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깎아 영양제·가전 산다”…장애인 개인예산제, 선택권 아닌 ‘구매력 격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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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미화 의원, 2025년 지출 3억7천만원 분석…상급지원위 조건부 합의 89%

AI로 생성한 이미지 <사진=장애인일자리신문>

돌봄 서비스를 받는 대신 그 비용으로 영양제나 가전제품을 사는 장애인들이 늘고 있는 것으로 드러다. 서비스 선택권 확대를 취지로 도입된 ‘장애인 개인예산제’가 실제로는 돌봄 시간을 줄여 물건을 구매하는 창구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인예산제는 활동지원, 발달장애인 주간활동·방과후활동, 발달재활서비스 등 4개 바우처 급여 가운데 최대 20%를 현금성 개인예산으로 바꿔, 당사자가 직접 세운 계획에 따라 물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당사자가 세운 이용계획은 시군구 단위에서 적정성을 심사해 확정하되, 판단이 까다로운 사안은 보건복지부·한국장애인개발원·외부 전문가로 꾸려진 상급지원위원회로 넘어가 별도 심의를 거친다. 2024년 시범사업으로 출발해 2025년에는 17개 시군구 410명이 참여했으며, 1인당 월평균 활용 예산은 약 42만 원 수준이었다. 올해는 대상 지역이 33개 시군구로 늘었고 참여 목표 인원도 960명으로 확대됐으나, 7월 기준 실제 참여자는 917명에 그쳤다. 정부는 2027년부터 이를 본사업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이 제도가 놓인 배경에는 장애인의 높은 돌봄 수요와 제한적인 공적 서비스 이용 간 격차가 있다. 보건복지부의 2023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일상생활 수행에 지원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장애인은 35.3%로 2020년(32.1%)보다 3.2%포인트 늘었다. 그러나 같은 조사에서 일상생활지원 서비스를 실제로 이용해본 경험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16.0%에 그쳤다. 일상생활 지원의 주된 제공자로는 가족이 82.1%로 압도적이었고, 장애인 활동지원사·요양보호사 등 공적 돌봄서비스 제공자는 13.8%에 머물렀다. 현재 일상생활지원이 충분하다고 답한 비율도 62.3% 수준이었다. 지원이 필요하다는 응답과 실제 서비스 이용 경험 사이에 격차가 확인되는 가운데, 돌봄 급여 일부를 물품 구매 재원으로 돌리는 제도가 이 격차를 줄이는 방향으로 작동하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애계는 제도 도입 초기부터 회의적이었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에 불과한 미봉책이 아닌 획기적 예산 확대를 통한 서비스 총량 확보가 먼저”라는 반박이 공약 발표 시점부터 나왔고, 최근 2년 국정감사에서도 실효성 논란이 반복됐다. 그럼에도 뚜렷한 개선책 없이 본사업 전환 논의가 진행 중이다.

더불어민주당 서미화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2025년 지출 세부내역을 들여다본 결과, 이 같은 우려는 수치로 확인됐다. ‘기타 건강지원 제품’ 명목 지출 1억 2,740만원 중 89.5%(1억 1,406만원)가 유산균·비타민·루테인 등 건강기능식품 구매에 흘러갔다. ‘일상생활 용품 지원'(1억 4,859만원) 항목에서는 기저귀 등 위생용품이 35.8%, 단백질음료·죽 같은 유동식이 23.0%를 차지한 데 이어 믹서기·로봇청소기 등 생활가전 비중도 22.8%에 달했다. ‘주거지원 물품'(9,469만원)의 경우 제습기·공기청정기·에어컨 등 가전 구입 비중이 84.5%(7,996만원)로 압도적이었다. 이들 세 항목에서만 건강기능식품과 생활용품·가전 구매에 총 3억 7,068만원이 쓰였는데, 각 항목의 비중을 다시 환산하면 이 중 약 85%가 건강기능식품·위생용품·유동식·생활가전 등 물품 구매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1회 지출액이 100만원을 넘는 사례도 주거지원 물품 32.5%(최대 370만 2천원), 일상생활 용품 지원 14.4%(최대 429만원)로 적지 않았다.

같은 품목을 여러 차례 사들인 사례도 다수 확인됐다. 2025년 한 해 건강기능식품을 3회 이상 구입한 참여자는 94명으로, 그해 전체 참여자 410명의 약 22.9%에 해당한다. 이 중 가장 많이 지출한 1명은 7회에 걸쳐 536만원어치를 구매했다. 올해도 7월까지 벌써 81명이 3회 이상 구매를 반복했는데, 다만 올해는 참여 규모 자체가 확대된 시기여서 지난해와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가전제품 반복 구매자는 2025년 23명(전체 참여자의 약 5.6%)으로 집계됐으며, 최다 지출자는 냉장고·정수기·로봇청소기·공기청정기·세탁기 구입에 680만원을 썼다.

복지부 사업안내에는 가구·노트북 등 이른바 ‘자산취득성 물품’ 구매를 원칙적으로 막고, 불가피한 경우에 한해 상급지원위원회 심의를 거쳐 예외적으로 허용한다는 규정이 있다. 그러나 지난해 이 위원회가 내린 62건의 결정 가운데 ‘불가’ 판정은 단 1건(1.6%)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그대로 승인하는 ‘합의’ 6건(9.7%), 계획을 일부 손질하는 조건으로 승인하는 ‘조건부 합의’ 55건(88.7%)이었다. 특히 가전제품이 포함된 22건(전체의 35.5%)은 예외 없이 모두 조건부 합의로 처리됐다. 원칙적 제한 규정이 있음에도 심의 단계에서는 사실상 대부분 허용되는 구조인 셈이다.

서미화 의원실이 상급지원위원회에 오른 이용계획서 46건을 직접 분석한 결과는 더 구체적이다. 항목별 배정 예산 1억 4,964만원 가운데 43.4%(6,499만원)가 김치냉장고·세탁기 같은 가전(1,671만원), 노트북·태블릿 등 전자기기(1,265만원), 운동기구·차량처럼 사업이 끝난 뒤에도 남아있는 자산취득성 물품에 배정돼 있었다. 반면 치료·강습·돌봄처럼 사람이 직접 제공하는 서비스 비중은 15.4%(약 2,300만원 상당)에 머물러, 금액 기준으로 자산취득성 물품 배정액이 직접 서비스의 약 2.8배에 달했다. 6건은 6개월치 전환 예산 전액을 물품 구입에 쏟아부었는데, 이 중 1건은 559만 8천원 전부를 슬로프가 설치된 중고 자동차 구입에 배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규모 면에서 이번 지출자료는 전체 장애인 돌봄체계를 대표하는 전수자료는 아니다. 2025년 장애인활동지원 이용자는 14만 8,027명, 관련 정부지원금 집행액은 3조 5,480억원에 달했는데, 개인예산제 참여자 410명은 이 중 약 0.28%에 그친다. 참여자 수와 1인당 월평균 예산(42만원)을 단순히 곱해 연간 규모를 추산하면 2025년 약 20억 7천만원, 2026년 목표 인원(960명) 기준으로는 약 48억 4천만원 수준이다. 이는 정부가 공식 발표한 총사업비가 아니라 참여자 수와 월평균 예산을 곱한 추정치이지만, 참여자와 시범지역이 각각 2배 안팎으로 확대되는 만큼 물품 구매 허용 범위와 사후 관리 기준을 정비하지 않은 채 규모만 커질 경우 같은 논란이 더 큰 규모로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근본적인 문제는 사회보장급여가 상품 구매 재원으로 바뀌는 순간 시장 구매력의 격차로 옮겨간다는 데 있다. 개인예산의 기준액은 서비스지원종합조사 같은 판정 절차를 거쳐 사람마다 다르게 책정된다. 원래 이 판정은 각자에게 필요한 돌봄의 양을 정하려는 목적이지, 시장에서 쓸 수 있는 돈의 규모를 정하려는 게 아니다. 그런데 개인예산제를 통과하면 급여액이 큰 사람일수록 물건을 살 수 있는 예산도 함께 커진다. 필요도에 따라 차등 책정된 공적 급여가 어느새 시장 구매력의 차등으로 뒤바뀌는 구조다.

복지부는 그동안 개인예산제를 두고 기존 공급체계가 채우지 못한 물품·서비스를 개별적으로 구매할 수 있게 한 ‘수요 맞춤형 제도’라고 설명해왔다. 하지만 실제 확인된 ‘수요’의 대부분이 생필품과 가전제품이었다는 사실은, 국가가 책임져야 할 기초 권리와 개인의 자유로운 재화 구매 사이에서 제도가 방향을 잃고 있는 현실을 드러낸다.

서미화 의원은 “당사자의 자기결정권과 서비스에서의 주도성 강화라는 목표 자체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사회보장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공적 급여가 시장 구매력의 차이로 이어지는 현재의 상황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나아가 장애인이 돌봄 서비스를 깎아 재화를 구매하게 하는 방식은, 장애인의 소득보장과 사회보장을 위한 국가 책임을 약화시키는 기제로 작동할 우려가 크다”며, “개인예산제가 최소한의 실효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별도의 재정을 마련하여 추가 예산을 지원하는 구조로 재설계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