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선 데이터 라벨링 붕괴로 중증장애인 고용 직격탄, 미국은 접근성 기술로 직무 확장 모색

미국의 인사 전문 미디어 HR Dive에 따르면, 미국 노동부의 장애인 고용정책 담당 차관보 줄리 호커(Julie Hocker)가 “AI는 장애인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장벽을 허물고 있다”고 밝혔다.
매체는 호커 차관보가 지난달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열린 ‘2026 장애 관리 고용주 연합 연례 콘퍼런스’에서 이같이 말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장애인 고용 분야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AI가 장애인의 일자리와 경쟁하는가’라는 것”이라며 “AI와 접근 가능한 기술은 장애가 있든 없든 모든 사람이 업무 방식을 더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도록 더 많은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한국의 현실과 대비된다. 국내에서는 AI 기술 확산이 장애인 고용 시장에 다른 방향의 충격을 주고 있다. 기업들이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채우는 수단으로 활용해 온 데이터 라벨링 직무가 생성형 AI의 자동화(오토 라벨링)에 밀려 급격히 축소되면서, 이 일자리에 기대온 중증·발달장애인 노동자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비대면 재택근무와 반복 업무 특성 덕에 중증장애인에게 적합한 직무로 꼽혔던 데이터 라벨링이 사실상 시한부 상태에 놓인 것이다.
문제는 직업훈련 시스템이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장애인 직업훈련 과정은 여전히 바리스타, 제과제빵, 제조업 등 전통 직무 중심으로 짜여 있고, AI 보조 도구 활용이나 디지털 리터러시를 가르치는 과정은 턱없이 부족하다. 기업 현장에서는 “AI 툴을 다룰 수 있는 장애인 인재가 필요한데, 훈련기관 배출 인력은 단순 업무만 가능해 미스매칭이 심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미국은 이 간극을 메우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고 있다. 호커 차관보는 폐쇄 자막이나 접근성 기능처럼 현재 보편화된 기술들도 처음에는 기술기업의 한 직원을 위한 합리적 편의 제공에서 시작됐다고 밝혔다. 이러한 기술들이 ‘장애인은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없다’는 편견을 깨고, 직무 수행 방식의 선택지를 넓혀준다는 것이다. 미국 노동부는 고용주들이 접근 가능한 기술을 도입하도록 돕기 위해 ‘고용 및 접근 가능 기술 파트너십(PEAT)’을 운영하며 기술 설계 단계부터 접근성을 내재화하는 작업을 기술기업들과 함께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방향 전환의 실마리는 있다. 일부 소셜벤처와 장애인 표준사업장에서는 단순 데이터 라벨링을 하던 발달장애인 직원들을 AI가 생성한 결과물의 정확성과 윤리성을 평가하는 ‘QA(품질 검수)’ 인력으로 재교육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시각·청각·지체장애인이 음성 인식, 문서 요약, 코딩 보조 등 생성형 AI 도구를 활용해 사무·기획 업무를 수행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AI를 ‘빼앗기는’ 기술이 아닌 ‘부리는’ 도구로 전환한 경우다.
피닉스 대학과 해리스폴이 실시한 최근 조사에서도 이미 AI를 업무에 활용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다수가 AI 덕분에 접근성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다고 응답했다.
호커 차관보는 “지금이 기업들이 합리적 편의 제공 프로그램에 기술을 어떻게 접목할지 검토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