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대기업에 인종·장애인 임금격차 공시 의무화 추진
250인 이상 사업장 대상, 6개 핵심 지표와 인력 구성 데이터 공개 의무화 법제화 예고

영국 정부가 대기업을 대상으로 인종과 장애에 따른 임금격차를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하는 법안 도입을 공식 선언했다. 소수 인종과 장애인 노동자가 직장에서 공정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영국 평등기회부는 지난 25일 인종 및 장애 임금격차 의무 보고에 관한 공개 협의 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 응답자의 87%가 대기업의 임금격차 공시 의무화에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치는 250인 이상 사업장에 적용되며, 해당 기업은 6개 핵심 임금격차 지표와 인력 구성 데이터를 공개해야 한다.
시마 말호트라 평등부 장관은 “인종이나 장애를 이유로 직장에서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 누구나 자신의 노력에 대해 공정한 보수와 승진 기회를 기대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종·장애 임금격차 공시를 도입함으로써 불공정한 관행이 존재하는 곳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직장과 경제 전반의 포용성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스티븐 팀스 사회보장·장애 담당 장관도 “장애인은 다른 모든 사람과 동등하게 공정한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현실에서는 임금격차가 존재한다”며 “임금격차 보고를 통해 기업이 격차를 줄이고 직장 내 공정성과 포용성을 개선하는 데 필요한 데이터를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새 법안은 기존의 성별 임금격차 보고 체계를 기반으로 설계된다. 이미 자발적으로 인종·장애 임금격차를 공개해온 기업들과 협력해 법안의 세부 조항을 마련했다. 기업 입장에서 데이터 기록과 보고 절차가 복잡해지지 않도록 기존 시스템과의 연계를 고려한 점이 특징이다.
자발적 공시에 참여해온 기업들은 법안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딜로이트의 재키 헨리 인사총괄 파트너는 “데이터를 공개한 덕분에 여성과 소수 인종 구성원을 위한 맞춤형 지원 프로그램 같은 집중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며 “다양성과 포용의 의미 있는 변화에는 시간이 걸리며 지속적인 투명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KPMG의 리처드 이페렌타 부회장도 “수년간 자발적 보고를 이어오면서 핵심 인재를 유지하고 구성원 간 소속감과 신뢰를 높이는 효과를 직접 체감했다”고 전했다.
체인지 더 레이스 레이시오의 리처드 드네토 대표는 “영국 노동시장의 다양성은 과거보다 크게 개선됐지만, 이사회와 최고경영진, 고위 리더십에는 여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며 “투명한 보고는 이러한 격차를 가시화하고 기업이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지 파악하는 핵심 도구”라고 강조했다.
영국 정부는 임금격차 공시 의무화와 함께 장애인 고용 확대에도 폭넓은 정책을 병행하고 있다. 2020년대 말까지 35억 파운드 규모의 고용 지원 패키지를 투입해 질병이나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취업을 돕는다는 계획이다. 워크웰 프로그램을 전국으로 확대해 최대 25만 명이 복귀하거나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2억5000만 파운드를 배정했다. 커넥트 투 워크를 통해 30만 명의 장애인에게 맞춤형 지원을 제공하고, 1000명 이상의 전담 고용 상담사를 배치해 장애인 취업을 돕고 있다.
이번 법안이 시행되면 영국은 성별 임금격차 공시에 이어 인종과 장애 영역까지 의무 보고를 확대하는 사실상 첫 번째 주요 경제국이 된다. 의무적 인종 임금 투명성이 표준적인 기업 관행으로 자리 잡을 경우 영국 경제에 연간 약 170억 파운드의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추산도 나온다.
한국에서도 장애인 고용과 임금격차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어, 영국의 입법 과정과 기업들의 자발적 실천 사례는 주목할 만한 참고 사례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