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어통역사 막고, 간부엔 3천만 원 선물… 농아인 대변 단체의 두 얼굴

보건복지부, 한국농아인협회 특정감사서 23건 적발·수사 의뢰
전국 206개 수어통역센터 독점 운영 구조도 손본다

<사진=한국농아인협회 홈페이지 갈무리>

농아인의 권익을 대변해야 할 단체가 오히려 농아인의 의사소통을 막았다는 사실이 정부 감사를 통해 확인됐다.

보건복지부는 2025년 한국농아인협회에 대한 특정감사와 중앙수어통역센터 위탁사업 점검을 진행한 결과, 협회 17건·수어통역센터 6건 등 총 23건의 부적절한 사항을 적발하고 기관경고 13건, 시정 9건, 통보 16건 등 49건의 처분을 내렸다고 16일 밝혔다. 이 가운데 일부는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과 형법 위반 혐의가 있다고 보고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했다.

수사 의뢰 사항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수어통역사 참여 금지 지시다. 한국농아인협회는 전국장애인체육대회와 장애인생활체육회 관련 행사에 수어통역사가 참여하지 못하도록 직접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농아인의 의사소통권을 보호해야 할 단체가 스스로 그 수단을 차단한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이를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 혐의로 판단했다.

같은 조사에서 협회 예산으로 고위 간부에게 약 3천만 원 상당의 고가 선물이 제공된 사실도 드러났다. 세계농아인대회 관련 예산의 불투명한 운용도 수사 의뢰 대상에 포함됐다.

비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내부 규정상 임원인 상임이사에 대한 직책보조비 한도는 월 150만 원이지만, 협회는 2023년 4월부터 2024년 3월까지 정당한 근거 없이 이를 월 300만 원으로 올려 지급했다. 지급 대상이 아닌 중앙수어통역센터장에게도 2024년 4월부터 2025년 6월까지 직책보조비를 지급했다. 초과 지급된 금액은 총 4300만 원으로, 보건복지부는 전액 환수를 요구했다.

협회 예비비가 간부들의 해외여행에 쓰인 정황도 확인됐다. 세계농아인협회 운영 예산 부족에 대비한 예비비가 2023년 10월 협회 간부들의 태국 치앙마이 여행 비용으로 사용됐다. 협회 정관은 국내외 장애인 복지단체와의 교류사업을 허용하고 있지만, 해당 여행 일정에 현지 장애인 단체와의 교류 활동은 없었고 관광지 방문만으로 채워졌다. 보건복지부는 결재권자에 대해 상벌위원회를 열고 여행 비용 전액을 참가자들에게 환수하도록 통보했다.

이사회 운영의 적법성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2020년 11월부터 2021년 1월 사이에 열린 세 차례 이사회는 일부 이사에게 소집 통지 자체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협회 정관은 이사회 소집 시 회의 목적을 명시해 7일 전 문서로 통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2024년 1월에 열린 두 차례 이사회는 무효인 선거관리규정에 근거해 당선된 이사들이 참석해 이뤄졌다. 보건복지부는 이 이사회들의 의결 효력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기관경고 처분을 내렸다.

성 비위 혐의로 업무배제 조치를 받은 간부가 배제 기간 중 21건의 전자문서를 결재한 사실도 확인됐다. 보건복지부는 관계자 징계를 통보하고 상벌위원회를 통한 조치계획을 마련하도록 했다.

이번 감사가 드러낸 또 다른 문제는 구조적 독점이다. 전국 206개 수어통역센터가 한국농아인협회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센터장 채용의 공정성과 회계처리의 적정성을 둘러싼 문제가 반복적으로 제기돼 왔다. 보건복지부는 수어통역센터의 설치·운영 주체를 지방자치단체와 사회복지법인 등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장애인복지시설 사업안내」 개정안을 마련했다. 센터장 자격 및 경력 기준 신설, 지자체의 관리·감독 강화도 개정안에 포함됐다.

국고보조금 지원도 멈췄다. 보건복지부는 협회의 자체 개선 노력이 부족하고 임원의 성폭행 의혹이 추가로 제기된 점을 들어 2026년 국고보조예산 약 3억 원의 지급을 보류했다. 지원 재개 여부는 수사 결과, 처분요구 이행, 협회의 개선 노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할 방침이다.

처분요구를 이행하지 않거나 개선을 거부할 경우, 보건복지부는 정부 보조사업 제한, 중앙수어통역센터 위탁계약 조기 종료, 협회 설립허가 취소 검토 등 추가 제재를 예고했다.

협회 측은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장애인 권익옹호기관과 성폭력상담소를 통해 피해자 보호를 지원하고 있으며, 법률지원이 필요한 피해자는 대한법률구조공단을 통해 상담과 소송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안내했다. 장애인단체 운영 지침 마련을 위한 TF도 구성해 2026년 상반기까지 운영 지침을 내놓을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