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호텔 객실을 가득 채운 장애 예술가들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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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SDAM 장애인 미술 공모전 수상작 48점, ‘더 블룸 2026’ 아트페어서 일반 관객과 만나

<사진=장애인일자리신문>

지난 20일, 서울신라호텔 객실 안으로 들어서자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침대 머리맡에, 협탁 위에, 욕실 벽면에까지 그림이 걸려 있었다. 호수공원의 주말 오후를 팝아트로 빼곡히 눌러 담은 화면, 오보에와 피아노와 말발굽 소리가 어우러지는 하루를 형형색색으로 그려낸 작품들이 객실 곳곳에 자리했다. 이 모든 그림은 장애 예술가들이 저마다의 하루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였다.

20일부터 22일까지 사흘간 서울신라호텔에서 ‘언노운바이브 아트페어 더 블룸(THE BLOOM) 2026’이 열렸다. 11~12층, 일부 17~18층에 걸쳐 마련된 68개 이상의 부스에 70여 개 갤러리, 300여 명의 작가 작품 1000점이 넘게 걸렸다.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부터 신진 작가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아우르는 자리였다.

이 가운데 제2회 SDAM 장애인 미술 공모전 수상작 48점이 전시장 벽면을 채웠다. 장애인 고용 플랫폼 기업 WE하다가 주최하고, 장애 예술가 플랫폼 SDAM과 장애인일자리신문이 공동 주관한 이번 공모전 주제는 ‘나의 하루’.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등록된 장애인이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었고, 다양한 연령대의 작가들이 그 부름에 응했다.

작품들은 저마다 다른 빛깔을 띄고 있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두근거림을 개구리의 눈으로 담아낸 그림이 있는가 하면, 희귀질환과 중증 장애로 막막한 하루를 살아가다 그림을 만나 내일을 꿈꾸게 된 작가의 이야기도 있었다. 작가는 휠체어에 앉아 캔버스 앞에서 질주하는 말을 그리며 희망을 담았다. 푸르른 나무와 나비, 작은 고양이와 노란 물통이 함께 어우러진 화면에는 희망과 일상이 나란히 자리했다.

또 다른 작가는 오보에와 피아노의 선율, 심장 소리를 닮은 드럼의 울림, 말발굽 소리가 어우러지는 자신의 하루를 형형색색으로 풀어냈다. 나의 하루는 그 소리들로 가득 찬 오보에 협주곡이라는 것이 작가의 말이었다.

이번 아트페어의 눈길을 끈 요소 중 하나는 ‘라이프스타일 큐레이팅’이었다. 갤러리 흰 벽이 아닌 호텔 객실의 침대 옆, 협탁 위, 욕실 공간에까지 작품이 놓였다. 예술이 생활 공간 안에 스며드는 방식으로, 관람객들이 작품을 일상의 맥락 속에서 직접 체감할 수 있었다.

공간을 옮기자 또 다른 하루들이 이어졌다. 자폐성 장애를 가진 청소년 작가는 자신의 머릿속에 동시에 존재하는 수많은 캐릭터와 감정, 기억들을 화면 가득 풀어냈다. 혼란처럼 보이는 화면 속에는 그만의 질서와 집중이 담겨 있었다.

발달장애를 가진 한 작가는 아침 알람 소리, 음식 만드는 소리, 자동차 경적, 사람들의 소리로 이루어진 하루를 그림으로 옮겼다. 청각이 예민해 버릇처럼 귀를 막고 다니면서도 도시에 적응해 살아가는 자신의 일상과, 세상 사람들과 평화롭게 살아가고 싶다는 소망을 작품에 담았다. 또 다른 발달장애 청소년 작가는 수영장을 그렸다. 물속에서는 소리도 마음도 가라앉고 몸이 가볍게 떠오르는 그 순간, 잠시 숨을 고르고 나답게 존재할 수 있는 쉼터를 반짝이는 물결과 물고기로 표현했다.

또 다른 작가는 “두려움과 불안이 내 안에서 울고 있어도 웃는 얼굴로 하루를 견딘다”며 매일 숨기고, 참고, 버티는 일상의 감정을 작품에 솔직하게 담았다.

이번 전시에서는 대상 시상식도 함께 열렸다. 대상을 수상한 양진영 작가는 수상 후 약 30분간 직접 도슨트에 나서 작품에 담긴 이야기를 관람객들에게 풀어냈다.

현장에는 박형준, 조은숙, 최윤영 등 스타 도슨트들이 직접 관람객을 안내하며 전시장에 활기를 더했다. 수상자 29명과 그 가족, 지인, 기관 관계자들도 자리를 함께했다.

현장 밖에서도 반응은 이어졌다. 한 수상자의 보호자는 “아이가 상을 받은 것도 좋지만, 친구들의 다양한 작품을 관람할 수 있어서 좋았다. 다양한 기법의 작품을 관람한 아이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림 그리는 흉내를 냈다. 무언가 자극이 된 것 같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SDAM 공식 인스타그램에도 “수상작품 모두 소중히 대해주시는 모습이 감동이었다”, “세심한 구성 덕분에 모든 작품이 빛을 발할 수 있었던 것 같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SDAM 관계자는 “장애 예술가들의 작품이 이렇게 많은 분들의 마음에 닿는 것을 보며, 우리가 이 전시를 이어가야 하는 이유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앞으로도 더 많은 장애 예술가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꺼낼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