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흰 지팡이의 날’…시각장애인 이동권 여전히 취약
점자블록 미설치율 54.7%, 횡단보도 45.3% 음향신호기 부재… “시설·기술·시민의식 삼박자 개선 필요”

10월 15일은 ‘흰 지팡이의 날’이다. 시각장애인의 자립 보행과 이동권 보장을 상징하는 이 날은, 시각장애인을 보호 대상이 아닌 독립적인 보행자로 인식하고 보행 환경의 접근성을 점검하자는 취지로 운영돼 왔다.
흰 지팡이는 그저 보행 보조기가 아니라 도시 보행 인프라의 품질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점자블록, 음향신호기, 안내 표지 등 공공시설의 안전성과 연속성은 시각장애인의 이동권을 가늠하는 주요 지표로 평가된다.
그러나 국내 이동 환경의 현실은 여전히 열악하기만 하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가 2023년 전국 337개 대상 시설을 조사한 결과, 교통시설 점자블록의 적정 설치율은 7.8%로 나타났다. 부적정 설치율은 37.5%, 미설치율은 54.7%에 달한다. 전체 절반 이상이 점자블록이 없는 상태로, 시각장애인이 대중교통 접근 과정에서 경로 단절을 겪는 비율이 높다는 의미다.
음향신호기 설치율 또한 낮다. 지난해 한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전국 횡단보도의 45.3%가 음향신호기 미설치 상태다.
보행 중 사고 위험도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한국소비자원 조사 결과 인구 10만 명당 보행 사망자 수는 3.3명으로 OECD 평균의 3.3배에 달했다. 장애인 편의시설 전체 설치율은 89.2%로 매년 조금씩 상승하고 있지만 여전히 ‘적정 설치율’은 이 보다 낮은 수치를 기록 중이다.
서울시가 시 전역 1,671km 구간의 보행로를 전수조사한 결과, 1km당 44건, 총 74,320건의 장애인 보행 불편 요소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주요 항목은 점자블록 단절, 보도 턱 미비, 불법 적치물 등이다.
전문가들은 이동권 개선을 위해서는 행정·기술·시민 의식의 세 축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고 짚었다.
지자체들은 보도 턱 표준화, 점자블록 보수 주기 정례화, 음향신호기 점검 강화 등 제도적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교통·도시·복지 부서 간 협업 체계를 구축해 설계 단계부터 장애인 접근성을 반영하는 ‘유니버설 디자인’ 정책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기술 측면에서는 디지털 보조 도구의 활용이 늘고 있다. 실내 내비게이션, 비콘 기반 길안내, 스마트폰 화면낭독기와 연동되는 지도 서비스 등은 시각장애인의 독립적 이동을 지원하는 대안으로 확산되고 있다. 교통카드와 위치 기반 데이터를 결합해 실시간 보행 안내를 제공하는 시범사업도 일부 지자체에서 운영 중이다.
무엇보다 시민 참여와 인식 개선도 중요하다. 점자블록 위 상품 진열이나 킥보드 주차를 금지하고, 흰 지팡이를 든 보행자에게 양보하는 문화를 확산하는 것이 기본이다. 불법 적치물이나 작동 불량 신호기를 신고할 수 있는 시민 제보 시스템을 활성화하면 유지·보수 효율성도 높아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동권은 시설 확충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공공성 수준을 가늠하는 지표”라며 “흰 지팡이의 날을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라 도시의 보행 안전성과 접근성을 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