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장애라는 수식어 없이, 무대 위 ‘우리’로 서는 법”
‘장애아티스트 리얼타임토크쇼—진짜, 우리 이야기’ 세번째 무대
배우 이성수·조우리, 직업 예술인으로서 이야기하는 ‘현장’

“시각장애라고 해서 모두 안 보이는 건 아닙니다. 저시력 장애도 있어요. 이건 장애의 정도가 아닙니다. 각각의 다른 몸이죠. 잘 안 보이는 몸이 있고 더 잘 보이는 몸이 있는 것뿐, 거기에 좋고 나쁘고는 없어요.”
배우 이성수의 말이 끝나자 객석에 끄덕임의 파도가 일었다.
지난 26일 서울 KT&G 상상플래닛 8층 커뮤니티라운지에서 ‘장애아티스트 리얼타임토크쇼—진짜, 우리 이야기’가 열렸다. 시각장애 아나운서 이창훈이 진행을 맡았고, 배우 이성수와 조우리가 무대에 올랐다. 이 자리는 장애를 소재로 한 복지 토론이 아니었다. 직업인으로서 예술가가 일터에서 겪는 구체적인 현실이 오갔다.
2023년 기준 장애인의 고용률은 36.1%로, 비장애인 62.5%와 비교해 절반 수준에 그친다. 문화예술 분야에서 장애 당사자의 직업적 참여는 이보다 더 낮은 것으로 파악되며, 공연예술계에서 장애 배우의 주역 캐스팅은 여전히 드문 사례에 머물러 있다.
이성수는 연극 무대를 중심으로 뮤직드라마, 다큐, 무용 퍼포먼스를 넘나드는 배우다. ‘힘빼고컴퍼니’를 이끌며 공연 현장의 접근성 자문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그는 이날 접근성을 둘러싼 본질적인 질문을 꺼냈다.
“접근성을 누군가를 위한 보조적 서비스로 인식하는 순간 대상화가 시작되고, 시혜자와 수혜자가 생깁니다. 경사로를 휠체어 보조 수단으로만 보면 ‘누구를 위해 설치해 준 것’이 됩니다. 그냥 경사로가 있다는 것, 비장애인도 즐겁게 이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한다면 어떨까요.”
그는 접근성 논의가 “듣기에는 착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존의 기준과 가치와 문화를 바꾸는 일”이라고 말했다. 변화에는 물리적·정서적 에너지가 들며, 본질적으로 ‘투쟁’이라는 표현도 썼다.
“사람들은 처음엔 호의적이지만, 상황이 조금만 버거워지면 다수의 논리로 쉽게 돌아가 버립니다. 그 순간 제가 ‘빌런’처럼 보일 때가 많아요. 사회는 맥락보다 ‘화를 냈다’는 사실만 기억하니까요.”
‘착한 장애인’이라는 사회적 기대를 살아내야 했던 경험도 솔직하게 털어놨다. “오늘은 표정 관리하며 ‘착한 장애인 모드’로 와봤다”는 말에 자조 섞인 웃음이 배어 있었지만, 객석은 조용해졌다.
그가 말하는 접근성의 핵심은 태도에 있다. “시설은 좋지만 응대가 나쁜 곳과, 시설은 부족하지만 응대가 좋은 곳 중에서 사람들은 대개 후자를 선택합니다.” 접근성은 물리적 설비 이전에 사람을 대하는 방식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단호하게 정리했다. “접근성은 경청입니다. 특히 갈등의 순간, 다수나 권력자가 소수자의 말을 듣는 겸손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성수의 말은 공연 현장의 노동 조건으로 이어진다. 리허설 시간 배치, 안전 동선, 음성·촉각 정보 제공은 관람 편의의 문제가 아니라 장애 예술가가 현장에서 직업인으로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는지를 결정짓는 조건이다.

같은 무대에 선 조우리는 뇌병변 장애를 가진 연출가이자 배우다. ‘틴에이지 딕’ 등 무장애 공연을 제작하며 장애를 고정된 이미지가 아닌 새로운 무대 언어로 풀어왔다. 그는 “배우는 그저 캐릭터로 보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창작 과정에서의 어려움도 꺼냈다. “글은 여전히 가장 어렵습니다. 몸의 언어를 문자로 번역하는 과정 자체가 큰 부담이에요.” 그럼에도 그는 비장애 배우들과 함께 시각·청각 등 다양한 감각을 탐색하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배우들이 장애의 감각을 직접 몸으로 겪어보는 과정이 있으면, 이해가 깊어지고 리얼리티가 생겨요.”
현장에 대한 지적은 구체적이었다. 소극장의 경사로와 화장실, 대기 동선, 냉난방, 밀집된 좌석 구조가 관람 자체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긴 대기, 비위생적이고 과밀한 공간은 몸에 직접적인 부담이 됩니다. 형식적 배려가 아니라 실제로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합니다.”
공연장의 물리적 조건이 단순히 관객의 편의를 넘어 장애 예술가의 근로환경과 직결된다는 의미다. 대기 공간이 과밀하고 이동 동선이 불명확한 환경은 다음 날의 공연과 촬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그는 영화·드라마 분야로도 시선을 돌렸다. 발달장애인을 다룬 서사가 조금씩 늘고 있지만, 지체·청각·시각 등 다양한 장애 유형의 예술인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경우는 여전히 드물다고 지적했다. “기술 집약적인 장르일수록 리얼리티는 당사자가 직접 참여할 때만 가능합니다. 영화·드라마에서 장애인이 직접 캐스팅되고, 서사 결정에도 참여해야 합니다.”
그의 바람은 단순했다. “저는 이름 앞에 ‘장애인 배우’라는 수식 없이, 그냥 동등한 예술가로 평가받고 싶습니다. 장애가 서사의 도구나 장식이 아니라 작품의 고유성과 동등하게 취급되길 바랍니다.”
두 배우는 시종 위트 있는 발언으로 객석을 웃게 했다. 그러나 무대에 흐른 공기는 가볍지 않았다. 예술가의 이름 앞에 붙는 ‘장애인’이라는 수식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물음이 공연장 바깥까지 따라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