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장애라는 수식어 없이, 무대 위 ‘우리’로 서는 법”
‘장애아티스트 리얼타임토크쇼—진짜, 우리 이야기’ 세번째 무대
배우 이성수·조우리, 직업 예술인으로서 이야기하는 ‘현장’

“시각장애라고 해서 모두 안보이는 건 아닙니다. 저시력 장애도 있어요. 이건 장애의 정도가 아닙니다. 각각의 다른 몸이죠. 잘 안보이는 몸이 있고 더 잘 보이는 몸이 있는 것 뿐, 거기에 좋고 나쁘고는 없어요” 이성수 배우의 말에 관객의 끄덕임으로 객석에 작은 파도가 일었다.
지난 26일 KT&G 상상플래닛 8층 커뮤니티라운지에서 열린 ‘장애아티스트 리얼타임토크쇼—진짜, 우리 이야기’는 장애라는 말에 가려지지 않은 예술가들의 현재를, 있는 그대로 무대로 불러냈다. 진행은 시각장애 아나운서 이창훈이 맡았다. 무대에 선 배우 이성수와 조우리는 장애라는 이름에 가려지지 않은, 직업인으로서 예술가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관객석에서는 때때로 웃음이 섞였고, 공감의 박수가 이어졌다.
배우 이성수는 연극 무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뮤직드라마, 다큐, 무용 퍼포먼스를 넘나든다. 동시에 ‘힘빼고컴퍼니’를 이끌며 무대와 객석의 장벽을 낮추는 접근성 자문 활동을 이어왔다.
그는 접근성에 대해 화두를 던진다. “접근성을 누군가를 위한 보조적 서비스로 인식하는 순간 대상화가 시작되고, 시혜자와 수혜자가 생깁니다. 이를테면 경사로를 휠체어 보조 수단으로만 보면 ‘누구를 위해 설치해 준 것’이 되죠. 그냥 경사로가 있다는 것, 그리고 비장애인도 즐겁게 이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한다면 어떨까요.”
그는 이어 “접근성 논의는 듣기에는 착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존의 기준·가치·문화를 바꾸는 일”이라고 말했다. 본질적으로 ‘투쟁’이며, 변화에는 물리적·정서적 에너지가 많이 든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처음엔 호의적이지만, 상황이 조금만 버거워지면 다수의 논리로 쉽게 돌아가 버립니다. 그 순간 제가 ‘빌런’처럼 보일 때가 많아요. 사회는 맥락보다 ‘화를 냈다’는 사실만 기억하니까요.” 그는 ‘착한 장애인’이라는 사회적 기대를 살아내야 했던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오늘은 표정 관리하며 ‘착한 장애인 모드’로 와봤다”는 말에는 자조 섞인 웃음도 배어 있었다.
결론적으로 “접근성은 태도의 문제”라고 말한다. 물리적 환경은 하루아침에 달라지기 어렵다. 대신 ‘시설은 좋지만 응대가 나쁜 곳’과 ‘시설은 부족하지만 응대가 좋은 곳’ 중에서 다수가 후자를 선택한다는 사례는 접근성의 본질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접근성은 경청입니다. 특히 갈등의 순간, 다수나 권력자가 소수자의 말을 듣는 겸손이 가장 중요합니다.”
메시지는 자연스럽게 ‘일’로 이어진다. 접근성이 보조가 아닌 공유의 원리로 설계될 때, 장애예술가는 관객이자 노동자로서 동등하게 일할 수 있다. 공연 현장의 응대, 리허설 시간 배치, 안전 동선, 음성·촉각 정보의 제공은 관람 편의가 아니라 채용과 지속 고용의 전제 조건이다. 시설이 조금 부족해도 응대가 좋은 곳을 사람들이 선택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좋은 응대는 곧 협업의 태도이고, 협업의 태도는 팀에 장애예술인이 ‘직업인’으로 참여할 수 있게 만드는 가장 직접적인 장치다.

배우 조우리는 뇌병변 장애를 가진 연출가이자 배우다. 그는 ‘틴에이지 딕’ 등 무장애 공연을 제작하며 무대 위에서 장애를 고정된 이미지가 아닌 새로운 감각으로 풀어왔다. 무대에 선 그는 “배우는 그저 캐릭터로 보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쓰기에 대한 고민도 털어놨다. “글은 여전히 가장 어렵습니다. 몸의 언어를 문자로 번역하는 과정 자체가 큰 부담이에요.” 그럼에도 그는 비장애 배우들과 함께 시각·청각 등 다양한 감각을 탐색하며, 장애의 경험을 단순히 ‘이해해야 할 불편’이 아닌 새로운 무대 언어로 확장해 나가고 있다. “배우들이 장애의 감각을 직접 몸으로 겪어보는 과정이 있으면, 이해가 깊어지고 리얼리티가 생겨요.”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그는 소극장의 열악한 접근성을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경사로와 화장실, 대기 동선, 냉난방, 밀집된 좌석 구조까지, 관람 자체를 어렵게 만드는 요소가 여전히 많다. “긴 대기, 비위생적이고 과밀한 공간은 몸에 직접적인 부담이 됩니다. 형식적 배려가 아니라 실제로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합니다.”
소극장의 경사로, 화장실, 대기 동선, 냉난방은 관람 편의를 넘어 근로환경의 핵심 요소다. 대기 시간이 길고, 과밀·비위생 환경이 이어지면 다음 날의 촬영이나 공연에 바로 타격이 간다. 개인의 의지 문제가 아니라, 제작 시스템이 ‘장애 예술가의 노동’을 가능하게 설계했는지의 문제다. 캐스팅 단계에서부터 당사자가 역할과 현장 규칙을 함께 설계하면 리얼리티는 올라가고, 이탈률은 내려간다. 즉, 접근성은 예술의 완성도와 고용의 지속성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생산성 변수다.
또 영화·드라마에서 발달장애인의 서사가 조금씩 늘고 있지만, 지체·청각·시각 등 다양한 장애 예술인의 주체적 참여는 여전히 드물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기술 집약적인 장르일수록 리얼리티는 당사자가 직접 참여할 때만 가능하다”며 “영화·드라마에서 장애인이 직접 캐스팅되고, 서사 결정에도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바람은 간단했다. “저는 이름 앞에 ‘장애인 배우’라는 수식 없이, 그냥 동등한 예술가로 평가받고 싶습니다. 장애가 서사의 도구나 장식이 아니라 작품의 고유성과 동등하게 취급되길 바랍니다”
두 배우는 시종 위트있는 발언으로 관객을 웃게 했지만, 무대에 흐른 공기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진심 어린 발언과 자조 섞인 유머, 그리고 단단한 문제의식은 깊은 울림을 남긴다. 접근성은 모객의 기술 뿐 아니라, 예술가가 오늘도 출근할 수 있게 만드는 최소한의 노동 인프라다. 경사로를 누가 ‘허락’해 주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함께’ 타고 올라야 하는가 하는 물음이 생겼다. 그 물음에 대한 답을 경청해야 한다는 다짐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