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대 서재경 교수 인터뷰] 장애인 노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말하다
발달장애인에게 일자리는 복지가 아니라 권리다

‘월요일의 윤슬’은 한 발달장애인이 근로자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최중증 발달장애인’이라는 수식어 대신 ‘근로자 김윤슬’로 살아가는 한 사람의 변화를 통해, 일하는 존재로서의 발달장애인을 조명했다. 이 책을 집필한 이는 성공회대학교 사회복지연구소 서재경 교수다.
서 교수는 오랜 기간 발달장애인의 사회참여와 노동 문제를 연구해 온 전문가다. 그는 장애인을 단순한 보호 대상이 아니라 당당한 사회 구성원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입장을 꾸준히 강조해 왔다. 장애인일자리신문은 발달장애인의 노동 현실과 제도 개선 방향을 듣기 위해 서 교수를 만나 심층 대화를 나눴다.
현재의 노동 기준은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서 교수는 우리 사회의 노동 구조가 근본적으로 비장애인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고 진단한다. 그는 “지금의 노동시장은 효율성과 생산성을 중심으로 움직인다”며 “채용시험, 평가 기준, 업무 방식 모두가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만들어져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발달장애인이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일은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특히 발달장애인의 특성과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인 평가 체계가 가장 큰 문제라고 강조한다. 그는 “발달장애인은 충분한 잠재력을 갖고 있음에도 기존 기준 때문에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노동을 바라보는 관점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생산성만으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이 출발점이라는 의미다.
단기 공공일자리는 체험 수준에 머문다
현재 운영 중인 장애인 공공일자리에 대해서도 서 교수는 구조적 한계를 지적했다. 제도 자체는 의미가 있지만, 운영 방식이 안정적인 고용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대부분 10개월, 11개월 단위의 단기 계약으로 운영되다 보니 계약이 끝나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구조”라며 “이런 방식은 사실상 일자리 체험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개선 방향에 대해서는 보다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고용 구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 교수는 “최소한 3년 정도는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며 “퇴직금 보장, 4대보험 적용과 같은 기본적인 노동권도 당연히 확보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만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미래를 계획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업 고용은 형식이 아닌 실질적 참여가 중요하다
최근 기업들이 고용부담금을 대신해 장애인을 직접 채용하는 흐름에 대해서는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과거에는 부담금 납부로 고용 의무를 대신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실제 채용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에서 변화의 가능성이 보인다는 판단이다.
다만 단순히 급여만 지급하는 형식적 고용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장애인 근로자가 회사의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조직 문화 안에서 관계를 맺을 수 있어야 한다”며 “회사 행사에 참여하고 동료들과 정기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회사 공간에서 어울릴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자회사형 표준사업장은 현실적인 대안이다
서 교수는 자회사형 표준사업장 모델을 비교적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한다. 이 모델은 임금과 근로시간, 복지체계가 안정적으로 구축돼 있고, 기업 입장에서도 지속 가능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다.
그는 “다른 기업들이 벤치마킹할 수 있는 실제 사례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발달장애인이 어떤 방식으로 일하고 성장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더 많이 알려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정보가 축적될 때 기업과 당사자 모두에게 현실적인 길잡이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장애인은 보호 대상이 아니라 동료 근로자다
서 교수는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장 중요한 변화로 인식의 전환을 꼽았다. 장애인을 복지의 수혜자가 아니라 권리를 가진 근로자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발달장애인도 충분히 일할 수 있고 사회 속에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믿음이 제도와 문화로 자리 잡아야 한다”며 “그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장애인 노동이 가능해진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서 교수는 “발달장애인의 노동 문제는 단순한 복지 이슈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권리에 관한 문제”라며 “한 사람의 가능성을 믿어주는 사회,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기회를 주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노동은 누군가에게 자립의 기반이 되고, 또 사회와 연결되는 중요한 통로다. 장애인이 보호받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일하는 동료로 인정받을 때, 우리 사회의 노동 역시 한 단계 성숙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