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허용현 사회적협동조합 청명자립생활센터 이사장

8월 8일 오후, 서울에는 한낮 기온이 36℃ 안팎까지 오르는 폭염이 이어지고 있었다. 뜨거운 도심을 지나 서울돈화문국악당에 들어서자 서늘한 공기가 얼굴과 팔을 스쳤다. 관객들은 땀을 닦거나 휴대용 선풍기를 내려놓으며 공연을 기다렸다.
이날 무대에는 박소희의 가야금 공연 「밝을 소(昭) 빛날 희(熙) Ⅱ」가 예정되어 있었다. 60 분 동안 진행되는 전석 무료 공연이었다. 나는 한국문화예술접근성협회의 문화예술 접근성 서비스 ‘노디스트’ 초대 프로그램을 통해 이날 공연을 관람했다.
협회는 공연 전 작품과 관람에 필요한 정보를 안내하고, 공연 중에는 준비된 음성해설과 현장 상황을 전달했다. 이전에도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여러 공연을 관람한 경험이 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객석에는 아직 작은 기침과 의자를 움직이는 소리가 남아 있었다. 무대에서는 연주자가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가야금의 첫 음은 울리지 않은 상태였다. 공연 시작 전부터 작품 안내와 음성해설이 진행되고 있었고, 나는 안내를 중간부터 듣게 됐다.
잠시 후 객석이 차츰 조용해졌다. 안내에는 “곧 공연이 시작됩니다. 공연이 시작되면 박수를 보내주세요”라는 내용이 있었다. 안내를 중간부터 듣고 있던 나는 ‘박수’라는 표현을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로 받아들여 손뼉을 쳤다. 그러자 주변에서도 하나둘 박수가 이어졌다.
그 박수는 음성으로 전해진 정보를 따라 공연의 시작에 응답한 순간이었다. 공연은 곧 시작됐고 객석은 다시 고요해졌다. 연주자의 손이 가야금 현에 닿자 첫 음이 공연장 안에 울려 퍼졌다.
“공연 시작 전입니다. 공연이 시작된 후 다시 안내드리겠습니다. 그 때 큰 박수를 보내주세요.” 다시 안내가 나왔다. 처음에는 예상하지 못한 박수에 나도 잠시 당황했다. 그러나 공연이 이어질수록 그 순간은 다르게 다가왔다. 눈으로 무대의 변화를 바로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음성으로 전달된 정보에 반응한 것이기 때문이다.
비장애인 관객은 조명이 바뀌고 연주자가 자리에 앉아 악기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공연의 시작을 자연스럽게 알아차린다. 하지만 모든 관객에게 같은 신호가 같은 방식으로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시각장애인 관객에게는 보이는 장면을 대신할 다른 정보가 필요하다. 공연이 곧 시작된다는 사실뿐 아니라 무대에서 지금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연주자가 어떤 모습으로 등장했는지, 객석의 분위기가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어야 한다. 음성해설이 더해지면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무대의 변화가 말이 되어 관객에게 건너온다. 관객은 그 말을 통해 공연의 흐름을 이해하고, 박수와 감탄으로 무대에 응답한다.
그날 조금 일찍 울린 박수도 그런 응답 가운데 하나였다. 중요한 것은 누가 박수의 순간을 정확히 맞추었는가가 아니었다. 서로 다른 관객이 공연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도록 정보가 어떻게 전달되고 연결되는가였다. 공연장에서 소리는 보이는 장면을 건너가는 또 하나의 길이 된다. 해설자의 말과 무대의 작은 소리, 객석의 움직임과 다른 관객의 박수는 공연의 상황을 이해하게 하는 단서가 된다.
이번 경험을 통해 공연 접근성은 단순히 장애인이 공연장에 들어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공연 정보를 확인하고 공연장에 도착하는 과정부터 무대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반응할 수 있는 환경까지 이어져야 한다.
필요한 정보에 접근하고 공연의 흐름을 이해하며 웃음과 감탄, 박수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공연에 관한 사전 정보와 현장 안내, 음성해설은 공연을 만나러 가는 과정을 조금 더 예측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러한 서비스는 장애인 관객을 별도로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공연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서로 다른 감각과 무대 사이에 정보를 연결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공연에 닿는 길은 공연장 문 앞에서 끝나지 않는다. 어떤 공연인지 미리 확인하고, 공연장으로 이동하고, 객석에 앉아 무대의 상황을 이해하는 모든 과정이 관람에 포함된다. 공연의 시작과 끝을 알아차리고 자신의 방식으로 반응할 수 있을 때, 관객은 비로소 공연의 흐름 안에 함께 놓일 수 있다.
돌이켜보면 그날의 공연은 가야금의 첫 음이 울리기 전부터 시작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작품에 관한 안내를 듣고 객석의 변화를 느낀 순간, 그리고 예상보다 조금 먼저 박수를 보낸 순간까지 모두 공연을 만나기 위한 과정이었다. 그날의 박수는 내게 한 가지 질문을 남겼다.
‘공연을 함께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그 답이 모든 관객에게 같은 방식으로 공연을 보도록 요구하는 데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서로 다른 관객이 각자의 감각으로 공연에 닿고, 필요한 정보를 통해 공연의 흐름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길을 마련하는 데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그런 길을 따라 더 많은 공연과 전시를 만나고 싶다. 무대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서로 다른 감각을 지나 객석의 감탄과 박수로 돌아오는 순간도 오래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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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사회적협동조합 청명자립생활센터 이사장
국립서울맹학교 고등부 인문반 제1회 졸업생 (유치부,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 이료재활과 졸업)
나사렛대학교 점자문헌정보학과 제1회 졸업생 (사회복지학 복수전공)
한국공학대학교(구 한국산업기술대학교) 산업기술경영대학원 컴퓨터공학과 졸업
경기대학교 대학원 경영학과 졸업
(전) 나사렛대학교 점자문헌정보학과 시간강사
(전) 사단법인 충청남도시각장애인연합회 천안시지회 직원(기초재활교사)
(전) 사단법인 경기도시각장애인연합회 수원시지회 직원(경기디지털배움터 전문 강사)
(전) 사단법인 서울특별시시각장애인연합회 마포구지회, 서대문구지회 종로구지회 직원
(전) 한국시각장애인아카데미 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