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점자 선거공보 개선 권고 거부… 발달장애인 보조는 수용
인권위 “이행 불가 답변 적절하지 않아”… 지방선거 앞두고 공표

국가인권위원회가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하루 앞둔 2일, 장애인이 선거에서 불편 없이 투표할 수 있도록 마련한 권고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가 일부 따르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이를 공개했다.
인권위는 올해 1월 30일 두 기관에 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위한 권고를 전달했다. 참정권이란 선거에서 투표하고 후보자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얻을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권고를 전달받은 선관위는 3월 12일 회신에서 일부 권고에 대해 이행할 수 없다고 답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형 선거공보를 책자형과 동일한 내용으로 만들고, 점자형 공보의 페이지 수 제한을 없애도록 법을 고치라는 권고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현재 점자형 선거공보는 페이지 수에 제한이 있어 책자형보다 훨씬 적은 정보만 담기게 된다. 대신 발달장애인을 위한 쉬운 선거 안내문 제작과 투표 보조인 지원에 대해서는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모든 투표소를 1층이나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에 설치하라는 권고에 대해서는 이미 하고 있다고 답했다.
방미통위는 4월 17일 회신을 통해, 선거 방송에서 수어 통역사를 2명 이상 배치하고 이를 공영방송 전체로 확대하라는 권고에 대해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장애인 당사자와 방송사 등의 의견을 모아 토론 내용이 잘 전달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결국 인권위는 지난달 22일 전원위원회를 열고 두 기관이 권고를 일부는 받아들이고 일부는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결론 내렸다.
우선 점자형 선거공보 문제와 관련해 인권위는 선관위의 이행 불가 답변이 타당하지 않다고 봤다. 미리 수령 희망자를 파악하면 제작 비용을 줄일 수 있고, 당장 법 개정이 어렵더라도 단계적으로 개선할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또 점자형 공보를 만들 때 내용을 줄여 요약하는 과정을 없애면 제작 기간도 단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인권위는 헌법상 선관위가 국회에 선거 관련 의견을 제출할 권한이 있는 만큼,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이유만으로 이행할 수 없다고 답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발달장애인 투표 보조 문제에 대해서도 인권위는 선관위가 사실상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선관위는 대리투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발달장애인이 스스로 후보자를 선택할 수 있을 때 기표하는 과정만 도움을 받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독일처럼 선거인 본인이 원하는 경우에만 기술적인 도움을 주고, 부당한 영향을 미치거나 선거인의 뜻을 바꾸는 행위는 엄격히 금지하는 방식으로 운영하면 대리투표 우려를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밝혔다. 아일랜드·포르투갈·대만 등도 이 같은 방식으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투표소 접근 문제와 관련해서도 인권위는 선관위의 답변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제20대 대통령 선거와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살펴본 결과, 장애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투표소 입구에 도움을 주는 사무원이 없거나, 경사로 경사가 너무 가파르거나, 문턱이 있는 곳이 여전히 존재했다.
수어 통역 방송 확대 권고에 대해서는, 선관위가 공영방송사와 지속적으로 협의하겠다는 뜻을 밝힌 점을 고려해 일부 수용으로 결정했다. 방미통위도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 추진하겠다고 한 점은 인정했지만, 발화자별로 어떻게 전달할지 더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장애인이 투표권을 실제로 행사할 수 있으려면 국가 차원의 적극적인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