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안내·접근공간 의무를 ‘호출벨’로 대체… “동등한 이용권 박탈”
기술적 개선 대신 ‘인력 지원’ 택일 구조… 정부의 행정 책임 회피 지적

디지털 전환의 상징인 무인정보단말기(키오스크)가 장애인에게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이 되고 있다. 장애인 단체와 당사자들이 접근성을 후퇴시킨 정부의 시행령이 헌법에 위배된다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 6개 단체는 지난 13일, 무인정보단말기의 장애인 접근성 보장 기준을 대폭 축소·완화한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령’과 ‘지능정보화기본법 시행령’에 대해 위헌 확인 헌법소원을 제기하고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2021년 법 개정으로 강화됐던 장애인 접근성 의무가 하위 법령인 시행령에 의해 사실상 무력화됐다는 판단에서다.
단체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2025년 이후 개장한 50㎡(약 15평) 이상의 매장에서도 장애인들은 여전히 일상적인 주문조차 불가능한 실정이다. 시각장애인의 경우, 단말기 위치를 알 수 있는 유도 장치가 없고 주문 과정에서 음성 안내가 전혀 제공되지 않아 메뉴 선택을 위한 터치조차 할 수 없다.
휠체어 이용 장애인 역시 ‘높은 벽’에 가로막혀 있다. 세워져 있는 단말기의 조작 위치가 120cm 이상의 높이에 있어 손이 닿지 않거나, 단말기 하단부에 휠체어가 들어갈 공간이 없어 기기에 밀착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최근 급격히 늘어난 ‘테이블 오더’ 방식의 기기 또한 한곳에 고정된 형태가 많아 휠체어 이용자가 조작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를 드러냈다.
이번 헌법소원의 핵심 쟁점은 시행령이 접근성 보장 의무를 ‘택일 구조(or)’로 변질시켰다는 점이다. 2025년 3월 개정된 지능정보화기본법 시행령은 업체 규모와 무관하게 ‘보조인력 배치’나 ‘음성안내’ 중 하나만 선택하면 접근성 기준을 준수한 것으로 간주하도록 규정했다.
또한 2025년 12월 개정된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령은 휠체어 접근 공간 확보, 점자블록 설치 등 필수적인 환경적 조치 조항을 대거 삭제했다. 대신 소상공인과 테이블 오더형 단말기에 대해서는 호출벨 설치나 보조인력 배치만으로도 접근성 의무를 면제받을 수 있는 예외 조항을 신설했다.
이에 대해 장추련은 “물리적·기술적 접근성과 인적 지원은 상호 보완적이어야 함에도 정부가 이를 선택 사항으로 만들어 버렸다”며 “특히 무인점포의 비상주 인력이나 호출벨 방식은 비장애인과 동등한 이용을 실질적으로 보장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단체들은 이러한 시행령 후퇴가 정부의 행정적 태만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소상공인의 경제적 부담을 시행령 개정의 이유로 들고 있지만, 정작 법 개정 이후 장애인 접근성이 보장된 단말기의 개발과 보급을 소홀히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는 소상공인이 기존 단말기를 접근성 보장 기기로 교체하는 데 필요한 보조금 지원을 확대하지 않은 채, 기준 자체를 낮추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소송대리인단은 “정부의 조치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명시한 ‘동등한 접근과 이용을 위한 정당한 편의 제공 의무’를 무력화하는 위헌적 입법”이라며 “법률유보·과잉금지·최소보장 원칙을 위반한 정책을 즉각 재검토하고 기술적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한 실질적인 예산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디지털 시대의 ‘편의’가 누군가에게는 ‘배제’가 되지 않도록, 기술과 법령이 장애인의 권리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