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지능 700만, 사라진 노동력] ② 해외는 어떻게 문을 열었나

독일·네덜란드·호주·일본의 맞춤형 고용 모델, 그리고 한국의 첫걸음
IQ가 아닌 직무 능력으로 판단하는 해외 고용 모델, 한국은 아직 시범사업 수준

<사진=Unsplash>

지능지수(IQ) 71~84에 해당하는 경계선지능인은 전체 인구의 약 13%를 차지하지만, 장애인에게도 비장애인에게도 속하지 못한 채 고용과 복지 양쪽에서 배제돼 있다. 법적 정의조차 없는 이 700만 명은 저출생·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가 빠르게 줄어드는 한국 사회에서 활용되지 못한 채 방치된 노동력이기도 하다. 해외 주요국은 이미 이들을 노동시장 안으로 끌어들이는 제도를 갖추고 있다. 3회에 걸쳐 경계선지능인의 고용 현실과 해외 사례, 그리고 한국에 필요한 제도적 과제를 짚는다. [편집자주]

경계선지능인은 장애인 복지와 일반 고용 정책 양쪽에서 배제된 채 노동시장 밖에 머물고 있다. 한국이 이 문제에 대한 법적 정의조차 마련하지 못한 사이, 해외 주요국은 이미 경계선지능인을 포함한 인지 취약 계층을 노동시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 국가의 접근법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장애 판정 여부가 아니라 ‘직무 수행 능력’을 기준으로 지원 대상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독일은 통합청(Integrationsamt)을 중심으로 경계선지능인을 포함한 인지 취약 계층에 대해 지원고용(Supported Employment) 모델을 운영한다. 보호작업장(Werkstatt für behinderte Menschen)에서 직업 훈련을 받은 뒤 일반 사업장으로 전환 배치하는 구조로, 직무 코치가 사업장에 상주하며 적응을 돕는다. 장애 판정 여부가 아니라 근로 능력 평가 결과에 따라 지원 대상이 결정되기 때문에, 경계선지능인처럼 공식 장애 등급을 받지 못한 계층도 제도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네덜란드의 경우 사회보험기관(UWV)을 통해 장애인 고용 쿼터제와 직업 코치 지원 제도를 병행한다. 고용주에게 임금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동시에 근로자 개인에게 맞춤형 직무 교육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경계선지능인처럼 제도적 분류가 모호한 계층도 직무 능력 평가를 기반으로 지원 대상에 포함시킨다. 고용주와 근로자 양쪽에 동시에 지원이 이뤄지기 때문에, 채용 단계에서의 기피와 입사 후의 조기 퇴사를 함께 줄이는 효과가 있다.

호주는 연방정부 고용부 소관의 장애고용서비스(Disability Employment Services)를 통해, 지적장애 판정 여부와 관계없이 직무 수행에 어려움이 있는 이들에게 맞춤형 훈련과 배치를 지원한다. 핵심은 직업능력평가(Job Capacity Assessment)다. 신청자의 인지·적응 기능 수준을 평가한 뒤 지원 수준을 결정하기 때문에, 경계선지능인처럼 공식 장애 판정을 받지 못한 계층도 제도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장애 유형이 아닌 ‘기능적 필요’를 기준으로 지원 여부를 판단하는 체계다. 장애고용서비스는 국가장애보험제도(NDIS)와 별도로 운영되며, 취업 배치와 직장 내 적응 지원에 특화돼 있다.

일본은 지적장애인복지법을 기반으로 취로계속지원A형·B형 사업소를 운영하며, 경계선지능인 일부가 이 체계를 통해 보호고용 형태로 노동시장에 참여하고 있다. A형은 고용 계약을 체결하고 최저임금 이상을 보장받는 구조이고, B형은 비고용 형태로 생산 활동에 참여하면서 공임을 받는 방식이다. 다만 일본 역시 경계선지능인에 대한 별도의 법적 지위 부여는 이루어지지 않아, 사각지대 해소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에서도 변화의 시도가 있다. 한 의류기업은 사회복지법인 아이들과미래재단과 함께 ‘천천히 함께’ 사업을 운영하며, 3년간 누적 31억 원 이상을 투입해 경계선지능 아동 700여 명에게 1대1 맞춤 교육을 제공했다. 기초학습능력이 평균 21%포인트 향상되는 성과를 냈고, 4년차인 2025년에는 추가 12억 원을 투입하며 지원 지역을 확대했다. 민간 기업이 교육 단계에서부터 경계선지능인의 역량을 끌어올린 사례로, 직업훈련과 연계될 경우 고용 가능성의 토대가 될 수 있다.

지자체 차원의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부산시는 2023년 경계선지능인 지원 조례를 제정하고 전담센터를 통해 경계선지능 청년을 대상으로 진로 탐색과 일 경험 프로그램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 부산시교육청도 경계선지능 학생 맞춤형 학습·상담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안양시와 서울 광진구 등 일부 지자체에서는 평생교육 지원을 확대하고 있고, 강원도에서는 취약 청년 자립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전남교육청은 전국 최초로 경계선지능 의심 학생의 지능검사 비용을 전액 지원하기 시작했다.

중앙정부도 ‘경계선지능 청년 일자리 지원 사업’에 3억 원을 배정해, 20~39세 경계선지능 청년 200명에게 1개월간 일 경험 기회와 참여수당 월 20만 원을 제공하는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2024년 7월에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경계선지능인 지원 종합대책을 수립하고, 처음으로 전국 단위 실태조사에도 착수했다. 조사 결과는 2026년 상반기 중 발표될 예정이다.

그러나 이 모든 시도는 여전히 산발적이고 규모가 작다. 해외 사례에서 보듯이 고용 시스템이 작동하려면 직무 코치, 임금 보조금, 기능적 평가 체계가 제도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한국의 현재 시범사업들은 이러한 요소를 갖추지 못한 채, 단기 체험에 가까운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세바시, ‘편견 없는 직장’ 두 번째 특집 강연 펼쳐

장애인 고용촉진 강조기간 맞아 5명 연사 무대… 5월 1일부터 유튜브 순차 공개

한국장애인고용공단 x 세바시 특집 강연회 ‘편견 없는 직장 한계 없는 성장’ 강연자들의 모습 <사진=한국장애인고용공단 제공>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지난 21일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이하 세바시)과 함께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을 위한 세바시 특별 강연회’를 열었다고 22일 밝혔다. 4월 장애인 고용촉진 강조기간을 맞아 마련한 이번 행사는 ‘편견 없는 직장, 한계 없는 성장’을 주제로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진행됐다.

이번 강연에는 총 5명의 연사가 나섰다. 이찬혁 뮤직비디오 <비비드라라러브>에서 독보적 존재감을 드러낸 뮤지컬 배우 김유남, 세계 최초 중증장애인 치과의사이자 분당서울대병원 교수 이규환, SBS <몽글상담소>의 주인공이자 성악가·모델·크리에이터로 활동하는 N잡러 오지현, 사이배슬론 우승자 출신으로 착용형 보행 로봇을 연구하는 연구원 김승환이 각자의 자리에서 스스로의 가능성을 증명해 온 여정을 전했다. 여기에 국내 최다 메달리스트이자 2026년 밀라노 동계 패럴림픽에서 금메달 2개·은메달 3개를 획득한 김윤지 선수가 도전의 의지를 관객과 나눴다.

세바시는 15분이라는 짧은 강연 형식으로 다양한 분야의 연사가 삶의 통찰과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강연 플랫폼이다. 국내 대표 지식·인문 콘텐츠 채널로 자리잡았으며, 유튜브 채널 ‘세바시 강연 Sebasi Talk’을 통해 수백만 건의 조회 수를 기록하는 강연들을 꾸준히 공개해 왔다. 기업·기관과의 협업을 통한 사회 이슈 특집 강연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공단과 세바시의 협업은 지난해 첫 번째 특집 강연회 ‘편견 없는 직장, 차별 없는 성장’을 계기로 시작됐다. 당시 강연에는 개그맨 김기리, 바이올리니스트 김종훈, 접근성 스페셜리스트 김세진, 시각장애인 개발자 서인호, 계단뿌셔클럽 공동대표 박수빈, 화가 정은혜 등 6인이 연사로 올랐다. 해당 영상들은 현재도 세바시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되고 있으며, 일부 강연은 수십만 건에서 100만 건을 웃도는 조회 수를 기록하며 장애·인식개선 콘텐츠로는 이례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특히 화가 정은혜 작가의 강연은 140만 건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하며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에게 공감과 감동을 전한 콘텐츠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두 번째 강연회 영상은 오는 5월 1일부터 유튜브 채널 ‘세바시’를 통해 순차 공개된다.

이종성 이사장은 “이번 강연회로 우리 사회의 편견을 걷어내고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장애인 인식 개선의 기회가 되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장애인 고용 확대를 위한 다양한 인식개선 사업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기업 장애인 지원 활동 다변화…고용 넘어 기술·문화까지 경영 전략으로 확장

금융·유통·IT·문화예술 전 산업에서 참여 확대
지속성 확보 여부가 향후 성패 가를 변수

웅진 코웨이 ‘물빛소리 합창단’의 공연모습<사진=장애인일자리신문>

기업들의 장애인 관련 활동이 특정 부서 중심의 사회공헌을 넘어 조직 전반의 전략 영역으로 확대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관련 소식이 장애인의 날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등장하는 경향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지만, 단순 후원이나 행사 참여를 넘어 고용과 직무 설계, 기술 개발, 문화예술 활동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되는 양상이 확인된다. 이는 장애인 관련 활동이 기업 이미지 관리 차원을 넘어 인력 운영과 서비스 경쟁력 확보와도 연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유통과 식품업계에서는 직무교육 중심 프로그램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일부 기업은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제과제빵 기술 교육과 실습 프로그램을 통해 직무 역량을 실제 취업으로 연결하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예를 들어 SPC그룹은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제과제빵 기술 교육과 현장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장애인의 직업 역량 강화를 지원해 왔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단순 체험 활동에 머무르지 않고 일정 기간 교육을 통해 실무 능력을 축적하도록 설계된 점에서 기존 행사 중심 활동과 차이를 보인다. 유통업계 전반에서도 장애인을 고객과 근로자라는 두 측면에서 동시에 고려하는 서비스 개선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산업 전반의 인식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금융권에서는 장애인 고용 확대와 함께 직무 다양화와 경력 설계 지원이 동시에 추진되는 흐름이 확인된다. 단순 채용 인원 확대보다 직무 배치와 성장 경로 설계에 초점을 맞추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대표적으로 KB금융그룹은 장애인 청년을 대상으로 한 기업 체험 프로그램과 인턴십 운영을 통해 직무 경험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며, 일부 계열사에서는 장애인을 사회공헌 기획과 같은 전문 영역에도 배치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의무고용 기준 충족을 위한 단기적 대응에서 벗어나 조직 내 인력 구조 속에 장애인을 안정적으로 포함시키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IT와 플랫폼 기업에서는 고용 확대와 더불어 디지털 접근성 개선이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서비스 이용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접근성 문제를 줄이기 위한 기술 개발이 이어지고 있으며, 이는 장애인을 특정 집단이 아닌 일반 서비스 이용자 집단의 일부로 바라보는 인식 변화와 맞물려 있다. 카카오는 장애인의 서비스 이용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접근성 서포터즈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음성 안내와 화면 구성 개선 등 사용자 환경 개선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디지털 서비스 의존도가 높아지는 환경에서 접근성 확보는 단순한 복지적 조치가 아니라 기업 경쟁력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기업 참여가 꾸준히 확대되는 모습이 나타난다. 과거에는 일회성 공연이나 후원 중심 사업이 주를 이뤘다면 최근에는 장애인 예술단 운영과 같은 장기 프로젝트가 증가하고 있다. 코웨이는 시각장애인으로 구성된 합창단 ‘물빛합창단’을 운영하며 정기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활동은 단순한 후원을 넘어 기업 내부 구성원과 외부 고객이 함께 참여하는 문화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사회적 가치 확산과 브랜드 이미지 형성을 동시에 고려한 전략적 사업으로 평가된다.

이 같은 산업별 사례는 장애인 관련 활동이 특정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 보도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요 키워드는 고용 확대, 직무 맞춤, 접근성 강화, 문화예술 참여 등으로 요약된다. 이는 장애인 관련 활동이 사회공헌 부서에만 머무르지 않고 인사와 기술, 서비스 운영, 브랜드 관리 등 다양한 부서와 연계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눈에 띄는 변화는 단발성 행사 중심 활동이 점차 줄어들고 일정 기간 지속되는 프로그램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단기 행사 중심 활동은 언론 노출 효과는 크지만 실제 장애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이에 따라 일부 기업은 장기 교육 과정 운영, 정기 공연 개최, 지속적인 직무 개발 프로그램 도입 등 구조적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변화는 장애인 관련 사업이 기업 내부에서 하나의 독립적 프로젝트가 아니라 장기 운영이 필요한 사업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흐름의 배경에는 ESG 경영 확산과 함께 장애인 의무고용 제도에 대한 대응 필요성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사회적 책임 이행과 법적 의무 준수를 동시에 충족해야 하는 환경이 지속되면서 장애인 관련 활동이 일회성 사업이 아닌 조직 운영의 일부로 편입되는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 동시에 소비자와 투자자들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을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점도 기업 참여 확대를 이끄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다만 이러한 활동이 실제 장애인의 고용 안정성과 직무 만족도 향상으로 이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평가는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상태다. 일정 시기에 다양한 기업 활동이 집중되는 현상 자체는 긍정적인 신호로 볼 수 있지만, 일시적 관심에 머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장애인 관련 정책과 기업 활동이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연중 지속 가능한 프로그램 운영과 함께 성과를 점검할 수 있는 평가 체계 마련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근 나타나는 기업들의 움직임은 단순한 사회공헌 확대를 넘어 경영 구조 전반의 변화를 요구하는 신호로 읽힌다. 과거에는 참여 여부 자체가 관심의 대상이었다면, 이제는 어떤 방식으로 참여하고 그 결과가 조직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가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변화가 단기적 현상에 그칠지, 아니면 기업 경영의 장기적 방향으로 자리 잡을지는 앞으로 각 기업이 보여줄 지속성과 실효성에 달려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시립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복지 현장 AI 활용 가이드라인 첫 제정

장애인 대상 복지 서비스에서 인공지능 책임 사용 기준 마련
4장 22조 체계로 윤리·실행 원칙 명문화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AI 활용 가이드라인을 말한다’ 유튜브 썸네일 <사진=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제공>

시립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이 복지 현장에서의 인공지능(AI) 활용 기준을 담은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AI 활용 가이드라인’을 지난 20일 발표했다.

이번 가이드라인 제정은 복지 기관의 AI 활용이 빠르게 확산되는 가운데 제도적 기반이 뒤따르지 못하는 현실에 대처하기 위한 조치다. 실제로 비영리·복지 종사자의 90% 이상이 생성형 AI를 업무에 활용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조직 차원의 가이드라인을 보유한 기관은 10%에 불과한 실정이다. 그 결과 상담 과정에서 이용자의 민감한 개인정보가 외부 AI 플랫폼에 무방비로 입력되거나, AI 판단 오류에 대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상황이 현장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사회복지사업법·노인복지법·장애인복지법 등 관련 법률에 AI에 관한 조항이 사실상 부재한 상황에서 복지관 스스로 내부 기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장애인 이용자는 소득·건강·가족관계 등 복합 민감정보를 다수 포함하고 있어, AI 활용 과정에서의 정보 보호와 알고리즘 편향 문제는 비장애인 대상 서비스보다 한층 엄중히 다뤄야 한다는 지적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복지 행정에 AI를 도입한 이후 장애인이나 특정 소수집단에게 불리한 판단이 반복 출력되는 사례가 확인된 바 있다.

복지관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지난해 8월 ‘AI 활용 온라인 공유회’를 열고 가이드라인 제정 작업에 착수했다. 구글 워크스페이스·슬랙의 전면 도입과 함께 2026년 1월 시행된 ‘AI기본법’, 서울시의 ‘서울형 공공 AI 실천 윤리’ 등 국내외 원칙을 분석했다. 부서장 회의와 전 직원 검토, 외부 전문가 자문을 거쳐 최종안을 확정했다.

완성된 가이드라인은 목적·정의·기본 가치를 담은 개요부터 AI 윤리 원칙, 실행체계까지 총 4장 22조로 구성됐다. AI 활용의 기본 가치로는 공공성, 공정성, 투명성, 책임성, 안전성, 포용성 여섯 가지를 제시했으며 이용자 중심성을 핵심 윤리 원칙으로 명시했다. 제도적 지속성을 위해 AI 윤리회의체 구성·운영, 직원 AI 문해력 교육, 연 1회 이상의 정기 점검 및 개선 절차도 조문으로 못 박았다.

현장 실무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장치도 마련했다. 직원들이 AI 사용 전후로 스스로 점검할 수 있는 자가점검표를 제작하고, 이를 ‘바이브코딩(Vibe Coding)’ 방식으로 온라인 버전으로 구현해 언제든지 스마트 기기를 통해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추상적인 원칙이 실제 업무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집을 별표 자료로 수록해 가이드라인의 현장 적용성을 보완했다.

가이드라인 제정 실무를 총괄한 디지털융합팀 박재훈 팀장은 “복지관 직원들의 관심과 참여, 자문위원들의 기대가 합쳐져 완성될 수 있었다”며 “복지관의 사례가 자체적인 AI 가이드라인 마련을 준비 중인 다른 기관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미영 복지관장은 “AI는 사람을 대신하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도록 돕는 도구”라며 “기술이 아무리 진보하더라도 복지 현장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기준은 언제나 ‘이 기술이 한 사람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하는가’라는 질문이 될 것이기에 이번 가이드라인은 그 질문의 나침반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복지관은 향후 기술 변화와 제도 개정에 맞춰 가이드라인을 지속적으로 보완할 계획이다. 가이드라인 전문과 온라인 자가점검표는 복지관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열람하고 활용할 수 있다.




“고령화 뚜렷”…등록장애인 262만7761명 중 65세 이상 56.9%

신규 등록자 절반 이상이 노인층…청각장애 급증에 보청기 접근성 개선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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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세 이상 고령 장애인 비중이 57%에 달하며 ‘장애인의 고령화’가 뚜렷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등록 인원은 소폭 줄었지만, 노령층 중심으로 신규 등록과 청각장애 증가라는 변화가 두드러졌다.

보건복지부가 20일 발표한 2025년 등록장애인 통계에 따르면 2025년 말 기준 등록 장애인은 총 262만7761명이다. 전년도인 2024년 말 263만1356명보다 3595명 감소했고, 주민등록인구 대비 비율은 5.1%로 전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외형상 수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내부 구성의 변화는 분명하다. 연령별로 보면 60대가 60만 7169명으로 전체의 23.1%를 차지했고, 70대 60만 1723명(22.9%), 80대 46만 3575명(17.6%)이 뒤를 이었다. 65세 이상 등록장애인은 149만 6135명으로 전체의 56.9%에 달한다. 이 비율은 2015년 42.3%에서 2020년 49.9%, 2024년 55.3%로 꾸준히 증가했다.

장애 유형별로는 지체장애가 111만 3722명으로 전체의 42.4%를 차지해 가장 많았고, 이어 청각 44만 9269명(17.1%), 시각 24만 5361명(9.3%), 지적 23만 6635명(9.0%), 뇌병변 23만 2655명(8.9%) 순으로 나타났다.

2025년 한 해동안 새로 등록한 장애인은 8만2900명이다. 이 가운데 65세 이상은 4만9345명으로 신규 등록자의 59.5%를 차지했다. 새로 등록된 장애인 두 명 중 한 명 이상이 노령층인 셈이다. 성별로 보면 남성이 57.4%, 여성이 42.6%였으며, 연령대별로는 70대가 25.7%, 60대가 21.1%로 높게 나타났다.

신규 등록 유형에서는 청각장애가 2만 5375명으로 30.6%에 달해 가장 많았다. 지체 1만 4176명(17.1%), 뇌병변 1만 2990명(15.7%), 신장 9541명(11.5%)이 뒤를 이었다. 주목할 점은 신규 청각장애 등록자의 90.1%가 65세 이상이라는 점이다. 노인성 난청이 장애 등록 증가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장애 정도별로는 심한 장애가 96만 3658명(36.7%), 심하지 않은 장애가 166만 4103명(63.3%)으로 집계됐다. 성별로는 남성이 152만 4995명(58.0%), 여성이 110만 2766명(42.0%)이었다. 지역별로는 경기가 59만 1698명(22.5%)으로 가장 많았고, 서울 38만 4934명(14.6%), 경남·경북·전남 순으로 집중 분포를 보였다.

차전경 장애인정책국장은 “등록장애인 현황의 변화 추이를 면밀히 살펴서 장애인서비스 수요를 충족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이번 통계를 서비스 제공 기관의 수요 산출에 적극 활용토록 권고했다.

전문가들은 등록장애인의 고령화 추세가 장애·복지 정책 전반의 재설계를 요구하는 신호라고 지적한다. 연령별·유형별 맞춤 서비스, 지역사회 기반 돌봄 강화, 보조기기 보급 확대가 필요하며, 특히 보청기 접근성 개선은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고령 장애인의 경우 청력 문제를 넘어 이동, 소득, 돌봄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단일 정책만으로는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장애인 일자리와 고용 지원 측면에서도 고령 장애인의 증가는 새로운 과제를 던진다. 신체적 기능 저하와 장애가 동시에 진행되는 노령층을 위한 고용 연계 모델, 중고령 장애인 직업 훈련 프로그램, 재취업 지원 체계 등의 정비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일한다고 장애인 복지수급 잃어선 안돼” 법으로 보장 나서는 영국

영국, 장애인 복지수급자 취업해도 급여 유지 보장하는 법안 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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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정부는 취업을 원하는 장애인 복지수급자가 수당 삭감 걱정 없이 도전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법안을 지난 9일 공식 발효했다. 한국에서도 장애인 기초생활수급자가 취업할 경우 소득 증가로 생계급여가 삭감되는 복지 함정 문제가 고질적으로 지적돼온 만큼, 이번 영국의 사례는 국내 제도 개선에 중요한 벤치마킹 모델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영국 노동연금부가 이날 발효한 법안의 핵심은 취업 시도 자체가 수당 재평가의 근거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기존에는 장애인 수급자가 일자리를 얻는 순간 고용·지원수당, 개인자립수당, 통합공제 건강 요소에 대한 재평가가 자동으로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수당이 줄거나 중단될 위험이 있었고, 이 때문에 실질적으로 취업을 막는 장벽으로 작동해왔다.

영국 노동연금부 자체 조사에 따르면 일하고 싶다고 응답한 장애인과 질병을 가진 사람 가운데 37%가 수당 상실의 두려움을 이유로 취업을 포기했다고 답했다. 영국 내 장기 질병으로 인한 실직자는 280만 명에 이른다.

영국 사회보장·장애부 장관 스티븐 팀스는 “병들고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두려움 없이 일할 수 있도록 법적 보호를 제공하는 것은 그들의 미래와 경제 성장에 매우 중요하다”고 전했다.

이번 법안에는 자원봉사 활동도 급여 재평가를 촉발하지 않도록 하는 조항도 포함됐다. 장애인 당사자 단체와의 협의 과정에서 나온 권고를 직접 반영한 결과다.

정신건강 지원단체 멘탈헬스 UK의 브라이언 다우 대표는 “재평가에 대한 두려움이 취업의 첫 걸음부터 막는 큰 장벽 중 하나였다”며 “취업을 시도할 권리는 장애인이 일자리나 자원봉사를 찾을 때 안전망을 확보하게 하는 실용적 조치”라고 평가했다.

학습장애 자선단체 멘탭의 존 스파크스 대표도 “복지 제도가 장애인에게 가장 큰 장벽인 경우가 많다”며 “수당을 보호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영국 정부는 이번 법안과 함께 향후 5년 간 고용 지원에 35억 파운드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25만 명을 대상으로 운영 중인 워크엘 프로그램과 향후 5년간 30만 명에게 개인 맞춤형 지원을 제공하는 ‘커넥트 투 워크’ 사업이 대표적이다.

한국의 현실은 어떨까. 한국의 장애인 기초생활수급자는 취업으로 소득이 발생하면 소득인정액이 높아지고, 이에 따라 생계 급여가 자동 삭감되거나 수급 자격이 박탈될 수 있다. 취업으로 인한 소득 증가분보다 급여 삭감액이 더 커지는 역전 현상이 실제로 발생하고 있다.

장애인이 일을 하면 할수록 손에 쥐는 실소득이 줄어드는 이 복지 함정은 장애인의 근로 의욕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오랫동안 지적돼왔다. 취업 후 일정 기간 수당을 전액 유지하는 ‘완전 누적’ 방식 도입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있긴 하지만, 아직 제도화 단계에는 이르지 못한 상태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등이 다양한 고용 지원 사업을 운영하고 있지만, 취업 시도 자체가 수당 감소로 이어지는 구조적 위험을 법으로 차단하는 조치는 아직 없다.

장애인 고용 현장에서는 고용률 제고를 위한 선결 과제로 이 복지 함정을 꼽는다. 직업 훈련이나 취업 박람회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제도 자체의 문제라는 것이다. 영국이 법안을 통해 취업 시도 자체가 수당 재평가의 근거가 되지 않도록 한 부분은 한국의 제도 개선 논의에서도 참고할 수 있는 구체적인 모델이다.

특히 영국이 당사자 참여 기구인 협력위원회를 통해 정책을 설계하고, 자원봉사까지 수당 보호 범위에 포함시킨 것은 장애인 스스로가 일에 가까워질 수 있는 환경을 단계적으로 조성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영국의 노력이 실제로 장애인 고용 확대로 이어질지 추이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복지 함정을 법으로 차단한다는 방향성 자체가 한국의 장애인 고용 정책에 던지는 시사점이 크다는 것이다.




국제 정세 흔들릴수록 커지는 생활 부담… 고물가 시대, 장애인 가구의 이중 압박

소득은 전체 가구의 83.5% 수준, 필수지출 비중은 더 높아
국제유가 상승발 물가 불안 속 장애인 빈곤율 35.7%로 격차 심화

<사진=pexels>

국제 정세의 불확실성이 장기화되면서 전 세계 경제가 요동치고 있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 장기화, 중동 지역 긴장 고조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이어지면서 국제유가 상승 압력이 커지고 있으며, 이는 국내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연쇄 효과를 낳고 있다. 국제유가 변동은 연료비를 넘어 운송비와 공공요금, 식료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형성하며 국민 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제 경제 환경의 변화가 모든 계층에 동일하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소득 기반이 취약하고 필수지출 비중이 높은 계층일수록 물가 상승의 충격은 더 크게 나타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장애인 가구는 고물가 시대에 상대적으로 더 큰 부담을 감당하고 있는 대표적인 계층으로 지목되고 있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이 발표한 ‘2025년도 장애통계연보’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장애인 가구의 연간 경상소득은 6,002만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체 가구 평균 7,185만 원의 83.5% 수준에 해당한다. 소득 자체가 낮은 상황에서 물가 상승은 가계의 소비 여력을 더욱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소득 구조 역시 취약한 양상을 보인다. 장애인 가구의 근로소득 비중은 51.1%로 전체 가구의 64.5%보다 13.4%포인트 낮았다. 반면 정부 지원금 등 공적이전소득 비중은 17.6%로 전체 가구의 8.5%보다 두 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이는 노동시장 참여 기회가 제한되는 현실 속에서 외부 지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임을 보여준다.

고용 지표에서도 이러한 격차는 분명하게 확인된다. 2024년 기준 장애인 고용률은 34.5%로 전체 인구 고용률 63.3%에 비해 28.8%포인트 낮았다. 반면 실업률은 4.0%로 전체 인구의 2.3%보다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안정적인 소득 기반 확보가 쉽지 않은 환경 속에서 물가 상승은 생활 불안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지출 구조에서는 물가 상승의 충격이 장애인 가구에 더 크게 작용하는 이유가 드러난다. 2023년 장애인 가구의 연평균 소비지출액은 2,650만 원으로 전체 가구 평균 3,166만 원보다 낮았지만, 식료품과 의료비 등 필수지출 비중은 더 높게 나타났다. 식료품 지출 비중은 33.6%, 의료비 비중은 10.7%로 집계됐으며, 특히 의료비 비중은 전체 가구 평균 6.6%보다 4.1%포인트 높은 수준이었다. 줄이기 어려운 비용이 많은 구조가 고물가 상황에서 부담을 더욱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장애로 인해 추가적으로 발생하는 비용 역시 가계 부담을 키우는 요소다. 2023년 기준 장애인 가구는 장애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비용으로 매달 평균 17만 원을 지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항목은 의료비 5만7,800원, 보호·간병비 2만8,200원, 교통비 2만4,100원 등으로, 대부분 일상생활 유지에 필수적인 지출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이 같은 구조적 특성은 빈곤 지표에서도 확인된다. 2022년 기준 장애 인구의 빈곤율은 35.7%로 전체 인구 빈곤율 14.9%보다 약 2.4배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는 단순한 소득 부족을 넘어 필수지출이 높은 구조가 빈곤 상태를 장기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국제유가 상승과 물가 불안이 장기화될 경우 이러한 부담이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원유 가격 상승이 운송비와 공공요금 인상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식료품과 생활 필수품 가격 상승으로 연결되는 구조가 반복될 경우 취약계층의 생활 안정성은 더욱 흔들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장애인의 경우 이동을 위한 교통비와 치료 및 재활을 위한 의료비, 일상생활 지원을 위한 간병비 등 선택이 아닌 필수 지출 항목이 많다는 점에서 물가 상승에 대한 대응 여지가 제한적이다. 일반 가구가 소비 항목을 조정해 지출을 줄일 수 있는 것과 달리 장애인 가구는 지출 구조 자체가 경직돼 있다는 점이 부담을 키우는 핵심 요인으로 지목된다.

국제 정세의 불안이 장기화될수록 경제적 취약계층이 받는 충격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 물가 상승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장애인의 삶이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지 면밀히 살피고, 이들의 특수한 지출 구조를 반영한 정책적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요구되는 시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장애인의 날 특집 기획] 편견의 가격 下-일할 권리, 이제는 로드맵이 답해야

의무고용률 상향·2700억 지원·기술 혁신… 정책·현장·문화 삼각축 본격 가동

2025년 10월 1일 열린 관광일자리페스타 현장 <사진=장애인일자리신문>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인일자리신문은 장애인 고용의 패러다임 전환을 촉구하는 기획 시리즈를 마련했다. 장애인 고용은 시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편견을 붙들고 있는 동안 매년 14조 원이 넘는 비용이 공동체의 재정에서 새어 나가고 있다.
이번 기획 시리즈를 통해 장애인 고용 문제를 ‘복지의 언어’가 아닌 ‘경제의 언어’로 다시 읽었다. 이번편에서는 2029년까지 이어지는 정책 로드맵과 기술·문화의 변화가 어떻게 맞물려야 하는지를 조망했다. 장애인이 일터로 나올 때 사회적 비용은 줄고, 기업은 성장하며, 공동체는 지속가능해진다. ‘편견의 가격’을 더 이상 치르지 않을 선택은 지금 우리 손에 달려 있다. [편집자주]

고령화와 인구 구조 변화가 가속화되는 2025년 이후 노동시장에서 다양성 확보는 기업 생존과 직결된 과제가 됐다. 우리 정부도 이런 흐름에 맞춰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단계적으로 올리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장애인고용 촉진 로드맵에 따르면 현재 민간 기업 3.1%, 공공 부문 3.8%인 법정 의무고용률은 2027년 각각 3.3%와 3.9%를 거쳐 2029년에는 3.5%와 4.0%까지 높아진다. 정부는 이 조정만으로도 앞으로 4년간 민간에서 약 3만 명, 공공에서 3,000명 등 총 3만 3,000개 수준의 신규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내다본다.

장애인 고용은 더 이상 사회적 책임이라는 명분에만 머물지 않는다. 기업의 수익성과 직결되는 경영 전략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사 액센츄어가 발표한 2025년 장애 포용 보고서에 따르면 장애평등지수(DEI) 상위 100개 기업의 총주주수익률은 S&P500 평균을 1.6배 웃돌았다. 연평균 수익률로는 포용 상위 기업이 14.0%를 기록한 반면 S&P500 평균은 8.5%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경제적 가치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제도 개선과 기술 혁신, 인식의 대전환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제 현장의 지표를 보면 정책적 과제가 더욱 선명해진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집계한 2024년 말 기준 상시근로자 50인 이상 공공·민간 사업장 3만 2,692곳의 평균 장애인 고용률은 3.21%였다. 전년 3.17%보다 0.04%포인트 오르며 법정 목표치를 0.11%포인트 웃돈 수치다. 이들 사업장에서 일하는 장애인 근로자는 29만 8,654명이며 이 가운데 중증장애인이 10만 6,866명을 차지해 고용 구조의 다양성도 넓어지는 추세다. 그러나 통계청이 집계한 전체 인구 고용률이 70.0%를 기록하는 동안 장애인 고용률은 48.4%에 머물러 21.6%포인트의 격차를 보이고 있다. 이 간극을 좁히기 위한 집중적인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은 표준사업장 확대 등을 통해 2024년 기준 797개소에서 장애인 1만 8,115명을 고용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중증장애인 비율은 79.9%로 4년간 68%가 늘었다.

숫자 이면에는 각자의 사연을 안고 일터를 찾아온 사람들이 있다. 발달장애가 있는 이모 씨는 3년 전 한 제조업체에 입사했다. 처음에는 비장애인 동료들과 소통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하지만 업무 보조 인력의 도움을 받으며 공정 이해도가 높아졌고, 지금은 품질 점검 라인에서 가장 낮은 오류율을 유지하고 있다. 이 씨는 “처음엔 내가 짐이 될까 봐 걱정했는데 지금은 팀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일터의 변화는 통계 위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먼저 시작된다.

재정 투자 역시 실질적인 고용 유지와 맞춤형 서비스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2026년 장애인 근로지원인 지원 예산은 국회 심의를 거쳐 2,705억 원으로 확정됐다. 전년 대비 증액된 규모로 이를 통해 1만 1,700명의 장애인 근로자가 업무 보조 인력을 지원받는다. 특히 발달장애인 지원 등 맞춤형 고용 서비스 기능을 강화해 고용의 질을 높인다는 구상이다. 저소득 중증장애인의 출퇴근 장벽을 낮추기 위한 교통비 지원 예산도 85억 원으로 편성돼 1만 5,000여 명의 경제활동을 뒷받침한다. 여기에 보조공학기기 보급 예산 2ㄹ00억 원이 투입돼 착용형 로봇 등 첨단 기기 도입을 지원한다.

기술의 진보는 고용의 물리적 한계를 빠르게 지워나가고 있다. 네이버의 클로바노트 같은 실시간 음성-문자 변환 서비스는 청각장애인의 소통을 돕고, 사피언스의 증강현실 기반 업무 솔루션은 발달장애인의 직무 숙련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기업들은 채용 단계부터 웹 접근성을 확보하고 사무실에 높낮이 조절 책상 등 유니버설 디자인을 도입하며 환경을 정비하고 있다. 비장애인 직원을 대상으로 한 체계적인 포용 교육은 조직 내 심리적 장벽을 허무는 핵심 동력이다.

그러나 기술과 예산이 뒷받침되더라도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한계는 분명하다. 현장의 장애인 당사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특별한 배려가 아니라 동등한 동료로서의 인정이다. 고용 현장에서 만난 한 장애인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업무 성과로 정당하게 평가받고 함께 고민하는 동등한 동료로서의 대우”라고 강조했다. 이런 목소리에 화답하듯 장애인 고용에 앞장서는 기업 제품에 ‘굿잡’ 라벨을 부착해 가치 소비를 유도하는 방안이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제안돼 도입 검토 단계에 들어섰다.

정책과 기술, 문화의 세 축은 지금 이 순간에도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정부가 의무고용률 상향과 2,700억 원이 넘는 지원 예산으로 토대를 다지고, 기업이 기술 혁신으로 환경을 조성하며, 시민들이 문화로 지지할 때 장애인의 일할 권리는 우리 경제의 포용성을 측정하는 척도가 된다. 일부의 성공 사례를 넘어 모두가 함께 일하는 미래, 그 로드맵을 실행에 옮겨야 할 때다.




직무개발 넘어 ‘근속 설계’로…장애인 고용, 양에서 질로 이동한다

채용률 중심에서 직무·근속 중심으로 전환
이랜드 등 기업들 ‘지속 가능한 고용 구조’ 구축 시도

<사진=이랜드이츠 제공>

최근 기업들의 장애인 고용 방식이 단순 채용률 달성 중심에서 벗어나 직무 설계와 근속 안정성 확보로 확장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과거에는 법정 의무고용률 충족 여부가 주요 평가 기준이었다면, 이제는 장애인이 실제로 현장에서 장기간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가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같은 변화는 최근 몇 년 사이 장애인 고용 정책과 기업 현장의 경험이 축적되면서 나타난 흐름으로 해석된다. 특히 장애인 채용 이후 이직률이 높거나 직무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단순 채용 확대만으로는 안정적인 고용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된 것이 배경으로 지목된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장애인의 특성과 업무 환경을 함께 고려한 직무 개발에 점차 관심을 기울여 왔다.

실제로 직무 중심 고용은 최근 기업 장애인 고용 정책의 핵심 키워드로 자리 잡고 있다. 기존에는 사무 보조나 단순 지원 업무 중심의 배치가 일반적이었으나, 최근에는 산업 특성과 업무 흐름을 반영한 맞춤형 직무를 개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장애인을 조직의 주변 업무에 배치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기업 운영 과정 속에서 역할을 수행하도록 설계하는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직무 중심 접근은 이제 한 단계 더 나아가 ‘고용 지속성’이라는 새로운 기준으로 확장되는 모습이다. 장애인을 채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장기간 근무할 수 있도록 업무 난이도와 교육 체계를 설계하는 시도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장애인 고용의 성과를 단순 숫자가 아닌 근속 기간과 직무 안정성으로 평가하려는 움직임과도 맞닿아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이랜드그룹의 장애인 고용 모델이 주목된다. 이 기업은 최근 장애인 채용 과정에 ‘일자리 설계’ 개념을 도입해 직무 세분화와 교육 과정을 연계하는 구조를 구축했다. 외식 부문에서는 업무를 단계별로 나누어 반복 학습이 가능하도록 설계하고, 패션 부문에서는 실제 매장 환경과 동일한 교육장을 운영해 현장 적응력을 높이는 방식이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접근은 채용 이후 직무 적응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어려움을 사전에 줄이기 위한 조치로 평가된다.

특히 사업부별 특성을 반영한 직무 설계는 고용 지속성을 높이는 핵심 요소로 주목된다. 외식업과 유통업처럼 현장 중심 산업에서는 업무 숙련도가 근속 여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반복 수행이 가능한 업무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장애인의 업무 이해도를 높이고 직무 수행에 대한 자신감을 형성하는 데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같은 흐름은 특정 기업에 국한된 현상만은 아니다. 포스코는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을 통해 교육과 현장 업무를 연계한 고용 모델을 구축해 장기 근속 기반을 마련해 왔으며, SK그룹 역시 계열사 단위로 장애인 직무를 확대하고 근무 환경 개선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고용 안정성을 높이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장애인 고용이 단순한 사회공헌 활동을 넘어 기업 운영 전략의 일부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장애인 고용의 질적 변화가 기업의 경쟁력과도 연결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직무 적합도가 높은 인력을 장기간 유지할 수 있을 경우 조직의 업무 효율성이 높아질 뿐 아니라, 반복 채용과 교육에 소요되는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장애인 고용이 비용 부담이라는 기존 인식을 넘어, 기업 운영의 안정성을 높이는 요소로 전환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다만 이러한 변화가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기까지는 여전히 시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일부 선도 기업을 중심으로 직무 개발과 근속 설계가 이뤄지고 있지만, 상당수 기업에서는 여전히 단기 고용이나 제한적인 직무 배치가 반복되는 사례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장애인 고용 정책이 양적 확대에서 질적 안정으로 전환되는 과도기적 단계에 놓여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무 개발에서 고용 지속성 확보로 이어지는 최근의 흐름은 장애인 일자리 정책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변화로 평가된다. 채용 숫자를 늘리는 것을 넘어 장애인이 조직 안에서 안정적으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는 시도가 확산될 경우, 장애인 고용은 단순한 의무 이행을 넘어 지속 가능한 노동시장 참여 모델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문체부, 장애인 생활체육 지원 대폭 강화…추경 102억 원 투입

스포츠강좌이용권 2만 명 추가·유청소년 기반 구축 예산 최초 편성

지난 1월 27일 알펜시아 바이애슬론 경기장에서 열린 여자 바이애슬론 스프린트 4km 좌식 경기에서 우승한 김윤지 선수의 경기 모습 <사진=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문화체육관광부가 장애인 체육 현장의 수요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2026년 제1차 추가경정예산 102억 원을 투입, 장애인 생활체육 지원을 대폭 확대한다.

문체부는 15일 오후 2시 국립세종도서관 대회의실에서 ‘장애인 생활체육 활성화를 위한 정책 간담회’를 개최한다. 대한장애인체육회와 17개 시도 장애인체육회, 지자체 담당 공무원 등 60여 명이 참석해 정책의 현장 안착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번 추경에는 장애인 스포츠강좌이용권 2만 명 추가 지원 사업 예산 62억 원과 40억 원 규모의 장애인 유·청소년 스포츠 기반 구축 사업이 담겼다.

스포츠강좌이용권은 이용을 원하면서도 예산 부족으로 탈락한 대기자들에게 즉시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운영된다. 매년 신청 개시와 함께 조기 마감이 반복될 만큼 수요가 공급을 꾸준히 웃돌아 왔다는 점에서, 이번 추경 편성은 구조적 공급 부족에 대한 응답이기도 하다. 해당 사업은 국비 70%·지방비 30% 매칭 구조로 운영되는 만큼, 문체부는 지자체 추경 예산이 신속하게 편성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할 방침이다.

장애인 유·청소년 스포츠 기반 구축은 이번 추경에서 처음으로 예산이 편성된 사업이다. 반다비체육센터 등 체육시설에서는 수영·농구·배드민턴 등 종목별 프로그램을, 장애인복지관 등 지역 밀착 시설에서는 뉴스포츠 등 연령과 발달 수준에 맞는 맞춤형 프로그램을 운영해 규칙적인 운동 습관 형성을 지원한다.

유·청소년기에 형성된 체육 활동 습관은 성인기 건강 자립의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이번 예산 편성은 치료·돌봄 중심의 장애인 복지 구조를 예방·자립 중심으로 전환하는 첫걸음으로 평가된다.

간담회에서는 추경 예산 논의 외에도 장애 유형별·연령별 맞춤 프로그램 개발, 반다비체육센터 신규 건립 지원, 생활체육 지도자 배치 확대, 생활체육대회 지원 방안 등 현장의 건의사항이 폭넓게 수렴됐다.

임영아 문체부 체육협력관은 “장애인체육은 장애인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만드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라며 “현장 의견을 바탕으로 장애인 유·청소년 등 수요자가 체감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정책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