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지원주택 ‘서비스필요도 조사’ 논란 확산
재계약 심사에 퇴거 기준 적용… 주거권 침해 여부 쟁점

서울시가 장애인 지원주택 재계약 대상자를 상대로 ‘서비스 필요도 조사’를 실시하고 일정 점수에 미달할 경우 재계약을 제한할 수 있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장애인의 지역사회 정착을 지원하기 위해 도입된 정책이 오히려 주거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과 함께, 공공자원의 효율적 배분이라는 행정 논리 사이에서 정책 방향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지원주택입주민인권연대는 4월 8일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원주택은 장애인의 탈시설과 지역사회 정착을 위한 핵심 기반인데, 서비스 필요도를 이유로 재계약을 제한하는 방식은 사실상 퇴거 가능성을 전제로 한 선별 기준이 될 수 있다”며 제도 전면 재검토를 요구했다. 단체는 특히 평가 결과가 낮을 경우 주거 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서울시는 이번 조치가 지원주택 운영의 적정성을 점검하기 위한 관리 체계 강화라고 설명한다. 시는 지난 3월 감사담당관이 실시한 ‘취약계층 지원주택 공급 및 운영실태 감사’ 결과를 토대로 재계약 대상 입주자에 대한 서비스 필요도 조사를 시행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원주택이 필요한 대상에게 적절하게 제공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관리 장치”라며 “지원의 효율성과 형평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현재 내부 방침에 따르면 재계약 대상 입주자를 대상으로 건강 상태, 일상생활 수행 능력, 사회참여 수준 등을 평가하는 조사가 진행되며, 평가 점수가 일정 기준에 미달할 경우 재계약이 제한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기준 점수로 70점이 제시된 것으로 전해지면서 입주민 단체를 중심으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지원주택은 장애인이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공공임대주택과 생활지원 서비스를 결합한 주거 모델이다. 서울시는 2018년 ‘서울특별시 장애인 지원주택 공급 및 운영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제도를 도입했으며, 탈시설 정책의 핵심 인프라로 확대를 추진해 왔다.
그러나 실제 공급 속도는 정책 목표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는 2025년까지 지원주택 623호 운영을 목표로 제시했지만, 2024년 7월 기준 실제 운영 규모는 275호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입주 인원 역시 264명 수준으로 계획 대비 절반 이하에 머물러 있다. 공급 확대가 지연되는 상황에서 기존 입주자의 재계약 기준을 강화하는 것이 정책 방향과 충돌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주거복지 분야 연구자들은 지원주택의 정책 성격을 고려할 때 재계약 제한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 주거정책 연구자는 “지원주택은 단기 보호시설이 아니라 지역사회 정착을 위한 장기적 주거 모델”이라며 “입주자의 서비스 필요도만을 기준으로 재계약 여부를 판단할 경우 정책의 본래 목적과 충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법적 쟁점도 제기된다. 장애인복지법은 장애인의 자립생활과 사회 참여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로 규정하고 있으며,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은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행정절차법 역시 행정기관이 국민에게 불이익을 주는 처분을 할 경우 사전에 의견 제출 기회를 보장하도록 규정한다. 전문가들은 재계약 거부가 사실상 퇴거로 이어질 경우 이러한 법적 절차가 충분히 보장되는지가 핵심 쟁점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국제 기준과의 정합성도 중요한 논의 지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제19조는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살아갈 권리를 명시하고 있으며, 각 국 정부가 이를 보장할 정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역시 장애인의 지역사회 거주 지원 정책에서 서비스 필요도 평가는 당사자의 의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의료적 판단에 과도하게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권고해 왔다.
이번 논란은 장애인 주거 정책의 두 가지 가치가 충돌하는 지점을 보여준다. 하나는 제한된 공공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려는 행정적 필요이며, 다른 하나는 장애인의 안정적 주거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인권적 원칙이다. 정책 전문가들은 두 가치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이 향후 제도 설계의 핵심 과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시는 향후 세부 운영 지침을 보완해 인권 침해 소지를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다만 평가 기준의 합리성과 재계약 제한 절차의 투명성, 그리고 입주자의 이의 신청 절차가 어떻게 설계될 것인지는 추가적인 사회적 검증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논쟁은 장애인 탈시설 정책의 핵심 기반으로 평가받아 온 지원주택 제도의 방향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시험대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