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장애인의 일상생활이 사회적 가치로 이어질때
장애인 일자리의 새로운 패러다임(1)
근로성에 대한 인식전환이 먼저

발달장애 아들을 둔 A씨는 몇 년 뒤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의 삶을 걱정하고 있다. 지금은 학교라는 일상이 아이의 하루를 채우고 있지만, 졸업과 동시에 그 시간표가 사라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또래 학생들에게는 지루한 학교생활일 수 있지만, A씨의 아들은 친구들과 어울리고 정해진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시간을 즐거움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부모에게 학교는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아이의 삶을 안정적으로 지탱해 주는 사회적 공간이다.
문제는 의무교육이 끝난 이후부터 시작된다. 발달장애인을 포함한 중증장애인은 졸업 이후 선택할 수 있는 사회참여 경로가 제한적이다. 특수학교 전공과에 진학하거나 평생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방법이 있지만, 대부분은 주간활동서비스나 주간보호센터를 이용하며 하루를 보내는 경우가 많다. 직업을 준비하려면 직업적응훈련시설에서 기초훈련을 받거나 보호작업장에서 근로 경험을 쌓아야 하지만, 이러한 과정이 실제 취업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고용 현실을 보여주는 통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국내 장애인 의무고용 대상 사업체의 장애인 고용률은 최근 기준 약 3% 수준으로 집계된다. 법정 의무고용률에 미치지 못하는 기업도 적지 않다. 의무고용을 이행하지 못한 기업이 납부하는 장애인 고용부담금은 매년 수천억 원 규모에 이르며, 상당수 기업이 직접 고용 대신 부담금을 납부하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취업이 이뤄지더라도 안정적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장애인학교에서 성적이 우수했던 B씨는 졸업 후 공공기관에 취업했지만 직장 내 관계와 사회적 시선을 견디지 못해 반년 만에 퇴사했다. 이후 우울증을 겪으며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났다. B씨의 상황이 바뀐 것은 지역 주간활동센터에서 스포츠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부터였다. 활동을 통해 자신감을 회복한 그는 장애인 스포츠 일자리 연계 사업을 통해 기업에 고용되었고 다시 사회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처럼 스포츠나 문화예술 활동을 기반으로 한 장애인 고용 모델은 최근 기업들 사이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확산되고 있다. 기업이 장애인 운동선수나 문화예술인을 고용하고 전문 플랫폼 업체가 인사관리와 근태를 관리하는 방식이다. 장애인 근로자는 평소 수행하던 운동이나 예술 활동을 직무로 인정받아 임금을 지급받고, 기업은 장애인 의무고용 제도를 충족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방식에 대한 시선이 모두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일부에서는 이를 제도의 취지를 우회하는 방식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반면 현장에서는 중증장애인이 실제 노동시장에 진입하기 어려운 구조를 고려하면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특히 발달장애인이나 중증장애인의 경우 일반적인 직무 수행이 쉽지 않은 만큼 기존 고용 개념만으로는 일자리 확대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특수교육 전문가들은 장애인의 노동을 바라보는 기준 자체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중부대학교 특수교육학과 김기룡 교수는 “장애인의 근로성을 단순히 생산성 중심으로만 평가하면 상당수 중증장애인은 노동시장 밖에 머물 수밖에 없다”며 “권익옹호 활동이나 문화예술 활동, 인식개선 활동처럼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영역도 노동의 범주 안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이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스포츠 활동이나 문화예술 활동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사회적 역할을 형성하는 기능을 한다는 평가가 많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장애인은 지역사회와 관계를 맺고 사회적 고립을 줄일 수 있으며, 시민들에게 장애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효과도 나타난다는 분석이다.
기업 입장에서도 현실적인 고민이 존재한다. 중증장애인을 직접 고용하려 해도 직무 설계와 근무 환경 조정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부 기업은 고용부담금을 납부하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지만, 사회적 책임과 고용 의무를 동시에 충족할 수 있는 새로운 고용 모델에 대한 관심도 점차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장애인 고용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근로’의 개념을 보다 유연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학교 졸업 이후 사회 참여 기회가 급격히 줄어드는 발달장애인의 현실을 고려할 때, 지역사회 기반 활동을 일자리와 연결하는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장애인이 일상 속에서 지속적으로 사회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 역시 노동 정책의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