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접근권, 선언에서 실행으로… 김예지 개정안이 겨냥한 구조적 전환
디지털 원본 제공·대체자료 정의 명확화로 ‘지연된 권리’ 해소 시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예지 의원이 장애인의 정보접근권과 문화향유권을 확대하기 위한 일련의 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형식적으로는 저작권법과 도서관법, 출판문화산업진흥법,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이지만, 내용적으로는 장애인 접근권 정책의 작동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번 개정안의 출발점은 국제협약 이행의 한계다. 우리나라는 마라케시 조약 비준국으로서 대체자료 제작과 배포를 허용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종이책을 다시 스캔하거나 영상물을 재편집해야 하는 비효율이 반복돼 왔다. 법적 허용은 존재하지만 실제 이용까지 이어지지 않는 ‘지연된 권리’ 구조가 고착화된 셈이다.
김 의원의 개정안은 이 지점을 정면으로 겨냥한다. 우선 ‘대체자료’의 개념을 문자 중심에서 벗어나 영상, 음성, 도면 등 모든 정보 요소로 확장해 명확히 규정했다. 이는 점자나 음성자료에 국한됐던 기존 접근권을 디지털 콘텐츠 전반으로 넓히는 기반이 된다.
더 중요한 변화는 디지털 원본 제공 요청 근거를 법에 명시한 점이다. 지금까지는 장애인용 자료 제작기관이 원본 파일을 확보하기 어려워 동일한 콘텐츠를 다시 제작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시간과 비용이 추가로 발생했다. 개정안은 저작권자에게 디지털 형태 제공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접근성을 사후 보완이 아닌 사전 설계 단계로 끌어올렸다. 이는 접근권 정책의 무게 중심을 ‘변환’에서 ‘생산 구조’로 이동시키는 조치로 해석된다.
도서관법 개정 역시 실무적 병목을 해소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국립장애인도서관이 자료 제출을 요청할 수 있음에도 파일 형식과 품질 기준이 없어 활용도가 떨어지는 문제가 반복돼 왔다. 개정안은 문화체육관광부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적합한 디지털 파일 제출을 가능하게 해 대체자료 제작의 효율성을 높이도록 했다.
출판과 게임 산업을 포함한 점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기존 접근권 정책이 도서 중심에 머물렀다면, 이번 개정안은 교육자료와 게임까지 범위를 확장해 장애인의 문화 향유를 산업 정책과 연결했다. 이는 접근성을 복지 차원을 넘어 콘텐츠 산업의 기본 조건으로 재정의하려는 시도로 평가된다.
김 의원은 “정보와 문화에 대한 접근은 선택적 배려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할 기본권”이라며 “문자뿐만 아니라 그림, 도면 등 정보를 담고 있는 모든 것이 대체자료로 전환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앞으로도 장애인이 책, 교육자료, 게임 등 다양한 콘텐츠를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누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입법은 단발성 조치라기보다 연속된 정책 흐름 속에 있다. 김 의원은 앞서 교과서 대체자료의 적시 제작·보급 의무화를 담은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한 데 이어, 정책 간담회를 통해 지원체계 개선을 논의해왔다. 교육, 출판, 콘텐츠 산업으로 이어지는 접근권 확대 전략이 점진적으로 구체화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이번 개정안의 의미는 접근권을 선언적 권리에서 실행 가능한 제도로 전환하려는 데 있다. 법적 허용과 현실 이용 사이의 간극을 줄이고, 콘텐츠 생산 단계부터 접근성을 내재화하려는 시도가 실제 현장에서 작동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