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핵심 공공기관도 ‘전자결재 접근성’ 미흡
장애인정책 수행기관조차 화면낭독기 호환 안돼…“결재·열람 직원 도움 의존, 구조적 차별”

장애인 지원 업무를 맡는 주요 공공기관마저 시각장애인이 단독으로 이용할 수 있는 전자결재 등 업무망 환경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더불어민주당 서미화 의원이 제출받은 자료 분석 결과에 따르면 한국장애인개발원, 장애인기업종합지원센터,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대한장애인체육회,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등 주요 기관의 내부 결재 시스템은 전맹 시각장애인이 화면낭독기와 키보드만으로 결재·열람·반려 등 전 과정을 혼자 수행하기 어려웠다. 일부 기관은 결재창 구성요소가 낭독되지 않거나 포커스 이동이 불가능해 실사용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기관장 본인이 시각장애인인 한국장애인개발원조차 화면낭독기 호환이 확보되지 않아 민감한 정보가 담긴 결재 문서를 직원의 도움을 받아 처리하는 사례도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경우 내부 중증 시각장애인 근로자가 6ㅇ명 근무하고 있으나 전자결재 시스템 접근성은 여전히 미흡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 ‘지능정보화 기본법’ 개정으로 국가와 공공기관 업무망의 정보접근성이 의무화됐으나, 실제 내부망 적용과 개선 속도는 더디다는 평가가 반복되고 있다. 2024년부터는 ‘모든 유·무선 정보통신서비스’의 접근성과 ‘장애인·고령자 보조기구 호환’ 의무가 강화됐지만, 전자결재·그룹웨어 등 내부 시스템의 체감 변화는 미미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2022년 개정된 웹 접근성 국가표준은 점검 항목을 24개에서 33개로 확대해 음성 이용과 키보드 조작 보장을 강화했지만, 2024년 공공기관 웹사이트의 평균 점수는 100점 만점에 66.7점에 그쳤다. 정보통신접근성 품질인증을 받은 사이트는 약 2천 곳에 불과하며, 내부 인트라넷의 실제 준수율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무인단말기 접근성 문제도 여전하다. 시각장애인의 이용 곤란 비율은 72.3%, 휠체어 사용자는 61.%로 나타났다.
고용 현황을 살펴보면 접근성의 한계가 드러난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2023년 통계에 따르면, 30인 이상 사업장의 시각장애인 근로자 중 70% 이상이 경증(5~6급)으로, 중증 시각장애인의 고용 비중은 낮았다. 내부 시스템의 접근성 부족으로 결재권을 가진 시각장애인 근로자의 배치와 승진이 제약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전문가들은 단기 개선 과제로 ▲조달 단계의 접근성 요구사항 의무화 ▲결재·열람·승인 등 핵심 업무 흐름의 화면낭독·키보드 100% 보장 ▲스캔 이미지 문서의 단계적 퇴출 ▲당사자 참여형 사용성 테스트의 정례화를 제안했다. 또한 정보화 예산 내 접근성 항목의 최소 비율을 설정하고, 미이행 기관에 평가지표상 불이익을 부과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서미화 의원은 “이번 사례는 기술적 한계가 아니라, 시각장애인 근로자들이 공공기관 내에서 동등하게 일할 수 없게 만드는 구조적 한계가 드러난 것”이라며 “장애인 고용 확대가 형식적 수준에 머물고 있는 현식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이어 “장애인 정책의 중심에 있는 공공기관부터 접근성을 철저히 갖추고, 모든 행정 시스템이 장애 유형과 관계없이 활용될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