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일자리의 새로운 패러다임-근로성에 대한 인식전환이 먼저
장애인의 일상생활이 사회적 가치로 이어질때
장애인 눈높이의 접근방식이 필요

발달장애 아들을 둔 A씨는 몇 년 뒤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를 걱정하고 있다. 지금은 학교가 있어 일과가 정해져 있지만, 졸업과 함께 그 일상이 사라질까 두렵기 때문이다. 다른 학생들이 지루해하는 학교생활을 아이는 즐거움으로 받아들이고 있어, 부모는 그 시간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고 있다.
의무교육 이후 장애인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제한적이다. 특수학교 전공과 진학이나 지역사회 평생교육센터 프로그램 참여, 주간보호센터와 주간활동서비스 이용이 대표적이다. 직업 선택을 위해서는 직업적응훈련시설에서 기초훈련을 받거나 보호작업장에서 근로 경험을 쌓을 수 있다. 더 나아가 근로사업장이나 표준사업장에 입사하면 일반적인 직장생활에 가까운 일상을 이어갈 수 있다. 일부는 일반 기업에 취업하기도 하지만, 현장에서 단순히 ‘장애인’으로만 취급받으며 자존감을 잃고 우울증에 시달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장애인학교에서 늘 성적이 우수했던 B씨는 졸업 후 공공기관에 취업했지만, 동료와의 갈등과 사회적 시선을 견디지 못해 반년 만에 퇴사하고 우울증을 겪었다. 이후 주간활동센터에서 스포츠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장애인 스포츠 일자리 연계 사업을 통해 기업에 다시 취업해 예전의 활기를 되찾았다. 그러나 이러한 일자리는 장애인 의무고용제도의 틈새를 이용한 편법이라는 곱지않은 시선도 존재한다.
현행 법에 따르면 50인 이상 사업장은 일정 비율의 장애인을 의무적으로 고용해야 하며, 이를 지키지 않으면 고용부담금을 내야 한다. 기업들은 부담금을 피하기 위해 플랫폼 업체를 통해 장애인 운동선수나 문화예술인을 고용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플랫폼 업체는 인사·근태 관리를 대행하며 수수료를 받고, 장애인 근로자는 평소 참여하던 활동을 직무로 인정받아 임금을 지급받는다.
마치 프로야구 선수가 공을 방망이로 쳐서 담을 넘기면 고액의 연봉을 받는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장애인들이 집에 틀어박혀 있는 대신 운동이나 문화예술 활동을 하며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것 자체가 사회적 가치로 인정 받는다면 이 또한 홈런만큼 가치가 있는 일이다.
중부대학교 특수교육학과 김기룡 교수는 “장애인의 근로성을 평가할 때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활동을 포함할 필요가 있다”며 “권익옹호, 문화예술, 인식개선 활동은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노동”이라고 강조했다. 즉,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운동이나 예술활동을 지속하는 것 자체가 사회적 가치로 인정된다면 일자리의 개념은 더 넓어질 수 있다.
중증장애인의 경우 맞춤형 일자리조차 실제 근로로 이어지기 어려운 현실에서, 기업은 부담금을 내는 편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미 지역사회에 자리 잡은 주간활동센터나 문화공간에서의 활동을 근로로 인정한다면 장애인은 더욱 자유롭게 사회에 참여할 수 있고, 기업에도 합리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장애인 일자리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근로성’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