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2025 취업사례집 일-원’을 통해 본 장애인 고용 사례와 취업 당사자들의 모습(2) 사고이후 멈췄던 삶, 다시 사회로…
중도장애인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일상을 되찾다
손주에게 자랑스러운 할아버지가 되고 싶어요

장애인의 지속 가능한 고용과 사회 참여를 위한 노력은 시대를 관통하는 숙제이다. 본지는 서울시장애인일자리통합지원센터에서 발간한 ‘2025 취업사례집 일-원’에 소개된 사례를 바탕으로, 일터에서 자신의 역할을 만들어가고 있는 장애인 취업자들의 이야기를 기획 시리즈로 전한다. 현실적인 어려움을 넘어 실제로 일하며 성장하고 있는 당사자들의 모습을 통해, 장애인 고용이 어떻게 개인의 삶과 조직, 사회를 변화시키는지 살펴본다.[편집자주]
사고나 질병으로 장애를 갖게 된 중도장애인은 이전에 수행하던 역할과 현재의 자신을 비교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상실감과 좌절감으로 삶의 단절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외형상 큰 장애가 드러나지 않는 경우에도 인지 저하나 기억력 문제등으로 사회 복귀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치료와 회복에 집중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노동시장과의 거리는 멀어지고, 다시 일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커진다. 가족에게 의존하는 생활이 고착되며, 스스로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자긍심이 약해지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심리적 위축이 취업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라고 지적한다.
황영상 씨의 삶 역시 이러한 중도장애인의 전형적인 과정이었다. 그는 1995년 회사 작업장에서 발생한 추락 사고로 큰 뇌손상을 입었다. 신체는 회복됐지만 기억이 단절되고 자신감을 잃으면서 오랜 시간 사회와 거리를 두고 지냈다. 가장으로서의 책임감도 점차 희미해졌고, 가족을 이끌어 가기 보다 가족들의 도움을 받는 사람이 되었다.
변화의 계기는 손주의 탄생이었다. 잊혔던 기억이 조금씩 떠오르며 다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고, 그는 주민센터 상담을 통해 서울시장애인일자리통합지원센터를 소개받았다. 여러 차례 상담을 거치며 ‘할 수 있다’는 감각을 되찾은 그는 센터의 업무지원인사업을 통해 취업을 준비했다.
현재 황 씨는 단국대학교사범대학부속중학교 급식실에서 배식 보조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초기에는 출퇴근 절차나 배식 순서를 잊는 일이 잦았지만, 업무지원인의 반복적인 안내와 동행 지원 속에서 점차 업무에 적응했다. 급식실을 책임지는 영양사의 배려 아래 단계적으로 업무를 익히며, 지금은 동료들로부터 성실한 직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황 씨는 “오늘도 맡은 일을 정해진 시간 안에 끝냈다는 사실이 가장 큰 자부심”이라고 말한다. 첫 월급을 받던 날에는 가족이 작은 축하 자리를 마련했고, 손주에게 자랑스러운 할아버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은 그가 일터를 지키는 가장 큰 동력이 됐다.
김로연 서울시장애인일자리통합지원센터 취업지원팀 과장은 “업무지원인 선생님의 꼼꼼한 지원 속에서 황영상님 다시 근무 현장에 서게 된 과정은 큰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도 황영상님과 같은 중도장애인들의 안정적인 근무 환경 개발을 위해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중도장애인의 사회 복귀는 개인의 의지뿐 아니라 초기 적응을 돕는 제도와 현장의 이해가 결합될 때 가능성이 높아진다. 황영상 씨의 사례는 사고 이후 멈춰 있던 삶도 적절한 지원과 기다림 속에서 다시 사회와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의 하루하루는 중도장애인의 회복과 자립이 어떻게 현실에서 구현될 수 있는지를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