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리어프리 인터페이스를 묻다] ③ 접근성의 표준을 만든 공공의 힘

호주식 조달 시스템이 민간 확산 촉발
규격·검수·유지관리로 완성한 지속 가능한 접근성 시장 설계

AI로 생성한 키오스크 이미지 <사진=장애인일자리신문>

자동화는 효율의 이름으로 우리의 일상을 재편했다. 은행 창구 대신 ATM기가 늘고, 매장엔 주문용 키오스크가, 역엔 발권기가 줄지어 있다. 이제 인간은 ‘기계 앞의 사용자’로 존재한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공평한 변화는 아니다. 화면의 높이, 글자의 크기, 안내음의 속도, 메뉴의 깊이 하나까지가 새로운 경계가 된다. 장애인·노인·비숙련 이용자는 기술의 중심에서 다시 주변으로 밀려난다. ‘스마트’라는 이름의 혁신이 실제로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바깥에 세워두는가. ‘배리어프리 인터페이스를 묻다’는 해외 사례를 통해 미국의 맥도날드, 영국의 런던교통공사, 독일의 베를린교통공사 등 해외 사례를 통해 ‘접근성은 왜 첫 화면이어야 하는가’를 다루고, 쉬운 언어와 되돌리기 같은 인지 친화적 인터랙션을 살핀다. 마지막으로 접근성을 기술이 아닌 제도, 즉 조달 기준으로 끌어올린 국가들의 변화를 추적한다. 자동화의 시대, 기계의 설계는 결국 사회의 태도를 닮는다. 우리는 누구를 위해 이 화면을 만들고 있는가. [편집자주]

공공조달이 바뀌면 시장도 바뀐다.캐나다와 호주는 공공기관 조달 단계에서 접근성에 대한 요건을 명시해 민간 부문의 제품 설계와 제작 표준까지 바꿨다. 조달 문서에 접근성 항목을 넣고 공급사 평가에 점수를 반영한 결과다. 정부가 수요를 만들면 기업은 따라왔고, 그 과정을 통해 민간으로 확산됐다.

접근성은 제품의 규격, 검수 방식, 유지관리 체계가 함께 작동해야 효과적이다. 하지만 속도와 비용을 우선하는 민간 기업은 공공의 요구에도 이를 후순위로 미루고 있다. 때문에 정부 조달은 접근성을 시장에 빠르게 안착시키는 유력한 수단으로 꼽힌다.

캐나다 정부는 연방·주 단위로 조달 문서에 접근성 기준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키오스크의 조작부 높이, 화면 고대비·확대 기능, 이어폰 잭과 오디오 안내, 점자·촉각 표식 등이 의무사항으로 포함됐다. 토론토시 등 주요 지자체는 입찰 단계부터 ‘접근성 적합성 보고서’를 요구하고, 납품 전후에는 장애인 단체의 사용자 검증을 거치는 절차를 마련했다. 유지보수 계약에는 접근성 패치 제공 의무도 넣었다.

이 같은 제도 변화로 기업들은 공공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접근성 요건을 충족시켰고, 이후 동일한 제품을 민간 시장에도 확대 공급하면서 접근성 표준이 자연스럽게 확산됐다. 단순한 서류 검토 대신 실사용자 테스트를 의무화한 것이 제도의 실효성을 높였다는 평가다.

호주는 경제적 인센티브를 결합했다. 입찰 평가 항목에 ‘접근성 점수’를 반영하고, 기준 미준수 시 감점 또는 계약 취소 사유로 규정했다. 반대로 기준을 충족한 기업에는 가산점과 세제 혜택을 부여했다. 납품 이후 6개월, 12개월 단위로 현장 성능을 검증하고, 결과에 따라 보너스나 페널티를 지급하는 제도도 운영 중이다. 중소기업의 초기 부담을 줄이기 위해 기술 지원 프로그램과 가이드라인도 함께 제공했다.

결과적으로 접근성 기준 준수는 의무가 아닌 ‘경쟁력’으로 작용했다. 입찰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기업들이 접근성 기능을 제품에 적극 반영하기 시작했고, 접근성 관련 기술력은 자연스럽게 상향 평준화됐다.

전문가들은 공공 조달이 민간 시장으로 접근성 문화를 확산시키는 핵심 메커니즘이라고 본다. 대규모 발주로 초기 수요가 형성되면 기업은 이에 맞춰 제품을 개선하고, 표준화된 생산을 통해 단가가 낮아지면 민간 고객에게도 경쟁력 있는 제품을 공급할 수 있게 된다. 유지보수와 업데이트가 새로운 시장으로 자리잡는 효과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 접근성 항목이 조달 문서에 명시되지 않거나, 평가 비중이 미미한 경우가 많다. 현재 조달청의 입찰 평가에는 총 320여개에 달하는 다양한 신인도 평가 항목이 있지만, 접근성 관련 가중치가 명시된 경우는 찾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조달 문서에 조작부 높이, 화면 각도 등의 물리적 규격과 고대비, 확대, 스크린리더 지원 등의 UI·UX 기능을 구체적으로 포함시키고, 사용자 검증과 사후 성능 평가를 의무화해야 한다”며 “접근성 점수를 입찰 평가에 반영하고, 미준수 시 페널티를 부과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중소기업에는 기술 지원과 보조금을 병행해 초기 도입 부담을 줄이는 한편, 접근성 준수 여부를 공개해 시장의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