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 라벨링 확산에 비정규직 66.4%… 중증장애인 고용 안전망 흔들려

AI 기술이 빠르게 일상을 바꾸는 사이, 장애인 고용 시장은 조용히 흔들리고 있다. 기업 의무고용율에 상당 부분 기여해왔던 데이터 라벨링 직무가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무너지면서, 이 일자리에 기대온 중증·발달장애인 노동자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정부의 직업훈련 시스템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고, 기업들은 고용 유지와 자동화 사이에서 갈림길에 서 있다. 본지는 3회에 걸쳐 장애인 고용 위기의 실체를 짚고, 기술 변화 속에서도 장애인 노동자가 도태되지 않을 길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인공지능(AI) 기술을 고도화하기 위해 투입됐던 장애인 노동자들이 역설적으로 기술 발전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스스로 데이터를 학습하는 생성형 AI의 ‘오토 라벨링’ 기술이 보편화되면서, 장애인 일자리의 주요 진입로였던 단순 데이터 라벨링 직무가 급격히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 라벨링은 그동안 시간과 장소의 제약이 적어 중증장애인의 재택근무를 가능케 한 핵심 직무였다. 하지만 기술 발전 앞에서 이 같은 양적 팽창은 구조적 불안정성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전 세계 고용의 24%가 생성형 AI에 노출돼 있으며, 고소득 국가에서는 이 비중이 34%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단순 반복 위주의 데이터 라벨링은 자동화 압력을 가장 먼저 받는 최전선에 놓여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 일자리들이 태생적으로 비정규직에 편중돼 있다는 점이다. 2025년 10월 기준 장애인 임금근로자의 비정규직 비율은 66.4%로, 전체 임금근로자 비정규직 비율(37.0%)의 1.8배에 달한다. 기업 규모가 커질수록 장애인 상시근로자의 비정규직·시간제 비중이 늘어나는 경향도 뚜렷하다.
상시근로자 300인 이상 기업체의 평균 장애인 고용률은 2.65%로, 민간기업 의무고용률 3.1%에도 미달한다. 기업들이 의무고용 수치를 맞추기 위해 단기 계약직에 의존해 온 척박한 고용 환경이 수치로 확인된 셈이다.
국내 데이터 라벨링 업계 선두 플랫폼에 등록된 작업자 수만 66만 9,219명에 이른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단기 계약과 직무 소멸 위험이 동시에 커지고 있다. 최근 발생한 한 데이터 라벨링 업체의 대규모 임금 미지급 사태(추정 피해자 약 300명, 미지급금 4억 원 규모)는 이 같은 취약한 노동 환경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피해를 호소하며 자신의 상황을 밝힌 68명 중 13명은 장애가 있거나 장애·질병 가족을 돌보느라 일반 노동 시장 진입이 어려운 이들이었다.
장애인 구직자 입장에서는 사실상 유일했던 대규모 IT 진입로가 막히면서 취업 문턱이 한층 높아졌다. 기존 장애인 노동자들 역시 단기 계약이 만료된 이후 동종 업계 재취업이 사실상 불가능해져 심각한 고용 단절에 직면해 있다. 특히 이동이 자유롭지 않은 중증장애인들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재택근무가 가능한 대규모 직무가 줄어들고 있지만, 이를 대체할 원격 직무 개발은 더디기만 하다.
기업과 지자체 역시 진퇴양난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라벨링 인력의 직무 전환 교육 비용이 부담스럽지만, 인력을 줄이면 의무고용률 하락이라는 이중고를 피할 수 없다. 지자체 역시 데이터 라벨링과 연계한 공공일자리 사업의 취업 성과가 곤두박질칠 위기에 처하면서 예산 집행 방향을 전면 재검토해야 할 처지다.
첨단 기술의 혜택이 고용 취약계층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의무고용률이라는 숫자에 매몰돼 단기·비정규직 일자리 양산에 기대온 장애인 고용 정책의 민낯이 AI 시대를 맞아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