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e스포츠 강국 한국, 장애인 참여 확대 움직임 속 제도적 기반 마련 필요

세계적인 e스포츠 강국 한국에서 장애인 e스포츠가 새로운 참여 영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정부와 민간 기업이 지원을 확대하며 대회와 선수단 운영 등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아직 초기 단계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보조기기 개발 부족과 지속 가능한 지원 체계 미비가 과제로 꼽힌다.
한국은 e스포츠 분야에서 독보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다. 2000년대 초 스타크래프트 열풍 속에서 세계 최초로 프로게이머 제도가 정착했고, 방송 리그와 전문 구단이 등장하며 e스포츠가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리그 오브 레전드와 오버워치 등 주요 종목에서 수많은 국제대회를 석권하며 세계 정상급 e스포츠 강국으로 자리매김했다. ‘페이커’로 불리는 이상혁은 글로벌 게임 팬들에게 팝스타에 버금가는 인지도를 가진 선수로 평가받는다. 2024년 기준 국내 e스포츠 시장 규모는 약 6000만 달러로 집계됐으며, 글로벌 시장은 2032년 10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같은 e스포츠 인프라가 장애인 참여 확대의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시각이 커지고 있다. 신체적 제약으로 인해 전통적인 스포츠 참여가 어려운 경우가 많지만, 디지털 환경에서 진행되는 e스포츠는 상대적으로 물리적 부담이 적다는 이유에서다.
정부 차원의 공식 지원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과 대한장애인체육회는 매년 전국 장애인 e스포츠 대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2025년 대회는 충북 제천에서 열렸다. 지체·시각·청각·지적 장애 등 다양한 유형의 참가자들이 리그 오브 레전드, FC온라인, 카트라이더 등 PC 종목과 닌텐도 스위치를 활용한 콘솔 종목, 휠체어 레이싱 등 XR 종목에 참여했다. 대한장애인e스포츠연맹은 2004년 온게임넷 스타크래프트 대회를 시작으로 대회 역사를 이어왔으며, 현재 전국장애학생체육대회는 20회를 넘어섰다.
민간 기업의 참여도 가시화되고 있다. 넷마블문화재단은 매년 ‘장애학생 e페스티벌’을 통해 게임 경기와 코딩·정보기술 활용 능력을 함께 겨루는 교육형 대회를 운영하고 있다. 단순한 게임 대회를 넘어 디지털 역량 강화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다. 전자상거래 기업 쿠팡은 장애인 e스포츠 선수단을 직접 운영하며 고용과 스포츠 활동을 동시에 지원하는 모델을 선보였다. 쿠팡 장애인 e스포츠팀은 2025 전국장애인e스포츠대회에서 금메달 8개, 은메달 5개, 동메달 4개를 획득했다. 기업이 장애인 선수를 정식 직원으로 채용해 안정적인 활동 기반을 제공하는 이 방식은 장애인 스포츠의 새로운 고용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와 장애인 체육단체의 관심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장애인 e스포츠 선수단 창단 논의가 진행되고 있으며, 대한장애인체육회 차원에서도 e스포츠 종목을 제도권 체육 영역에 포함할 가능성이 검토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한계도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장애 유형에 따라 게임 조작 자체가 어려운 경우가 많지만 이를 보완할 보조기기와 접근성 기술은 아직 충분히 개발되지 않았다. 대회와 지원 사업이 일회성 행사에 그치는 경우도 많아 선수들이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장애인 e스포츠가 단순한 게임 활동을 넘어 교육과 사회 참여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데 주목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 관계자는 “디지털 환경에서 경쟁하고 협력하는 e스포츠는 장애 청소년들에게 자신감을 키우고 사회적 교류를 확대할 수 있는 의미 있는 플랫폼이 될 수 있다”며 “지속적인 정책 지원과 기술 개발이 병행된다면 새로운 장애인 스포츠 영역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장애인체육 관계자도 “신체적 제약으로 기존 종목 참여가 어려운 경우가 많지만 e스포츠는 디지털 환경에서 경쟁할 수 있는 새로운 경기장”이라며 “제도적 기준과 경기 규칙, 선수 육성 체계가 마련된다면 장애인 스포츠의 영역이 크게 확장될 수 있다”고 밝혔다.
세계적인 e스포츠 인프라를 갖춘 한국이 장애인 참여 기반까지 함께 구축한다면 디지털 스포츠 분야에서도 새로운 포용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일회성 행사나 단편적 지원을 넘어 선수 육성부터 대회 운영, 직업으로서의 e스포츠까지 아우르는 체계적인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