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학술논문을 통해 살펴본 장애인 삶의 모습 (10) 장애 발생 시기와 노후준비 궤적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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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발생 시기가 노후 준비를 가른다
중장년 장애인 노후 준비 궤적에 드러난 삶의 격차

<사진=AI Gamma 생성 이미지>

장애인일자리신문은 장애인들의 삶에 있어 최고의 복지 혜택은 ‘일자리’라는 신념으로 시작됐다. 이 어려운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 ‘장애인의 삶’이 어떤 모습인지 살펴볼 필요를 느꼈다. 한국장애인개발원에서는 2018년부터 장애인삶 패널조사를 통해 장애발생 이후의 변화를 장기간추적하여 실증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또한 2021년부터 연구자와 대학원생들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이 데이터를 개방하여 180여편이 넘는 연구 성과를 얻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지난 10월 1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는 장애인의삶 패널조사 데이터를 활용한 연구의 성과를 공유하는 학술대회가 열렸다. 장애인일자리신문은 이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논문들을 통해 장애인의 삶에 대한 학술적 의미의 모습들을 살펴보기로 한다.[편집자 주]

중장년 장애인의 노후 준비 과정은 단일한 경로가 아니라 장애 발생 시기와 개인이 보유한 자원에 따라 뚜렷하게 달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애를 언제 경험했는지가 이후 삶의 안정성과 노후 대비 수준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실증적으로 확인된 것이다.

임정민·장윤선·정주영 성균관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연구진은 장애인실태패널조사 1차부터 6차까지의 자료를 활용해 중장년 장애인의 노후 준비 과정을 분석했다. 연구는 재무, 건강, 여가, 대인관계 등 네 가지 영역을 종합한 다차원적 노후 준비 지표를 구성하고, 집단중심다중추세모형과 로지스틱 회귀분석을 통해 시간에 따른 변화 양상과 그 결정 요인을 살펴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분석 결과, 중장년 장애인의 노후 준비는 세 가지 유형의 궤적으로 구분됐다. 재무·건강·여가·대인관계 전반에서 취약한 ‘다영역 취약형’, 재무와 건강 영역에서 특히 어려움이 두드러지는 ‘재무·건강 취약형’, 상대적으로 재무와 사회적 영역은 유지되지만 건강 문제가 중심이 되는 ‘건강 취약형’이다. 이는 노후 준비가 특정 영역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 삶의 조건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궤적을 가르는 핵심 요인 중 하나는 장애 발생 시기였다. 연구에 따르면, 생애 초기에 장애를 경험한 이른바 생애지속형 장애인은 노화 과정에서 장애를 경험한 집단보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노후 준비 궤적에 속할 가능성이 높았다. 조기 장애 경험이 교육, 직업 선택, 생활 방식 전반에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이에 적응해 온 시간이 누적되면서 노후 준비에서도 차이를 만들어낸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장애 발생 시기만으로 모든 차이가 설명되지는 않았다. 소득 수준, 건강 상태, 사회적 관계망과 같은 다양한 자원 요인 역시 노후 준비 궤적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는 장애라는 위험 요인 자체보다, 그 이후 축적되는 자원과 기회의 불균형이 노후 불안과 격차를 확대시킬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연구에 참여한 임정민 연구원은 “이번 분석을 통해 생애과정 이론과 누적적 불평등 이론을 중장년 장애인 삶의 맥락에 부분적으로 확장 적용했다”며, “장애를 둘러싼 위험이 시간에 따라 누적되거나 완화되는 과정을 실증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중장년 장애인의 노후 불안을 개인 책임의 문제로만 볼 수 없다”고 문제를 지적 했다.

이번 연구를 통해 전문가들은 장애 발생 시기와 개인의 자원 수준을 고려한 맞춤형 노후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또한 중장년기에 접어든 장애인을 대상으로 재무, 건강, 사회적 관계를 아우르는 종합적 개입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이는 중장년 장애인의 노후 위험을 사전에 완화하고 삶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제도적 대응의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