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원의사결정(SDM) 전문가가 발달장애인 곁에서 의사결정 도움 –

국민권익위원회(위원장 유철환)가 정부의 장애인 탈시설 정책에 대해 “획일적 접근은 오히려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발달장애인을 위한 맞춤형 돌봄 체계 구축을 보건복지부에 권고했다. 핵심은 ‘탈시설’이라는 일방적 방향보다는, 발달장애인의 상태와 의사에 따른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고,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현재 국내 발달장애인은 약 26만 명에 이르며, 이 중 70% 이상이 평생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들을 실제로 돌보고 있는 주체는 국가가 아닌 고령의 부모들로, 대부분 어머니가 돌봄의 중심 역할을 맡고 있다. 자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는 부모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녀가 남겨진 이후’의 삶이다.
권익위는 이러한 현실을 반영해, ‘진정한 인권은 똑같이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다름에 맞는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이라는 원칙 아래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했다. 특히, 발달장애인의 상태가 의사소통이 가능한 경증부터 일상생활조차 어려운 중증까지 다양한 만큼, 동일한 자립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강조했다.
가장 눈에 띄는 권고 사항은 ‘지원의사결정제도(Supported Decision Making, SDM)’의 도입이다. 이 제도는 의사소통이 어려운 중증 발달장애인을 위해, 전문교육을 받은 SDM 전문가가 당사자의 곁에서 의사결정을 도와주는 방식이다. 이는 보호자가 대신 결정하는 구조가 아니라, 당사자가 자신의 의사를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돕고, 반복적인 확인을 통해 의사를 해석하는 방식이다.
국민권익위는 시설 입소나 자립주택 이주 등 중대한 결정은 보호자나 시설 관계자만의 판단에 맡길 것이 아니라, 발달장애인을 장기간 관찰해 온 전문의 및 행동발달 전문가의 의견이 반영되도록 제도화할 것을 제안했다.
또한 전국을 5개 권역으로 나누어 거점병원과 행동발달증진센터를 확대 지정하고, 각 권역마다 전문 의료진과 행동치료사가 상시 근무할 수 있는 기반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다양한 주거 유형의 도입도 권고했다. 그룹홈 형태의 ‘자활꿈터’, 협동주거(코하우징) 전문시설, 도전적 행동 치료 집중시설 등 여러 형태의 주거 모델을 마련하고, 일정 기간 거주 후 자유롭게 주거 유형을 변경할 수 있는 제도적 선택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돌봄 서비스의 투명성과 전문성 강화를 위한 제안도 포함됐다. 활동지원사 부정 등록, 급여 허위 청구 등 보조금 부정수급을 방지하기 위해 「장애인복지법」에 법인 분리 및 겸직 금지 조항을 신설하고, 외부 감사 및 이용자 만족도 조사 등의 정기 점검을 제도화할 것을 요청했다.
아울러 학대받는 장애인을 보호하고 예방하기 위한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을 민간 위탁이 아닌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운영하는 공공기관으로 전환하도록 권고했다.
유철환 국민권익위원장은 “이번 제도 개선은 단순한 복지 보완이 아니라, 중증 발달장애인의 삶을 국가 공동의 책임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선언”이라며 “중요한 것은 탈시설이라는 일률적인 정책보다 당사자가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반과 안전망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국가와 사회가 함께 책임지는 ‘동행의 돌봄 체계’가 시급히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