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공공일자리에서 민간 연계로… 장애인 일자리 정책의 무게중심이 움직이고 있다

서울시가 올해 장애인 일자리 예산으로 역대 최대 규모인 1,195억 원을 투입한다. 공공·민간 분야를 아울러 9,919개의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예산 1,117억 원, 일자리 9,575개와 비교하면 각각 7%, 3.6% 늘어난 수치다.
서울시는 지난해 9월 발표한 ‘2530 일상활력 프로젝트’의 핵심 과제인 ‘든든한 일자리와 소득’ 과제의 후속 조치로 이번 계획을 추진한다. 프로젝트 첫해인 만큼 적극적인 재정 투입을 통해 사업 추진 속도를 높인다는 방침이다.
올해 장애인 공공일자리 사업에는 약 600억 원이 투입된다. 장애 유형과 적성에 맞는 일자리 5,449개를 제공해 직업 능력 향상 기회를 부여하고, 일을 통한 사회 기여로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을 이끌겠다는 목표다. 사업은 장애유형 맞춤형 특화 일자리, 국비 보조 공공일자리, 중증장애인 동료 상담, 중증장애인 인턴 등으로 구성된다.
이 중 주목할 사업은 ‘장애 유형 맞춤형 특화 일자리’다. 올해 3년차를 맞는 이 사업에는 61.7억 원이 투자돼 380개의 일자리를 제공한다. 지난해 투입 예산 41.3억 원, 제공 일자리 250개와 비교하면 50% 이상 늘어난 것으로, 투입 재원은 전액 서울시비다.
이 사업의 핵심은 설계 방식에 있다. 민간이 먼저 장애 유형과 적성에 맞는 직무를 발굴·제안하면, 시가 공공일자리를 통해 해당 직무 경험을 제공하고, 최종적으로 민간 취업까지 이어지는 구조다. 상명하달식 직무 배정이 아닌, 현장이 직무를 설계하고 공공이 그 경험을 잇는 방식이다. 건강검진 보조, 기물관리, 패키징, 바리스타, 반려동물, 조향 보조 등이 지금까지 제공된 직무 사례다.
이 사업을 통해 민간 분야 취업에 성공한 사람은 현재까지 최소 58명으로 확인됐다.
지적장애가 있는 A씨는 활동지원사와 부모님이 동행해야 할 만큼 외부활동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특화 일자리 사업을 통해 수많은 공연 무대에 오르며 클라리넷 실력을 키웠고, 연계 업체에 연주팀 일원으로 발탁돼 전문 연주자의 길을 걷고 있다. 뇌전증이 있는 B씨는 장애 특성상 장시간 외부 근무에 한계가 있었다. 건강관리협회에서 건강검진 시트 확인과 소변검사 컵 조립 업무를 하던 중 성실성과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배치 기관에 취업했다.
올해는 최중증 장애인을 위한 문화·예술 일자리 120개를 신설하고, 미술 직무와 문화예술 콘텐츠 제작, 연극 등으로 직무를 다양화한다. 행정 보조 인력도 기존 1명에서 2명으로 늘리고, 민간 취업 성공 기관에 대한 인센티브도 강화한다.
시는 직업재활시설 140개소에 533억 원을 투자해 2,800명의 근로 장애인을 포함한 4,155명이 직업재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 인건비 등 운영비 지원과 종사자 처우 개선, 미래형 업종 전환 지원, 경영 컨설팅, 시설 기능보강 사업이 함께 추진된다.
보호고용 구조의 직업재활시설은 장애인에게 안정적인 근로 환경을 제공하는 순기능이 있으나, 근로자 임금 수준은 여전히 낮다. 현재 보호작업장 내 장애인 근로자의 월 평균 임금은 약 58만 원 수준으로, 최저임금 적용 제외 인가 제도 아래 저임금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된다. 서울시가 직업재활시설에 대한 ‘미래형 업종 전환 컨설팅’을 강화하는 것도 이 구조를 넘어서기 위한 시도로 읽힌다.
판매 경로 확보를 위해 시는 중증장애인 생산품 의무 구매 비율을 기존 1%에서 1.1%로 상향하고, 민간 판매를 촉진하기 위한 기획전과 온·오프라인 홍보도 진행한다.
오는 4월 서울 장애인일자리센터가 문을 연다. 그간 각각 운영되던 커리어플러스센터와 장애인일자리통합지원센터를 하나로 합쳐 광역 거점 기관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이다. 센터는 강남구 도곡로 서울시립장애인행복플러스센터 3~5층에 자리 잡는다.
통합의 배경은 현장의 비효율에 있다. 같은 사람이 복수의 기관에서 서비스를 중복 수혜하거나, 기관 간 연계가 끊겨 취업 지원이 도중에 단절되는 문제가 반복돼 왔다. 통합 센터는 일선 기관을 권역별 지역 센터로 지정하고, 장애인일자리센터가 광역 센터로서 정책을 총괄하는 2단 구조로 재편된다.
구직자와 구인 기관 간 미스매칭 해소를 위한 일자리 정보 통합 플랫폼도 구축된다. AI 기반 일자리 모델 개발과 현장 종사자 전문 교육도 함께 추진한다. 센터가 단순한 기관 통합을 넘어 실질적인 서비스 연속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서울시 산하 투자·출연기관 23개소의 장애인 고용률은 현재 4.07%로, 법정 의무 고용률 3.8%를 웃돈다. 1991년 장애인 의무 고용 제도가 도입된 이후 처음으로 서울시 산하 전체 투자·출연기관이 의무 고용률을 달성한 것이 2023년 9월이었다. 이후 고용률은 꾸준히 올라 3.95%를 거쳐 현재 4.07%에 이르렀고, 의무 고용률을 채우지 못한 기관 수는 7개에서 5개로 줄었다.
공공의 성과와 달리, 민간 부문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현행 민간기업 법정 의무 고용률은 3.1%로 공공(3.8%)보다 낮게 설정돼 있으며, 정부는 이를 단계적으로 3.5%까지 인상할 계획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의무 비율조차 달성하지 못하는 기업이 적지 않고, 고용부담금을 납부하는 방식으로 의무를 사실상 면제받는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 공공이 선도하는 고용률 성과가 민간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 한국 장애인 고용 정책의 구조적 한계로 꼽힌다.
공공기관이 의무 고용률을 달성하는 데는 맞춤형 인사 컨설팅이 효과적으로 작용했다. 산업 현장, 문화·예술, 연구 분야 등 직무 발굴이 까다로운 기관에 커리어플러스센터, 장애인일자리통합지원센터, 서울시립장애인생산품판매시설 경영지원센터 등 3개 전문 기관이 채용 과정을 밀착 지원해 온 결과다.
자폐성 장애가 있는 박 모씨는 이 컨설팅을 통해 2024년 7월 세종문화회관 꿈나무 오케스트라 플루트 강사로 합격했다. 담당 감독은 “외부 지휘자가 장애 여부를 전혀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완벽한 연주 실력을 선보인다”고 말했다. 청각장애가 있는 조 모씨는 2024년 1월 서울문화재단 경영기획팀 전문 PPT 디자이너로 취업해 재단의 주요 행사 기획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메신저와 이메일을 활용한 비대면 소통, 회의 시 무선 마이크 보조공학기기 활용으로 팀 내 협업 구조를 스스로 정착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울시는 4월 개소 예정인 장애인일자리센터를 통해 의무 고용률 미준수 기관의 고용 저해 요인을 분석하고 맞춤형 채용 컨설팅을 지원할 계획이다.
윤종장 서울시 복지실장은 “장애인이 보통의 직장인으로서 보통의 하루를 누리기 위한 핵심은 양질의 일자리 제공”이라며 “서울시는 장애인들이 자아 실현과 함께 당당한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나아갈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