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권리와 현실 사이의 갈등
정부 시행령 개정안에 전장연 강력 반발
비용 분담과 제도적 보완이 대안

정부가 추진 중인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령 개정안을 둘러싸고 장애인의 정보 접근권과 소상공인의 비용 부담 사이의 정책 갈등이 이슈가 되고 있다. 장애인단체들은 접근권 후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반면, 정부는 소규모 사업장의 현실적 여건을 고려한 조치라는 입장을 밝히면서 제도 개선 방향을 둘러싼 논쟁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최근 정부가 입법 예고한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해 “장애인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차별적 개정”이라며 철회를 요구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8월 공고한 개정안은 무인정보단말기, 이른바 키오스크 설치·운영과 관련해 일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예외 적용 범위를 명확히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는 현장에서 제기된 법 해석 혼선을 줄이고 영세 사업장의 부담을 고려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키오스크 접근성 문제는 장애인의 일상생활과 직결되는 사안으로 지적된다. 매장 주문과 결제 과정이 빠르게 무인화되면서 시각장애인이나 발달장애인, 휠체어 이용 장애인 등이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실제로 국가인권위원회와 장애인단체들이 실시한 조사에서는 시각장애인의 상당수가 키오스크 사용 과정에서 음성 안내 부족이나 터치 방식 인터페이스로 인해 주문을 포기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문제로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장에 대해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키오스크 환경을 마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제도 시행 과정에서 현실적 어려움도 제기돼 왔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소상공인 관련 단체들에 따르면 접근성 기능이 적용된 키오스크를 도입하거나 기존 단말기를 교체할 경우 수백만 원 수준의 비용이 발생할 수 있어 영세 사업장에는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장연은 이러한 논리를 강하게 반박하고 있다. 장애인 접근권은 단순한 편의 제공이 아니라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라는 것이다. 특히 2024년 대법원 판결에서 장애인의 정보 접근권과 관련해 비용 문제만으로 기본권 보장을 제한하기 어렵다는 취지가 확인된 점을 언급하며, 이번 시행령 개정은 법원의 판단 취지와도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논쟁이 단순한 정책 충돌을 넘어 사회 구조 변화와 관련된 문제라고 분석한다. 디지털 기술이 빠르게 확산되는 상황에서 장애인의 정보 접근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하지 않으면 일상적 소비 활동과 사회 참여에서 배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영세 사업장의 비용 부담 역시 현실적으로 무시하기 어렵기 때문에 정책 설계 과정에서 균형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정책 해법으로는 정부의 재정 지원 확대와 기술 표준 마련이 주요 대안으로 거론된다. 접근성 기준을 충족한 키오스크 보급을 촉진하기 위해 제조사에 대한 지원이나 세제 혜택을 제공하고, 소규모 사업장에는 단말기 교체 비용을 보조하는 방식의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동시에 장애인도 별도의 도움 없이 단말기를 이용할 수 있도록 음성 안내와 화면 설계 등 접근성 기술을 표준화하는 노력도 요구된다.
일부에서는 일정 규모 이하 사업장에 대한 예외 적용 대신 단계적 의무화를 통해 접근성을 확대하는 방식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초기에는 정부 지원을 통해 보급을 확대하고 이후 일정 기간을 거쳐 모든 사업장이 접근성 기준을 충족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번 논쟁은 장애인의 권리 보장과 소상공인의 현실 사이에서 정책이 어떤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전문가들은 접근권 문제를 단순히 규제와 부담의 문제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디지털 사회에서 누구도 배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사회적 투자라는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키오스크 확산이 일상이 된 사회에서 장애인의 접근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는 앞으로도 중요한 정책 과제가 될 전망이다. 정부가 제도 개선 과정에서 권리 보장과 현실적 부담을 함께 고려한 정책 설계를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