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전지혜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누구에게나 일자리는 단지 생계만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사회와 연결되는 통로가 되며, 하루를 채우는 삶의 내용이자 자신의 정체성이 된다. 이것은 장애인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장애인을 일할 수 없는 자 또는 사회에서 부양받는 자가 아닌, 직업이 있고 세금을 내는 동등한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일자리를 마련하는 것은 중요한 사회적 과업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여전히 장애인의 노동을 너무 좁은 기준으로 평가한다. 얼마나 빠르게 일하는가, 얼마나 많은 성과를 내는가, 얼마나 높은 수익을 창출하는가 같은 경제적 논리가 노동의 거의 유일한 잣대가 되어 있다. 이 기준 아래에서 장애인의 노동은 저평가되고, 장애인의 삶은 시민의 권리보다는 지원과 보호의 대상으로만 머물기 쉽다. 하지만 사회를 지탱하는 가치가 오직 시장의 효율과 생산성만으로 설명될 수는 없다. 효율이나 생산성과 무관하게 우리 사회를 보다 가치있게 만드는 일이라면, 이는 사회에서 적극적으로 장려해야 할 것이다.
장애인의 활동은 그 자체로 사회를 더 낫게 만드는 공공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이를테면 어떤 장애인이 집에서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린다고 하자. 그동안 이런 활동은 흔히 취미나 재활 프로그램의 일부 정도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그 시와 그림이 지역사회 안에서 전시되고, 학교나 기업, 공공기관의 공간에 소개되어 사람들에게 새로운 감수성과 이해를 불러일으킨다면 그것은 단순한 개인 활동을 넘어선다. 누군가의 표현이 공동체의 감수성을 넓히고 공간의 의미를 바꾸며, 장애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는 데 기여한다면 그것은 분명한 사회적 가치다. 그리고 그 과정이 지속적인 시스템 안에서 운영되고 정당한 보상으로 이어진다면, 그 활동은 충분히 직업이 될 수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장애인의 관점은 예술 활동에만 머물지 않는다. 장애인은 일상 속에서 누구보다 먼저 지역사회의 불편과 배제를 발견하는 사람들이다. 휠체어가 지나갈 수 없는 인도, 경사가 너무 가파른 보행로, 점자나 안내표지가 부족한 공공시설, 진입이 어려운 동네 시장과 마트, 이용이 불편한 산책로와 등산로는 비장애인에게는 쉽게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장애인의 눈에는 그것이 곧 삶의 제약으로 드러난다. 그렇다면 이 관점을 사회적으로 활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예를 들어 장애친화적이지 않은 지역사회를 직접 모니터링하는 역할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장애인이 지역의 보행환경, 공공시설, 상점, 전통시장, 마트, 공원, 산책로, 등산로 등을 살펴보고 무엇이 불편한지,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 점검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환경개선단과 같은 형태로 참여해 실제 개선 방향을 제안하고, 변화된 환경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다시 확인하는 일도 가능하다. 이런 활동은 단지 장애인만을 위한 일이 아니다. 노인, 어린이, 임산부, 일시적으로 몸이 불편한 사람들까지 포함해 더 많은 시민에게 안전하고 편리한 환경을 만든다. 결국 장애인의 관점은 사회를 더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살기 좋게 만드는 공공 자산인 셈이다.
이미 장애인의 특화된 사회적 기여에 초점을 두고 장애인 권리형 일자리 사업 또는 맞춤형 사업 등이 계획되고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회가 매우 부족한 것이 한계이다. 2025년 기준 인천형 중증장애인 맞춤형 일자리는 70명 규모에 그쳤다. 한 개 자치구에 많아야 7개의 권리형 일자리가 주어지는 현실이라면, 이는 장애인을 여전히 지역에 기여하는 사람이 아닌 보호수당의 또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필요한 것은 선의나 일시적 지원이 아니라 제도적 설계다. 장애인의 사회적 기여를 직업으로 만드는 일은 지자체와 정부의 몫이다. 지자체와 정부는 장애인의 다양한 활동을 공공사업으로 조직해야 한다. 예술 활동의 결과물을 학교, 기업, 공공기관과 연결해 정기적인 전시와 보상 체계를 만들 수 있다. 동시에 지역사회 접근성을 점검하고 개선 방안을 제안하는 모니터링단, 환경개선단, 지역의 장애친화 평가단과 같은 일자리도 충분히 설계할 수 있다. 장애인 접근성 보장을 위해 키오스크 모니터링단이나 선거 모니터링단도 가능하다. 장애인의 경험과 관점을 사회에 필요한 전문성으로 인정하고, 그것이 안정적인 소득과 연결되도록 제도화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일자리 정책이다.
이제는 직업의 기준을 다시 물어야 한다. 기업의 이윤에 직접 기여해야만 직업이라고 부를 것인가. 아니면 공동체를 더 안전하게 만들고, 공간을 더 포용적으로 바꾸며, 사회의 감수성과 공공성을 넓히는 일도 직업으로 인정할 것인가. 장애인의 관점으로 세상을 좀 더 살기 좋게 만드는 모든 활동은 이미 사회적 가치다. 장애인 단체의 권익옹화 활동으로만 바라보지말고, 공공정책의 관점에서 정당한 보상과 안정된 구조를 갖춘 일자리로 사업화하는 일이 필요하다. 장애인의 시선으로 사회를 바꾸는 일, 장애인 권리운동의 새로운 형태는 장애인의 일자리로 국가의 공공성이 앞장서서 열어가길 바란다.

전지혜 교수는 장애학자로서 장애와 사회의 관계를 연구하고, 장애인 정책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체장애인으로서 미국 일리노이주립대학에서 장애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한국장애인개발원 부연구위원을 거쳐 현재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대표 저서로는 수다떠는 장애(울력출판)가 있으며, 장애정책 관련 연구를 다수 수행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