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사고부터 일상까지, 적극적으로 듣기 위한 사회적 노력이 필요

중증 장애인들은 오랫동안 ‘의사 표현이 어려운 사람’으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최근 장애계와 현장 전문가들은 문제의 본질이 장애인의 표현 능력 부족이 아니라, 비장애인 중심 사회가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데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사건·사고 조사 과정이나 의료·복지 서비스 현장에서 의사소통의 한계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 권리 침해와 직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관심이 커지고 있다.
실제 발달장애인이나 중증 뇌병변장애인의 경우 말로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기 어렵더라도 표정, 몸짓, 반복 행동, 시선 회피, 특정 그림이나 물건 선택 등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기존 사회 시스템은 대부분 언어 중심으로 설계돼 있어 이들의 의사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일이 반복돼 왔다.
최근 장애인 거주시설과 복지시설 내 학대·성폭력 사건 조사 과정에서도 이러한 한계는 드러났다. 일부 피해자들은 언어 진술 대신 특정 신체 부위를 가리키거나 행동을 재연하는 방식으로 피해 사실을 표현했지만, 초기 조사 단계에서는 이를 충분히 해석하지 못해 피해 확인이 늦어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장애계에서는 “말할 수 있는 사람만 보호받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서울시가 추진 중인 ‘장애인 의사소통 서포터 양성교육’은 의미 있는 변화 시도로 평가받고 있다. 서울시는 장애인의 의사소통 권리 보장과 자기결정권 확대를 위해 장애 특성에 맞춘 의사소통 지원 인력을 양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장애인 의사소통 서포터’는 말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 어려운 장애인을 위해 보완대체의사소통(AAC) 도구를 활용해 의사 전달을 돕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의사소통 앱으로 먹고 싶은 메뉴를 선택하게 하거나, 통증카드를 활용해 병원 진료 과정에서 몸 상태를 설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식이다. 시청각중복장애인의 경우 손바닥에 글자를 써 의사를 확인하는 방법도 활용된다.
서울시에 따르면 2020년부터 현재까지 총 466명의 서포터가 양성됐다. 사회복지사와 언어재활사, 활동지원사, 특수교사, 가족 등이 참여해 장애인들의 일상 의사소통을 지원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실제 변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그룹홈에서 7년째 근무 중인 한 사회복지사는 교육 이후 장애인의 표현 방식을 이해하게 되면서 이전과 다른 소통 경험을 했다고 전했다. 식당에서 늘 고개만 숙이고 있던 장애인이 직접 손으로 메뉴를 가리키며 의사를 표현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는 “그동안 서로 소통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이라며 “서포터 교육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중요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변화가 단순한 복지 프로그램을 넘어 장애인의 권리 보장과도 연결된다고 설명한다. 의사소통이 가능해야 의료·교육·수사·재판 과정에서 자신의 의사를 설명할 수 있고, 학대나 범죄 피해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보호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장애인의 진술 과정에서 그림카드와 사진, 행동 관찰 등을 활용한 비언어적 조사 방식의 필요성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발달장애인의 경우 질문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공포 상황에서 침묵과 반복 행동으로 반응하는 경우가 많아, 일반적인 조사 방식만으로는 진술 신빙성을 제대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서울시는 올해 ‘제6기 장애인 의사소통 서포터 양성교육’을 통해 장애 유형별 의사소통 특성과 AAC 도구 활용법 등을 교육할 계획이다. 교육은 6월 2일부터 온라인으로 진행되며, 기초과정 수료자를 대상으로 실습 중심의 심화교육도 이어질 예정이다.
서울시 장애인복지과는 “의사소통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려는 과정”이라며 “누구나 자신의 방식으로 의사를 표현하고 존중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장애계에서는 이제 필요한 것은 장애인이 비장애인의 방식에 맞추는 사회가 아니라, 사회가 장애인의 표현 방식을 이해하려는 방향으로 변화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결국 의사소통 지원은 단순한 편의 제공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장치라는 점에서 의미가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