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 상담 요청 거부한 재단… 인권위 “차별행위”

해외선 수어통역·문자통역 공공서비스 기본으로 제공

<사진=Unsplash>

국가인권위원회는 공직유관단체인 A 재단이 청각장애인 민원인의 신청 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장애 특성을 고려한 상담이나 안내를 제공하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2026년 5월 6일 전 직원 대상 사례 전파 및 직무교육 실시를 권고했다.

해당 민원인은 재단에 장애인 대상 정책성 지원을 신청하면서 청각장애 사실이 기재된 장애인등록증을 포함한 관련 서류 일체를 제출했다. 그러나 담당 직원은 이를 확인했음에도 반복적으로 전화 연락을 시도했다. 민원인의 가족이 전화를 대신 받아 청각장애 사실을 재차 알리고 대면 상담, 서면 안내 또는 보조적 의사소통 방식 제공 가능 여부를 문의했지만 직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민원인은 2026년 1월 이 같은 행위가 장애인차별에 해당한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담당 직원은 유선 상담만 가능하다고 안내한 것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아울러 민원인이 재단과 지방자치단체에 민원을 제기하자 부지점장이 직접 방문해 대면 상담을 하려 했으나 민원인의 가족이 이를 거절했다고 답변했다.

인권위 장애인차별시정위원회는 담당 직원의 행위가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4조 제1항 제3호 및 제26조 제4항을 위반한 차별행위에 해당한다고 결론지었다. 판단 근거는 두 가지다. 첫째, 담당 직원은 민원인 가족으로부터 청각장애 사실을 고지받고 전화 외 별도 상담 방식을 요청받았음에도 이에 응하지 않은 채 신청 건을 종결했다. 둘째, 민원 제기 이후 대면 상담을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민원인과의 협의 없이 상담 방법을 일방적으로 정한 뒤, 다시 전화로 이를 통보했다. 인권위는 이 같은 처리 방식이 재단 내부 고객 응대 매뉴얼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봤다.

담당 직원은 업무 여건상 고객 특성에 맞춘 상담 제공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인권위는 “그 자체가 오히려 장애인 맞춤 상담 체계가 충분히 이행되고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반박하며, 현행 운영 방식이 유지될 경우 유사 사례가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재단 측에 전 직원을 대상으로 본 사례를 공유하고, 장애인 응대 및 정당한 편의 제공에 관한 직무교육을 실시할 것을 권고했다.

해외 공공기관들은 이미 청각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상담·안내 방식을 제도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미국은 장애인법에 따라 공공기관이 청각장애인에게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연방정부 브리핑과 의회 청문회에서는 미국수어 통역사를 화면에 동시 배치하고, 실시간 속기 자막을 병행 제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시청·법원·복지기관 등에서는 사전 신청 시 공인 수어통역사나 화상원격통역 서비스를 제공한다. 상담 예약 단계부터 “수어통역·자막·보조기기 중 어떤 방식이 필요하냐”고 묻는 절차를 기본으로 두어, 장애인이 먼저 불편을 호소해야만 편의를 받을 수 있는 구조적 부담을 줄이고 있다.

영국은 2010년 평등법에 따라 공공기관이 합리적 조정을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하며, 2022년에는 영국수어를 공식 언어로 법제화해 청각장애인의 언어권을 한층 강화했다. 정부 브리핑에서는 영국수어 통역사를 화면에 배치하고 폐쇄자막을 함께 제공하며, 지방정부와 복지기관은 전화가 어려운 민원인을 위해 이메일·문자 중계 서비스를 기본 안내 사항으로 명시하고 있다.

일본은 2022년 시행한 청각장애인 전화이용 원활화 관련 법률을 토대로, 수어통역 중계 서비스를 공공기관 전반에 확대하는 것을 국가 과제로 추진 중이다. 지자체 민원 창구에서는 필기 대응이나 태블릿을 활용한 문자 소통을 병행하고, 공영방송은 주요 뉴스 전 구간에 자막을 제공한다.

세 나라의 공통점은 전화 중심 상담을 기본값으로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민원인이 먼저 불편을 알려야 편의를 받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 접수 단계부터 다양한 의사소통 선택지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설계돼 있다. 이번 인권위 결정이 국내 공직유관단체 전반의 장애인 응대 체계 재점검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