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AM 제1회 공모전 수상작, ‘언노운바이브-더갈라’서 가족애의 서사를 걸다

객실 문이 열리자, 호텔 조명이 먼저 물결쳤다. 뒤이어 장애 예술인의 목소리가 벽을 타고 번졌다. 객실 안 가득 찬 작품들은 모두 입을 모아 가족애를 말하고 있었다. ‘나의 첫 풍경, 엄마’와 ‘나의 또 다른 나, 아이’를 주제로 모인 이 작품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가족과 성장의 기억을 풀어냈다.
9월 19일부터 21일까지 사흘간 안다즈 서울 강남 ‘언노운바이브-더갈라’에서 제1회 스담(SDAM) 공모전 수상작들이 관람객을 맞았다. 다름을 넘어선 이야기들이, 화려한 공간을 채우는 방식은 생각보다 조용했고 더 강렬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다름’의 서사가 아닌 ‘사랑’의 시각화다.

“감빛에 피어난 꽃은 제 눈물과 기도에요”
대상을 받은 임대진 작가는 제주에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전직 교사다. 그는 사고로 심한 장애를 입게 됐지만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며 몸과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장애를 입은지 20년이 넘었어요. 처음엔 전혀 움직이지 못했는데, 그림을 그리면서 조금씩 관절이 움직였습니다. 그렇게 독학으로 그림을 그리는데, 주변에서 복지관을 추천해주더군요. 복지관에 다니다 대회 소식을 들었죠”
그의 수상작 ‘감빛선율에 피어난 모녀의 꽃’은 제주 여름의 푸른 감, 일명 땡감을 따서 광목천에 물을 들인 뒤, 말려둔 꽃잎을 얹어 완성한 작품이다.
“땡감으로 물을 들이면 굉장히 아름다운 색이 나와요. 가끔 행사 때 받은 꽃을 버리기 아까워 하나하나 말려뒀는데, 그걸 천과 함께 작품으로 만들어보자 했습니다. 제가 쓰러졌을 때 아이들이 기도하던 모습, 재활하며 느낀 것, 20여 년동안 흘렸던 눈물들을 꽃으로 피워낸 거에요”
향후 계획을 묻는 질문에 임 작가는 그림과 시를 통해 변화하는 풍경을 기록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제 나이가 60이 넘었습니다. 직업을 갖는 건 어렵지요. 다만 취미 삼아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있으니, 이걸 통해 기후 변화로 달라지기 전의 제주 풍경을 담아 후손들에게 남기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장애인들이 이런 무대에 더 많이 나와 자신감을 얻길 바랍니다.”

“강박은 성우를 힘들게도 하지만, 지키기만 하면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죠”
우수상을 받은 11살 조성우 군은 자폐성 장애인이다. 성우의 작품은 몬드리안의 추상 기법을 바탕으로, ‘선을 넘지 않는 강박’이 담겨있다.
조 군의 보호자는 “성우는 줄 세우기, 선 넘기 같은 강박이 아주 심해요. 복지관의 선생님께서 성우의 이런 강박을 잘 포착하셔서 이렇게 선을 긋는 작업 방향을 정해주셨어요”라며 제작 계기를 밝혔다.
보호자는 성우의 강박으로 가족이 힘들 때가 정말 많았다고 설명했다. “가족 안에서는 성우를 이해할 수 있지만, 바깥에 나갔을 때 공중 화장실의 변기를 전부 내려야한다던지 하는 부분은 고치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걸 깨보기 위해 일부러 성우의 환경을 흐트러뜨리기도 했죠”
하지만 강박이 작품으로 드러나는 순간, 의미는 달라졌다. “강박은 성우를 괴롭히지만, 그 강박을 지킨다면 성우는 그 안에서 안정감을 얻습니다. 이제 우리 가족은 성우의 강박을 사랑해요”
수상 소식은 성우 가족에게도 큰 선물이 됐다. “복지관 복도에나 걸리던 그림이 강남 호텔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멋진 공간에서 다른 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게 너무 벅찼습니다. 성우보다 훨씬 재능 있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그 아이들에게도 이런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가족은 모두 다를 수 있지만, 언젠가 저 멀리에 있는 바다에 함께 닿을거에요”
자폐성 장애인이자 바다를 좋아하는 여덟 살 안채민 군은 서로 다른 감정을 지닌 가족이 하나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담은 작품으로 장려상을 수상했다.
안 군의 보호자는 “아이는 물놀이는 힘들어하지만, 바다에 있는 걸 무척 좋아합니다. 생각은 달라도 결국 같은 바다로 향하는 가족처럼, 언제나 함께라는 의미를 담았어요”라고 설명했다.
이어 “아이의 재능이 무엇인지 아직 다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이런 경험이 자신이 좋아하는 걸 찾아가는 길이 될 거라 믿습니다. 더 많은 기회가 있었으면 합니다”라고 바람을 전했다.
“호텔 안에서 열린 전시를 보니 감정이 복받쳐 올라요. 관심을 가지고 찾아주시는 모습을 보니 행복합니다. 더 많은 홍보를 통해 우리 아이들이, 아이들의 작품이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네요”
이번 9월 언노운바이브-더갈라 아트페어에서는 오현경, 조은숙, 최윤영 세 배우가 ‘연예인 도슨트’로 위촉됐다. 이들은 도슨트 프로그램에서 관람객들과 직접 소통하며 작품의 숨겨진 이야기와 감상 포인트를 전달했다.
특히 SDAM갤러리를 찾은 배우 조은숙은 임대진 작가의 작품 앞에서 감상을 밝혔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천경자님의 자화상이 떠오릅니다. ‘감빛선율에 피어난 모녀의 꽃’이라는 제목만 들어도 이 안에 가득찬 사랑이 느껴져요. 특히 꽃의 색감이 아름답습니다”라며 “오늘 호텔 창으로 보는 풍경이 너무 예쁜데도, 그림이 너무 화려해서 되레 바깥의 풍경이 흑백처럼 보일 정도”라고 찬사를 보냈다.
조 배우는 “‘지능이나 신체적으로 우리와 다른 사람이 그렸다’는 차별의 시선을 거두고, 있는 그대로의 작품을 봐주셨으면 좋겠어요”라며 당부했다.
이번 ‘언노운바이브-더갈라’에 참가한 SDAM은 “올해 7월 7일, 장애 예술 플랫폼으로 첫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오픈 이후 ‘제1회 SDAM 공모전’을 개최하고, 수상작을 선정해 아트페어에서 오프라인 전시까지 진행하면서 정말 숨 가쁘게 달려왔습니다.”라며 “짧은 기간이었지만 많은 분들이 관심과 응원을 보내주셨고, 장애예술 작가분들의 작품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될 수 있어 무척 기쁩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이번 전시는 SDAM이 지향하는 ‘장애 예술의 일상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시작이었고, 앞으로도 장애 예술가들이 편안하게 참여하고, 관람객들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만들어 가겠습니다.”며 “앞으로의 SDAM 여정도 지켜봐 주세요.”라는 당부의 말을 남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