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최근 원주복지원에서 발생한 장애인 학대 사건과 관련해 원주시의 책임 있는 대응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장연은 이번 사건이 단순한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시설 의존적 복지 구조와 지자체의 무책임한 태도가 빚어낸 전형적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7일 원주MBC 보도를 통해 알려진 이 사건은 시설 내부 고발로 세상에 드러났다. CCTV 사각지대에서 반복된 물리적·정서적 폭행이 피해 당사자의 목소리가 아니라 목격자의 증언으로 드러났다는 점은 시설 내 학대 사건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해당 시설이 장애인복지시설이 아니라 ‘노숙인요양시설’로 운영되어 왔다는 점에서, 피해자가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지원책이 불투명한 상황이 드러나며 논란을 더하고 있다.
전장연은 원주시가 사건을 최초 인지한 뒤 내부 고발 문건을 시설 측에 전달하며 사실상 은폐에 공모했다고 비판했다. 이는 학대 사건에 대한 조사가 아니라 책임 회피와 무마로 일관해 온 행정의 민낯을 드러낸다는 지적이다.
이번 사태는 한국의 장애인 시설 관리 전반에 남아 있는 문제를 다시금 드러내고 있다. 우선 폐쇄적 구조가 학대를 은폐하는 온상이 되고 있다. 시설 내 장애인들은 외부와의 접촉이 제한된 채 생활하기 때문에, 피해 사실을 직접 호소하기 어렵다. 내부 고발이 아니면 드러나지 않는 구조적 특성은 학대가 반복적으로 재생산될 수밖에 없는 조건이 되고 있다.
또한 피해자 보호와 사후 지원 체계가 사실상 부재하다.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발생한 사건이라면 주택 지원이나 자립 정착금 등 최소한의 조치가 가능하나, 이번 사건처럼 시설 유형이 달라지면 지원 공백이 발생한다. 제도적 사각지대가 피해자의 삶을 다시 한 번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형식적인 시설 평가 제도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원주시는 해당 시설에 대해 높은 등급을 부여한 바 있으나, 이는 서류 점검과 형식적 조사에 그쳤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실제 거주인의 욕구 조사나 자립 의지 파악이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이번과 같은 사태는 예방 가능했을 것이란 지적이다.
무엇보다 탈시설 지원이 여전히 선언적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 근본적 문제로 꼽힌다. 장애인의 거주 선택권과 자기결정권이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시설에 갇히는 것’이 강제된 선택으로 굳어지고 있다. 전장연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원주시가 전수조사와 민관 협력 TF 구성을 통해 실질적 자립 지원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주복지원 학대 사건은 특정 시설만의 문제가 아니다. 폐쇄적이고 책임 회피적인 행정 구조, 시설 의존적 복지 체계, 부실한 감독 제도라는 고질적 병폐가 만들어 낸 결과다. 장애인을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시민으로 존중하는 근본적 정책 전환 없이는 제2, 제3의 원주복지원 사태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