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 인프라 확충과 개인별 지원체계 정교화 병행해야 실질적 선택권 보장

장애인 거주시설 정책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가열되고 있다. 장애인 단체들은 전면적인 탈시설을 촉구하고 있고, 일부 정책기관은 맞춤형 돌봄체계 구축을 강조하며 점진적 전환을 주문하고 있다. 겉으로는 급진과 신중의 대립처럼 보이지만, 쟁점의 핵심은 장애인의 삶을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보장할 것인가에 있다. 논의를 생산적으로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이념적 구호를 넘어 제도의 구조, 재정, 서비스 역량을 함께 짚는 접근이 필요하다.
탈시설의 근거는 분명하다. 2008년 발효된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은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살아갈 권리를 명시하고, 특정한 거주시설에서의 분리·격리를 강요받지 않을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협약 제19조는 국가가 지역사회 기반 서비스와 개인별 지원을 확충할 의무가 있음을 분명히 한다. 이러한 국제 기준에 비춰볼 때, 대규모 수용시설 중심의 정책은 장기적으로 재검토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일부 시설에서는 인권침해 사건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며 구조적 한계를 드러내 왔다.
그러나 현실은 단순하지 않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에는 여전히 수만 명의 장애인이 거주시설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발달장애나 중증 중복장애가 있는 경우 24시간 지원이 필수적인 사례도 적지 않다. 지역사회 기반 서비스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시설을 일괄적으로 축소하거나 폐쇄할 경우, 당사자와 가족에게 돌봄 부담이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활동지원 인력 부족, 주거공간 확보 난항, 의료·행정 서비스 연계 미흡 등의 문제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해외 사례는 시사점을 제공한다. 스웨덴은 1990년대 초 ‘정상화’ 이념에 따라 대규모 수용시설을 단계적으로 폐쇄했지만, 동시에 소규모 그룹홈과 개인별 지원예산 제도를 확충했다. 독일 역시 연방 차원의 장애인참여법을 통해 개인예산제와 지역사회 통합 서비스를 확대하며 시설 의존도를 낮춰왔다. 공통점은 시설 폐쇄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지역사회에서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지원체계를 선행·병행했다는 점이다. 충분한 재정 투입과 전문 인력 양성, 주거·고용·의료 정책의 연계가 뒤따르지 않으면 탈시설은 선언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교훈이다.
국내에서도 변화의 조짐은 있다. 일부 지자체는 자립지원주택을 도입하고, 개인별 서비스 계획을 수립하는 시범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 간 격차가 크고, 지원 수준이 당사자의 실제 욕구를 충족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발달장애인의 경우 도전적 행동에 대응할 전문 인력과 위기지원 체계가 미비해 지역사회 전환이 지연되는 사례가 보고된다.
결국 쟁점은 ‘탈시설이냐 유지냐’의 이분법이 아니라, 선택권을 어떻게 실질화할 것인가에 있다. 선택권이란 단순히 형식적 거주지 선택을 의미하지 않는다. 충분한 활동지원 시간, 안정적 주거, 접근 가능한 의료, 소득 보장과 고용 기회가 종합적으로 갖춰질 때 비로소 현실적 선택이 가능해진다. 시설 거주를 당분간 선택하는 경우에도 인권 기준과 서비스 질을 강화해 지역사회와의 단절을 최소화해야 한다.
정책적 해법은 단계적 전환과 기반 확충의 병행에 있다. 첫째, 지역사회 서비스 확충을 국가 책임으로 명확히 하고 중장기 재정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둘째, 개인별 지원계획 수립 과정에 당사자와 가족, 현장 전문가의 참여를 제도화해 형식적 절차에 머물지 않도록 해야 한다. 셋째, 시설 역시 폐쇄 여부를 넘어 소규모화·개방화·전문화 등 구조 개편을 통해 지역사회와 연계된 지원 거점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탈시설은 하나의 정책 구호가 아니라, 사회가 장애인을 어떤 존재로 인식하는가를 드러내는 지표다. 동시에 돌봄 공백과 안전 문제를 외면한 채 속도만을 강조할 수 없는 과제이기도 하다. 인권의 원칙과 현실의 조건을 함께 직시하는 균형 잡힌 접근만이 갈등을 줄이고 지속 가능한 해법을 마련할 수 있다. 장애인의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공동의 목표가 분명하다면, 논쟁은 대립이 아니라 구체적 설계와 책임의 문제로 옮겨가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