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은 시설이 아닌 마을에서 살아야 한다”…천노엘 신부가 남긴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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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그룹홈 설립으로 장애인복지 패러다임 전환 이끌어
천노엘 신부 선종 1주기 맞아 300여 명 추모

<사진=엠마우스복지관 제공>

한국 장애인복지 역사에서 천노엘 신부가 차지하는 위치는 특별하다. 오늘날 장애인의 자립생활과 지역사회 통합이 복지정책의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았지만, 천 신부는 이미 40여 년 전부터 이러한 철학을 실천에 옮긴 선구자였다.

아일랜드 출신인 천노엘 신부는 1957년 한국에 파견된 이후 평생을 장애인과 함께 살아왔다. 그가 한국 장애인복지에 남긴 가장 큰 업적은 장애인을 보호와 수용의 대상으로 보던 기존 인식을 바꾸려 했다는 점이다. 장애인이 사회와 분리된 대규모 시설에서 생활하던 시절, 그는 장애인도 지역사회 안에서 이웃과 함께 살아야 한다고 믿었다.

천 신부는 1981년 한국 최초의 발달장애인 그룹홈을 설립했다. 몇 명의 장애인이 일반 가정과 같은 환경에서 함께 생활하는 공동생활가정 모델은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시도였다. 그러나 이 실험은 훗날 전국으로 확산되며 오늘날 장애인 자립생활 정책과 탈시설 운동의 중요한 토대가 됐다.

그는 주거 지원에만 머물지 않았다. 장애인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직업재활과 사회참여 기반을 구축하는 데도 힘썼다. 1985년 엠마우스복지관을 설립했고, 이후 사회복지법인 무지개공동회를 통해 주거, 직업, 교육, 문화 영역을 아우르는 장애인 지원 체계를 만들어 나갔다. 이러한 공로로 그는 ‘발달장애인의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천 신부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지난 지난 1일, 광주대교구 담양 천주교 공원 묘원에서는 그의 삶과 정신을 기리는 선종 1주기 추모 미사가 봉헌됐다.

사회복지법인 무지개공동회 대표이사 윤근일 신부 주례로 열린 이날 추모 미사에는 무지개공동회 산하 기관 이용인과 가족, 봉사자, 추모객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특히 천 신부가 설립한 공동체에서 생활하는 발달장애인들이 직접 추모사를 낭독하며 고인을 기억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 이용인은 “신부님, 저희는 잘 지내고 있어요. 신부님이 계셨던 그때처럼 서로 지내며 잘 살고 있어요”라고 말했고, 또 다른 이용인은 “신부님이 남긴 미소와 따뜻한 마음은 여전히 우리 공동체 안에 살아 있다”고 전했다.

참석자들은 천 신부의 삶과 영성을 정리한 평전을 봉헌하며 그가 걸어온 길을 되새겼다. 이날 말씀 전례에서는 천 신부가 생전 “내가 세상을 떠나면 장례미사 때 읽어달라”고 부탁했던 성경 구절들이 봉독되기도 했다.

윤근일 신부는 강론을 통해 천 신부의 삶을 “발달장애인과 가족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던 복음적 실천”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천 신부님은 한국 땅에 참된 장애인 복지 제도를 마련하기 위해 복음 속에서 길을 닦은 요한 세례자와 같은 삶을 사셨다”며 “세상의 약한 존재들을 공동체의 주인공으로 세우려 했던 뜻을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천노엘 신부는 생전 “엠마우스 공동체 친구들과 함께 살면서 눈이 열렸고 그들 안에 계신 예수님을 발견했다”고 말한 바 있다. 장애인을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바라본 그의 철학은 오늘날 장애인복지의 중요한 가치로 남아 있다.

선종 1주기를 맞아 열린 추모 미사는 한 성직자를 기리는 자리를 넘어, 장애인이 지역사회 안에서 존엄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천노엘 신부의 신념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과제임을 되새기는 시간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