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위기 넘긴 대한민국, 선진국의 기준은 사회적 약자에 있다

계엄 해제와 평화적 정권 교체로 제도적 복원력 입증… 이동권·탈시설·복지 지출 수준은 여전히 과제

<사진=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대한민국은 이미 국제사회에서 경제적 선진국으로 분류된다. 2021년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한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 그룹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변경했다. 이는 1964년 UNCTAD 창설 이후 처음 있는 사례였다.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세계 10위권 안팎을 유지하고 있으며, 반도체·자동차·배터리 등 주력 산업의 수출 경쟁력도 공고하다.

문화적 영향력 역시 확대됐다. 2020년 영화 ‘기생충’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4관왕을 차지했다. 음악 그룹 방탄소년단은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100’ 1위를 기록하며 세계 대중음악 시장의 중심에 섰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 한국 드라마와 예능 콘텐츠가 상위권을 차지하는 현상도 이어지고 있다. 경제와 문화 영역에서 한국의 위상은 더 이상 주변부가 아니다.

그러나 선진국의 기준은 성장률이나 수출 실적에만 있지 않다. 사회적 약자를 얼마나 두텁게 보호하느냐는 또 다른 척도다. 이 지점에서 한국 사회는 여전히 구조적 과제를 안고 있다.

장애인 이동권 문제는 대표적 사례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수년째 지하철 역사와 도심 곳곳에서 저상버스 확대,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 특별교통수단 확충 등을 요구해 왔다. 국토교통부와 각 지방자치단체는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 계획에 따라 저상버스 도입을 확대하고 있지만, 지역 간 격차는 여전하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전국 저상버스 도입률은 30%대를 넘어섰으나 일부 지방 중소도시에서는 여전히 절반에 못 미친다. 출퇴근 시간대 지하철 시위가 반복되는 배경에는 이러한 체감 격차가 자리하고 있다.

탈시설 정책도 사회적 논쟁이 이어지는 분야다. 보건복지부는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을 지원하기 위한 단계적 탈시설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지역사회 주거 지원과 활동지원 서비스를 확대해 시설 중심 보호 체계에서 벗어나겠다는 구상이다. 반면 일부 시설 운영자와 보호자 단체는 지역사회 인프라와 의료·돌봄 체계가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급격한 전환은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탈시설은 권리 보장이라는 가치와 안전 확보라는 현실 과제가 맞물린 정책 영역이다.

발달장애인 돌봄 공백 문제도 반복적으로 제기된다. 정부는 발달장애인 지원 종합대책을 통해 주간활동 서비스와 긴급돌봄 체계를 확대하고 있으나, 현장에서는 인력 부족과 낮은 서비스 단가를 구조적 한계로 지적한다. 일부 복지기관은 예산 부담으로 프로그램을 축소하거나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기관 운영 문제가 아니라 국가 재정 우선순위와 직결된 사안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공공사회복지 지출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나 국내총생산 대비 비율은 여전히 OECD 평균보다 낮은 수준으로 평가된다. 고령화 속도가 빠른 점을 감안하면 향후 복지 수요는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재정 건전성과 복지 확충 사이에서 어떤 균형을 선택할 것인지는 중장기 정책 방향을 가르는 핵심 변수다.

2024년과 2025년을 거치며 확인된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력이다. 헌법적 절차에 따른 권력 통제와 시민의 참여는 국제사회에서도 주목받았다. 그러나 정치적 위기 대응 능력이 곧바로 사회적 약자의 삶의 질 개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동권, 탈시설, 돌봄 체계, 복지 재정과 같은 문제는 일상 속에서 지속적으로 드러나는 구조적 과제다.




탈시설 논쟁 20년, 인권과 돌봄 사이에서 길을 묻다

지역사회 인프라 확충과 개인별 지원체계 정교화 병행해야 실질적 선택권 보장

<사진= AI Gemini 생성 이미지>

탈시설의 근거는 분명하다. 2008년 발효된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은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살아갈 권리를 명시하고, 특정한 거주시설에서의 분리·격리를 강요받지 않을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협약 제19조는 국가가 지역사회 기반 서비스와 개인별 지원을 확충할 의무가 있음을 분명히 한다. 이러한 국제 기준에 비춰볼 때, 대규모 수용시설 중심의 정책은 장기적으로 재검토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일부 시설에서는 인권침해 사건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며 구조적 한계를 드러내 왔다.

그러나 현실은 단순하지 않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에는 여전히 수만 명의 장애인이 거주시설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발달장애나 중증 중복장애가 있는 경우 24시간 지원이 필수적인 사례도 적지 않다. 지역사회 기반 서비스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시설을 일괄적으로 축소하거나 폐쇄할 경우, 당사자와 가족에게 돌봄 부담이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활동지원 인력 부족, 주거공간 확보 난항, 의료·행정 서비스 연계 미흡 등의 문제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해외 사례는 시사점을 제공한다. 스웨덴은 1990년대 초 ‘정상화’ 이념에 따라 대규모 수용시설을 단계적으로 폐쇄했지만, 동시에 소규모 그룹홈과 개인별 지원예산 제도를 확충했다. 독일 역시 연방 차원의 장애인참여법을 통해 개인예산제와 지역사회 통합 서비스를 확대하며 시설 의존도를 낮춰왔다. 공통점은 시설 폐쇄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지역사회에서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지원체계를 선행·병행했다는 점이다. 충분한 재정 투입과 전문 인력 양성, 주거·고용·의료 정책의 연계가 뒤따르지 않으면 탈시설은 선언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교훈이다.

국내에서도 변화의 조짐은 있다. 일부 지자체는 자립지원주택을 도입하고, 개인별 서비스 계획을 수립하는 시범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 간 격차가 크고, 지원 수준이 당사자의 실제 욕구를 충족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발달장애인의 경우 도전적 행동에 대응할 전문 인력과 위기지원 체계가 미비해 지역사회 전환이 지연되는 사례가 보고된다.

결국 쟁점은 ‘탈시설이냐 유지냐’의 이분법이 아니라, 선택권을 어떻게 실질화할 것인가에 있다. 선택권이란 단순히 형식적 거주지 선택을 의미하지 않는다. 충분한 활동지원 시간, 안정적 주거, 접근 가능한 의료, 소득 보장과 고용 기회가 종합적으로 갖춰질 때 비로소 현실적 선택이 가능해진다. 시설 거주를 당분간 선택하는 경우에도 인권 기준과 서비스 질을 강화해 지역사회와의 단절을 최소화해야 한다.

정책적 해법은 단계적 전환과 기반 확충의 병행에 있다. 첫째, 지역사회 서비스 확충을 국가 책임으로 명확히 하고 중장기 재정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둘째, 개인별 지원계획 수립 과정에 당사자와 가족, 현장 전문가의 참여를 제도화해 형식적 절차에 머물지 않도록 해야 한다. 셋째, 시설 역시 폐쇄 여부를 넘어 소규모화·개방화·전문화 등 구조 개편을 통해 지역사회와 연계된 지원 거점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부산, ‘세계자폐인의 날’ 기념 넘어 과제로

기념식·블루라이트 점등 속 자폐 인식 개선과 지역 돌봄체계 점검

<사진= 부산광역시 제공>

세계자폐인의 날은 유엔 총회가 2007년 지정해 2008년부터 시행된 국제기념일이다. 자폐성 장애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당사자의 권리 보장과 사회참여 확대를 촉구하는 데 목적이 있다. 국제사회는 이날을 전후해 공공기관과 주요 건축물을 파란색으로 밝히는 ‘블루라이트 캠페인’을 통해 상징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 부산광역시 제공>

행사는 상징적 의미를 넘어 지역 사회의 과제를 환기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사)한국자폐인사랑협회 부산지부 권민정 지부장은 “자폐성 장애인은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있으며, 지역사회 안에서 안정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관심과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자폐 인식 개선이 단순한 캠페인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발달장애는 조기 발견과 조기 개입이 중요하며, 생애주기별 지원체계가 연속적으로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학령기 이후 성인기 자립 지원, 직업훈련, 지역사회 기반 서비스 확충은 전국적으로 공통된 과제로 꼽힌다.

부산시 정태기 사회복지국장은 “이번 행사가 자폐성 장애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며 “발달장애인에 대한 교육·홍보는 물론, 지역사회 돌봄체계와 자립 지원 정책을 지속적으로 보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세계자폐인의 날은 기념식 하루로 끝나는 행사가 아니라, 자폐성 장애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 속 과제로 바라보는 계기다. 부산의 이번 행사는 상징 캠페인과 문화행사를 통해 시민 참여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동시에 지역 차원의 실질적 지원 정책을 어떻게 확장해 나갈 것인지가 향후 과제로 남는다.




[2024년 직무개발사업 우수사례 (1)] 단순노무 넘어 ‘품질관리’로… 중증장애인 일자리, 농업 현장에서 답을 찾다

대덕구장애인종합복지관 ‘농산물 품질관리원’ 모델 시범운영… 17명 참여, 11명 취업 연결

<사진=한국장애인고용공단 제공>

올해 선정된 주요 우수 직무를 살펴보면 이러한 변화가 뚜렷하다. 고용노동부 장관상을 받은 인공지능 농업로봇 오퍼레이터를 비롯해 소방 안전 파트너스, 공유모빌리티 안전관리원, 비주얼그래픽 디자이너, 유제품 가공 관련 직무 등 다방면에서 고도화된 직무가 발굴됐다.

특히 농산물 유통 과정에서 필요한 품질 관리 업무를 장애인 직무로 개발한 사례는 고용 영역이 생산 현장으로 확장될 가능성을 보여주며 큰 주목을 받았다. 공단이 추진한 중증장애인 고용모델 개발 사업의 하나로 대덕구장애인종합복지관은 농산물 품질관리원 직무를 재구성하는 시범사업을 진행했다. 이 사업은 농산물 유통 과정의 외관 확인, 중량 점검, 선별 상태 확인, 기록 관리 등을 세분화해 장애인이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시범사업은 약 7개월 동안 운영되며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발달장애인과 정신장애인 17명이 참여해 전문 교육을 받았으며 이 가운데 15명이 과정을 수료해 약 88퍼센트의 높은 수료율을 기록했다. 이후 지역 농산물 유통업체 등에 실제로 취업한 인원은 11명으로 취업률은 약 73퍼센트에 달했다. 단순 체험이나 단기 훈련에 그치지 않고 실제 고용으로 직결됐다는 점에서 직무개발 사업의 실효성을 입증한 사례로 평가된다.

농산물 품질관리 업무는 농산물의 상품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산지유통센터와 공판장에서는 농산물의 외형 상태와 손상 여부를 비롯해 크기와 무게 등을 확인하고 유통 단계의 품질 기준을 관리한다. 그동안 숙련된 작업자나 관리 인력이 주로 담당했던 이 업무를 세분화하고 표준화된 체크리스트를 적용하자 반복 수행이 가능한 장애 적합 직무로 탈바꿈했다.

직무개발 과정에서는 실제 작업 흐름을 분석해 업무 단계를 근본적으로 다시 설계했다. 품질 판별 기준을 시각적으로 알기 쉽게 정리하고 작업 순서를 매뉴얼로 만들었으며 기록 작성 방식도 단순화했다. 교육 과정에서는 농산물 품질 판별 방법, 위생 관리, 작업 안전 등을 중심으로 이론 교육과 현장 실습을 병행했다. 기존 업무 구조 자체를 장애인의 특성에 맞춰 재구성했다는 점이 이번 모델의 가장 큰 특징이다.

농업 유통 현장의 구조적 상황도 이러한 직무 모델의 정착 가능성을 높인다. 유통 과정에서 상품 선별과 품질 관리가 점차 중요해지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상시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산지유통센터의 경우 계절에 따라 물량이 급증하면서 품질 확인과 기록 관리에 필요한 인력 수요가 꾸준히 발생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산업 구조의 빈틈이 장애인 직무 개발과 훌륭하게 연결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직업재활 분야 연구자들은 산업 현장에서 실제로 요구하는 업무를 분석하고 재설계하는 방식이 고용 확대의 핵심 과제라고 지적한다. 단순 보조 업무 확대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며 현장의 생산 구조와 맞닿은 직무가 만들어질 때 장기적인 고용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직무 표준화와 교육 체계가 안정적으로 구축된다면 농업 비중이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맞춤형 장애인 일자리 모델이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본격적인 확산을 위해 해결해야 할 제도적 과제도 남아 있다. 현재 개발된 직무 모델은 발달장애인과 정신장애인을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지체장애인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작업대 높이 조정, 이동 동선 확보, 보조 장비 도입 등 물리적 작업 환경 개선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또한 직무개발 사업의 실질적 효과를 증명하려면 취업 이후의 고용 유지율, 임금 수준, 장기 근속 가능성 등을 지속해서 추적하고 분석해야 한다. 단순히 취업 문을 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안정적인 고용 생태계로 안착하고 있는지에 대한 장기적인 평가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

중증장애인 고용 정책은 이제 단순 의무고용 충족을 위한 양적 확대에서 벗어나 질적 전환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새롭게 개발된 다양한 직무 모델들은 장애인 일자리가 보호적 영역을 넘어 산업 구조의 핵심으로 파고들 수 있음을 증명하는 의미 있는 첫걸음이다.




고양시 ‘건강 업(UP) 스마트 업(UP)’프로그램 참여자 모집

사진설명 : 고양시 덕양행신 장애인주간보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