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지능 700만, 사라진 노동력] ② 해외는 어떻게 문을 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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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네덜란드·호주·일본의 맞춤형 고용 모델, 그리고 한국의 첫걸음
IQ가 아닌 직무 능력으로 판단하는 해외 고용 모델, 한국은 아직 시범사업 수준

<사진=Unsplash>

지능지수(IQ) 71~84에 해당하는 경계선지능인은 전체 인구의 약 13%를 차지하지만, 장애인에게도 비장애인에게도 속하지 못한 채 고용과 복지 양쪽에서 배제돼 있다. 법적 정의조차 없는 이 700만 명은 저출생·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가 빠르게 줄어드는 한국 사회에서 활용되지 못한 채 방치된 노동력이기도 하다. 해외 주요국은 이미 이들을 노동시장 안으로 끌어들이는 제도를 갖추고 있다. 3회에 걸쳐 경계선지능인의 고용 현실과 해외 사례, 그리고 한국에 필요한 제도적 과제를 짚는다. [편집자주]

경계선지능인은 장애인 복지와 일반 고용 정책 양쪽에서 배제된 채 노동시장 밖에 머물고 있다. 한국이 이 문제에 대한 법적 정의조차 마련하지 못한 사이, 해외 주요국은 이미 경계선지능인을 포함한 인지 취약 계층을 노동시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 국가의 접근법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장애 판정 여부가 아니라 ‘직무 수행 능력’을 기준으로 지원 대상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독일은 통합청(Integrationsamt)을 중심으로 경계선지능인을 포함한 인지 취약 계층에 대해 지원고용(Supported Employment) 모델을 운영한다. 보호작업장(Werkstatt für behinderte Menschen)에서 직업 훈련을 받은 뒤 일반 사업장으로 전환 배치하는 구조로, 직무 코치가 사업장에 상주하며 적응을 돕는다. 장애 판정 여부가 아니라 근로 능력 평가 결과에 따라 지원 대상이 결정되기 때문에, 경계선지능인처럼 공식 장애 등급을 받지 못한 계층도 제도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네덜란드의 경우 사회보험기관(UWV)을 통해 장애인 고용 쿼터제와 직업 코치 지원 제도를 병행한다. 고용주에게 임금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동시에 근로자 개인에게 맞춤형 직무 교육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경계선지능인처럼 제도적 분류가 모호한 계층도 직무 능력 평가를 기반으로 지원 대상에 포함시킨다. 고용주와 근로자 양쪽에 동시에 지원이 이뤄지기 때문에, 채용 단계에서의 기피와 입사 후의 조기 퇴사를 함께 줄이는 효과가 있다.

호주는 연방정부 고용부 소관의 장애고용서비스(Disability Employment Services)를 통해, 지적장애 판정 여부와 관계없이 직무 수행에 어려움이 있는 이들에게 맞춤형 훈련과 배치를 지원한다. 핵심은 직업능력평가(Job Capacity Assessment)다. 신청자의 인지·적응 기능 수준을 평가한 뒤 지원 수준을 결정하기 때문에, 경계선지능인처럼 공식 장애 판정을 받지 못한 계층도 제도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장애 유형이 아닌 ‘기능적 필요’를 기준으로 지원 여부를 판단하는 체계다. 장애고용서비스는 국가장애보험제도(NDIS)와 별도로 운영되며, 취업 배치와 직장 내 적응 지원에 특화돼 있다.

일본은 지적장애인복지법을 기반으로 취로계속지원A형·B형 사업소를 운영하며, 경계선지능인 일부가 이 체계를 통해 보호고용 형태로 노동시장에 참여하고 있다. A형은 고용 계약을 체결하고 최저임금 이상을 보장받는 구조이고, B형은 비고용 형태로 생산 활동에 참여하면서 공임을 받는 방식이다. 다만 일본 역시 경계선지능인에 대한 별도의 법적 지위 부여는 이루어지지 않아, 사각지대 해소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에서도 변화의 시도가 있다. 한 의류기업은 사회복지법인 아이들과미래재단과 함께 ‘천천히 함께’ 사업을 운영하며, 3년간 누적 31억 원 이상을 투입해 경계선지능 아동 700여 명에게 1대1 맞춤 교육을 제공했다. 기초학습능력이 평균 21%포인트 향상되는 성과를 냈고, 4년차인 2025년에는 추가 12억 원을 투입하며 지원 지역을 확대했다. 민간 기업이 교육 단계에서부터 경계선지능인의 역량을 끌어올린 사례로, 직업훈련과 연계될 경우 고용 가능성의 토대가 될 수 있다.

지자체 차원의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부산시는 2023년 경계선지능인 지원 조례를 제정하고 전담센터를 통해 경계선지능 청년을 대상으로 진로 탐색과 일 경험 프로그램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 부산시교육청도 경계선지능 학생 맞춤형 학습·상담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안양시와 서울 광진구 등 일부 지자체에서는 평생교육 지원을 확대하고 있고, 강원도에서는 취약 청년 자립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전남교육청은 전국 최초로 경계선지능 의심 학생의 지능검사 비용을 전액 지원하기 시작했다.

중앙정부도 ‘경계선지능 청년 일자리 지원 사업’에 3억 원을 배정해, 20~39세 경계선지능 청년 200명에게 1개월간 일 경험 기회와 참여수당 월 20만 원을 제공하는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2024년 7월에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경계선지능인 지원 종합대책을 수립하고, 처음으로 전국 단위 실태조사에도 착수했다. 조사 결과는 2026년 상반기 중 발표될 예정이다.

그러나 이 모든 시도는 여전히 산발적이고 규모가 작다. 해외 사례에서 보듯이 고용 시스템이 작동하려면 직무 코치, 임금 보조금, 기능적 평가 체계가 제도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한국의 현재 시범사업들은 이러한 요소를 갖추지 못한 채, 단기 체험에 가까운 수준에 머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