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직무개발사업 우수사례 (6)] AI 기반 ‘DB구축정보검색사’ 모델 주목… 경기DPI, 중증장애인 10명 ICT 직무 취업 성과

단순노무 중심 구조 넘어 정보검색·데이터 가공 직무로 확장… 재택근무 기반 미래형 고용모델 가능성 제시

<사진=한국장애인고용공단 제공>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발간한 ‘2024년 직무개발사업 우수사례집’은 장애 적합 직무 부족이라는 구조적 과제를 해소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의 성과를 담고 있다. 선도기업 전략직종 직무개발, 현장 중심 직무개발, 중증장애인 고용모델 개발·확산사업 등에서 발굴된 13건의 우수 사례와 164건의 아이디어 공모 성과는 변화하는 산업환경 속에서 장애인 고용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본지는 해당 사례들이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점검하고, 지속 가능한 직무 개발을 위한 과제와 개선 방향을 연속 기획을 통해 심층적으로 살펴볼 예정이다.[편집자주]

한국 장애인 고용 정책은 오랜 기간 양적 확대와 질적 전환이라는 이중 과제를 안고 있다. 장애인 의무고용제도가 시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증장애인의 취업 기회는 여전히 제한적이며 직무 또한 단순노무 중심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 속에서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정보통신기술(ICT) 기반 직무 모델이 현장에서 등장해 주목받고 있다.

최근 장애인 고용 현장에서 주목받는 사례는 ‘DB구축정보검색사’ 직무 모델이다. 이 직무는 데이터 검색과 정보 정리 업무를 기반으로 하는 디지털 직무로, 중증장애인이 수행할 수 있도록 직무를 세분화하고 AI 도구를 활용하도록 설계된 것이 특징이다.

이 모델은 경기 지역 장애인 단체인 경기DPI가 추진한 직무개발 사업을 통해 실제 고용 성과로 이어졌다. 사업 관계자에 따르면 직무 훈련을 이수한 10명의 중증장애인이 정보통신 분야 기업에 취업하며 디지털 직무 기반 고용 가능성을 확인했다.

경기DPI 관계자는 “기존 장애인 일자리는 단순 반복 업무가 대부분이었지만, 데이터 검색과 정리 업무는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장애인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며 “AI 도구를 활용하면 정보 정리나 문서 구조화 작업을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어 직무 수행 장벽을 낮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DB구축정보검색사’는 기업이나 기관이 필요로 하는 기초 정보를 검색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데이터베이스 형태로 구축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공공조달 플랫폼이나 온라인 자료를 검색해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분류·요약해 데이터로 정리하는 과정이 핵심 업무다. 최근에는 생성형 AI 도구를 활용해 정보 분류와 문서 구조화 작업의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직무 개발 과정에서는 참여자의 기본 역량을 고려한 선발과 장기간의 직무 훈련이 진행됐다. 경기DPI는 장애인 단체와 협력해 훈련 참여자를 모집한 뒤 컴퓨터 활용 능력과 기본 문해력을 중심으로 직무 적합성을 검증했다. 이후 약 6개월 동안 정보 검색 방법, 데이터 정제 과정, AI 활용 방법 등을 교육하는 직무 훈련을 실시했다.

훈련을 마친 참여자들은 정보통신 전문 기업에 채용돼 실제 데이터 구축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기업 측은 장애인 인력이 데이터 정리 업무에서 안정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 기업 관계자는 “데이터 검색과 정리 업무는 집중력과 반복적인 정확성이 중요한데, 훈련을 받은 장애인 직원들이 업무 수행에서 높은 안정성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사례는 여러 측면에서 장애인 고용 정책에 시사점을 던진다. 무엇보다 중증장애인을 디지털 직무로 연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장애인 고용은 여전히 제조업이나 단순 서비스 직군에 집중되는 경향이 강하다. ICT 기반 직무 개발은 이러한 직무 구조를 다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통계청과 고용 관련 자료에 따르면 장애인 고용은 여전히 제조업과 단순 서비스 분야에 집중되어 있으며 정보통신 직군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으로 나타난다. 장애인 고용 전문가들은 디지털 기반 직무가 확대될 경우 장애인 고용 구조에도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장애인 고용 정책을 연구하는 한 전문가는 “AI와 디지털 기술은 장애인의 업무 수행 방식을 크게 바꿀 수 있는 도구”라며 “특히 데이터 관리나 정보 검색 같은 직무는 공간 제약이 적고 재택근무가 가능해 이동이 어려운 중증장애인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재택근무 가능성 역시 중요한 요소로 평가된다. 중증장애인의 경우 이동 자체가 취업의 큰 장벽이 되는 경우가 많다. 데이터 검색과 정보 구축 업무는 원격 환경에서도 수행이 가능하기 때문에 근무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코로나19 이후 확산된 원격근무 환경 역시 이러한 직무 모델의 확산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꼽힌다.

다만 직무 모델의 확산을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도 존재한다. 현재 ‘DB구축정보검색사’ 모델은 특정 기업 취업 성과를 중심으로 형성된 초기 단계 사례에 가깝다. 직무 표준화와 산업 전반으로의 확산 체계는 아직 충분히 구축되지 않은 상황이다.

또한 직무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는 장기 고용 유지 여부와 임금 수준, 숙련도 향상 경로에 대한 검증도 필요하다. AI 기술 변화 속도가 빠른 만큼 지속적인 교육과 직무 역량 강화 프로그램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DPI 측은 향후 직무 모델을 고도화하고 추가 고용 연계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관계자는 “데이터 기반 산업이 확대되는 만큼 정보 검색과 데이터 정리 직무 수요도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며 “직무 훈련 체계를 보완해 더 많은 중증장애인이 디지털 직무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2024년 직무개발사업 우수사례 (5)] 정신장애인, 디자인 전문직으로 첫발… ‘비주얼 그래픽 디자이너’ 모델 확산 가능성은

정신장애인을 위한 디자인 직무 개발… 멋진월요일, ‘비주얼 그래픽 디자이너’ 양성과정 성과

<사진=한국장애인고용공단 제공>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발간한 ‘2024년 직무개발사업 우수사례집’은 장애 적합 직무 부족이라는 구조적 과제를 해소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의 성과를 담고 있다. 선도기업 전략직종 직무개발, 현장 중심 직무개발, 중증장애인 고용모델 개발·확산사업 등에서 발굴된 13건의 우수 사례와 164건의 아이디어 공모 성과는 변화하는 산업환경 속에서 장애인 고용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본지는 해당 사례들이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점검하고, 지속 가능한 직무 개발을 위한 과제와 개선 방향을 연속 기획을 통해 심층적으로 살펴볼 예정이다.[편집자주]

이번 사업은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중증장애인 고용모델 개발·확산사업’ 지원을 받아 추진됐다. 고용공단은 중증장애인의 직무 다양화를 위해 매년 새로운 고용모델을 발굴하고 있으며, 단순 보조·노무 중심 직무에서 벗어나 전문 영역으로의 확장을 정책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정신장애인의 고용 현실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고용노동부와 고용공단 통계에 따르면 장애인 전체 고용률은 점진적으로 상승하고 있으나, 정신장애인은 직무 적응의 어려움과 증상 기복, 대인관계 부담 등으로 취업과 고용 유지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집단으로 분류된다. 특히 반복·단순 업무에 편중되는 경향이 강해 직무 선택 폭이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멋진월요일은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고려해 재택·비대면 업무가 가능하고, 개별 작업 집중도가 높은 디자인 분야에 주목했다. 디지털 콘텐츠 수요 증가와 함께 그래픽 디자인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도 직무 선정 배경으로 작용했다. 교육과정은 기초 이론, 실습, 현장형 프로젝트의 3단계로 구성됐다. 초기에는 색채 조화, 레이아웃 구성, 타이포그래피 등 기본 개념을 소규모 그룹으로 반복 학습하도록 했고, 이후 포스터·리플렛·온라인 배너 등 실제 발주를 가정한 과제를 수행하도록 했다. 주 1회 현직 디자이너의 개별 피드백을 제공해 작업 완성도를 높였다.

훈련생 모집은 서울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 등 유관기관을 통해 진행됐다. 참여자 선발에서는 디자인 경험보다 장기 훈련 참여 가능성과 기본적인 컴퓨터 활용 능력을 중점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교육 과정 중 2명이 건강 악화와 개인 사정으로 중도 이탈했다. 운영진은 정신장애 특성상 초기 적응 단계에서의 지원 체계가 특히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취업에 성공한 7명은 온라인 콘텐츠 제작사, 사회적기업, 중소 광고대행사 등에 채용됐다. 고용 형태는 정규직과 계약직이 혼재돼 있으며, 일부는 재택근무를 병행하고 있다. 채용 기업 관계자는 “업무 숙련도는 개인차가 있지만, 반복 피드백 구조를 통해 충분히 직무 수행이 가능했다”며 “업무 분절화와 일정 조정이 병행되면 생산성 측면에서도 큰 차이가 없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례를 정신장애인 직무 다변화의 실험적 모델로 본다. 정신건강 분야 한 전문가는 “정신장애인의 경우 감각적 민감성과 집중력이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 분야가 존재한다”며 “획일적 직무 배치에서 벗어나 개인 특성 기반 직무 설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단기 취업 성과보다 중요한 것은 1년 이상 고용 유지율”이라며 사후 직무 코칭과 사업주 교육의 병행을 과제로 제시했다.

정책적 확장 가능성도 관심사다. 중증장애인 고용모델 사업은 매년 다수의 직무 실험을 진행하지만, 실제 산업 현장에 안착하는 모델은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있다. 디자인 직무가 전국 단위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기업 수요 확보, 표준화된 교육 커리큘럼 마련, 훈련 이후 사후관리 체계 구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멋진월요일은 향후 과정에서 적성 평가를 강화하고, 컴퓨터 활용이 어려운 참여자를 위한 기초 트랙을 별도로 운영할 계획이다. 동시에 채용 의사가 있는 기업을 사전에 발굴해 훈련과 채용을 연계하는 구조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기획] 장애인 의무고용, 독일은 왜 5%에 근접했나… 수치 너머의 제도 설계

부담금은 한국이 더 높지만 고용 성과는 독일이 앞서
통계·전문가 분석 통해 본 ‘사후 지원 중심 구조’의 차이

작업장에서 근무중인 독일인 장애 근로자의 모습. gemini로 생성된 이미지
<사진= AI Gemini 생성 이미지>

독일은 「사회법전 제9권(Sozialgesetzbuch IX)」에 따라 상시근로자 20인 이상 사업장에 전체 인원의 5% 이상을 중증장애인으로 고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의무고용을 충족하지 못한 사업장은 미달 인원에 대해 부담금을 납부해야 한다. 부담금은 고용률 수준에 따라 차등 부과되며 장애인을 전혀 고용하지 않은 경우 월 최대 360유로가 부과된다. 반면 일부 장애인을 고용하고 있지만 기준에 미달하는 경우에는 더 낮은 수준의 부담금이 적용된다.

한국의 경우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에 따라 상시근로자 50인 이상 사업장에 의무고용률이 적용된다. 2024년 기준 민간기업 의무고용률은 3.1%이며 이를 이행하지 못한 사업장에는 미달 인원 1명당 월 100만 원대 후반에서 200만 원을 넘는 부담금이 부과된다. 명목상 부담금만 비교하면 한국이 독일보다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실제 고용 성과는 다른 모습이다. 독일 연방고용청 통계에 따르면 독일 기업의 중증장애인 고용률은 최근 수년간 4%대 중후반 수준을 유지하며 법정 기준 5%에 근접해 있다. 공공부문에서는 이미 6% 안팎의 고용률을 기록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중증장애인의 경제활동참가율 역시 50%를 상회하는 것으로 집계된다.

반면 한국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장애인 고용 통계에 따르면 전체 장애인 의무고용률은 3% 안팎 수준에 머물고 있다. 등록장애인의 경제활동참가율도 약 40% 수준으로 조사된다. 법정 기준과 실제 고용 성과 사이에 일정한 격차가 존재하는 셈이다.

이 같은 차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제도의 핵심이 ‘부담금 수준’이 아니라 ‘지원 구조’에 있다고 분석한다. 한국노동연구원 노동시장정책 연구자는 “독일은 부담금을 단순한 제재 수단으로 두지 않고 다시 장애인 고용 지원 재원으로 환류시키는 구조가 안정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며 “기업 입장에서는 장애인을 채용할 때 발생하는 비용 부담을 줄여주는 지원 장치가 매우 체계적으로 마련돼 있다”고 설명했다.

독일에서는 의무고용을 이행하지 못한 기업이 납부한 부담금이 장애인 고용 지원 재원으로 활용된다. 이 재원은 각 주(州)에 설치된 통합사무소(Integrationsamt)를 통해 기업과 근로자 지원에 사용된다. 기업이 장애인을 채용할 경우 임금 보조금이 제공되고 직무 적응을 위한 훈련 프로그램도 지원된다. 장애인의 업무 수행을 돕기 위한 보조공학기기 구입 비용이나 작업환경 개선 비용 역시 지원 대상이다.

직무 배치 과정에서도 직업재활 시스템이 작동한다. 독일은 직업재활센터와 고용서비스 기관이 연계돼 장애인의 직무 적합성을 평가하고 기업과 연결하는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단순히 채용 이후의 지원뿐 아니라 채용 이전 단계부터 직무 설계를 함께 진행하는 구조다.

기업 인식 역시 제도 성과에 영향을 미친다. 독일은 장애인 고용을 단순한 복지 정책이 아니라 노동시장 통합 정책의 일부로 오랜 기간 다뤄왔다. 공공기관뿐 아니라 민간 기업에서도 장애인 고용을 사회적 책임과 인적 자원 전략의 한 요소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한국 역시 다양한 지원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장애인 고용장려금 제도, 근로지원인 서비스, 직무지도원 지원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제도 활용 과정에서 체감도가 낮다는 의견도 나온다. 수도권의 한 중견기업 인사담당자는 “장애인을 채용한 이후 직무 적응 지원을 신청하는 과정에서 행정 절차가 복잡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며 “부담금 제도는 명확하지만 실제 지원 제도는 기업이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장애인 고용 정책을 연구하는 한 대학 노동경제학 교수 역시 비슷한 분석을 내놓는다. 그는 “의무고용제도의 핵심은 기업을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을 채용했을 때 기업이 실제로 경험하는 비용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라며 “독일은 부담금으로 조성된 재원을 다시 기업 지원과 직업재활 체계에 투입하는 구조가 안정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장애인 고용 정책도 단순한 비율 관리에서 벗어나 고용 유지와 직무 확장까지 고려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장애인을 채용하는 기업이 실제로 경험하는 지원 체계를 강화하고 직무 설계 단계부터 기업과 함께하는 시스템이 마련될 때 고용 확대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독일 사례는 의무고용률이 높다는 사실보다 그 제도를 운영하는 방식에서 시사점을 제공한다. 부담금 수준이 높다고 해서 반드시 고용이 확대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장애인을 채용했을 때 기업이 경험하는 지원 체계와 직무 적응 환경이 충분히 뒷받침될 때 제도는 실제 고용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 장애인 고용 확대의 열쇠는 숫자가 아니라 제도의 설계와 운영 방식에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2024년 직무개발사업 우수사례 (4)] 건설업 ‘고용 부적합’의 편견을 깨다…삼성물산이 설계한 ‘디지털 포용’의 청사진

‘부담금’ 대신 ‘직무 재설계’ 선택
현장 중심 건설업의 장애인 고용 난제 풀 솔루션 제시

<사진= 장애인고용공단 제공>

대표적인 사례로 제시된 것은 삼성물산 건설부문에서 도입한 ‘도면 관리 파트너’ 직무다. 건설업은 높은 현장 의존도와 안전 문제 등으로 인해 장애인 고용이 제한적이라는 인식이 오랫동안 존재해 왔다. 실제로 건설 현장은 이동과 물리적 작업이 많고 안전 관리 기준이 엄격해 장애인 근로자의 배치가 쉽지 않은 환경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이유로 일부 기업들은 장애인 직접 고용 대신 장애인 고용부담금 납부를 선택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건설 산업 역시 디지털 전환 흐름이 확산되면서 업무 구조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특히 건설 설계와 시공 과정에서 BIM(Building Information Modeling) 등 디지털 설계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도면 관리와 데이터 검증, 설계 정보 관리 등 새로운 업무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이러한 산업 변화에 주목해 기존 업무를 재구성하고 장애인 근로자가 수행할 수 있는 직무 영역을 새롭게 설계했다.

도면 관리 파트너 직무는 프로젝트 설계 도면의 버전 관리와 오류 점검, 데이터 정합성 확인 등 디지털 설계 정보 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역할로 구성됐다. 과거에는 종이 도면을 들고 현장을 이동하며 확인해야 했던 작업이 많았지만, 디지털 설계 시스템 도입 이후에는 컴퓨터 기반의 데이터 검증과 관리 업무 비중이 크게 확대됐다. 기업은 이러한 업무 특성을 반영해 신체적 이동 부담을 최소화하면서도 프로젝트 운영에 필요한 핵심 정보를 관리하는 직무 구조를 구축했다.

직무 개발 과정에서는 기업 내부 인사 담당 부서와 장애인 고용 관련 전문기관이 함께 참여해 업무 분석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 안전 규정과 보안 기준을 검토해 사무실 환경에서도 수행 가능한 업무 범위를 도출하고, 직무 수행에 필요한 교육과 업무 매뉴얼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직무 체계를 설계했다. 이러한 과정은 단순한 보조 업무 배치가 아니라 실제 프로젝트 운영 과정에서 활용 가능한 업무 영역을 중심으로 직무를 구성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장에서는 설계 도면의 버전 관리와 오류 검증이 체계화되면서 프로젝트 운영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설계 혼선을 줄이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설계 변경이 잦은 건설 프로젝트의 특성상 도면 관리 체계가 안정적으로 운영될 경우 공정 관리와 협업 효율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장애인 고용이 단순한 사회공헌 활동을 넘어 업무 효율성과 품질 관리 측면에서도 일정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사례가 장애인 고용 논의를 ‘가능 여부’에서 ‘직무 설계 방식’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산업 구조 변화와 디지털 기술 확산에 따라 기존에는 물리적 작업 중심이었던 업무가 데이터 관리와 시스템 운영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장애인 근로자가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직무 영역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사례가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도 남아 있다. 건설업의 경우 중소 규모 기업 비중이 높은 만큼 직무 매뉴얼의 표준화와 교육 체계 구축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또한 디지털 설계 시스템 활용 역량을 갖춘 인력 양성과 기업 현장의 인식 개선도 장애인 고용 확대를 위해 필요한 조건으로 꼽힌다.




민주주의 위기 넘긴 대한민국, 선진국의 기준은 사회적 약자에 있다

계엄 해제와 평화적 정권 교체로 제도적 복원력 입증… 이동권·탈시설·복지 지출 수준은 여전히 과제

<사진=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대한민국은 이미 국제사회에서 경제적 선진국으로 분류된다. 2021년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한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 그룹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변경했다. 이는 1964년 UNCTAD 창설 이후 처음 있는 사례였다.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세계 10위권 안팎을 유지하고 있으며, 반도체·자동차·배터리 등 주력 산업의 수출 경쟁력도 공고하다.

문화적 영향력 역시 확대됐다. 2020년 영화 ‘기생충’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4관왕을 차지했다. 음악 그룹 방탄소년단은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100’ 1위를 기록하며 세계 대중음악 시장의 중심에 섰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 한국 드라마와 예능 콘텐츠가 상위권을 차지하는 현상도 이어지고 있다. 경제와 문화 영역에서 한국의 위상은 더 이상 주변부가 아니다.

그러나 선진국의 기준은 성장률이나 수출 실적에만 있지 않다. 사회적 약자를 얼마나 두텁게 보호하느냐는 또 다른 척도다. 이 지점에서 한국 사회는 여전히 구조적 과제를 안고 있다.

장애인 이동권 문제는 대표적 사례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수년째 지하철 역사와 도심 곳곳에서 저상버스 확대,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 특별교통수단 확충 등을 요구해 왔다. 국토교통부와 각 지방자치단체는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 계획에 따라 저상버스 도입을 확대하고 있지만, 지역 간 격차는 여전하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전국 저상버스 도입률은 30%대를 넘어섰으나 일부 지방 중소도시에서는 여전히 절반에 못 미친다. 출퇴근 시간대 지하철 시위가 반복되는 배경에는 이러한 체감 격차가 자리하고 있다.

탈시설 정책도 사회적 논쟁이 이어지는 분야다. 보건복지부는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을 지원하기 위한 단계적 탈시설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지역사회 주거 지원과 활동지원 서비스를 확대해 시설 중심 보호 체계에서 벗어나겠다는 구상이다. 반면 일부 시설 운영자와 보호자 단체는 지역사회 인프라와 의료·돌봄 체계가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급격한 전환은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탈시설은 권리 보장이라는 가치와 안전 확보라는 현실 과제가 맞물린 정책 영역이다.

발달장애인 돌봄 공백 문제도 반복적으로 제기된다. 정부는 발달장애인 지원 종합대책을 통해 주간활동 서비스와 긴급돌봄 체계를 확대하고 있으나, 현장에서는 인력 부족과 낮은 서비스 단가를 구조적 한계로 지적한다. 일부 복지기관은 예산 부담으로 프로그램을 축소하거나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기관 운영 문제가 아니라 국가 재정 우선순위와 직결된 사안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공공사회복지 지출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나 국내총생산 대비 비율은 여전히 OECD 평균보다 낮은 수준으로 평가된다. 고령화 속도가 빠른 점을 감안하면 향후 복지 수요는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재정 건전성과 복지 확충 사이에서 어떤 균형을 선택할 것인지는 중장기 정책 방향을 가르는 핵심 변수다.

2024년과 2025년을 거치며 확인된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력이다. 헌법적 절차에 따른 권력 통제와 시민의 참여는 국제사회에서도 주목받았다. 그러나 정치적 위기 대응 능력이 곧바로 사회적 약자의 삶의 질 개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동권, 탈시설, 돌봄 체계, 복지 재정과 같은 문제는 일상 속에서 지속적으로 드러나는 구조적 과제다.




[2024년 직무개발사업 우수사례 (3)] 클린룸 문턱 낮춘 ‘반도체 라인 파트너’… DB하이텍 사례로 본 첨단 산업 장애인 고용의 확장 가능성

한국장애인고용공단과 협업해 생산공정 직무 재설계, 중증장애인 11명 채용
직무 구조화와 현장 적응 지원이 성패 가른다

<사진=한국장애인고용공단 제공>

과거 반도체 대기업의 고용 지표는 이러한 현실의 어려움을 여실히 보여준다. 2016년 기준 삼성전자는 상시근로자 9만3566명 가운데 장애인 의무고용 인원이 2526명이었으나 실제 고용은 1562명에 그쳤다. 에스케이하이닉스 역시 상시근로자 2만1491명 중 156명만 채용해 의무고용 인원 580명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첨단 제조업 특유의 높은 진입 장벽과 엄격한 안전 규정으로 인해 의무 미이행이 두드러졌던 셈이다.

하지만 최근 생산 공정의 세분화와 직무 재설계가 이루어지면서 첨단 산업에서도 장애인 고용의 돌파구가 마련되고 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발간한 2024년 직무개발사업 우수사례집을 보면 이러한 질적 변화의 흐름이 뚜렷하게 감지된다.

공단은 산업 현장에서 장애인이 수행할 수 있는 적합 직무를 올해 총 36건 새롭게 개발했다. 직무개발사업 규모는 2023년 30건에서 올해 36건으로 늘었고 내년에는 40건을 목표로 하는 등 꾸준히 확대되는 추세다. 올해 발굴된 직무 가운데 13건은 실질적인 고용 확대로 이어진 우수 사례로 꼽히며 164건의 직무 아이디어 공모 결과도 함께 수록됐다.

이 가운데 디비하이텍 사례는 첨단 제조업 현장에서 장애인 직무를 성공적으로 설계했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는다. 이 회사는 기업과 공단이 긴밀히 협력해 생산공정 내 역할을 근본적으로 재구성했다. 그 결과 중증장애인을 포함한 장애인 11명이 새롭게 만들어진 반도체 라인 파트너 직무로 채용돼 현장에 투입됐다.

직무 개발 과정에는 기업 인사 담당자와 현업 부서, 직무 컨설팅 기관, 공단 관계자가 모두 참여했다. 직무디자인팀은 생산라인 전반을 꼼꼼히 분석해 장애인이 수행할 수 있는 직무 후보군 9개를 먼저 도출했다. 이후 공정 안전성과 작업 난이도, 현장 수용성, 생산 기여도 등을 다각도로 검토해 반도체 라인 파트너라는 최종 직무를 완성했다.

반도체 라인 파트너는 먼지가 통제되는 클린룸 환경에서 생산라인의 청정도를 유지하는 장비 관리와 물류 이동을 전담한다. 주요 업무는 쉘프와 스미프 등 주요 공정 장비의 청결 상태를 관리하고 반도체 원판인 웨이퍼 이동을 지원하는 것이다. 반도체 공정은 미세한 오염이나 먼지에도 생산 수율이 직격탄을 맞기 때문에 철저한 청정 관리와 정확한 물류 흐름은 공정 안정성 유지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기업 내부에서도 초기에는 클린룸 환경 내 장애인 고용 가능성에 대해 신중한 검토가 이뤄졌다. 작업 동선과 장비 접근 방식, 안전 규정이 매우 엄격하게 관리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정 전체를 분석하고 직무를 잘게 쪼개는 방식으로 접근해 기존 인력 운영 체계 안에서 새로운 역할을 충분히 설계할 수 있었다. 공단은 시각화된 작업 매뉴얼과 단순화된 동선 등 맞춤형 단계별 직무 로드맵을 제공해 현장 안착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이러한 개별 기업의 끈질긴 노력과 공단의 지원이 맞물리면서 거시적인 장애인 고용 지표도 개선되는 추세다. 전체 장애인 고용률은 2023년 3.17퍼센트에서 2024년 3.21퍼센트로 소폭 상승했다. 공공부문이 3.9퍼센트, 민간부문이 3.03퍼센트를 기록했다. 특히 고용저조 사업체를 대상으로 한 맞춤형 컨설팅을 통해 498개소에서 총 2873명이 신규 채용되는 가시적인 성과도 거두었다.




탈시설 논쟁 20년, 인권과 돌봄 사이에서 길을 묻다

지역사회 인프라 확충과 개인별 지원체계 정교화 병행해야 실질적 선택권 보장

<사진= AI Gemini 생성 이미지>

탈시설의 근거는 분명하다. 2008년 발효된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은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살아갈 권리를 명시하고, 특정한 거주시설에서의 분리·격리를 강요받지 않을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협약 제19조는 국가가 지역사회 기반 서비스와 개인별 지원을 확충할 의무가 있음을 분명히 한다. 이러한 국제 기준에 비춰볼 때, 대규모 수용시설 중심의 정책은 장기적으로 재검토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일부 시설에서는 인권침해 사건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며 구조적 한계를 드러내 왔다.

그러나 현실은 단순하지 않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에는 여전히 수만 명의 장애인이 거주시설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발달장애나 중증 중복장애가 있는 경우 24시간 지원이 필수적인 사례도 적지 않다. 지역사회 기반 서비스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시설을 일괄적으로 축소하거나 폐쇄할 경우, 당사자와 가족에게 돌봄 부담이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활동지원 인력 부족, 주거공간 확보 난항, 의료·행정 서비스 연계 미흡 등의 문제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해외 사례는 시사점을 제공한다. 스웨덴은 1990년대 초 ‘정상화’ 이념에 따라 대규모 수용시설을 단계적으로 폐쇄했지만, 동시에 소규모 그룹홈과 개인별 지원예산 제도를 확충했다. 독일 역시 연방 차원의 장애인참여법을 통해 개인예산제와 지역사회 통합 서비스를 확대하며 시설 의존도를 낮춰왔다. 공통점은 시설 폐쇄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지역사회에서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지원체계를 선행·병행했다는 점이다. 충분한 재정 투입과 전문 인력 양성, 주거·고용·의료 정책의 연계가 뒤따르지 않으면 탈시설은 선언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교훈이다.

국내에서도 변화의 조짐은 있다. 일부 지자체는 자립지원주택을 도입하고, 개인별 서비스 계획을 수립하는 시범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 간 격차가 크고, 지원 수준이 당사자의 실제 욕구를 충족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발달장애인의 경우 도전적 행동에 대응할 전문 인력과 위기지원 체계가 미비해 지역사회 전환이 지연되는 사례가 보고된다.

결국 쟁점은 ‘탈시설이냐 유지냐’의 이분법이 아니라, 선택권을 어떻게 실질화할 것인가에 있다. 선택권이란 단순히 형식적 거주지 선택을 의미하지 않는다. 충분한 활동지원 시간, 안정적 주거, 접근 가능한 의료, 소득 보장과 고용 기회가 종합적으로 갖춰질 때 비로소 현실적 선택이 가능해진다. 시설 거주를 당분간 선택하는 경우에도 인권 기준과 서비스 질을 강화해 지역사회와의 단절을 최소화해야 한다.

정책적 해법은 단계적 전환과 기반 확충의 병행에 있다. 첫째, 지역사회 서비스 확충을 국가 책임으로 명확히 하고 중장기 재정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둘째, 개인별 지원계획 수립 과정에 당사자와 가족, 현장 전문가의 참여를 제도화해 형식적 절차에 머물지 않도록 해야 한다. 셋째, 시설 역시 폐쇄 여부를 넘어 소규모화·개방화·전문화 등 구조 개편을 통해 지역사회와 연계된 지원 거점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2024년 직무개발사업 우수사례 (2)] 기술이 허문 장애의 벽, 건설 현장 ‘안전 관제’의 패러다임을 바꾸다

고용 부담금 대신 직무 혁신 택한 DL E&C의 실험과 산재 예방의 상관관계 분석

<사진=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제공>

건설업의 장애인 고용은 그간 ‘불가능에 대한 도전’에 가까웠다. 2023년 민간 부문 산업별 장애인 고용 현황에 따르면 건설업의 장애인 고용률은 1.98%로, 전체 20개 산업 중 17위에 머물러 있다. 이는 현장의 험준한 지형과 육체노동 중심의 공정 특성상 장애인이 활약할 공간이 좁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DL E&C는 시각적 관찰과 판단이 핵심인 ‘안전 모니터링’에 주목했다. 실시간 CCTV 피드를 통해 안전모 미착용이나 중장비 작업 반경 내 보행자 진입을 감시하는 업무는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지만, 물리적 이동성은 필수 조건이 아니다. 이를 통해 중증장애인이 재택근무로 현장의 안전을 지키는 역설적이지만 효율적인 구조가 완성되었다.

전지혜 인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존의 장애인 고용이 기업의 시혜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단순 반복 업무였다면, 이번 모델은 기업의 핵심 리스크인 ‘산업재해’를 관리하는 중추적 역할을 맡겼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한 “특히 현장 경험이 있는 산재 장애인을 관제 요원으로 투입한 것은 그들이 가진 ‘현장의 감각’을 안전 데이터로 치환한 영리한 설계”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채용된 인원 중 상당수는 과거 건설 현장에서 근무하다 불의의 사고를 당한 이들로, 누구보다 위험 요소를 직관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현장의 목소리도 긍정적이다. DL E&C의 한 안전관리 담당자는 “본사 관제실에서 파악하지 못하는 세밀한 현장의 움직임을 재택 관제 요원들이 실시간으로 잡아내 무전으로 전파할 때 그 효과를 체감한다”며 “초기에는 관제 정확도에 의구심이 있었으나 현재 유효 관제율이 90%를 상회하면서 현장 소장들 사이에서도 추가 인력 배치를 요청하는 목소리가 높다”고 전했다. 이는 장애인 고용이 비용 지출이 아닌, 사고 예방을 통한 비용 절감 효과(Cost-Saving)로 이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참여 근로자들의 삶의 질 변화 역시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중증장애인 A씨는 “신체적 제약으로 대기업 취업은 꿈도 꾸지 못했고, 특히 지방 거주 장애인은 기회조차 적었다”며 “기술의 도움으로 현장의 안전을 지킨다는 자부심과 함께 안정적인 소득원을 얻게 되어 삶의 활력을 찾았다”고 말했다. 이는 장애인 고용 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단순히 ‘일자리 숫자’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매개로 거주지와 신체 조건의 제약을 없애는 ‘직무 최적화’에 있음을 증명한다.

서울지역본부는 이번 DL E&C의 성공 사례를 가이드라인으로 제작해 국내 주요 건설사 및 대규모 플랜트 산업군으로 확산시킬 계획이다. 단순한 고용 부담금 납부로 의무를 회피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기술과 인간의 협업을 통해 산업 현장의 안전망을 촘촘히 하는 이 모델은 ESG 경영의 실천적 대안으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결국 ‘건설 현장 안전 사각지대 지킴이’의 확산은 장애인에게는 장벽 없는 일자리를, 기업에게는 사고 없는 작업 환경을 제공하는 지속 가능한 산업 생태계 구축의 신호탄이 되고 있다.




[2024년 직무개발사업 우수사례 (1)] 단순노무 넘어 ‘품질관리’로… 중증장애인 일자리, 농업 현장에서 답을 찾다

대덕구장애인종합복지관 ‘농산물 품질관리원’ 모델 시범운영… 17명 참여, 11명 취업 연결

<사진=한국장애인고용공단 제공>

올해 선정된 주요 우수 직무를 살펴보면 이러한 변화가 뚜렷하다. 고용노동부 장관상을 받은 인공지능 농업로봇 오퍼레이터를 비롯해 소방 안전 파트너스, 공유모빌리티 안전관리원, 비주얼그래픽 디자이너, 유제품 가공 관련 직무 등 다방면에서 고도화된 직무가 발굴됐다.

특히 농산물 유통 과정에서 필요한 품질 관리 업무를 장애인 직무로 개발한 사례는 고용 영역이 생산 현장으로 확장될 가능성을 보여주며 큰 주목을 받았다. 공단이 추진한 중증장애인 고용모델 개발 사업의 하나로 대덕구장애인종합복지관은 농산물 품질관리원 직무를 재구성하는 시범사업을 진행했다. 이 사업은 농산물 유통 과정의 외관 확인, 중량 점검, 선별 상태 확인, 기록 관리 등을 세분화해 장애인이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시범사업은 약 7개월 동안 운영되며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발달장애인과 정신장애인 17명이 참여해 전문 교육을 받았으며 이 가운데 15명이 과정을 수료해 약 88퍼센트의 높은 수료율을 기록했다. 이후 지역 농산물 유통업체 등에 실제로 취업한 인원은 11명으로 취업률은 약 73퍼센트에 달했다. 단순 체험이나 단기 훈련에 그치지 않고 실제 고용으로 직결됐다는 점에서 직무개발 사업의 실효성을 입증한 사례로 평가된다.

농산물 품질관리 업무는 농산물의 상품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산지유통센터와 공판장에서는 농산물의 외형 상태와 손상 여부를 비롯해 크기와 무게 등을 확인하고 유통 단계의 품질 기준을 관리한다. 그동안 숙련된 작업자나 관리 인력이 주로 담당했던 이 업무를 세분화하고 표준화된 체크리스트를 적용하자 반복 수행이 가능한 장애 적합 직무로 탈바꿈했다.

직무개발 과정에서는 실제 작업 흐름을 분석해 업무 단계를 근본적으로 다시 설계했다. 품질 판별 기준을 시각적으로 알기 쉽게 정리하고 작업 순서를 매뉴얼로 만들었으며 기록 작성 방식도 단순화했다. 교육 과정에서는 농산물 품질 판별 방법, 위생 관리, 작업 안전 등을 중심으로 이론 교육과 현장 실습을 병행했다. 기존 업무 구조 자체를 장애인의 특성에 맞춰 재구성했다는 점이 이번 모델의 가장 큰 특징이다.

농업 유통 현장의 구조적 상황도 이러한 직무 모델의 정착 가능성을 높인다. 유통 과정에서 상품 선별과 품질 관리가 점차 중요해지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상시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산지유통센터의 경우 계절에 따라 물량이 급증하면서 품질 확인과 기록 관리에 필요한 인력 수요가 꾸준히 발생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산업 구조의 빈틈이 장애인 직무 개발과 훌륭하게 연결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직업재활 분야 연구자들은 산업 현장에서 실제로 요구하는 업무를 분석하고 재설계하는 방식이 고용 확대의 핵심 과제라고 지적한다. 단순 보조 업무 확대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며 현장의 생산 구조와 맞닿은 직무가 만들어질 때 장기적인 고용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직무 표준화와 교육 체계가 안정적으로 구축된다면 농업 비중이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맞춤형 장애인 일자리 모델이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본격적인 확산을 위해 해결해야 할 제도적 과제도 남아 있다. 현재 개발된 직무 모델은 발달장애인과 정신장애인을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지체장애인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작업대 높이 조정, 이동 동선 확보, 보조 장비 도입 등 물리적 작업 환경 개선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또한 직무개발 사업의 실질적 효과를 증명하려면 취업 이후의 고용 유지율, 임금 수준, 장기 근속 가능성 등을 지속해서 추적하고 분석해야 한다. 단순히 취업 문을 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안정적인 고용 생태계로 안착하고 있는지에 대한 장기적인 평가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

중증장애인 고용 정책은 이제 단순 의무고용 충족을 위한 양적 확대에서 벗어나 질적 전환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새롭게 개발된 다양한 직무 모델들은 장애인 일자리가 보호적 영역을 넘어 산업 구조의 핵심으로 파고들 수 있음을 증명하는 의미 있는 첫걸음이다.




[기획] 장애인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력-직무개발 우수사례 소개

<사진= 장애인고용공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