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 주식투자를 해?”…디지털 금융의 문턱에 막힌 장애인들
금융 접근성 부족으로 투자·연금·자산관리 참여 제한
“복지 아닌 경제적 시민권의 문제”

코스피 7000 시대를 맞아 주식 투자와 자산관리가 일상적인 재테크 수단으로 자리잡고 있지만, 장애인들에게 금융시장은 여전히 높은 장벽으로 남아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단순한 이용 불편을 넘어 장애인의 자산 형성과 경제적 자립 기회 자체가 구조적으로 제한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이 최근 발간한 ‘장애인정책리포트 제467호’는 장애인의 금융 접근성 문제를 집중 조명하며 “장애인을 보호 대상이 아닌 주체적인 금융 소비자로 바라보는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리포트에 따르면 현재 금융 접근성의 문제는 과거처럼 점자 ATM이나 경사로 부족 같은 물리적 장벽에 머물지 않는다. 모바일 트레이딩 시스템(MTS), 본인 인증 절차, 디지털 금융 앱 구조 등 금융 서비스 전반이 비장애인 중심으로 설계되면서 장애인의 시장 참여를 제한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장애인들의 경우 금융투자에 대한 욕구가 충분함에도 실제 서비스 접근이 어려운 현실이 문제로 꼽힌다. 리포트는 경제활동 장애가구 상당수가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과 자산을 가진 유효 금융 수요자임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금융 접근성 부족으로 투자와 자산관리 참여에서 배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현장의 목소리는 더욱 구체적이다. 시각장애인 투자자들은 증권사 앱에서 스크린리더가 종목명이나 가격 정보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버튼”이라는 음성만 반복하는 상황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일부 증권사는 로그인조차 어려워 민원 접수도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라는 비판도 나왔다.
문제는 단순한 불편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앱 접근이 어려운 장애인들은 상대적으로 수수료가 비싼 ARS나 영업점 거래를 이용할 수밖에 없고, 주문 지연으로 실제 투자 손실까지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발달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이 겪는 어려움도 심각하다. 금융 상품 설명이 지나치게 복잡해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고, 수어 통역이나 실시간 문자 상담 체계가 미비해 긴급 상황 대응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리포트는 우리 사회에 여전히 남아 있는 인식의 문제를 짚는다. 뇌병변장애인 패널은 “장애인이 주식 투자를 해?”라는 반응이 먼저 돌아오는 현실을 언급하며, 장애인을 여전히 투자와 자산관리의 주체로 바라보지 않는 사회 분위기를 비판했다.
이는 단순한 편견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 제도와 서비스 설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다. 금융권이 장애인을 적극적인 투자자나 고객으로 상정하지 않다 보니 접근성 개선 역시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장애인을 거대한 금융 소비시장으로 인식하는 흐름이 자리잡고 있다. 영국 금융권은 장애인 소비시장 규모를 뜻하는 ‘퍼플 파운드(Purple Pound)’ 개념을 바탕으로 접근성 개선에 적극 투자하고 있으며, 미국은 금융 앱 접근성 미비 자체를 차별 행위로 판단하고 있다.
반면 국내 금융권은 아직 선언적 수준의 대응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다. 리포트는 장애인 금융 접근성을 복지 차원이 아닌 경제적 시민권과 자산형성권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앱 기획 단계부터 장애인 당사자가 참여하는 공동설계(Co-design) 체계 구축, 쉬운 금융 콘텐츠 확대, 대체 인증수단 법제화, AI 기반 시각통역 서비스 도입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은 “금융은 평등해야 하며 장애가 부의 축적과 경제적 자립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장애인을 시혜적 대상이 아닌 능동적인 금융 소비자로 인정하는 사회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