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개발 넘어 ‘근속 설계’로…장애인 고용, 양에서 질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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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률 중심에서 직무·근속 중심으로 전환
이랜드 등 기업들 ‘지속 가능한 고용 구조’ 구축 시도

<사진=이랜드이츠 제공>

최근 기업들의 장애인 고용 방식이 단순 채용률 달성 중심에서 벗어나 직무 설계와 근속 안정성 확보로 확장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과거에는 법정 의무고용률 충족 여부가 주요 평가 기준이었다면, 이제는 장애인이 실제로 현장에서 장기간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가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같은 변화는 최근 몇 년 사이 장애인 고용 정책과 기업 현장의 경험이 축적되면서 나타난 흐름으로 해석된다. 특히 장애인 채용 이후 이직률이 높거나 직무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단순 채용 확대만으로는 안정적인 고용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된 것이 배경으로 지목된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장애인의 특성과 업무 환경을 함께 고려한 직무 개발에 점차 관심을 기울여 왔다.

실제로 직무 중심 고용은 최근 기업 장애인 고용 정책의 핵심 키워드로 자리 잡고 있다. 기존에는 사무 보조나 단순 지원 업무 중심의 배치가 일반적이었으나, 최근에는 산업 특성과 업무 흐름을 반영한 맞춤형 직무를 개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장애인을 조직의 주변 업무에 배치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기업 운영 과정 속에서 역할을 수행하도록 설계하는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직무 중심 접근은 이제 한 단계 더 나아가 ‘고용 지속성’이라는 새로운 기준으로 확장되는 모습이다. 장애인을 채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장기간 근무할 수 있도록 업무 난이도와 교육 체계를 설계하는 시도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장애인 고용의 성과를 단순 숫자가 아닌 근속 기간과 직무 안정성으로 평가하려는 움직임과도 맞닿아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이랜드그룹의 장애인 고용 모델이 주목된다. 이 기업은 최근 장애인 채용 과정에 ‘일자리 설계’ 개념을 도입해 직무 세분화와 교육 과정을 연계하는 구조를 구축했다. 외식 부문에서는 업무를 단계별로 나누어 반복 학습이 가능하도록 설계하고, 패션 부문에서는 실제 매장 환경과 동일한 교육장을 운영해 현장 적응력을 높이는 방식이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접근은 채용 이후 직무 적응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어려움을 사전에 줄이기 위한 조치로 평가된다.

특히 사업부별 특성을 반영한 직무 설계는 고용 지속성을 높이는 핵심 요소로 주목된다. 외식업과 유통업처럼 현장 중심 산업에서는 업무 숙련도가 근속 여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반복 수행이 가능한 업무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장애인의 업무 이해도를 높이고 직무 수행에 대한 자신감을 형성하는 데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같은 흐름은 특정 기업에 국한된 현상만은 아니다. 포스코는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을 통해 교육과 현장 업무를 연계한 고용 모델을 구축해 장기 근속 기반을 마련해 왔으며, SK그룹 역시 계열사 단위로 장애인 직무를 확대하고 근무 환경 개선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고용 안정성을 높이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장애인 고용이 단순한 사회공헌 활동을 넘어 기업 운영 전략의 일부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장애인 고용의 질적 변화가 기업의 경쟁력과도 연결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직무 적합도가 높은 인력을 장기간 유지할 수 있을 경우 조직의 업무 효율성이 높아질 뿐 아니라, 반복 채용과 교육에 소요되는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장애인 고용이 비용 부담이라는 기존 인식을 넘어, 기업 운영의 안정성을 높이는 요소로 전환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다만 이러한 변화가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기까지는 여전히 시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일부 선도 기업을 중심으로 직무 개발과 근속 설계가 이뤄지고 있지만, 상당수 기업에서는 여전히 단기 고용이나 제한적인 직무 배치가 반복되는 사례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장애인 고용 정책이 양적 확대에서 질적 안정으로 전환되는 과도기적 단계에 놓여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무 개발에서 고용 지속성 확보로 이어지는 최근의 흐름은 장애인 일자리 정책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변화로 평가된다. 채용 숫자를 늘리는 것을 넘어 장애인이 조직 안에서 안정적으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는 시도가 확산될 경우, 장애인 고용은 단순한 의무 이행을 넘어 지속 가능한 노동시장 참여 모델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