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전담창구 설치 촉구 150일, 서울대병원과 전장연, 공공의료의 책임과 현실 사이에서
-침묵과 대립이 아닌 실질적 협의와 실행으로 나아가야 할 시점-

장애인의 건강권 보장을 위한 서울대병원 앞 출근길 선전전이 150일째를 맞았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는 서울대병원이 장애인전담창구 설치와 장애인의무고용률 준수를 이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지속적인 현장 시위를 이어오고 있다. 이에 병원 측은 공공의료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인식하면서도 제도와 예산, 운영상의 한계를 호소하고 있다. 양측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는 가운데, 장애인의 기본권 보장과 공공기관의 운영 현실 사이에서 접점을 찾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장연은 지난해 10월부터 서울대병원 후문 앞에서 출근길 선전전을 이어오고 있다. 이들은 병원에 장애인전담창구 설치, 장애인의무고용률 이행계획 공개, 병원장과의 면담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특히 지난 7월에는 경복궁역 국정기획위원회 앞에서 한 달간 별도의 선전전을 진행하며, 중앙정부의 정책적 책임도 함께 제기했다. 이들은 서울대병원이 전담창구 명칭만을 변경하고 실질적 조치 없이 시간만을 끌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장애인의 출입을 통제하거나, 병원 직원들이 장애를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는 점도 문제로 삼았다.
이에 대해 서울대병원은 내부적으로 인권경영위원회를 통해 관련 논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미 일부 창구를 ‘우선창구’에서 ‘전담창구’로 명칭 변경하고, ESG 경영 계획에 장애인 고용 관련 방침을 포함시켰다는 점을 강조한다. 병원 관계자는 “국립대병원이지만 실제 운영은 수익성과 인력 배치의 자율성이 요구되는 민감한 구조이며, 새로운 인력 채용이나 시설 개선은 중앙정부의 예산과 정책 방향 없이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밝혔다.
병원 입장에서는 반복적인 출근길 시위로 인해 병원을 이용하는 환자와 직원의 불편이 가중될 수 있으며, 일부 활동가의 과격한 행동이 의료 현장의 안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위 방식의 조정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특히 보건복지부의 장애인전용창구 시범사업이 이제 막 시작 단계에 불과하며, 서울대병원 역시 향후 해당 사업 참여 여부를 내부 검토 중인것으로 알려졌다.
장애인전용창구는 수어통역사 및 장애인전담 코디네이터를 배치하여 의료기관 내 장애인의 접근성과 의사소통을 보장하는 제도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5월부터 전국 5개 의료기관을 시범 선정했으며, 2029년까지 17개소 확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해당 제도가 아직 구체적인 운영 지침이나 예산 지원 체계 없이 선언적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 전장연은 8월 7일 혜화역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대병원에 다시 한 번 공식 면담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법 시행 34년, 장애계의 요구 10년, 서울대병원 출근길 시위 150일의 시간을 되짚으며 이제는 책임 있는 답변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장애인의 건강권은 단순한 배려가 아닌 헌법상 기본권이다. 서울대병원이 공공의료기관으로서 이 권리를 보장할 책임이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현실적인 여건과 중앙정부의 정책 이행 속도 또한 고려해야 할 요소다. 병원이 단독으로 모든 변화를 수용하긴 어렵다는 현실도 존재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선의 해법은 각자의 입장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대화 테이블을 마련하는 것이다. 서울대병원과 전장연이 공개 면담 형식으로 사회적 합의점을 모색하고, 보건복지부가 제도 설계와 예산 지원을 명확히 하여 병원들의 참여를 실질적으로 유도해야 한다. 공공기관의 책무는 공감 위에서 실현될 때 가장 강력하다. 더 이상 침묵과 대립이 아닌 실질적 협의와 실행으로 나아가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