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직무개발사업 우수사례 (4)] 건설업 ‘고용 부적합’의 편견을 깨다…삼성물산이 설계한 ‘디지털 포용’의 청사진

‘부담금’ 대신 ‘직무 재설계’ 선택
현장 중심 건설업의 장애인 고용 난제 풀 솔루션 제시

<사진= 장애인고용공단 제공>

대표적인 사례로 제시된 것은 삼성물산 건설부문에서 도입한 ‘도면 관리 파트너’ 직무다. 건설업은 높은 현장 의존도와 안전 문제 등으로 인해 장애인 고용이 제한적이라는 인식이 오랫동안 존재해 왔다. 실제로 건설 현장은 이동과 물리적 작업이 많고 안전 관리 기준이 엄격해 장애인 근로자의 배치가 쉽지 않은 환경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이유로 일부 기업들은 장애인 직접 고용 대신 장애인 고용부담금 납부를 선택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건설 산업 역시 디지털 전환 흐름이 확산되면서 업무 구조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특히 건설 설계와 시공 과정에서 BIM(Building Information Modeling) 등 디지털 설계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도면 관리와 데이터 검증, 설계 정보 관리 등 새로운 업무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이러한 산업 변화에 주목해 기존 업무를 재구성하고 장애인 근로자가 수행할 수 있는 직무 영역을 새롭게 설계했다.

도면 관리 파트너 직무는 프로젝트 설계 도면의 버전 관리와 오류 점검, 데이터 정합성 확인 등 디지털 설계 정보 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역할로 구성됐다. 과거에는 종이 도면을 들고 현장을 이동하며 확인해야 했던 작업이 많았지만, 디지털 설계 시스템 도입 이후에는 컴퓨터 기반의 데이터 검증과 관리 업무 비중이 크게 확대됐다. 기업은 이러한 업무 특성을 반영해 신체적 이동 부담을 최소화하면서도 프로젝트 운영에 필요한 핵심 정보를 관리하는 직무 구조를 구축했다.

직무 개발 과정에서는 기업 내부 인사 담당 부서와 장애인 고용 관련 전문기관이 함께 참여해 업무 분석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 안전 규정과 보안 기준을 검토해 사무실 환경에서도 수행 가능한 업무 범위를 도출하고, 직무 수행에 필요한 교육과 업무 매뉴얼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직무 체계를 설계했다. 이러한 과정은 단순한 보조 업무 배치가 아니라 실제 프로젝트 운영 과정에서 활용 가능한 업무 영역을 중심으로 직무를 구성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장에서는 설계 도면의 버전 관리와 오류 검증이 체계화되면서 프로젝트 운영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설계 혼선을 줄이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설계 변경이 잦은 건설 프로젝트의 특성상 도면 관리 체계가 안정적으로 운영될 경우 공정 관리와 협업 효율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장애인 고용이 단순한 사회공헌 활동을 넘어 업무 효율성과 품질 관리 측면에서도 일정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사례가 장애인 고용 논의를 ‘가능 여부’에서 ‘직무 설계 방식’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산업 구조 변화와 디지털 기술 확산에 따라 기존에는 물리적 작업 중심이었던 업무가 데이터 관리와 시스템 운영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장애인 근로자가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직무 영역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사례가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도 남아 있다. 건설업의 경우 중소 규모 기업 비중이 높은 만큼 직무 매뉴얼의 표준화와 교육 체계 구축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또한 디지털 설계 시스템 활용 역량을 갖춘 인력 양성과 기업 현장의 인식 개선도 장애인 고용 확대를 위해 필요한 조건으로 꼽힌다.




민주주의 위기 넘긴 대한민국, 선진국의 기준은 사회적 약자에 있다

계엄 해제와 평화적 정권 교체로 제도적 복원력 입증… 이동권·탈시설·복지 지출 수준은 여전히 과제

<사진=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대한민국은 이미 국제사회에서 경제적 선진국으로 분류된다. 2021년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한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 그룹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변경했다. 이는 1964년 UNCTAD 창설 이후 처음 있는 사례였다.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세계 10위권 안팎을 유지하고 있으며, 반도체·자동차·배터리 등 주력 산업의 수출 경쟁력도 공고하다.

문화적 영향력 역시 확대됐다. 2020년 영화 ‘기생충’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4관왕을 차지했다. 음악 그룹 방탄소년단은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100’ 1위를 기록하며 세계 대중음악 시장의 중심에 섰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 한국 드라마와 예능 콘텐츠가 상위권을 차지하는 현상도 이어지고 있다. 경제와 문화 영역에서 한국의 위상은 더 이상 주변부가 아니다.

그러나 선진국의 기준은 성장률이나 수출 실적에만 있지 않다. 사회적 약자를 얼마나 두텁게 보호하느냐는 또 다른 척도다. 이 지점에서 한국 사회는 여전히 구조적 과제를 안고 있다.

장애인 이동권 문제는 대표적 사례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수년째 지하철 역사와 도심 곳곳에서 저상버스 확대,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 특별교통수단 확충 등을 요구해 왔다. 국토교통부와 각 지방자치단체는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 계획에 따라 저상버스 도입을 확대하고 있지만, 지역 간 격차는 여전하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전국 저상버스 도입률은 30%대를 넘어섰으나 일부 지방 중소도시에서는 여전히 절반에 못 미친다. 출퇴근 시간대 지하철 시위가 반복되는 배경에는 이러한 체감 격차가 자리하고 있다.

탈시설 정책도 사회적 논쟁이 이어지는 분야다. 보건복지부는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을 지원하기 위한 단계적 탈시설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지역사회 주거 지원과 활동지원 서비스를 확대해 시설 중심 보호 체계에서 벗어나겠다는 구상이다. 반면 일부 시설 운영자와 보호자 단체는 지역사회 인프라와 의료·돌봄 체계가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급격한 전환은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탈시설은 권리 보장이라는 가치와 안전 확보라는 현실 과제가 맞물린 정책 영역이다.

발달장애인 돌봄 공백 문제도 반복적으로 제기된다. 정부는 발달장애인 지원 종합대책을 통해 주간활동 서비스와 긴급돌봄 체계를 확대하고 있으나, 현장에서는 인력 부족과 낮은 서비스 단가를 구조적 한계로 지적한다. 일부 복지기관은 예산 부담으로 프로그램을 축소하거나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기관 운영 문제가 아니라 국가 재정 우선순위와 직결된 사안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공공사회복지 지출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나 국내총생산 대비 비율은 여전히 OECD 평균보다 낮은 수준으로 평가된다. 고령화 속도가 빠른 점을 감안하면 향후 복지 수요는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재정 건전성과 복지 확충 사이에서 어떤 균형을 선택할 것인지는 중장기 정책 방향을 가르는 핵심 변수다.

2024년과 2025년을 거치며 확인된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력이다. 헌법적 절차에 따른 권력 통제와 시민의 참여는 국제사회에서도 주목받았다. 그러나 정치적 위기 대응 능력이 곧바로 사회적 약자의 삶의 질 개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동권, 탈시설, 돌봄 체계, 복지 재정과 같은 문제는 일상 속에서 지속적으로 드러나는 구조적 과제다.




[2024년 직무개발사업 우수사례 (3)] 클린룸 문턱 낮춘 ‘반도체 라인 파트너’… DB하이텍 사례로 본 첨단 산업 장애인 고용의 확장 가능성

한국장애인고용공단과 협업해 생산공정 직무 재설계, 중증장애인 11명 채용
직무 구조화와 현장 적응 지원이 성패 가른다

<사진=한국장애인고용공단 제공>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발간한 ‘2024년 직무개발사업 우수사례집’에는 이러한 변화 흐름을 보여주는 다양한 사례가 담겼다. 공단이 추진한 직무개발사업은 산업 현장에서 장애인이 수행할 수 있는 직무를 새롭게 발굴하고 이를 실제 고용으로 연결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번 사례집에는 선도기업 전략직종 직무개발, 현장 중심 직무개발, 중증장애인 고용모델 개발·확산사업 등을 통해 발굴된 13건의 우수 사례와 함께 164건의 직무 아이디어 공모 결과가 수록됐다.

이 가운데 반도체 기업인 ㈜DB하이텍 사례는 첨단 제조업 현장에서 장애인 직무를 설계한 사례로 주목된다. 기업과 공단이 협력해 생산공정 내에서 수행 가능한 역할을 재구성한 결과, 중증장애인을 포함한 장애인 11명이 참여하는 새로운 직무가 도입됐다.

직무 개발 과정에는 기업 인사 담당자와 현업 부서, 직무 컨설팅 기관, 공단 관계자 등이 참여했다. 직무디자인팀은 반도체 생산라인 전반을 분석해 장애인 수행 가능성이 있는 직무 후보군 9개를 도출했고, 공정 안전성, 작업 난이도, 현장 수용성, 생산 기여도 등을 기준으로 검토를 진행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도입된 직무가 ‘반도체 라인 파트너’다.

반도체 라인 파트너는 클린룸 환경에서 생산라인의 청정도를 유지하기 위한 장비 관리와 물류 이동을 담당한다. 주요 업무는 쉘프와 스미프(SMIF) 장비의 청결 상태를 관리하고 웨이퍼와 POD 이동을 지원하는 것이다. 반도체 공정은 미세한 오염에도 수율이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생산 환경의 청정 관리와 정확한 물류 흐름은 공정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요소로 평가된다.

기업 내부에서도 초기에는 반도체 생산공정에서 장애인 고용이 가능할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했다. 클린룸 환경은 작업 동선과 장비 접근 방식, 안전 규정이 엄격하게 관리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정 전체를 분석해 직무를 세분화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면서 기존 인력 운영 체계 안에서도 새로운 역할을 설계할 수 있다는 판단이 내려졌다는 설명이다.

공단은 직무 도입 이후 현장 적응을 지원하기 위한 단계별 직무 로드맵을 제공했다. 작업 매뉴얼을 시각적으로 정리하고 작업 동선을 단순화하는 방식으로 교육 체계를 마련했으며, 반복 훈련을 통해 업무 숙련도를 높이는 방식의 직무 구조화 전략이 적용됐다. 이러한 과정은 장애인 고용이 단순 채용 확대가 아니라 공정 운영 체계 안에 직무를 구조적으로 통합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지속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번 사례는 공단이 선정한 2024년 직무개발사업 우수사례 가운데 하나로 소개됐다. 첨단 산업의 핵심 생산 영역에서 장애인 직무를 설계했다는 점이 주요 평가 배경으로 언급됐다. 산업 현장에서 장애인 고용이 사무 지원이나 단순 업무에 머물지 않고 생산 공정 지원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는 평가다.

DB하이텍은 DB그룹 계열의 파운드리 기업으로 모바일, 자동차, 의료기기 등 다양한 산업에 사용되는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업이 생산공정 내부에 장애인 직무를 도입했다는 점은 다른 제조업 분야에도 일정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장애인 고용 전문가들은 첨단 산업에서 고용 확대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기존 직무를 단순히 분리하는 방식보다 공정 전체를 분석해 새로운 역할을 설계하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산업 현장의 업무는 더욱 세분화되며, 이러한 과정에서 장애인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직무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탈시설 논쟁 20년, 인권과 돌봄 사이에서 길을 묻다

지역사회 인프라 확충과 개인별 지원체계 정교화 병행해야 실질적 선택권 보장

<사진= AI Gemini 생성 이미지>

탈시설의 근거는 분명하다. 2008년 발효된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은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살아갈 권리를 명시하고, 특정한 거주시설에서의 분리·격리를 강요받지 않을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협약 제19조는 국가가 지역사회 기반 서비스와 개인별 지원을 확충할 의무가 있음을 분명히 한다. 이러한 국제 기준에 비춰볼 때, 대규모 수용시설 중심의 정책은 장기적으로 재검토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일부 시설에서는 인권침해 사건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며 구조적 한계를 드러내 왔다.

그러나 현실은 단순하지 않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에는 여전히 수만 명의 장애인이 거주시설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발달장애나 중증 중복장애가 있는 경우 24시간 지원이 필수적인 사례도 적지 않다. 지역사회 기반 서비스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시설을 일괄적으로 축소하거나 폐쇄할 경우, 당사자와 가족에게 돌봄 부담이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활동지원 인력 부족, 주거공간 확보 난항, 의료·행정 서비스 연계 미흡 등의 문제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해외 사례는 시사점을 제공한다. 스웨덴은 1990년대 초 ‘정상화’ 이념에 따라 대규모 수용시설을 단계적으로 폐쇄했지만, 동시에 소규모 그룹홈과 개인별 지원예산 제도를 확충했다. 독일 역시 연방 차원의 장애인참여법을 통해 개인예산제와 지역사회 통합 서비스를 확대하며 시설 의존도를 낮춰왔다. 공통점은 시설 폐쇄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지역사회에서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지원체계를 선행·병행했다는 점이다. 충분한 재정 투입과 전문 인력 양성, 주거·고용·의료 정책의 연계가 뒤따르지 않으면 탈시설은 선언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교훈이다.

국내에서도 변화의 조짐은 있다. 일부 지자체는 자립지원주택을 도입하고, 개인별 서비스 계획을 수립하는 시범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 간 격차가 크고, 지원 수준이 당사자의 실제 욕구를 충족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발달장애인의 경우 도전적 행동에 대응할 전문 인력과 위기지원 체계가 미비해 지역사회 전환이 지연되는 사례가 보고된다.

결국 쟁점은 ‘탈시설이냐 유지냐’의 이분법이 아니라, 선택권을 어떻게 실질화할 것인가에 있다. 선택권이란 단순히 형식적 거주지 선택을 의미하지 않는다. 충분한 활동지원 시간, 안정적 주거, 접근 가능한 의료, 소득 보장과 고용 기회가 종합적으로 갖춰질 때 비로소 현실적 선택이 가능해진다. 시설 거주를 당분간 선택하는 경우에도 인권 기준과 서비스 질을 강화해 지역사회와의 단절을 최소화해야 한다.

정책적 해법은 단계적 전환과 기반 확충의 병행에 있다. 첫째, 지역사회 서비스 확충을 국가 책임으로 명확히 하고 중장기 재정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둘째, 개인별 지원계획 수립 과정에 당사자와 가족, 현장 전문가의 참여를 제도화해 형식적 절차에 머물지 않도록 해야 한다. 셋째, 시설 역시 폐쇄 여부를 넘어 소규모화·개방화·전문화 등 구조 개편을 통해 지역사회와 연계된 지원 거점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2024년 직무개발사업 우수사례 (2)] 기술이 허문 장애의 벽, 건설 현장 ‘안전 관제’의 패러다임을 바꾸다

고용 부담금 대신 직무 혁신 택한 DL E&C의 실험과 산재 예방의 상관관계 분석

<사진=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제공>

건설업의 장애인 고용은 그간 ‘불가능에 대한 도전’에 가까웠다. 2023년 민간 부문 산업별 장애인 고용 현황에 따르면 건설업의 장애인 고용률은 1.98%로, 전체 20개 산업 중 17위에 머물러 있다. 이는 현장의 험준한 지형과 육체노동 중심의 공정 특성상 장애인이 활약할 공간이 좁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DL E&C는 시각적 관찰과 판단이 핵심인 ‘안전 모니터링’에 주목했다. 실시간 CCTV 피드를 통해 안전모 미착용이나 중장비 작업 반경 내 보행자 진입을 감시하는 업무는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지만, 물리적 이동성은 필수 조건이 아니다. 이를 통해 중증장애인이 재택근무로 현장의 안전을 지키는 역설적이지만 효율적인 구조가 완성되었다.

전지혜 인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존의 장애인 고용이 기업의 시혜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단순 반복 업무였다면, 이번 모델은 기업의 핵심 리스크인 ‘산업재해’를 관리하는 중추적 역할을 맡겼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한 “특히 현장 경험이 있는 산재 장애인을 관제 요원으로 투입한 것은 그들이 가진 ‘현장의 감각’을 안전 데이터로 치환한 영리한 설계”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채용된 인원 중 상당수는 과거 건설 현장에서 근무하다 불의의 사고를 당한 이들로, 누구보다 위험 요소를 직관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현장의 목소리도 긍정적이다. DL E&C의 한 안전관리 담당자는 “본사 관제실에서 파악하지 못하는 세밀한 현장의 움직임을 재택 관제 요원들이 실시간으로 잡아내 무전으로 전파할 때 그 효과를 체감한다”며 “초기에는 관제 정확도에 의구심이 있었으나 현재 유효 관제율이 90%를 상회하면서 현장 소장들 사이에서도 추가 인력 배치를 요청하는 목소리가 높다”고 전했다. 이는 장애인 고용이 비용 지출이 아닌, 사고 예방을 통한 비용 절감 효과(Cost-Saving)로 이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참여 근로자들의 삶의 질 변화 역시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중증장애인 A씨는 “신체적 제약으로 대기업 취업은 꿈도 꾸지 못했고, 특히 지방 거주 장애인은 기회조차 적었다”며 “기술의 도움으로 현장의 안전을 지킨다는 자부심과 함께 안정적인 소득원을 얻게 되어 삶의 활력을 찾았다”고 말했다. 이는 장애인 고용 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단순히 ‘일자리 숫자’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매개로 거주지와 신체 조건의 제약을 없애는 ‘직무 최적화’에 있음을 증명한다.

서울지역본부는 이번 DL E&C의 성공 사례를 가이드라인으로 제작해 국내 주요 건설사 및 대규모 플랜트 산업군으로 확산시킬 계획이다. 단순한 고용 부담금 납부로 의무를 회피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기술과 인간의 협업을 통해 산업 현장의 안전망을 촘촘히 하는 이 모델은 ESG 경영의 실천적 대안으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결국 ‘건설 현장 안전 사각지대 지킴이’의 확산은 장애인에게는 장벽 없는 일자리를, 기업에게는 사고 없는 작업 환경을 제공하는 지속 가능한 산업 생태계 구축의 신호탄이 되고 있다.




부산, ‘세계자폐인의 날’ 기념 넘어 과제로

기념식·블루라이트 점등 속 자폐 인식 개선과 지역 돌봄체계 점검

<사진= 부산광역시 제공>

세계자폐인의 날은 유엔 총회가 2007년 지정해 2008년부터 시행된 국제기념일이다. 자폐성 장애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당사자의 권리 보장과 사회참여 확대를 촉구하는 데 목적이 있다. 국제사회는 이날을 전후해 공공기관과 주요 건축물을 파란색으로 밝히는 ‘블루라이트 캠페인’을 통해 상징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 부산광역시 제공>

행사는 상징적 의미를 넘어 지역 사회의 과제를 환기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사)한국자폐인사랑협회 부산지부 권민정 지부장은 “자폐성 장애인은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있으며, 지역사회 안에서 안정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관심과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자폐 인식 개선이 단순한 캠페인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발달장애는 조기 발견과 조기 개입이 중요하며, 생애주기별 지원체계가 연속적으로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학령기 이후 성인기 자립 지원, 직업훈련, 지역사회 기반 서비스 확충은 전국적으로 공통된 과제로 꼽힌다.

부산시 정태기 사회복지국장은 “이번 행사가 자폐성 장애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며 “발달장애인에 대한 교육·홍보는 물론, 지역사회 돌봄체계와 자립 지원 정책을 지속적으로 보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세계자폐인의 날은 기념식 하루로 끝나는 행사가 아니라, 자폐성 장애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 속 과제로 바라보는 계기다. 부산의 이번 행사는 상징 캠페인과 문화행사를 통해 시민 참여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동시에 지역 차원의 실질적 지원 정책을 어떻게 확장해 나갈 것인지가 향후 과제로 남는다.




서울형 장애인 개인예산제 1차 시범사업 종료

선택권 넓힌 개인예산, 자립의 디딤돌 될까

<사진= 서울시 제공>

서울특별시는 4월 2일 기준 1차 시범사업 성과를 공개하고, 올해 지원 대상을 기존 100명에서 130명으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특히 그동안 제외됐던 발달장애인을 새롭게 포함해 5월 중 2차 참여자를 모집할 계획이다. 개인별 최대 240만 원을 지원하며, 취·창업, 사회생활, 건강·안전, 주거환경, 일상생활 등 다양한 영역에서 필요한 서비스를 스스로 설계해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개인예산제는 장애인이 복지서비스를 수동적으로 제공받는 구조에서 벗어나, 예산의 일정 범위 안에서 필요한 서비스를 직접 선택하고 조합하는 제도다. 보건복지부는 ‘제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2023~2027)’에 따라 2026년 본사업 시행을 목표로 시범사업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서울형 모델은 이러한 국가 정책 기조 속에서 지역 단위로 구체화된 사례로 평가된다.

1차 시범사업 참여자들의 변화도 공개됐다. 청각장애인 박해리 씨는 개인예산을 활용해 맞춤형 네일아트 교육을 이수한 뒤 네일리스트로 활동을 시작했다. 앞으로 문제성 손발톱 관리 분야 강사에 도전하겠다는 계획이다. 시각장애인 배우 이승규 씨는 개인 레슨을 통해 연기 역량을 강화했고, 뇌병변 장애인 송윤경 씨는 미술 작업 환경을 개선해 창작 활동의 기반을 다졌다.

지난 19일 열린 성과보고회에서는 이 같은 사례가 공유되며 개인 맞춤형 지원의 효과를 점검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참여자들은 공통적으로 “필요한 부분에 예산을 집중할 수 있었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았다.

서울시는 올해 지원 영역에 ‘자기 계발’을 추가해 교육, 취미활동, 자격증 취득 등 역량 강화 분야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단순 돌봄을 넘어 자립과 사회참여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발전시키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관련 정보는 한국장애인재단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돌봄 서비스는 안심돌봄120을 통해 상담받을 수 있다.

다만 제도의 안착을 위해서는 과제도 남아 있다. 예산 설계 과정에서 충분한 상담과 지원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정보 접근성이 낮은 장애인이 소외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또한 지역별 서비스 공급 인프라 격차를 해소하지 못하면 선택권 확대가 형식에 그칠 가능성도 있다.




[2024년 직무개발사업 우수사례 (1)] 단순노무 넘어 ‘품질관리’로… 중증장애인 일자리, 농업 현장에서 답을 찾다

대덕구장애인종합복지관 ‘농산물 품질관리원’ 모델 시범운영… 17명 참여, 11명 취업 연결

<사진=한국장애인고용공단 제공>

이 같은 변화는 직무개발 정책에서 확인된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추진한 중증장애인 고용모델 개발 사업 가운데 하나로 대덕구장애인종합복지관은 농산물 품질관리 업무를 장애인 직무로 재구성하는 시범사업을 진행했다. 해당 사업은 농산물 유통 과정에서 이뤄지는 외관 확인, 중량 점검, 선별 상태 확인, 기록 관리 등의 업무를 세분화해 장애인이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방식으로 추진됐다.

시범사업은 약 7개월 동안 운영됐다. 발달장애인과 정신장애인 등 17명이 참여해 교육 과정을 거쳤으며 이 가운데 15명이 교육을 수료했다. 이후 지역 농산물 유통업체 등에 취업한 인원은 11명으로 나타났다. 단순 체험이나 단기 훈련에 그치지 않고 실제 고용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직무개발 사업의 실효성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된다.

농산물 품질관리 업무는 농산물의 상품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산지유통센터와 공판장에서는 농산물의 외형 상태, 손상 여부, 크기와 무게, 신선도 등을 확인하고 이를 기록해 유통 단계의 품질 기준을 관리한다. 그동안 이러한 업무는 숙련된 작업자나 관리 인력이 담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작업 절차를 세분화하고 표준화된 체크리스트를 적용하면 일정한 규칙에 따라 반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업무 특성이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직무개발 과정에서는 실제 작업 흐름을 분석해 업무 단계를 다시 설계했다. 품질 판별 기준을 시각적으로 정리하고 작업 순서를 매뉴얼화했으며 기록 작성 방식도 단순화했다. 교육 과정에서는 농산물 품질 판별 방법, 위생 관리, 작업 안전, 기록 작성 방법 등을 중심으로 이론 교육과 현장 실습을 병행했다. 단순한 직무 배치가 아니라 기존 업무 구조 자체를 재구성했다는 점이 이번 모델의 특징으로 평가된다.

농업 유통 현장의 구조적 상황도 이러한 직무 모델의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농산물 유통 과정에서는 상품 선별과 품질 관리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지만 상시 인력 확보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산지유통센터에서는 계절에 따라 물량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품질 확인과 기록 관리 업무에 필요한 인력 수요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산업 구조가 장애인 직무 개발과 연결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직업재활 분야 연구자들은 산업 현장에서 실제로 필요한 업무를 분석해 직무를 재설계하는 방식이 장애인 고용 확대의 핵심 과제라고 지적한다. 단순 보조 업무를 늘리는 방식으로는 고용 확대에 한계가 있으며 산업 현장의 생산 구조와 연결된 직무가 만들어질 때 장기적인 고용 안정성이 확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농업 분야는 특히 지역 기반 산업이라는 점에서 직무 확산 가능성도 제기된다. 농업 비중이 높은 지역에서는 산지유통센터와 농산물 선별 시설이 지역 곳곳에 분포해 있어 품질 관리와 기록 관리 업무 수요가 꾸준히 발생한다. 직무 표준화와 교육 체계가 안정적으로 구축될 경우 지역 맞춤형 장애인 일자리 모델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제도적 과제도 남아 있다. 현재 직무는 발달장애인과 정신장애인을 중심으로 설계돼 있어 지체장애인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작업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작업대 높이 조정, 이동 동선 확보, 보조 장비 도입 등 물리적 환경 개선이 병행돼야 다양한 장애 유형이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직무개발 사업의 효과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취업 이후 고용 유지율, 임금 수준, 장기 근속 가능성 등을 지속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직무 개발이 단순한 취업 연결에 그치지 않고 안정적인 고용 구조로 이어지는지에 대한 장기적인 평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중증장애인 고용 정책은 최근 양적 확대에서 질적 전환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 단순 의무고용 충족을 위한 일자리 제공을 넘어 산업 현장의 실제 업무와 연결된 직무를 발굴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농산물 품질관리 직무 모델은 이러한 변화의 방향을 보여주는 사례로, 장애인 고용이 보호적 영역을 넘어 산업 구조 속으로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실험으로 평가된다.




[기획] 장애인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력-직무개발 우수사례 소개

<사진= 장애인고용공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