간 근로 외 소득은 106만6100원에서 112만800원, 117만9200원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노동을 통한 소득 확대 속도보다 이전소득의 증가 속도가 더 뚜렷하게 나타난 것이다.

생활비 부담 역시 이러한 구조를 강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장애인 가구의 월 평균 생활비는 2021년 179만8400원에서 2022년 187만2800원, 2023년 196만5400원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생활비 상승 속도는 근로소득 증가 속도를 앞지르고 있으며, 이는 자연스럽게 공적 지원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는 결과로 이어진다.

장애로 인한 추가 지출 역시 가계 구조를 압박하는 주요 요인으로 지목된다. 조사에 따르면 장애로 인해 추가로 발생하는 월 평균 지출은 21만2800원 수준으로 나타났다. 의료비와 재활 치료비, 보호·간병비, 교통비, 보조기구 비용, 활동지원 서비스 이용료 등이 주요 항목이다. 이러한 비용은 비장애 가구에는 상대적으로 적거나 존재하지 않는 지출로, 노동소득만으로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운 구조적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처럼 이전소득 의존 구조가 강화되는 배경에는 노동시장 진입 자체의 어려움이 자리하고 있다. 장애인의 노동 참여는 근무일수와 근무시간, 직무 선택의 폭 등에서 제약을 받는 경우가 많다. 이동의 어려움과 근무 환경의 제약, 직무 적합성 부족, 고용주의 인식 문제 등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노동시장 진입 문턱은 여전히 높게 유지되고 있다. 특히 중증 장애인의 경우 선택 가능한 일자리 자체가 제한적이어서 근로소득 확대가 구조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노동시장 내부에서도 안정적인 근로를 이어가기 위한 여건은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장애 특성에 맞춘 직무 개발이나 근무 환경 조정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 취업 이후에도 근로를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한다. 이는 결국 노동소득의 지속성과 안정성을 낮추고, 장기적으로 이전소득 의존도를 높이는 결과로 이어진다.

공적 이전소득이 생계를 지탱하는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은 사회 안전망이 일정 부분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장애인연금과 기초연금, 각종 수당은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되고 있으며, 노동 참여가 어려운 계층에게는 사실상 생계 유지의 마지막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가 장기적으로 고착될 경우 노동을 통한 자립 기회가 축소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노동소득 확대가 어려운 상황에서 이전소득 의존이 지속될수록 개인의 경제적 자립 기반은 약화될 수 있으며, 사회 전체적으로도 재정 부담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장애인 가구의 소득 구조 문제를 단순히 복지 확대 여부로만 접근해서는 해결이 어렵다고 지적한다. 노동시장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직무 개발과 근무 환경 개선, 이동 지원 확대, 고용 안정성 강화 등 구조적 개선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근로소득 비중 확대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장애인 가구의 소득 구조는 개인의 선택이나 노력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사회 구조의 결과물에 가깝다. 노동소득과 이전소득의 균형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 그리고 노동시장 진입 장벽을 어떻게 낮출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앞으로 장애인 정책 전반에서 중요한 과제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경계선지능 700만, 사라진 노동력] ② 해외는 어떻게 문을 열었나

독일·네덜란드·호주·일본의 맞춤형 고용 모델, 그리고 한국의 첫걸음
IQ가 아닌 직무 능력으로 판단하는 해외 고용 모델, 한국은 아직 시범사업 수준

<사진=Unsplash>

지능지수(IQ) 71~84에 해당하는 경계선지능인은 전체 인구의 약 13%를 차지하지만, 장애인에게도 비장애인에게도 속하지 못한 채 고용과 복지 양쪽에서 배제돼 있다. 법적 정의조차 없는 이 700만 명은 저출생·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가 빠르게 줄어드는 한국 사회에서 활용되지 못한 채 방치된 노동력이기도 하다. 해외 주요국은 이미 이들을 노동시장 안으로 끌어들이는 제도를 갖추고 있다. 3회에 걸쳐 경계선지능인의 고용 현실과 해외 사례, 그리고 한국에 필요한 제도적 과제를 짚는다. [편집자주]

경계선지능인은 장애인 복지와 일반 고용 정책 양쪽에서 배제된 채 노동시장 밖에 머물고 있다. 한국이 이 문제에 대한 법적 정의조차 마련하지 못한 사이, 해외 주요국은 이미 경계선지능인을 포함한 인지 취약 계층을 노동시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 국가의 접근법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장애 판정 여부가 아니라 ‘직무 수행 능력’을 기준으로 지원 대상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독일은 통합청(Integrationsamt)을 중심으로 경계선지능인을 포함한 인지 취약 계층에 대해 지원고용(Supported Employment) 모델을 운영한다. 보호작업장(Werkstatt für behinderte Menschen)에서 직업 훈련을 받은 뒤 일반 사업장으로 전환 배치하는 구조로, 직무 코치가 사업장에 상주하며 적응을 돕는다. 장애 판정 여부가 아니라 근로 능력 평가 결과에 따라 지원 대상이 결정되기 때문에, 경계선지능인처럼 공식 장애 등급을 받지 못한 계층도 제도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네덜란드의 경우 사회보험기관(UWV)을 통해 장애인 고용 쿼터제와 직업 코치 지원 제도를 병행한다. 고용주에게 임금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동시에 근로자 개인에게 맞춤형 직무 교육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경계선지능인처럼 제도적 분류가 모호한 계층도 직무 능력 평가를 기반으로 지원 대상에 포함시킨다. 고용주와 근로자 양쪽에 동시에 지원이 이뤄지기 때문에, 채용 단계에서의 기피와 입사 후의 조기 퇴사를 함께 줄이는 효과가 있다.

호주는 연방정부 고용부 소관의 장애고용서비스(Disability Employment Services)를 통해, 지적장애 판정 여부와 관계없이 직무 수행에 어려움이 있는 이들에게 맞춤형 훈련과 배치를 지원한다. 핵심은 직업능력평가(Job Capacity Assessment)다. 신청자의 인지·적응 기능 수준을 평가한 뒤 지원 수준을 결정하기 때문에, 경계선지능인처럼 공식 장애 판정을 받지 못한 계층도 제도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장애 유형이 아닌 ‘기능적 필요’를 기준으로 지원 여부를 판단하는 체계다. 장애고용서비스는 국가장애보험제도(NDIS)와 별도로 운영되며, 취업 배치와 직장 내 적응 지원에 특화돼 있다.

일본은 지적장애인복지법을 기반으로 취로계속지원A형·B형 사업소를 운영하며, 경계선지능인 일부가 이 체계를 통해 보호고용 형태로 노동시장에 참여하고 있다. A형은 고용 계약을 체결하고 최저임금 이상을 보장받는 구조이고, B형은 비고용 형태로 생산 활동에 참여하면서 공임을 받는 방식이다. 다만 일본 역시 경계선지능인에 대한 별도의 법적 지위 부여는 이루어지지 않아, 사각지대 해소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에서도 변화의 시도가 있다. 한 의류기업은 사회복지법인 아이들과미래재단과 함께 ‘천천히 함께’ 사업을 운영하며, 3년간 누적 31억 원 이상을 투입해 경계선지능 아동 700여 명에게 1대1 맞춤 교육을 제공했다. 기초학습능력이 평균 21%포인트 향상되는 성과를 냈고, 4년차인 2025년에는 추가 12억 원을 투입하며 지원 지역을 확대했다. 민간 기업이 교육 단계에서부터 경계선지능인의 역량을 끌어올린 사례로, 직업훈련과 연계될 경우 고용 가능성의 토대가 될 수 있다.

지자체 차원의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부산시는 2023년 경계선지능인 지원 조례를 제정하고 전담센터를 통해 경계선지능 청년을 대상으로 진로 탐색과 일 경험 프로그램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 부산시교육청도 경계선지능 학생 맞춤형 학습·상담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안양시와 서울 광진구 등 일부 지자체에서는 평생교육 지원을 확대하고 있고, 강원도에서는 취약 청년 자립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전남교육청은 전국 최초로 경계선지능 의심 학생의 지능검사 비용을 전액 지원하기 시작했다.

중앙정부도 ‘경계선지능 청년 일자리 지원 사업’에 3억 원을 배정해, 20~39세 경계선지능 청년 200명에게 1개월간 일 경험 기회와 참여수당 월 20만 원을 제공하는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2024년 7월에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경계선지능인 지원 종합대책을 수립하고, 처음으로 전국 단위 실태조사에도 착수했다. 조사 결과는 2026년 상반기 중 발표될 예정이다.

그러나 이 모든 시도는 여전히 산발적이고 규모가 작다. 해외 사례에서 보듯이 고용 시스템이 작동하려면 직무 코치, 임금 보조금, 기능적 평가 체계가 제도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한국의 현재 시범사업들은 이러한 요소를 갖추지 못한 채, 단기 체험에 가까운 수준에 머물고 있다.




[장애인의 날 특집 기획] 편견의 가격 下-일할 권리, 이제는 로드맵이 답해야

의무고용률 상향·2700억 지원·기술 혁신… 정책·현장·문화 삼각축 본격 가동

2025년 10월 1일 열린 관광일자리페스타 현장 <사진=장애인일자리신문>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인일자리신문은 장애인 고용의 패러다임 전환을 촉구하는 기획 시리즈를 마련했다. 장애인 고용은 시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편견을 붙들고 있는 동안 매년 14조 원이 넘는 비용이 공동체의 재정에서 새어 나가고 있다.
이번 기획 시리즈를 통해 장애인 고용 문제를 ‘복지의 언어’가 아닌 ‘경제의 언어’로 다시 읽었다. 이번편에서는 2029년까지 이어지는 정책 로드맵과 기술·문화의 변화가 어떻게 맞물려야 하는지를 조망했다. 장애인이 일터로 나올 때 사회적 비용은 줄고, 기업은 성장하며, 공동체는 지속가능해진다. ‘편견의 가격’을 더 이상 치르지 않을 선택은 지금 우리 손에 달려 있다. [편집자주]

고령화와 인구 구조 변화가 가속화되는 2025년 이후 노동시장에서 다양성 확보는 기업 생존과 직결된 과제가 됐다. 우리 정부도 이런 흐름에 맞춰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단계적으로 올리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장애인고용 촉진 로드맵에 따르면 현재 민간 기업 3.1%, 공공 부문 3.8%인 법정 의무고용률은 2027년 각각 3.3%와 3.9%를 거쳐 2029년에는 3.5%와 4.0%까지 높아진다. 정부는 이 조정만으로도 앞으로 4년간 민간에서 약 3만 명, 공공에서 3,000명 등 총 3만 3,000개 수준의 신규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내다본다.

장애인 고용은 더 이상 사회적 책임이라는 명분에만 머물지 않는다. 기업의 수익성과 직결되는 경영 전략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사 액센츄어가 발표한 2025년 장애 포용 보고서에 따르면 장애평등지수(DEI) 상위 100개 기업의 총주주수익률은 S&P500 평균을 1.6배 웃돌았다. 연평균 수익률로는 포용 상위 기업이 14.0%를 기록한 반면 S&P500 평균은 8.5%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경제적 가치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제도 개선과 기술 혁신, 인식의 대전환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제 현장의 지표를 보면 정책적 과제가 더욱 선명해진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집계한 2024년 말 기준 상시근로자 50인 이상 공공·민간 사업장 3만 2,692곳의 평균 장애인 고용률은 3.21%였다. 전년 3.17%보다 0.04%포인트 오르며 법정 목표치를 0.11%포인트 웃돈 수치다. 이들 사업장에서 일하는 장애인 근로자는 29만 8,654명이며 이 가운데 중증장애인이 10만 6,866명을 차지해 고용 구조의 다양성도 넓어지는 추세다. 그러나 통계청이 집계한 전체 인구 고용률이 70.0%를 기록하는 동안 장애인 고용률은 48.4%에 머물러 21.6%포인트의 격차를 보이고 있다. 이 간극을 좁히기 위한 집중적인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은 표준사업장 확대 등을 통해 2024년 기준 797개소에서 장애인 1만 8,115명을 고용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중증장애인 비율은 79.9%로 4년간 68%가 늘었다.

숫자 이면에는 각자의 사연을 안고 일터를 찾아온 사람들이 있다. 발달장애가 있는 이모 씨는 3년 전 한 제조업체에 입사했다. 처음에는 비장애인 동료들과 소통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하지만 업무 보조 인력의 도움을 받으며 공정 이해도가 높아졌고, 지금은 품질 점검 라인에서 가장 낮은 오류율을 유지하고 있다. 이 씨는 “처음엔 내가 짐이 될까 봐 걱정했는데 지금은 팀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일터의 변화는 통계 위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먼저 시작된다.

재정 투자 역시 실질적인 고용 유지와 맞춤형 서비스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2026년 장애인 근로지원인 지원 예산은 국회 심의를 거쳐 2,705억 원으로 확정됐다. 전년 대비 증액된 규모로 이를 통해 1만 1,700명의 장애인 근로자가 업무 보조 인력을 지원받는다. 특히 발달장애인 지원 등 맞춤형 고용 서비스 기능을 강화해 고용의 질을 높인다는 구상이다. 저소득 중증장애인의 출퇴근 장벽을 낮추기 위한 교통비 지원 예산도 85억 원으로 편성돼 1만 5,000여 명의 경제활동을 뒷받침한다. 여기에 보조공학기기 보급 예산 2ㄹ00억 원이 투입돼 착용형 로봇 등 첨단 기기 도입을 지원한다.

기술의 진보는 고용의 물리적 한계를 빠르게 지워나가고 있다. 네이버의 클로바노트 같은 실시간 음성-문자 변환 서비스는 청각장애인의 소통을 돕고, 사피언스의 증강현실 기반 업무 솔루션은 발달장애인의 직무 숙련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기업들은 채용 단계부터 웹 접근성을 확보하고 사무실에 높낮이 조절 책상 등 유니버설 디자인을 도입하며 환경을 정비하고 있다. 비장애인 직원을 대상으로 한 체계적인 포용 교육은 조직 내 심리적 장벽을 허무는 핵심 동력이다.

그러나 기술과 예산이 뒷받침되더라도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한계는 분명하다. 현장의 장애인 당사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특별한 배려가 아니라 동등한 동료로서의 인정이다. 고용 현장에서 만난 한 장애인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업무 성과로 정당하게 평가받고 함께 고민하는 동등한 동료로서의 대우”라고 강조했다. 이런 목소리에 화답하듯 장애인 고용에 앞장서는 기업 제품에 ‘굿잡’ 라벨을 부착해 가치 소비를 유도하는 방안이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제안돼 도입 검토 단계에 들어섰다.

정책과 기술, 문화의 세 축은 지금 이 순간에도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정부가 의무고용률 상향과 2,700억 원이 넘는 지원 예산으로 토대를 다지고, 기업이 기술 혁신으로 환경을 조성하며, 시민들이 문화로 지지할 때 장애인의 일할 권리는 우리 경제의 포용성을 측정하는 척도가 된다. 일부의 성공 사례를 넘어 모두가 함께 일하는 미래, 그 로드맵을 실행에 옮겨야 할 때다.




[장애인의 날 특집 기획] 편견의 가격 上-장애인 배제가 만든 14조 원 청구서

장애인 고용 외면이 남긴 사회적 청구서 14조 원
미고용에 따른 복지·의료비 지출 급증…고용은 경제 선순환의 열쇠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인일자리신문은 장애인 고용의 패러다임 전환을 촉구하는 기획 시리즈를 마련했다. 장애인 고용은 시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편견을 붙들고 있는 동안 매년 14조 원이 넘는 비용이 공동체의 재정에서 새어 나가고 있다.
이번 기획 시리즈를 통해 장애인 고용 문제를 ‘복지의 언어’가 아닌 ‘경제의 언어’로 다시 읽었다. 먼저 이번편에서는 미고용이 초래하는 사회적 비용의 실체를 수치로 추적했다. 장애인이 일터로 나올 때 사회적 비용은 줄고, 기업은 성장하며, 공동체는 지속가능해진다. ‘편견의 가격’을 더 이상 치르지 않을 선택은 지금 우리 손에 달려 있다. [편집자주]

장애인의 생산성이 낮을 것이라는 막연한 통념이 연간 14조 원을 상회하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으로 돌아오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장애로 인해 우리 사회가 부담하는 직접 의료비와 생산성 손실 비용은 2018년 기준 연간 14조 5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는 2011년 국립재활원이 산출했던 11조 1366억 원에서 크게 불어난 수치로 우리 사회가 장애인 고용을 외면할수록 공동체의 경제적 부담이 가중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은 여전히 차갑다. 구직 상담 부스에서 만난 지체장애인 김모 씨는 “능력을 보여줄 기회조차 얻기 힘들다”며 “면접장에서 마주하는 편견 섞인 질문들이 취업을 가로막는 가장 큰 벽”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인식의 장벽은 장애인 고용률을 법정 의무고용률에 못 미치는 3.21% 수준에 머물게 하는 주요 원인이다.

주목할 것은 편견이 고용 경험의 유무와 직결된다는 점이다. 장애인고용공단 조사에 따르면 장애인 고용 경험이 있는 기업은 2019년 2.62점에서 2024년 2.47점으로 장애인 생산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꾸준히 낮아졌다. 반면 미고용 기업은 같은 기간 3.01점에서 3.09점으로 오히려 악화됐다. 고용해 보지 않은 기업일수록 편견이 강해지고, 편견이 강할수록 고용을 회피하는 악순환이 숫자로 확인되는 셈이다.

문제는 부정적인 인식이 장애인 개인의 좌절을 넘어 국가 재정의 심각한 부담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장애인이 노동 시장 밖에 머무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복지 지출과 의료비는 동시에 불어나는 구조다.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이 분석한 결과 2020년 장애인 진료비 총액은 11조 8000억 원을 기록했다. 간병비와 생산성 손실을 제외한 순수 의료비만으로도 이미 10조 원을 훌쩍 넘어선 셈이다.

국회예산정책처 역시 최근 보고서를 통해 장애인 미고용으로 인한 생산성 손실액이 2022년 기준 9조 7000억 원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만약 장애인 고용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50% 수준까지 향상된다면 연간 3조 원 내외의 세수 증대와 사회보험 수입 증가 효과를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장애인 고용 확대가 국가 재정을 건전하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투자임을 입증하는 데이터다.

‘편견의 가격’은 부담금 통계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2024년 기준 민간부문 장애인 고용률은 3.03%로, 법정 의무고용률 3.1%에 미달하고 있다. 공공부문이 의무고용률 3.8%를 넘어선 3.9%를 기록한 것과 대비된다. 고용 대신 부담금을 납부하는 방식으로 의무를 대신하는 관행도 이어지고 있다. 국방부는 장애인 고용률이 2019년 2.7%에서 2023년 2.2%로 오히려 하락하는 동안 같은 기간 부담금으로만 297억 6300만 원을 납부했다. 경기도교육청이 2026년 납부해야 할 부담금은 398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돈이 장애인 고용에 쓰였다면 거뒀을 생산성과 세수 효과를 생각하면, 부담금은 회피 비용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사회적 손실이다.

반면 장애인의 사회 참여는 실질적인 비용 절감으로 이어진다. 대한장애인체육회 분석에 따르면 장애인이 정기적으로 체육활동에 참여할 경우 1인당 연간 약 21만 5000원의 의료비가 절감된다. 이를 장애인 인구 전체에 적용하면 사회경제적 효과는 1조 4000억 원 규모에 달한다. 일자리를 통해 사회의 일원이 되는 과정 자체가 건강 증진과 의료비 감소라는 연쇄 효과를 불러오는 것이다.

취업에 성공한 장애인은 정부 보조금 수혜자에서 세금 납부자로 역할이 바뀐다. 보건복지부 연구에 따르면 장애인이 취업할 경우 복지 의존도는 평균 25% 줄고 소득은 20%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활동으로 얻은 소득은 다시 소비 확대로 이어져 내수 시장 활성화에 기여한다.

전문가들은 “장애인 고용은 시혜적 차원을 넘어 사회 전체의 부를 증대시키는 경제 선순환의 시작”이라며 “고용이야말로 장애인의 자립을 돕고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최고의 복지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장애인을 향한 편견은 결국 우리 사회 전체가 지불해야 할 무거운 비용으로 돌아온다. 장애인을 동정의 대상이 아닌 동등한 생산 주체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시급한 이유다. 장애인이 일터로 나올 때 사회적 비용은 줄고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은 높아진다.




[이용자위원회, 2026년 1분기 모니터링] “감시 보도 강화·추적 취재 지속해야”

제1기 이용자위원회 제4회 정기 모니터링 회의 개최…대법원 고용부담금 판결·의무고용률 상향 등 주요 의제 짚어

<사진=장애인일자리신문>

장애인일자리신문 제1기 이용자위원회가 지난 3일 정기 모니터링 회의를 열고 올해 1분기(1~3월) 보도를 전반적으로 점검했다.

이날 회의에는 장호철 위원장(한국지체장애인협회 중앙이사), 김형규 위원(전 평택시복지재단 이사장), 양경석 위원(전 평택시의회 전반기 부의장), 임우근 위원(대한장애인체육회 이사), 이상택 위원(대구장애인근로자지원센터 센터장)이 참석했다.

위원회는 1분기 기사 전반에 대한 총평과 함께 연중기획 ‘장애인으로 살아가기(1)’, ‘대졸 장애인 취업률 비장애인 대비 21.2%p 낮아’ 기사, 대법원 고용부담금 판결 보도 등 세 편을 심층 평가 대상으로 선정했다.

장호철 위원장은 1분기 보도 전반에 대해 “대법원 고용부담금 판결이라는 역대급 변수가 터지면서 장애인 고용 의제 전체가 흔들리는 시기였다”며 “그 상황에서도 민간 의무고용률 3.5% 단계적 상향 기사와 공공 일자리 비대화 문제를 짚은 기사들이 나란히 나온 것은 이번 분기 보도의 균형감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장 위원장은 특히 ‘3만 5천 명으로 커진 장애인 일자리…민간 취업은 뒷전, 공공 일자리만 비대화’ 기사를 거론하며 “공공 일자리 확대가 민간 고용 회피의 면죄부가 되어선 안 된다는 본질적인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한 기사”라고 했다. 다만 “의무고용률 상향 발표 기사들이 정책 수치 소개에 머무는 경향이 있었다”며 “상향 이후 기업들의 실제 준비 현황이나 이행 의지를 묻는 후속 취재가 뒤따라야 발표 기사가 완성된다”고 지적했다.

“ESG 고용 모델 조명 반가워…홍보성 흐름은 경계해야”

김형규 위원은 “LS일렉트릭의 장애 예술인·헬스키퍼 채용 확대 기사나 HDC랩스의 발달장애 예술인 16명 신규 채용 기사처럼 고용과 문화예술을 결합한 모델을 조명한 보도들이 반가웠다”고 했다. 다만 “이런 기사들이 기업 홍보성 내용으로 흐르지 않으려면 실제 고용 지속성, 임금 수준, 근로 조건까지 확인하는 취재가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은 ‘장애인기업 경기지수 사상 최대 낙폭’ 기사에 대해서도 “내수 의존 구조의 한계를 드러낸 중요한 데이터”라며 “이 지수 변화가 실제 장애인 고용 유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로 연결되는 해설이 더해졌다면 기사의 깊이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방선거 앞 장애계 공약, 본지가 이행 여부 추적해야”

양경석 위원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장애계 의제가 본격적으로 공론화되기 시작하는 시점이어서 보도 하나하나의 무게가 달랐다”며 “‘2026 지방선거장애인연대, 10대 분야 공통 공약 발표’ 기사가 이 맥락에서 가장 시의적절한 보도였다”고 평가했다.

양 위원은 나주시 히어링 루프 설치, 부산시 와상장애인 이동지원서비스 등 지자체 선도 사례를 조명한 보도들에 대해서도 “잘하는 지자체의 사례가 쌓여야 다른 지자체를 움직이는 비교 자료가 된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아울러 “지역 모집·현황 기사들에 전년도 실적이 함께 제시된다면 독자가 사업의 실질을 판단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패럴림픽 보도, 성적 너머 선수들의 일자리 연결 고리 다뤄야”

임우근 위원은 “밀라노·코르티나 동계패럴림픽 관련 보도들이 성적 중계를 넘어 선수단 결단식, 훈련 격려, 역대 최고 성적(금2·은4·동1)까지 일관되게 이어진 것이 반가웠다”고 했다. 다만 “패럴림픽 성적 기사들이 감동과 성과 중심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선수들의 훈련 환경, 은퇴 후 직업 전환, 장애인 체육 지도자 양성 같은 일자리 연결 고리를 더 적극적으로 다뤄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저임금·보조금 감시 보도, 불편하지만 꼭 필요한 기사들”

이상택 위원은 “이번 분기에서 가장 주목한 흐름은 장애인 최저임금 전면 적용 추진 기사와 중증장애인 최저임금 적용 제외 폐지 촉구 기사가 나란히 나왔다는 점”이라며 “‘차별 해소’와 ‘고용 위축’ 사이의 갈림길을 제목에서부터 정직하게 드러낸 것은 이 신문이 어느 한쪽의 주장을 받아쓰지 않겠다는 편집 방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위원은 ‘보조금은 엉뚱한 곳에 썼다’ 기사에 대해서도 “장애인 일할 권리를 지키는 시설에서 보조금 유용이 반복된다는 현실을 정면으로 다룬 것은 불편하지만 꼭 필요한 보도”라며 “이런 감시 보도가 이어져야 제도가 바로잡힌다”고 강조했다.

1조 원 환급 판결·교육 격차·삶의 연쇄 붕괴…심층 평가 3편 선정

위원회는 1분기 기사 중 연중기획 ‘장애인으로 살아가기(1)’, 대졸 장애인 취업률·진학률 격차 보도, 대법원 고용부담금 판결 기사를 심층 평가 대상으로 선정했다.

연중기획 ‘장애인으로 살아가기(1)’에 대해 위원들은 장기 추적 데이터를 활용해 건강 악화→고용 이탈→소득 감소→사회참여 축소→삶의 만족도 저하라는 연쇄 구조를 기사로 재구성한 점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이후 회차에서 당사자 현장 인터뷰를 병행해 수치와 사람의 이야기가 함께 가는 방향으로 심화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대졸 장애인 취업률 기사에 대해선 진학률 52.6%p·취업률 21.2%p·전공 일치 취업 비율 22.0%p 격차라는 수치가 반복 제시되며 구조적 불평등을 독자에게 인식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다만 “지역별 수능 편의제공 실태를 본지가 직접 조사해 수치로 보여준다면 지방의원들을 움직이는 실질적인 자료가 될 것”이라는 제안도 나왔다.

대법원 고용부담금 판결 기사에 대해 이상택 위원은 “판결 이후 부담금을 낼지 장애인을 고용할지 재검토하겠다는 기업 문의가 고용공단에 실제로 들어오고 있다는 대목이 기사에서 가장 긴장되는 부분이었다”며 “이 문의들이 실제 채용 취소나 계약 해지로 이어지는지를 본지가 빠르게 추적해 주기를 당부한다”고 강조했다.

“정책 발표 보도 넘어, 결과를 추적하는 신문 돼야”

위원회는 이날 논의를 바탕으로 편집국에 네 가지 사항을 제언했다. 대법원 판결 이후 기업 고용 행태 변화 추적 보도 계획 마련, 연중기획 시리즈의 데이터·당사자 인터뷰 병행 심화, 장애학생 교육-고용 격차 기사에서 제시된 5대 정책 과제 이행 여부 지속 추적, 지방선거 장애계 공약 수용 여부 점검 보도 강화 등이다.

장호철 위원장은 “이번 분기 기사들이 장애인 고용의 구조적 문제를 데이터와 현장 양면에서 접근하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며 “장애인일자리신문이 정책 감시와 현장 밀착 보도를 두 축으로 삼아 장애인 고용 의제를 지속적으로 공론화하는 역할을 이어가 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연중기획-장애인으로 살아가기(2)]취업보다 더 어려운 문제, 장애인의 ‘고용 유지’

장애인삶 패널조사 1~6차 취업상태 동태 분석, 취업 후에도 이어지는 불안정한 노동

<사진=Pexels>

장애는 개인의 신체적 변화로 시작되지만 그 이후의 삶은 건강, 일자리, 소득, 사회관계 등 여러 영역에서 복합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장애인의 삶을 장기적인 데이터로 추적하며 구조적으로 분석한 보도는 많지 않았다. 본지는 장애인 삶 패널조사 연구 자료와 현장 취재를 바탕으로 장애 발생 이후 개인의 삶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리고 제도와 현실 사이에 어떤 간극이 존재하는지를 살펴보는 연중기획 ‘장애인으로 살아가기’를 시작한다. 이 연재에서는 장애인의 건강, 고용, 소득, 사회참여 등 다양한 삶의 지표를 분석하고 정책적 과제를 짚어볼 예정이다.[편집자주]

취업은 끝이 아니었다. 장애인에게 더 큰 벽은 일자리를 얻는 것보다, 그 자리를 지키는 일이었다. 장애인삶 패널조사 1~6차 취업상태 동태 분석에 따르면, 취업한 뒤에도 상당수는 다음 조사 시점까지 고용을 유지하지 못했고, 한 번 일자리를 잃으면 다시 취업하는 길도 쉽게 열리지 않았다.​

장애 유형과 정도에 따라 차이는 있었지만, 취업자 고용 유지율은 대체로 70~85% 수준에 머물렀다. 지체장애인의 취업 유지율은 1차 83.52%에서 6차 85.04%로 비교적 높은 수준을 보였고, 시각장애인은 77.25%에서 83.02%, 청각·언어장애인은 75.29%에서 80.50%로 나타났다. 정신장애인은 1차 50.0%에서 6차 80.65%로 크게 개선됐지만, 출발점 자체가 매우 낮아 고용 안정성이 여전히 취약했다.​

취업에서 미취업으로 이동하는 비율은 장애인의 고용이 얼마나 불안정한지를 보여주는 직접적인 지표다. 지체장애인은 취업 후 다음 조사 시점에 약 14~16%가 미취업 상태로 전환됐고, 시각장애인은 약 16~25%, 청각·언어장애인은 약 18~24%가 직장을 잃는 경험을 했다. 정신장애인의 경우 초기에는 절반 가까이가 취업 상태를 유지하지 못했으며, 최근에도 취업에서 미취업으로 전환되는 비율이 19.35% 수준으로 확인됐다.​

더 큰 문제는 이탈 이후 복귀가 어렵다는 점이다. 미취업 상태에서 다시 취업으로 이동하는 비율은 전반적으로 매우 낮았다. 뇌병변장애와 정신장애는 약 3~5% 수준에 머물렀고, 지체장애도 6.43~13.28% 수준이었다. 즉 한 번 노동시장에서 밀려나면, 다시 일자리를 얻는 가능성은 대체로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셈이다.​

장애 정도에 따른 격차도 뚜렷했다. 중증 장애인의 취업 유지율은 71.08%에서 78.05%로 나타났고, 경증 장애인은 80.78%에서 82.60%로 더 높은 수준을 보였다. 재취업 가능성에서도 차이는 컸다. 중증 장애인의 미취업→취업 전환 확률은 약 5% 수준이었던 반면, 경증 장애인은 9~12% 수준으로 나타나, 중증 장애인이 고용 유지와 재취업 모두에서 더 취약한 구조가 드러났다.​

안정적인 일자리로 평가되는 상용직도 예외는 아니었다. 상용직에서 상용직으로 유지되는 비율은 1차→2차 77.35%, 5차→6차 80.24%였고, 상용직에서 임시·일용직으로 이동하는 비율은 1차→2차 17.96%, 5차→6차 17.40%였다. 상용직 근로자 5명 중 1명가량이 다음 조사 시점에는 더 불안정한 일자리로 내려앉는 구조가 확인된 것이다.​

성별 격차도 적지 않았다. 남성 장애인의 취업 유지율은 80.35%에서 82.45%였지만, 여성 장애인은 72.83%에서 78.40%로 더 낮았다. 미취업에서 취업으로 다시 이동하는 비율 역시 여성은 7.3%에서 6.63%로 남성보다 낮아, 여성 장애인이 고용 유지와 재취업 모두에서 더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이번 분석이 말하는 것은 분명하다. 장애인 고용의 핵심 과제는 단순한 채용 확대가 아니라, 채용 이후 고용을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일이다. 취업에 성공해도 15~25%는 다음 시점에 직장을 잃고, 한 번 이탈하면 다시 들어오기도 어렵다. 장애인의 일자리는 들어가는 문보다, 버티는 문이 훨씬 더 좁았다.​




[경계선지능 700만, 사라진 노동력] ①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아닌, 제도 밖 사람들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아닌 경계선지능인, 복지와 고용 양쪽에서도 배제
500만 명 넘는 추정 인구, 법적 정의도 고용 지원도 없이 노동시장 밖에 방치

<사진=Unsplash>

지능지수(IQ) 71~84에 해당하는 경계선지능인은 전체 인구의 약 13%를 차지하지만, 장애인에게도 비장애인에게도 속하지 못한 채 고용과 복지 양쪽에서 배제돼 있다. 법적 정의조차 없는 이 700만 명은 저출생·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가 빠르게 줄어드는 한국 사회에서 활용되지 못한 채 방치된 노동력이기도 하다. 해외 주요국은 이미 이들을 노동시장 안으로 끌어들이는 제도를 갖추고 있다. 3회에 걸쳐 경계선지능인의 고용 현실과 해외 사례, 그리고 한국에 필요한 제도적 과제를 짚는다. [편집자주]

경계선지능인은 교육부 등 관계부처 합동 발표 기준으로 약 697만 명이다. 보건복지부는 2025년 8월 주민등록 인구(약 5093만 명)를 근거로 565만~667만 명으로 추산한다. 어느 수치를 적용하더라도 최소 500만 명 이상이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아닌 경계에 놓여 있다.

이들은 지적장애 판정 기준인 IQ 70 이하에 해당하지 않아 장애인 복지 대상에서 빠진다. 동시에 일반 노동시장에서는 학습 속도가 느리다는 이유로 채용을 기피당한다. 장애인 의무고용제의 혜택도, 비장애인 대상 취업 지원 프로그램의 실질적 효과도 누리지 못하는 ‘이중 배제’ 상태다. 보건복지부에는 경계선지능인에 대한 법적 정의도, 판정 기준도 마련돼 있지 않다. 현행 제도 어디에서도 이들의 존재가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경계선지능인이 공적 시스템에서 확인되는 거의 유일한 통로는 병역판정검사다. 병무청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서미화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5년 8월까지 매년 약 800~1165명이 경계선지능 사유로 보충역이나 전시근로역 판정을 받았다. 2024년의 경우 검사 대상 22만1604명 가운데 1165명(0.53%)이 해당됐다. 남성만을 대상으로 한 통계이지만, 제도권에서 경계선지능인을 정기적으로 포착하는 사실상 유일한 지표다.

의료 현장의 지표도 주목할 만하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서미화 의원이 공개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기타 인지·자각 관련 증상(R41.8)’ 진료 환자가 2020년 2만5991명에서 2024년 4만842명으로 5년 새 57% 증가했다. 특히 9세 이하 아동 환자는 274명에서 818명으로 약 3배, 10대 청소년은 285명에서 691명으로 2.4배 늘었다. 이 진단코드가 경계선지능만을 특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지기능 관련 진료 수요가 아동·청소년 연령대에서 급속히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하는시민연구소가 2025년 7~8월 엠브레인리서치를 통해 경계선지능인 67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온라인 조사 결과는 고용 현실의 단면을 드러낸다. 정부나 지자체가 제공하는 취업지원 서비스를 이용한 경험이 있는 응답자는 42%였다. 이 가운데 실제 취업으로 이어진 경우는 12%에 그쳤다.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정규직이나 무기계약직으로 고용이 유지된 비율은 15%에 불과했다.

경계선지능 청년 203명을 대상으로 한 별도 실태조사에서도 취업률은 53.3%, 실제 근로 경험이 있는 비율은 32.9%에 머물렀다. 절반에 가까운 응답자가 10년 후 가장 큰 걱정으로 취업 문제를 꼽았다. 한 전문 교육기관이 경계선지능 청년 20명에게 2년간 직업교육과 인턴 과정을 제공했지만, 일반기업 취업에 성공한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

노동시장에 진입하더라도 유지가 쉽지 않다. 새로운 업무를 익히는 데 3~6개월이 걸리는 경우가 많고, 이 과정에서 동료의 따돌림이나 고용주의 채용 취소를 경험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부산에 사는 경계선지능인 A(27) 씨는 물류센터 계약직 등을 전전했지만 업무 속도가 느리다는 이유로 번번이 그만둬야 했다. 가장 오래 일한 기간이 3개월이었다. A 씨는 “일자리를 잃는 경험이 반복되면서 대인·사회공포증이 생기고 우울감도 깊어졌다”며 “집에만 있으니 사회와 단절되고 고립되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생산직과 외식업 등 단순 반복 업무 영역에서도 빠른 적응을 요구하는 현장 분위기가 장벽으로 작용한다. 적응에 실패한 경계선지능인이 단기 일자리를 전전하다 고립과 은둔 상태에 빠지고, 이것이 범죄 피해나 노숙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만들어지고 있다.

부산연구원이 2025년 발간한 ‘부산시 경계선 지능인 지원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부산 지역 경계선지능인 수는 약 44만 명으로 추산된다. 해운대구 전체 인구 37만여 명보다 많은 규모다. 이들이 고용되지 못하면서 발생하는 노동력 손실, 복지 사각지대에서 비롯되는 공적 부조 비용, 범죄 피해와 사법 비용까지 합산하면 사회적 비용은 산정하기 어려울 만큼 크다. 지원 사각지대를 벗어나기 위해 IQ 검사에서 일부러 낮은 점수를 받아 장애인 판정을 시도하는 사례까지 현장에서 보고되고 있어, 제도 부재가 복지 재정의 왜곡된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정신건강의학 전문가는 “이론적으로는 사회생활, 직장생활 다 할 수 있지만 ‘뭔가 잘 안되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며 “일찍 알아채기보다 학교 폭력이나 우울 등 문제로 병원을 찾았다가 검사를 통해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저출생·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수백만 명 규모의 잠재 노동력이 제도 밖에 방치되고 있다. 이들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는 일이 모든 대책의 출발점이다.




[연중기획-장애인으로 살아가기(1)] 장애를 얻은 이후, 삶은 어디에서 가장 먼저 무너지는가

건강 악화에서 고용 중단까지… 장애 발생 이후 삶의 연쇄 변화 추적

<사진=Pexels>

장애는 개인의 신체적 변화로 시작되지만 그 이후의 삶은 건강, 일자리, 소득, 사회관계 등 여러 영역에서 복합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장애인의 삶을 장기적인 데이터로 추적하며 구조적으로 분석한 보도는 많지 않았다. 본지는 장애인 삶 패널조사 연구 자료와 현장 취재를 바탕으로 장애 발생 이후 개인의 삶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리고 제도와 현실 사이에 어떤 간극이 존재하는지를 살펴보는 연중기획 ‘장애인으로 살아가기’를 시작한다. 이 연재에서는 장애인의 건강, 고용, 소득, 사회참여 등 다양한 삶의 지표를 분석하고 정책적 과제를 짚어볼 예정이다.[편집자주]

사고나 질병으로 장애를 얻는 순간 삶은 단순히 신체적 변화에 그치지 않는다. 건강 문제를 시작으로 고용, 소득, 사회참여까지 연쇄적인 변화가 이어진다. 장애인의 삶을 장기간 추적한 ‘장애인 삶 패널조사’는 이러한 변화가 일정한 경로를 따라 진행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조사는 2018년부터 6,121명의 장애인을 장기적으로 추적 조사한 국가승인통계로, 장애 이후 삶의 변화를 구조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대표적 자료다.

연구 결과 장애 발생 이후 가장 먼저 변화가 나타나는 영역은 건강 상태였다. 조사에서는 자신의 건강 상태를 ‘나쁘다’ 또는 ‘매우 나쁘다’고 평가한 비율이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으며, 장애인은 비장애인보다 건강 위험도가 높은 집단으로 확인됐다. 특히 장애 이후 추가적인 질환을 동시에 앓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건강 부담이 장기화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장애가 단순한 기능 손상이 아니라 전반적인 건강 수준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건강 악화는 곧 경제활동의 변화로 이어졌다. 장애인의 노동시장 참여 수준은 이미 통계적으로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장애인의 경제활동참가율은 약 40% 수준으로, 비장애인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비경제활동 상태에 머무는 장애인의 비율은 절반 이상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장애 발생 이후 직업 유지 자체가 쉽지 않은 현실을 보여준다.

직업을 유지하더라도 근로 조건은 크게 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장애 발생 이후 근로시간 감소나 직무 변경을 경험하는 사례가 반복적으로 확인됐다. 일부는 기존 직장을 떠나 비정규직이나 단시간 노동으로 이동하는 경향도 나타났다. 이는 단순한 취업 여부가 아니라 고용의 질 자체가 낮아지는 문제로 이어진다.

경제활동의 변화는 곧 소득 감소로 연결된다. 장애인 가구는 전체 가구에 비해 낮은 소득 구간에 집중되는 경향이 뚜렷하다. 기존 연구에서는 장애인 가구의 상당수가 중위소득의 절반 이하 수준에 머무는 비율이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동시에 장애 이후 의료비와 돌봄 비용이 증가하면서 실질적인 가처분소득은 더 줄어드는 이중 부담이 발생한다.

의료비 부담 역시 장애 이후 삶을 압박하는 핵심 요인으로 지목된다. 장애인은 일반 인구보다 의료 이용 빈도가 높고, 재활치료와 보조기기 사용 등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가계 지출 구조 자체가 의료 중심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의료비 증가와 소득 감소가 동시에 진행되는 구조는 장애 이후 삶의 취약성을 더욱 키운다.

소득 감소는 다시 사회참여 축소로 이어진다. 조사에서는 장애인의 문화·여가 활동 참여 수준이 낮은 편에 속하며, 외부 모임 참여 역시 제한되는 경향이 확인됐다. 이동의 어려움과 경제적 부담, 사회적 편견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사회적 관계망이 점차 축소되는 것이다. 사회참여 감소는 단순한 활동 감소가 아니라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변화는 결국 삶의 만족도 하락으로 연결된다. 선행 연구에서는 장애인의 삶에 대해 ‘현재 삶에 불만족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약 29.1%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단순한 경제적 문제가 아니라 건강과 사회관계 전반이 동시에 영향을 받는 복합적인 문제임을 보여준다.

연구진은 이러한 변화가 각각 독립된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연쇄 구조라고 설명한다. 장애 발생 이후 건강 악화가 먼저 나타나고, 이어 노동시장 이탈과 소득 감소가 뒤따르며, 결국 사회참여 축소와 삶의 만족도 저하로 이어지는 흐름이 반복적으로 확인된다는 것이다. 특히 장애 발생 초기 대응이 늦어질수록 이후 회복 가능성은 더욱 낮아지는 경향이 나타난다.

장애는 개인의 삶에서 하나의 사건이지만, 사회적으로는 연쇄적인 구조적 변화의 시작점이 된다. 건강 문제에서 시작된 변화가 일자리와 소득, 사회관계까지 영향을 미치는 현실을 고려할 때 장애 정책 역시 생애 전반을 고려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애 이후 삶이 무너지는 지점은 단 하나가 아니다. 건강, 일자리, 소득, 사회참여가 서로 연결된 구조 속에서 동시에 흔들리고 있으며, 문제는 장애 자체가 아니라 그 이후를 지탱할 사회적 안전망의 부족이라는 사실이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