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태연재활원 집단폭행, 법원 “상습적 학대” 인정…탈시설 법제화 요구 확산

실형 선고에도 반복되는 시설 인권침해 논란…계류 중 탈시설지원법 처리 촉구

<사진=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제공>

법원 판결과 관련 보도에 따르면, 태연재활원 생활지도원들은 다수의 거주 장애인을 반복적으로 폭행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2년에서 5년 사이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재판 과정에서는 피해 장면이 담긴 CCTV 영상이 증거로 제출됐고, 피해자 가족들의 증언도 이어졌다. 수사 및 재판 기록을 통해 장기간에 걸친 상습 폭행이 있었던 사실이 확인됐다.

이와 관련해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는 “시설 내 폭행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현실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집단 수용 구조가 가진 통제와 권력 불균형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연대는 특히 일정 기간 동안 수백 건에 이르는 폭행 정황이 드러난 점을 들어, 거주시설 중심 정책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울산시와 관계 기관은 사건 이후 해당 시설에 대한 행정처분과 개선명령을 내리고 관리·감독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다만 장애인 단체들은 사후적 처벌과 지도·점검만으로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현재 22대 국회에는 탈시설을 제도적으로 지원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돼 있으나, 상임위원회 단계에 머물러 있다. 한편 지난 2월 국회를 통과한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 및 주거 전환 지원에 관한 법률은 지역사회 자립 지원 체계를 법률로 명문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법안 명칭과 조문에서 ‘탈시설’이라는 표현이 제외되면서 정책 방향성을 둘러싼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는 “탈시설은 시설 폐쇄 여부를 둘러싼 이념적 논쟁이 아니라, 장애인이 거주 장소와 삶의 방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국가가 책임을 다하느냐의 문제”라고 밝혔다. 이들은 일부 종교단체 및 부모단체와의 공개적인 대화를 요청하며 정책 오해를 해소하겠다는 입장도 전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시설 내 인권 침해 사건이 반복돼 온 점을 고려할 때, 거주시설 관리 강화와 함께 지역사회 기반 주거·돌봄·소득 지원 체계를 확충하는 중장기 전략이 병행돼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단순한 형사 처벌을 넘어 예산과 인프라 재설계가 뒤따르지 않으면 유사 사건의 재발 가능성을 낮추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세월호 11주기, 제도는 바뀌었지만 과제는 남았다

304명의 희생 이후 달라진 재난 체계와 여전한 약자 보호의 사각지대

<사진=겟티이미지 코리아>

참사 이후 정부는 재난 대응 컨트롤타워를 재정비했다. 재난안전 관리 기능은 행정안전부 중심으로 통합·강화됐고, 해상 안전 관리 체계 역시 재편됐다. 한때 해체됐던 해양경찰청은 조직을 정비해 부활했고, 선박 과적 단속과 운항 관리 기준이 강화됐다. 또 사회적 참사의 진상 규명과 피해자 지원을 위해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해 조사 활동을 진행하고 관련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러나 유가족들은 제도 개선과 별개로 여전히 ‘완전한 진상 규명’과 ‘책임의 명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11주기를 맞아 열린 추모 행사에서 한 유가족은 “시간이 흘렀다고 아픔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재난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남은 이들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세월호 이후 제도 변화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재난 대응 체계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는지에 대한 지속적 점검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재난관리 분야 한 교수는 “매뉴얼과 조직 개편은 이뤄졌지만, 실제 상황에서의 지휘 체계 일원화와 현장 대응 훈련의 내실화는 계속 보완해야 할 과제”라고 밝혔다.

특히 재난 상황에서 사회적 약자 보호 문제는 여전히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장애인 단체들은 대피 정보 접근성, 이동 지원 체계, 맞춤형 구조 매뉴얼이 충분히 마련돼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관계자는 “재난은 누구에게나 닥치지만, 준비되지 않은 사회에서는 약자가 더 큰 위험에 놓인다”며 “재난 대응 정책 수립 단계에서부터 장애인의 참여가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일부 시민들은 재난 이후 이어진 사회적 갈등과 시위 방식에 대한 피로감을 호소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정책 전문가들은 “갈등이 반복되는 것은 제도적 소통 창구가 충분히 신뢰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안전 정책과 약자 보호 정책을 둘러싼 공론의 장을 상시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11년이 흐르는 동안 안전 관련 법과 조직은 적지 않게 변화했다. 그러나 재난은 제도만으로 막을 수 없으며, 현장 대응 능력과 사회적 신뢰가 함께 작동할 때 비로소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세월호 참사는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의 안전 체계를 끊임없이 점검하게 하는 기준점으로 남아 있다.

304명의 희생이 남긴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재난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국가의 책임, 그리고 가장 취약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지키는 사회적 합의가 실질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11주기를 맞는 지금, 기억은 추모를 넘어 제도의 실효성을 검증하는 행동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2024년 직무개발사업 우수사례 (7)] B2B 스페셜 디자이너, 발달장애인 디자인 직무의 새 지평을 열다

기획과 제작의 분리 협업 모델… 고용의 질과 지속 가능성 시험대에

<사진=한국장애인고용공단 제공>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발간한 ‘2024년 직무개발사업 우수사례집’은 장애 적합 직무 부족이라는 구조적 과제를 해소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의 성과를 담고 있다. 선도기업 전략직종 직무개발, 현장 중심 직무개발, 중증장애인 고용모델 개발·확산사업 등에서 발굴된 13건의 우수 사례와 164건의 아이디어 공모 성과는 변화하는 산업환경 속에서 장애인 고용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본지는 해당 사례들이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점검하고, 지속 가능한 직무 개발을 위한 과제와 개선 방향을 연속 기획을 통해 심층적으로 살펴볼 예정이다.[편집자주]

이 사업은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중증장애인 고용모델 개발·확산사업’의 지원을 받아 추진됐다. 기존 중증장애인 일자리가 단순 반복 업무나 보호고용 중심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 속에서, 직무 고도화를 통한 민간시장 진입 가능성을 시험한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B2B 스페셜 디자이너 모델의 핵심은 협업 구조다. 발달장애인 디자이너가 기업의 브랜드 콘셉트와 주제에 맞는 원화를 제작하면, 비장애인 기획 디자이너가 이를 선별·재구성해 채색과 배치 작업을 더한다. 완성된 결과물은 기업 아트워크, 굿즈, 디지털 콘텐츠 등 상업적 활용이 가능한 형태로 재탄생한다. 단순 보조가 아닌 ‘창작의 출발점’을 맡는 구조다.

키뮤는 총 15명의 발달장애인 디자이너를 선발해 8개월간 단계별 교육을 진행했다. 포트폴리오 심사, 직무 적합도 평가, 개별 면담을 거쳐 선발된 훈련생 전원이 수료했다. 교육은 기초 드로잉과 색채 이해부터 기업 협업 프로젝트 실습까지 이어졌다. 특히 실제 기업 과제를 바탕으로 결과물을 제작하는 방식이 도입돼 현장 적응력을 높였다는 평가다.

성과도 일부 나타났다. 수료생 중 6명이 디자인 직군으로 취업에 성공했다. 이들은 기업의 콘텐츠 디자인 보조, 굿즈 제작 참여, 원화 제작 등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 다만 고용 형태는 계약직과 프로젝트 단위 참여가 혼재돼 있으며, 임금 수준 역시 기업별로 차이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규직 전환 여부와 장기 고용 유지가 향후 과제로 남는다.

취업에 성공한 한 디자이너는 “처음에는 그림이 직업이 될 수 있을지 몰랐지만, 기업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작업의 목적이 분명해졌다”고 말했다. 기업 관계자 역시 “단순 사회공헌 차원을 넘어 실제 상품 경쟁력을 고려해 협업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직무가 단순 체험형이 아니라 시장성과 연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이 모델이 갖는 의미를 ‘직무 재설계’에서 찾는다. 장애인 고용이 직무 적합성보다 보호 중심으로 설계돼 온 구조를 바꾸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실제로 발달장애인의 고용은 제조·단순 서비스직에 집중되는 경향이 강하며, 문화·예술 기반 직무는 상대적으로 드물다. 디자인 분야는 감각적 표현과 반복 훈련을 통한 숙련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러나 지속 가능성은 별도의 문제다. 해당 사업은 공단 지원을 기반으로 운영됐다. 향후 공공 재정 지원이 축소되거나 종료될 경우 기업 협업 수요가 독자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또한 15명 중 9명은 아직 취업으로 연결되지 않은 상태로, 추가 매칭과 직무 다변화 전략이 요구된다.

키뮤는 교육 과정에서 제작한 직무교육 영상을 활용해 온라인 기반 확산 모델을 준비 중이다. 디자인 직무 이해, 직장 내 커뮤니케이션, 직무 에티켓 등을 포함한 콘텐츠를 통해 지역적 한계를 넘어 교육 접근성을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동시에 기업 대상 B2B 아트 협업 프로젝트를 늘려 안정적인 수요 기반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다.




K-휴머노이드 연합 출범… “포용 기술” 내세웠지만, 장애인 삶 바꿀 실증이 관건

산업통상자원부, 서울대서 40여 개 기관 참여 출범식 개최… 돌봄·자립 지원 가능성 주목 속 예산·윤리·현장 적용성 검증 필요

<사진=겟티 이미지뱅크>

산업통상자원부는 4월 10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글로벌공학교육센터에서 ‘K-휴머노이드 연합’ 출범식을 열고 국내 로봇 산업 협력 체계를 본격 가동했다고 밝혔다. 연합에는 서울대와 KAIST, 부산대학교 등 주요 대학과 기업, 연구기관 등 약 40여 곳이 참여한다.

정부가 제시한 핵심 과제는 다섯 가지다. 로봇 AI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 고성능 구동기와 센서 등 핵심 하드웨어 확보, AI 반도체와 배터리 기술 고도화, 전문 인력과 스타트업 육성, 수요·공급 기업 간 협력 생태계 구축이다. 산업부는 이러한 기술 기반을 통해 한국이 차세대 로봇 산업 경쟁에서 주도권을 확보한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인간과 유사한 형태와 동작을 갖춘 로봇으로, 제조업 자동화뿐 아니라 돌봄·서비스 산업에서 활용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다. 특히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국가에서는 돌봄 인력 부족 문제를 보완할 대안 기술로 거론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2025년 약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동시에 돌봄 인력 부족 문제도 심화되고 있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 이용자는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활동지원사 인력 수급은 지역별로 불균형이 지속되고 있다.

정부 역시 이러한 사회 구조 변화를 로봇 산업 정책과 연결하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고령화와 돌봄 인력 부족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휴머노이드 기술을 단계적으로 실증할 계획”이라며 “장애인 생활 지원 분야도 주요 검토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해외에서도 휴머노이드 기술 개발 경쟁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미국의 Tesla는 공장 자동화를 목표로 인간형 로봇 ‘옵티머스’ 개발을 추진 중이며, 독일 자동차 기업 BMW는 일부 생산 공정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활용 가능성을 시험하고 있다. 일본 역시 고령화 대응을 위해 돌봄 로봇 개발과 실증 사업을 국가 정책으로 추진해 왔다.

시장 전망은 비교적 낙관적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들은 향후 10년 동안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이 연평균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로봇이 제조업을 넘어 물류, 서비스, 돌봄 산업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시장 성장 전망이 곧바로 사회적 활용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 로봇 산업 연구자는 “복지 영역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을 활용하려면 공공 재정과 제도 설계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며 “기술 가능성뿐 아니라 비용 대비 효과에 대한 정책적 검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복지 현장에서도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제기된다. 수도권의 한 장애인 자립생활센터 관계자는 “돌봄 인력 수급이 어려운 상황에서 보조 로봇이 일부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면 도움이 될 수 있다”면서도 “기기 가격과 유지관리 비용이 높으면 실제 현장 도입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개인정보 보호와 안전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제도적 장치가 선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향후 ‘AI 자율제조 선도 프로젝트’ 등을 통해 로봇 기업과 수요 기관 간 협력 과제를 지원할 계획이다. 복지기관이 실증 파트너로 참여할 경우 실제 현장에서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기술을 고도화하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구체적인 예산 규모와 단계별 일정은 추후 확정될 예정이다.

인재 양성 전략도 이번 연합의 핵심 과제 중 하나다. 정부는 청년 연구자와 스타트업 지원을 확대하고 다양한 배경의 인재가 로봇 기술 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러한 과정에서 장애인을 단순한 기술 수혜자가 아니라 개발 과정의 참여 주체로 포함시키는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전문가들은 이번 연합이 선언적 협력에 그치지 않으려면 실증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기술의 한계와 위험 요소까지 함께 논의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기술 낙관론만으로는 복지 현장의 신뢰를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2024년 직무개발사업 우수사례 (6)] AI 기반 ‘DB구축정보검색사’ 모델 주목… 경기DPI, 중증장애인 10명 ICT 직무 취업 성과

단순노무 중심 구조 넘어 정보검색·데이터 가공 직무로 확장… 재택근무 기반 미래형 고용모델 가능성 제시

<사진=한국장애인고용공단 제공>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발간한 ‘2024년 직무개발사업 우수사례집’은 장애 적합 직무 부족이라는 구조적 과제를 해소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의 성과를 담고 있다. 선도기업 전략직종 직무개발, 현장 중심 직무개발, 중증장애인 고용모델 개발·확산사업 등에서 발굴된 13건의 우수 사례와 164건의 아이디어 공모 성과는 변화하는 산업환경 속에서 장애인 고용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본지는 해당 사례들이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점검하고, 지속 가능한 직무 개발을 위한 과제와 개선 방향을 연속 기획을 통해 심층적으로 살펴볼 예정이다.[편집자주]

한국 장애인 고용 정책은 오랜 기간 양적 확대와 질적 전환이라는 이중 과제를 안고 있다. 장애인 의무고용제도가 시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증장애인의 취업 기회는 여전히 제한적이며 직무 또한 단순노무 중심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 속에서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정보통신기술(ICT) 기반 직무 모델이 현장에서 등장해 주목받고 있다.

최근 장애인 고용 현장에서 주목받는 사례는 ‘DB구축정보검색사’ 직무 모델이다. 이 직무는 데이터 검색과 정보 정리 업무를 기반으로 하는 디지털 직무로, 중증장애인이 수행할 수 있도록 직무를 세분화하고 AI 도구를 활용하도록 설계된 것이 특징이다.

이 모델은 경기 지역 장애인 단체인 경기DPI가 추진한 직무개발 사업을 통해 실제 고용 성과로 이어졌다. 사업 관계자에 따르면 직무 훈련을 이수한 10명의 중증장애인이 정보통신 분야 기업에 취업하며 디지털 직무 기반 고용 가능성을 확인했다.

경기DPI 관계자는 “기존 장애인 일자리는 단순 반복 업무가 대부분이었지만, 데이터 검색과 정리 업무는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장애인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며 “AI 도구를 활용하면 정보 정리나 문서 구조화 작업을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어 직무 수행 장벽을 낮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DB구축정보검색사’는 기업이나 기관이 필요로 하는 기초 정보를 검색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데이터베이스 형태로 구축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공공조달 플랫폼이나 온라인 자료를 검색해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분류·요약해 데이터로 정리하는 과정이 핵심 업무다. 최근에는 생성형 AI 도구를 활용해 정보 분류와 문서 구조화 작업의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직무 개발 과정에서는 참여자의 기본 역량을 고려한 선발과 장기간의 직무 훈련이 진행됐다. 경기DPI는 장애인 단체와 협력해 훈련 참여자를 모집한 뒤 컴퓨터 활용 능력과 기본 문해력을 중심으로 직무 적합성을 검증했다. 이후 약 6개월 동안 정보 검색 방법, 데이터 정제 과정, AI 활용 방법 등을 교육하는 직무 훈련을 실시했다.

훈련을 마친 참여자들은 정보통신 전문 기업에 채용돼 실제 데이터 구축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기업 측은 장애인 인력이 데이터 정리 업무에서 안정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 기업 관계자는 “데이터 검색과 정리 업무는 집중력과 반복적인 정확성이 중요한데, 훈련을 받은 장애인 직원들이 업무 수행에서 높은 안정성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사례는 여러 측면에서 장애인 고용 정책에 시사점을 던진다. 무엇보다 중증장애인을 디지털 직무로 연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장애인 고용은 여전히 제조업이나 단순 서비스 직군에 집중되는 경향이 강하다. ICT 기반 직무 개발은 이러한 직무 구조를 다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통계청과 고용 관련 자료에 따르면 장애인 고용은 여전히 제조업과 단순 서비스 분야에 집중되어 있으며 정보통신 직군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으로 나타난다. 장애인 고용 전문가들은 디지털 기반 직무가 확대될 경우 장애인 고용 구조에도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장애인 고용 정책을 연구하는 한 전문가는 “AI와 디지털 기술은 장애인의 업무 수행 방식을 크게 바꿀 수 있는 도구”라며 “특히 데이터 관리나 정보 검색 같은 직무는 공간 제약이 적고 재택근무가 가능해 이동이 어려운 중증장애인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재택근무 가능성 역시 중요한 요소로 평가된다. 중증장애인의 경우 이동 자체가 취업의 큰 장벽이 되는 경우가 많다. 데이터 검색과 정보 구축 업무는 원격 환경에서도 수행이 가능하기 때문에 근무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코로나19 이후 확산된 원격근무 환경 역시 이러한 직무 모델의 확산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꼽힌다.

다만 직무 모델의 확산을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도 존재한다. 현재 ‘DB구축정보검색사’ 모델은 특정 기업 취업 성과를 중심으로 형성된 초기 단계 사례에 가깝다. 직무 표준화와 산업 전반으로의 확산 체계는 아직 충분히 구축되지 않은 상황이다.

또한 직무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는 장기 고용 유지 여부와 임금 수준, 숙련도 향상 경로에 대한 검증도 필요하다. AI 기술 변화 속도가 빠른 만큼 지속적인 교육과 직무 역량 강화 프로그램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DPI 측은 향후 직무 모델을 고도화하고 추가 고용 연계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관계자는 “데이터 기반 산업이 확대되는 만큼 정보 검색과 데이터 정리 직무 수요도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며 “직무 훈련 체계를 보완해 더 많은 중증장애인이 디지털 직무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근로지원인 제도 개선 논의 본격화…국민디자인단 출범

장애인 고용 현장의 인력난과 서비스 질 논쟁 속 제도 개편 방향 모색

<사진=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제공>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은 4월 8일 경기 성남 본부에서 근로지원인 지원 제도 개선을 위한 ‘2025년 국민디자인단’ 발대식을 개최했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에는 근로지원 제도 관련 전문가와 국민 대표 등 총 11명이 참여해 제도 운영 현황을 공유하고 향후 개선 방향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국민디자인단은 정책 수요자인 국민이 정책 설계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참여형 정책 모델이다. 정책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국민의 관점에서 진단하고 공공기관과 함께 해결 방안을 도출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공단은 정기적인 워크숍과 현장 의견 수렴 과정을 통해 제도 개선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근로지원인 제도는 중증장애인이 직장에서 업무를 수행할 때 필요한 부수적 지원을 제공하는 정책이다. 문서 정리, 자료 입력, 이동 지원, 장비 조작 보조 등 업무 수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보조 업무를 지원함으로써 장애인의 고용 유지와 직무 수행을 돕는 것이 목적이다.

이 제도는 장애인이 취업 이후에도 안정적으로 직장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핵심 정책으로 평가된다. 특히 사무직이나 전문직 분야에서 장애인의 업무 수행 환경을 보완하는 역할을 하며 장애인 고용 유지율을 높이는 데 기여해 왔다.

실제 제도 이용 규모는 최근 몇 년 사이 빠르게 확대됐다. 장애인 고용 확대 정책과 함께 근로지원 수요가 늘어나면서 지원 인원과 예산 규모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인력 확보 문제와 서비스 품질 논쟁이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근로지원인 인력 부족이다. 지원 인력의 임금 수준이 낮고 직무 전문성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이어지면서 안정적인 인력 확보가 쉽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부 현장에서는 지원 인력 공백으로 인해 장애인 근로자가 업무 수행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지원 방식에 대한 논쟁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제도 운영 과정에서 한 명의 근로지원인이 여러 명의 장애인을 동시에 지원하는 방식이 확대되면서 서비스 질 저하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장애계에서는 즉각적인 지원이 필요한 상황에서 대응이 늦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업무 범위의 경계 문제 역시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쟁점이다. 제도상 근로지원인은 업무 관련 지원만 수행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지만 실제 직장 환경에서는 업무와 일상 지원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현장 혼선이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또한 현재 제도가 고용된 근로자를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어 장애인 자영업자나 프리랜서 노동자 등 다양한 노동 형태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노동시장 구조가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에서 제도 적용 범위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번 국민디자인단은 이러한 현장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실질적인 개선 방안을 도출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특히 올해 디자인단은 경력단절 여성을 예비 근로지원인으로 양성하는 방안을 중심으로 정책 아이디어를 논의할 계획이다. 이는 근로지원인 인력 부족 문제를 완화하고 새로운 일자리 창출 효과를 동시에 기대할 수 있는 방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종성 이사장은 발대식에서 “국민의 아이디어와 공단의 실행력이 결합하면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정책 변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며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디자인단의 제안을 적극 반영해 실질적인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근로지원인 제도는 장애인의 고용 유지와 노동권 보장을 위한 핵심 정책으로 평가된다. 전문가들은 제도의 지속적인 확대와 함께 인력 전문성 강화, 처우 개선, 지원 방식의 합리적 조정 등이 병행될 때 제도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2024년 직무개발사업 우수사례 (5)] 정신장애인, 디자인 전문직으로 첫발… ‘비주얼 그래픽 디자이너’ 모델 확산 가능성은

정신장애인을 위한 디자인 직무 개발… 멋진월요일, ‘비주얼 그래픽 디자이너’ 양성과정 성과

<사진=한국장애인고용공단 제공>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발간한 ‘2024년 직무개발사업 우수사례집’은 장애 적합 직무 부족이라는 구조적 과제를 해소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의 성과를 담고 있다. 선도기업 전략직종 직무개발, 현장 중심 직무개발, 중증장애인 고용모델 개발·확산사업 등에서 발굴된 13건의 우수 사례와 164건의 아이디어 공모 성과는 변화하는 산업환경 속에서 장애인 고용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본지는 해당 사례들이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점검하고, 지속 가능한 직무 개발을 위한 과제와 개선 방향을 연속 기획을 통해 심층적으로 살펴볼 예정이다.[편집자주]

이번 사업은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중증장애인 고용모델 개발·확산사업’ 지원을 받아 추진됐다. 고용공단은 중증장애인의 직무 다양화를 위해 매년 새로운 고용모델을 발굴하고 있으며, 단순 보조·노무 중심 직무에서 벗어나 전문 영역으로의 확장을 정책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정신장애인의 고용 현실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고용노동부와 고용공단 통계에 따르면 장애인 전체 고용률은 점진적으로 상승하고 있으나, 정신장애인은 직무 적응의 어려움과 증상 기복, 대인관계 부담 등으로 취업과 고용 유지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집단으로 분류된다. 특히 반복·단순 업무에 편중되는 경향이 강해 직무 선택 폭이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멋진월요일은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고려해 재택·비대면 업무가 가능하고, 개별 작업 집중도가 높은 디자인 분야에 주목했다. 디지털 콘텐츠 수요 증가와 함께 그래픽 디자인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도 직무 선정 배경으로 작용했다. 교육과정은 기초 이론, 실습, 현장형 프로젝트의 3단계로 구성됐다. 초기에는 색채 조화, 레이아웃 구성, 타이포그래피 등 기본 개념을 소규모 그룹으로 반복 학습하도록 했고, 이후 포스터·리플렛·온라인 배너 등 실제 발주를 가정한 과제를 수행하도록 했다. 주 1회 현직 디자이너의 개별 피드백을 제공해 작업 완성도를 높였다.

훈련생 모집은 서울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 등 유관기관을 통해 진행됐다. 참여자 선발에서는 디자인 경험보다 장기 훈련 참여 가능성과 기본적인 컴퓨터 활용 능력을 중점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교육 과정 중 2명이 건강 악화와 개인 사정으로 중도 이탈했다. 운영진은 정신장애 특성상 초기 적응 단계에서의 지원 체계가 특히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취업에 성공한 7명은 온라인 콘텐츠 제작사, 사회적기업, 중소 광고대행사 등에 채용됐다. 고용 형태는 정규직과 계약직이 혼재돼 있으며, 일부는 재택근무를 병행하고 있다. 채용 기업 관계자는 “업무 숙련도는 개인차가 있지만, 반복 피드백 구조를 통해 충분히 직무 수행이 가능했다”며 “업무 분절화와 일정 조정이 병행되면 생산성 측면에서도 큰 차이가 없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례를 정신장애인 직무 다변화의 실험적 모델로 본다. 정신건강 분야 한 전문가는 “정신장애인의 경우 감각적 민감성과 집중력이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 분야가 존재한다”며 “획일적 직무 배치에서 벗어나 개인 특성 기반 직무 설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단기 취업 성과보다 중요한 것은 1년 이상 고용 유지율”이라며 사후 직무 코칭과 사업주 교육의 병행을 과제로 제시했다.

정책적 확장 가능성도 관심사다. 중증장애인 고용모델 사업은 매년 다수의 직무 실험을 진행하지만, 실제 산업 현장에 안착하는 모델은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있다. 디자인 직무가 전국 단위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기업 수요 확보, 표준화된 교육 커리큘럼 마련, 훈련 이후 사후관리 체계 구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멋진월요일은 향후 과정에서 적성 평가를 강화하고, 컴퓨터 활용이 어려운 참여자를 위한 기초 트랙을 별도로 운영할 계획이다. 동시에 채용 의사가 있는 기업을 사전에 발굴해 훈련과 채용을 연계하는 구조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 지원주택 ‘서비스필요도 조사’ 논란 확산

재계약 심사에 퇴거 기준 적용… 주거권 침해 여부 쟁점

<사진=서울지원주택입주민인권연대 제공>

서울지원주택입주민인권연대는 4월 8일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원주택은 장애인의 탈시설과 지역사회 정착을 위한 핵심 기반인데, 서비스 필요도를 이유로 재계약을 제한하는 방식은 사실상 퇴거 가능성을 전제로 한 선별 기준이 될 수 있다”며 제도 전면 재검토를 요구했다. 단체는 특히 평가 결과가 낮을 경우 주거 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서울시는 이번 조치가 지원주택 운영의 적정성을 점검하기 위한 관리 체계 강화라고 설명한다. 시는 지난 3월 감사담당관이 실시한 ‘취약계층 지원주택 공급 및 운영실태 감사’ 결과를 토대로 재계약 대상 입주자에 대한 서비스 필요도 조사를 시행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원주택이 필요한 대상에게 적절하게 제공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관리 장치”라며 “지원의 효율성과 형평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현재 내부 방침에 따르면 재계약 대상 입주자를 대상으로 건강 상태, 일상생활 수행 능력, 사회참여 수준 등을 평가하는 조사가 진행되며, 평가 점수가 일정 기준에 미달할 경우 재계약이 제한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기준 점수로 70점이 제시된 것으로 전해지면서 입주민 단체를 중심으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지원주택은 장애인이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공공임대주택과 생활지원 서비스를 결합한 주거 모델이다. 서울시는 2018년 ‘서울특별시 장애인 지원주택 공급 및 운영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제도를 도입했으며, 탈시설 정책의 핵심 인프라로 확대를 추진해 왔다.

그러나 실제 공급 속도는 정책 목표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는 2025년까지 지원주택 623호 운영을 목표로 제시했지만, 2024년 7월 기준 실제 운영 규모는 275호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입주 인원 역시 264명 수준으로 계획 대비 절반 이하에 머물러 있다. 공급 확대가 지연되는 상황에서 기존 입주자의 재계약 기준을 강화하는 것이 정책 방향과 충돌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주거복지 분야 연구자들은 지원주택의 정책 성격을 고려할 때 재계약 제한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 주거정책 연구자는 “지원주택은 단기 보호시설이 아니라 지역사회 정착을 위한 장기적 주거 모델”이라며 “입주자의 서비스 필요도만을 기준으로 재계약 여부를 판단할 경우 정책의 본래 목적과 충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법적 쟁점도 제기된다. 장애인복지법은 장애인의 자립생활과 사회 참여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로 규정하고 있으며,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은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행정절차법 역시 행정기관이 국민에게 불이익을 주는 처분을 할 경우 사전에 의견 제출 기회를 보장하도록 규정한다. 전문가들은 재계약 거부가 사실상 퇴거로 이어질 경우 이러한 법적 절차가 충분히 보장되는지가 핵심 쟁점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국제 기준과의 정합성도 중요한 논의 지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제19조는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살아갈 권리를 명시하고 있으며, 각 국 정부가 이를 보장할 정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역시 장애인의 지역사회 거주 지원 정책에서 서비스 필요도 평가는 당사자의 의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의료적 판단에 과도하게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권고해 왔다.

이번 논란은 장애인 주거 정책의 두 가지 가치가 충돌하는 지점을 보여준다. 하나는 제한된 공공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려는 행정적 필요이며, 다른 하나는 장애인의 안정적 주거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인권적 원칙이다. 정책 전문가들은 두 가치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이 향후 제도 설계의 핵심 과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시는 향후 세부 운영 지침을 보완해 인권 침해 소지를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다만 평가 기준의 합리성과 재계약 제한 절차의 투명성, 그리고 입주자의 이의 신청 절차가 어떻게 설계될 것인지는 추가적인 사회적 검증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논쟁은 장애인 탈시설 정책의 핵심 기반으로 평가받아 온 지원주택 제도의 방향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시험대가 되고 있다.




[기획] 장애인 의무고용, 독일은 왜 5%에 근접했나… 수치 너머의 제도 설계

부담금은 한국이 더 높지만 고용 성과는 독일이 앞서
통계·전문가 분석 통해 본 ‘사후 지원 중심 구조’의 차이

작업장에서 근무중인 독일인 장애 근로자의 모습. gemini로 생성된 이미지
<사진= AI Gemini 생성 이미지>

독일은 「사회법전 제9권(Sozialgesetzbuch IX)」에 따라 상시근로자 20인 이상 사업장에 전체 인원의 5% 이상을 중증장애인으로 고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의무고용을 충족하지 못한 사업장은 미달 인원에 대해 부담금을 납부해야 한다. 부담금은 고용률 수준에 따라 차등 부과되며 장애인을 전혀 고용하지 않은 경우 월 최대 360유로가 부과된다. 반면 일부 장애인을 고용하고 있지만 기준에 미달하는 경우에는 더 낮은 수준의 부담금이 적용된다.

한국의 경우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에 따라 상시근로자 50인 이상 사업장에 의무고용률이 적용된다. 2024년 기준 민간기업 의무고용률은 3.1%이며 이를 이행하지 못한 사업장에는 미달 인원 1명당 월 100만 원대 후반에서 200만 원을 넘는 부담금이 부과된다. 명목상 부담금만 비교하면 한국이 독일보다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실제 고용 성과는 다른 모습이다. 독일 연방고용청 통계에 따르면 독일 기업의 중증장애인 고용률은 최근 수년간 4%대 중후반 수준을 유지하며 법정 기준 5%에 근접해 있다. 공공부문에서는 이미 6% 안팎의 고용률을 기록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중증장애인의 경제활동참가율 역시 50%를 상회하는 것으로 집계된다.

반면 한국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장애인 고용 통계에 따르면 전체 장애인 의무고용률은 3% 안팎 수준에 머물고 있다. 등록장애인의 경제활동참가율도 약 40% 수준으로 조사된다. 법정 기준과 실제 고용 성과 사이에 일정한 격차가 존재하는 셈이다.

이 같은 차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제도의 핵심이 ‘부담금 수준’이 아니라 ‘지원 구조’에 있다고 분석한다. 한국노동연구원 노동시장정책 연구자는 “독일은 부담금을 단순한 제재 수단으로 두지 않고 다시 장애인 고용 지원 재원으로 환류시키는 구조가 안정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며 “기업 입장에서는 장애인을 채용할 때 발생하는 비용 부담을 줄여주는 지원 장치가 매우 체계적으로 마련돼 있다”고 설명했다.

독일에서는 의무고용을 이행하지 못한 기업이 납부한 부담금이 장애인 고용 지원 재원으로 활용된다. 이 재원은 각 주(州)에 설치된 통합사무소(Integrationsamt)를 통해 기업과 근로자 지원에 사용된다. 기업이 장애인을 채용할 경우 임금 보조금이 제공되고 직무 적응을 위한 훈련 프로그램도 지원된다. 장애인의 업무 수행을 돕기 위한 보조공학기기 구입 비용이나 작업환경 개선 비용 역시 지원 대상이다.

직무 배치 과정에서도 직업재활 시스템이 작동한다. 독일은 직업재활센터와 고용서비스 기관이 연계돼 장애인의 직무 적합성을 평가하고 기업과 연결하는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단순히 채용 이후의 지원뿐 아니라 채용 이전 단계부터 직무 설계를 함께 진행하는 구조다.

기업 인식 역시 제도 성과에 영향을 미친다. 독일은 장애인 고용을 단순한 복지 정책이 아니라 노동시장 통합 정책의 일부로 오랜 기간 다뤄왔다. 공공기관뿐 아니라 민간 기업에서도 장애인 고용을 사회적 책임과 인적 자원 전략의 한 요소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한국 역시 다양한 지원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장애인 고용장려금 제도, 근로지원인 서비스, 직무지도원 지원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제도 활용 과정에서 체감도가 낮다는 의견도 나온다. 수도권의 한 중견기업 인사담당자는 “장애인을 채용한 이후 직무 적응 지원을 신청하는 과정에서 행정 절차가 복잡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며 “부담금 제도는 명확하지만 실제 지원 제도는 기업이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장애인 고용 정책을 연구하는 한 대학 노동경제학 교수 역시 비슷한 분석을 내놓는다. 그는 “의무고용제도의 핵심은 기업을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을 채용했을 때 기업이 실제로 경험하는 비용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라며 “독일은 부담금으로 조성된 재원을 다시 기업 지원과 직업재활 체계에 투입하는 구조가 안정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장애인 고용 정책도 단순한 비율 관리에서 벗어나 고용 유지와 직무 확장까지 고려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장애인을 채용하는 기업이 실제로 경험하는 지원 체계를 강화하고 직무 설계 단계부터 기업과 함께하는 시스템이 마련될 때 고용 확대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독일 사례는 의무고용률이 높다는 사실보다 그 제도를 운영하는 방식에서 시사점을 제공한다. 부담금 수준이 높다고 해서 반드시 고용이 확대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장애인을 채용했을 때 기업이 경험하는 지원 체계와 직무 적응 환경이 충분히 뒷받침될 때 제도는 실제 고용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 장애인 고용 확대의 열쇠는 숫자가 아니라 제도의 설계와 운영 방식에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2024년 직무개발사업 우수사례 (4)] 건설업 ‘고용 부적합’의 편견을 깨다…삼성물산이 설계한 ‘디지털 포용’의 청사진

‘부담금’ 대신 ‘직무 재설계’ 선택
현장 중심 건설업의 장애인 고용 난제 풀 솔루션 제시

<사진= 장애인고용공단 제공>

대표적인 사례로 제시된 것은 삼성물산 건설부문에서 도입한 ‘도면 관리 파트너’ 직무다. 건설업은 높은 현장 의존도와 안전 문제 등으로 인해 장애인 고용이 제한적이라는 인식이 오랫동안 존재해 왔다. 실제로 건설 현장은 이동과 물리적 작업이 많고 안전 관리 기준이 엄격해 장애인 근로자의 배치가 쉽지 않은 환경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이유로 일부 기업들은 장애인 직접 고용 대신 장애인 고용부담금 납부를 선택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건설 산업 역시 디지털 전환 흐름이 확산되면서 업무 구조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특히 건설 설계와 시공 과정에서 BIM(Building Information Modeling) 등 디지털 설계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도면 관리와 데이터 검증, 설계 정보 관리 등 새로운 업무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이러한 산업 변화에 주목해 기존 업무를 재구성하고 장애인 근로자가 수행할 수 있는 직무 영역을 새롭게 설계했다.

도면 관리 파트너 직무는 프로젝트 설계 도면의 버전 관리와 오류 점검, 데이터 정합성 확인 등 디지털 설계 정보 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역할로 구성됐다. 과거에는 종이 도면을 들고 현장을 이동하며 확인해야 했던 작업이 많았지만, 디지털 설계 시스템 도입 이후에는 컴퓨터 기반의 데이터 검증과 관리 업무 비중이 크게 확대됐다. 기업은 이러한 업무 특성을 반영해 신체적 이동 부담을 최소화하면서도 프로젝트 운영에 필요한 핵심 정보를 관리하는 직무 구조를 구축했다.

직무 개발 과정에서는 기업 내부 인사 담당 부서와 장애인 고용 관련 전문기관이 함께 참여해 업무 분석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 안전 규정과 보안 기준을 검토해 사무실 환경에서도 수행 가능한 업무 범위를 도출하고, 직무 수행에 필요한 교육과 업무 매뉴얼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직무 체계를 설계했다. 이러한 과정은 단순한 보조 업무 배치가 아니라 실제 프로젝트 운영 과정에서 활용 가능한 업무 영역을 중심으로 직무를 구성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장에서는 설계 도면의 버전 관리와 오류 검증이 체계화되면서 프로젝트 운영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설계 혼선을 줄이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설계 변경이 잦은 건설 프로젝트의 특성상 도면 관리 체계가 안정적으로 운영될 경우 공정 관리와 협업 효율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장애인 고용이 단순한 사회공헌 활동을 넘어 업무 효율성과 품질 관리 측면에서도 일정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사례가 장애인 고용 논의를 ‘가능 여부’에서 ‘직무 설계 방식’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산업 구조 변화와 디지털 기술 확산에 따라 기존에는 물리적 작업 중심이었던 업무가 데이터 관리와 시스템 운영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장애인 근로자가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직무 영역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사례가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도 남아 있다. 건설업의 경우 중소 규모 기업 비중이 높은 만큼 직무 매뉴얼의 표준화와 교육 체계 구축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또한 디지털 설계 시스템 활용 역량을 갖춘 인력 양성과 기업 현장의 인식 개선도 장애인 고용 확대를 위해 필요한 조건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