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담금’ 대신 ‘직무 재설계’ 선택
현장 중심 건설업의 장애인 고용 난제 풀 솔루션 제시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발간한 ‘2024년 직무개발사업 우수사례집’은 장애 적합 직무 부족이라는 구조적 과제를 해소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의 성과를 담고 있다. 선도기업 전략직종 직무개발, 현장 중심 직무개발, 중증장애인 고용모델 개발·확산사업 등에서 발굴된 13건의 우수 사례와 164건의 아이디어 공모 성과는 변화하는 산업환경 속에서 장애인 고용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본지는 해당 사례들이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점검하고, 지속 가능한 직무 개발을 위한 과제와 개선 방향을 연속 기획을 통해 심층적으로 살펴볼 예정이다. [편집자주]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도면 관리 파트너’ 직무 도입은 장애인 고용 인원을 늘리는 차원을 넘어, 건설업의 고질적인 고용 구조를 디지털 전환이라는 흐름과 결합해 재설계했다는 점에서 깊이 있는 시사점을 던진다.
그동안 건설업은 거친 현장 환경과 안전상의 제약을 이유로 장애인 고용의 사각지대로 여겨져 왔으며, 많은 기업이 직접 고용 대신 고용부담금 납부라는 소극적인 방식을 택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사례는 물리적 한계가 뚜렷한 산업군에서도 직무의 성격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포용적 성장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이 실험의 핵심은 장애 특성을 기존의 경직된 직무에 억지로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산업의 변화 양상을 포착해 새로운 영역을 창출했다는 점에 있다. 과거 종이 도면을 들고 현장을 발로 뛰어야 했던 관행에서 벗어나, 최근 건설업계의 화두인 BIM 등 디지털 설계 시스템의 확산을 직무 전환의 지렛대로 삼았다.
신체적 이동이 필수적이었던 업무를 소프트웨어 기반의 데이터 검증과 품질 점검 중심으로 재구성함으로써, 장애가 업무 수행의 걸림돌이 되지 않는 환경을 구축한 것이다. 이는 보조 업무 배정을 넘어서 건설 프로젝트의 성패를 가르는 설계 정보의 정확도를 높이는 핵심 공정으로 직무를 격상시켰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이러한 직무 설계의 이면에는 기업 인사팀과 장애인 고용 전문가, 그리고 외부 컨설턴트들이 참여한 세밀한 분석 과정이 있었다. 현장의 안전 요건과 보안 기준을 철저히 분석해 재택이나 사무실에서도 충분히 성과를 낼 수 있는 업무 범위를 도출해냈으며, 단기적인 채용에 그치지 않도록 숙련도에 따른 경력 경로까지 마련했다.
실제 현장에서는 도면 오류를 사전에 잡아내고 버전 관리 체계를 강화함으로써 설계 변경에 따른 혼선과 비용 손실을 줄이는 실질적인 경영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결국 장애인 고용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위한 비용 지출이 아니라, 리스크 관리와 생산성 향상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장애인 고용의 패러다임을 가능성 여부의 논의에서 설계 방식의 논의로 전환시킨 모델로 평가한다. 물론 대형 건설사의 선도적 사례가 산업 전반으로 퍼지기 위해서는 직무 매뉴얼의 표준화와 중소 건설사도 수용 가능한 교육 체계 구축 등 해결해야 할 숙제가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시도는 ESG 경영의 실질적인 이행 모델로서 건설업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좌표를 제시했다.
장애인 고용을 구조 혁신의 중요한 변수로 바라보는 이러한 관점의 변화는, 디지털 전환기를 맞이한 전통 산업계 전체가 고민해봐야 할 중요한 함의를 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