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을 가르치는 대학’에서 ‘장애인이 가르치는 대학’으로
삼육대, 중증 뇌병변장애인 안형진 박사 강사 임용
장애 당사자의 경험을 교육·연구의 지식으로

장애인을 교육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데서 나아가 장애 당사자가 직접 교육의 주체로 참여하는 대학의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삼육대학교는 중증 뇌병변장애인 안형진 박사를 일반대학원 사회복지·디지털통합돌봄학과 정규 강사로 임용했다. 안 박사는 2학기부터 대학원 정규 교과목을 맡아 강의를 진행한다.
이번 임용은 장애 당사자의 경험을 복지서비스의 수혜자 입장에서만 바라보지 않고 교육과 연구에 활용할 수 있는 전문적인 지식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동안 장애 관련 교육과 연구에서는 비장애인 전문가가 장애인의 삶과 복지서비스를 연구하고, 그 결과를 다시 장애인에게 제공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장애 당사자가 연구와 정책의 대상이 아니라 직접 지식을 생산하고 학생을 가르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다.
안 박사가 강의를 맡는 분야는 자기주도지원(SDS·Self-Directed Support)과 사람 중심 실천이다. SDS는 장애인 등 서비스 이용자가 자신의 삶에 대한 선택과 결정권을 갖고 필요한 지원을 스스로 구성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서비스 방식이다.
이번 임용은 이러한 교육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삼육대는 장애 당사자가 현장에서 축적한 경험과 지식을 정규 교육과정에 반영하고, 당사자가 직접 교육과 연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안 박사는 “‘사람중심실천’이란 ‘이 사람이 어떤 삶을 원하는가’를 묻는 데서 출발한다”며 “장애 당사자가 무엇을 가르치고 어떤 지식을 만들지 스스로 결정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변화는 장애인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에도 질문을 던진다. 장애인의 교육권을 보장하는 것뿐 아니라 장애인이 교원과 연구자로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포용적 교육의 중요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한국장애인재활협회는 이번 임용과 관련해 장애인의 교육 주체로서의 참여 확대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장애인 교직원과 연구자의 참여 확대와 함께 의사소통 지원, 보조공학 활용, 합리적 편의 제공 등 교육기관의 지원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 장애 당사자가 대학에서 강의와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역량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도 있다. 강의와 연구 과정에서 필요한 의사소통 지원과 보조공학, 이동과 업무 수행을 위한 편의 등 대학 차원의 지원체계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
이번 사례가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장애인의 대학 진학과 교육권 보장을 넘어 장애인이 대학에서 지식을 생산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단계까지 교육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과제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육대학교 대학원 사회복지·디지털통합돌봄학과는 국내 대학 가운데 유일하게 SDS 전문 사회복지사 1년 석사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학과는 자기결정과 선택을 중심으로 한 사회서비스와 돌봄을 교육하고 있다.
장애 당사자가 해당 분야의 교육자로 참여하면서 학생들은 장애를 서비스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결정하고 사회적 지식을 생산하는 주체로 이해할 수 있는 교육을 접하게 됐다.
이번 임용을 계기로 대학의 장애인 교육이 어디까지 확대될 수 있을지도 관심이다. 장애인에게 교육받을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장애인이 직접 교육과 연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대학의 장애인 포용성을 판단하는 또 다른 기준이 될 수 있다.
장애인을 가르치는 대학에서 장애인이 가르치는 대학으로. 안형진 박사의 강사 임용은 장애인의 교육권을 교육받을 권리에만 한정하지 않고, 지식을 생산하고 전달할 권리까지 확장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