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비하·모욕도 명백한 차별…실효적 권리구제 기준 마련 촉구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18주년 기념 토론회, 괴롭힘 차별행위 판단기준 정립 논의

장애인에 대한 언어적 비하와 모욕, 혐오표현을 차별행위로 명확히 규율하고 실효적 권리구제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단순한 무례한 언행으로 치부되던 괴롭힘이 장애인 당사자에게 심각한 정신적 피해를 안긴다는 현실 인식 아래, 국가인권위원회의 판단 기준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는 요구가 법조계와 장애계 전반에서 제기되고 있다.
서미화 의원(더불어민주당, 보건복지위)은 지난 10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18주년 기념 토론회: ‘괴롭힘’ 차별행위의 쟁점과 과제’를 개최했다.
이번 토론회는 서미화 의원이 대표발의해 지난해 9월 시행된 개정 장애인차별금지법이 ‘괴롭힘 등’을 차별행위로 명확히 규정한 데 따른 후속 논의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법이 바뀌었지만 현장에서 실효성 있게 작동하려면 국가인권위의 판단 기준부터 구체적으로 세워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배경이 됐다.
장애인에 대한 괴롭힘은 눈에 보이는 물리적 폭력보다 훨씬 넓은 영역에서 발생한다. 모욕적 발언, 집단적 비하, 혐오 표현, 반복적인 부당 대우 등 다양한 형태의 정신적 침해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러한 행위는 장애인 당사자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지역사회 참여를 가로막는 구조적 차별로 이어진다. 혐오표현은 개인을 직접 겨냥하지 않더라도, 특정 집단 전체를 비하하거나 적대적으로 묘사함으로써 그 집단에 속한 구성원 모두의 존엄을 훼손한다. 인권 전문가들은 이런 발언이 사회 전반에 적대적 분위기를 확산시켜 장애인의 심리적 안전감을 위협한다고 지적한다.
국제사회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UN CRPD)은 장애인의 존엄성과 동등한 인정을 명시하고 있으며,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는 대한민국의 장애인 혐오표현 및 낙인 문제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왔다. 국제 기준은 혐오표현을 단순한 언어적 무례함이 아닌, 차별과 폭력을 부추기는 행위로 규율할 것을 각국에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현실은 이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임성택 공익법단체 두루 이사장은 국가인권위의 괴롭힘 관련 사건 기각·각하 비율이 높은 점을 문제로 제기했다. 그는 “국가인권위는 형사처벌 기관이 아닌 인권구제 기구인 만큼, 특정 개인을 직접 겨냥하지 않은 집단 비하 발언이라 해도 인격권을 침해한다면 차별로 인정하는 적극적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공직자나 정치인의 장애 비하 발언에 대한 진정이 국가인권위에 접수되더라도 각하 처리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어, 피해자 입장에서는 제도적 구제가 사실상 막혀 있다는 불만이 누적돼 왔다.
두 번째 발제자인 이승헌 (사)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은 “정치인 등의 언어적 혐오가 심각한 수준임에도 국가인권위의 판단이 형사법적 기준에 치우쳐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장애인에 대한 혐오표현을 차별로 판단하는 국제 기준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혐오표현은 언어에 그치지 않고 제스처, 영상, 온라인 게시물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며, 이를 방치할 경우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고착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덧붙였다.
토론에 나선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장애인 혐오표현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별도 규정을 신설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조혜인 변호사(희망을만드는법)는 불특정 다수를 향한 비하 발언도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일상적으로 접하는 적대적 환경을 구성하는 만큼, 이를 괴롭힘으로 규율할 법리적 근거를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괴롭힘의 범위를 개인 간 직접적 행위에 국한하지 않고 환경적·구조적 차원으로 넓혀야 한다는 논의가 이날 토론의 핵심 흐름을 이뤘다.
안은자 국가인권위원회 장애차별조사1과장은 비하 발언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 기준 정립이 인권위의 당면 과제임을 설명했다. 이진우 보건복지부 장애인권익지원과 사무관은 개정법이 현장에서 실효성을 가질 수 있도록 부처 간 집행체계를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서미화 의원은 인사말에서 “개정안을 통해 모욕과 비하 등 정신적 인권 침해까지 차별의 범위를 확장한 것은 중요한 진전”이라며 “이제는 국가인권위가 적극적인 판단 기준을 확립해 실효적 권리구제의 토대를 닦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숙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은 “괴롭힘을 구조적 차별로 규정한 법 개정의 취지를 살려 조사 및 구제 역량 강화에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박김영희 (사)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대표는 “이번 토론회가 장애 당사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 변화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미화 의원은 마무리 발언에서 “오늘 토론에서 제안된 내용을 바탕으로 장애인 권리구제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입법 방안을 적극 모색하겠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