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2026 노동 대전환, 장애가 ‘결점’이 아닌 ‘특성’이 되는 시대

제42회 전국장애인기능경기대회에 출전한 선수가 기량을 펼치고 있다. <사진=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이혜연 더불어민주당 장애인위원회 부위원장] 최근 우리나라의 고용 지표는 겉보기에 안정적인 듯하나, 내부를 들여다보면 구조적 불균형이라는 민낯이 드러난다. 비장애인 노동시장에서도 단순 사무직이나 중간 수준의 숙련도가 필요한 일자리들은 AI와 자동화 시스템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이로 인해 노동의 양극화는 더욱 깊어지고 있으며, 비장애인 근로자들조차 끊임없는 ‘재교육(Reskilling)’ 없이는 도태될 수 있다는 위기감 속에 놓여 있다.

이러한 변화는 장애인 고용 시장에 더욱 가혹한 질문을 던진다. 비장애인조차 기계와 경쟁하며 생존을 고민하는 시대에, 그간 단순 반복 업무나 환경 미화 등 소위 ‘보호된 일자리’에 머물러온 장애인 노동의 자리는 어디인가.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위기는 새로운 기회의 문이되기도 한다. 기술은 더 이상 장애인을 소외시키는 벽이 아니다. 오히려 AI와 자동화 시스템은 신체적·정신적 제약을 보충함으로써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한 출발선에서 경쟁하게 돕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예술과 체육이 직업이 되는 새로운 순환 구조의 정착

그동안의 장애인 고용 정책은 단순히 ‘자리에 앉히는’ 양적 팽창에 치중해 왔고, 정부의 추계 방향 역시 여전히 그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자립은 자신의 재능이 전문가로 인정받고, 그 결과물이 사회적 가치로 환원되는 ‘효능감’을 느낄 때 비로소 완성된다.

여기서 우리는 ‘장애인 예술인 및 체육인의 직업성 보장’ 모델에 주목해야 한다. 과거 장애인의 문화·예술·체육 활동이 복지 차원의 취미나 ‘재활 치료’의 영역이었다면, 이제는 이를 기업 고용과 직접 연계하여 ‘예술이 곧 직업’이 되는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 현재 몇몇 기업이 장애 예술인을 직접 고용해 사내 문화를 풍성하게 하거나 제품 디자인에 참여시키고, 장애 체육인을 고용해 선수단을 운영하는 것은 기존에 인식되던 단순한 사회공헌을 넘어 기업의 ESG 가치를 높이는 길이다. 이러한 현상은 기업에는 고용 의무 이행의 기회를, 장애인에게는 자신이 가장 잘하는 분야에서 ‘전문가’로서 정당한 대가를 받는 직업적 존엄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비대면 직업군의 발굴과 직업 다양성의 확보

디지털 전환 시대에 반드시 병행해야 할 과제는 ‘비대면·디지털 직업군의 적극적 발굴’이다. 과거의 일터는 대면 소통과 물리적 이동 능력을 필수적으로 요구했기에 많은 장애인에게 문턱이 높았다. 그러나 이제 시공간의 제약을 허무는 디지털 기반의 일자리가 그 대안이 되고 있다.

코로나19 시기 발달장애인들이 참여하며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일부 기업의 AI 학습 데이터 레이블링부터 정보 보안 관제, 메타버스 콘텐츠 크리에이터, 온라인 튜터링까지 그 영역은 무궁무진하다. 물리적 공간의 제약이 사라진 디지털 일터에서 장애는 더 이상 결점이 되지 않는다. 획일화된 단순직무에서 벗어나 IT, 연구직 등 고부가가치 산업군으로 발굴하고 고용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 패러다임 전환의 핵심이다. 기업들 또한 기존의 업무를 쪼개어 장애인에게 적합한 비대면 직무로 재설계하는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

장애 학생 교육과정의 근본적 변화와 미래 준비

결국 기술을 도구 삼아 일터로 나아가는 주체는 ‘사람’이라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미래 일자리가 요구하는 역량을 갖추기 위해서는 장애학생의 진로탐색과 교육을 담당하는 특수교육 현장부터 바뀌어야 한다. 기초적인 사회 적응 교육에 머물러 있는 현재의 교육과정을 산업 현장의 속도와 다양화에 맞춰 전면 개편해야 한다.

모든 장애 학생이 AI와 데이터를 다루는 디지털 리터러시를 익혀 기술로부터 소외되지 않도록 돕고, 학령기 초기부터 예술적·기술적 적성을 정밀하게 진단하여 맞춤형 진로 트랙을 제공해야 한다. 학교와 기업, 일자리 플랫폼이 손을 잡고 산업 현장의 로봇과 소프트웨어를 미리 경험하는 ‘실전형 교육’이 상시화되어야 한다. 교육의 변화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기술의 발전도 일자리의 다양성도 결국 공허한 외침이 될 뿐이다.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의 도약

장애인 일자리 문제는 더 이상 연민이나 의무감으로 풀 숙제로 인식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우리 사회의 소중한 인적 자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고도로 발전한 기술의 혜택을 어떻게 보편적 인권으로 승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전략적 결단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비장애인의 일자리가 기술에 의해 위협받는 이 시대는, 역설적으로 장애인이 각자의 능력과 기술을 도구 삼아 대등하게 기여할 수 있는 가장 공정한 운동장이 될 수 있음을 기대하게 한다. 수혜적 일자리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예술이 직업이 되며, 디지털 기술이 장벽을 허무는 사회. 이러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질 때, 장애인은 우리 경제의 당당한 주체이자 미래 기술 시대의 좋은 인력으로 거듭날 것이다. 이제는 단순한 고용 수치를 넘어, 한 인간의 ‘직업적 존엄’이 실현되는 진정한 포용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혁신적 자립, 포용적 미래를 향한 담대한 여정

결국 장애인 고용의 패러다임 전환은 우리 사회가 ‘장애’를 정의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일에서 시작된다. 장애는 극복해야 할 결핍이 아니라, 적절한 기술과 환경이 뒷받침될 때 사회의 다양성을 풍요롭게 만드는 하나의 ‘특성’일 뿐이다.

우리는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장애인에게 어떤 일자리를 줄 것인가”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기술과 시스템이 장애인의 잠재력을 온전히 담아낼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정부는 기존 수치 중심의 고용률 지표에서 벗어나, 예술과 디지털 등 고부가가치 직군에 대한 제도적 뒷받침을 공고히 해야 한다. 또한, 형식적 고용 부담금이 아닌 적극적인 고용에 대한 기업 인센티브를 고려해야 한다.

기업은 고용 부담금을 피하기 위한 수동적 채용을 넘어, 장애인의 역량을 통해 ESG 경영의 실질적 가치를 창출하는 혁신 파트너십을 구축함으로써 사회연대를 실현하는데 기업의 공적기여를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특수교육 현장은 아이들이 기술의 물결 위에서 당당히 항해할 수 있도록 미래지향적인 디지털·예술 통합 교육의 장을 열어주어야 한다.

2026년, 기술 대전환의 파고는 장애인에게 위기가 아닌 ‘공정한 운동장’으로 ‘참여의 장’으로,보살핌의 대상에 머물던 장애인이 디지털 세계의 창작자로, 기업의 핵심 인재로, 당당한 예술가로 서는 모습은 더 이상 먼 미래의 풍경이 아닐 것이다.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가 기술로 허물어지고, 모든 개인이 저마다의 쓸모를 증명하며 존엄하게 일하는 사회. 그 포용적 미래가 바로 지금, 우리의 인식 전환으로부터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