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정’ 뒤에 숨은 접근성, 시작조차 허락하지 않는 인터페이스

자동화는 효율의 이름으로 우리의 일상을 재편했다. 은행 창구 대신 ATM기가 늘고, 매장엔 주문용 키오스크가, 역엔 발권기가 줄지어 있다. 이제 인간은 ‘기계 앞의 사용자’로 존재한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공평한 변화는 아니다. 화면의 높이, 글자의 크기, 안내음의 속도, 메뉴의 깊이 하나까지가 새로운 경계가 된다. 장애인·노인·비숙련 이용자는 기술의 중심에서 다시 주변으로 밀려난다. ‘스마트’라는 이름의 혁신이 실제로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바깥에 세워두는가. ‘배리어프리 인터페이스를 묻다’는 해외 사례를 통해 미국의 맥도날드, 영국의 런던교통공사, 독일의 베를린교통공사 등 해외 사례를 통해 ‘접근성은 왜 첫 화면이어야 하는가’를 다루고, 쉬운 언어와 되돌리기 같은 인지 친화적 인터랙션을 살핀다. 마지막으로 접근성을 기술이 아닌 제도, 즉 조달 기준으로 끌어올린 국가들의 변화를 추적한다. 자동화의 시대, 기계의 설계는 결국 사회의 태도를 닮는다. 우리는 누구를 위해 이 화면을 만들고 있는가. [편집자주]
키오스크는 이미 일상적인 기반시설이 되었다. 은행 창구를 대신하는 ATM, 식당의 주문용 키오스크를 넘어, 공공기관과 교통 현장에서까지 모두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 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접근성은 별도의 ‘추가 옵션’이 아니라 사용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첫 화면에서 모드를 선택할 수 없으면, 특정 집단은 시작조차 하지 못한다. 실패는 사용자의 잘못이 아니라 설계자의 무책임으로 귀결된다.
2024년 한국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장애인 277명 중 44.8%가 ‘직원 주문’을 선호한다고 답했으며, 키오스크 사용을 선호하는 답변은 절반 이하에 그쳤다. 특히 시각장애, 중증 장애, 휠체어 사용자 중에서는 70% 이상이 직원 주문을 선호했다. 가장 큰 불편 원인은 ‘버튼 위치·메뉴 탐색’과 ‘주변 시선·혼잡’이었다. 장애인 응답자의 80%가 자동 주문기에 큰 어려움을 겪었으며, 실제로 전국 무장애(Barrier-free) 인증 키오스크는 466대에 불과하다.
장애인이 키오스크 사용 개선을 위해 제안한 대책에는 ‘진입구 근처 전담 직원 배치’, ‘부르는 호출벨 설치’, ‘초보자용 전용 존 조성’, ‘접근성 캠페인’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장애인 51.1%만이 장애인 차별금지법 개정 내용을 알고 있어 제도 인식의 격차도 드러났다.
그래서 미국의 맥도날드와 영국의 런던교통공사(TFL·Transport for London), 독일의 베를린교통공사(BVG·Berliner Verkehrsbetriebe)는 모두 첫 화면에 접근성 모드를 전면 배치한다. 선택의 순간을 입구로 옮기는 단순한 변화가 배제의 구조를 끊어내는 출발이 된다.
대부분의 키오스크는 접근성 옵션을 설정 메뉴 깊숙한 곳에 감춘다. 시각적 보조나 인지 지원이 필요한 사람은 출발선에서 막히고 만다. 실제 매장과 지하철역은 소음과 혼잡으로 가득하다. 화면 속 글자를 읽고, 목소리를 듣고, 버튼을 찾는 일이 동시에 요구될 때 오작동은 예견된다. 첫 화면에서 즉각 모드를 선택하고 다감각적 전환을 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 더 나아가 휠체어 접근 높이나 화면 각도 같은 물리적 조건은 배치 단계에서 이미 결정된다.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만으로는 이런 한계를 보완할 수 없다.
맥도날드는 리테일 환경에 맞춰 즉시 전환형 접근성을 도입했다. 첫 화면 상단에 고대비, 확대, 쉬운 모드 아이콘을 고정해두고, 전면에는 이어폰 잭과 물리 버튼을 마련했다. 휠체어 사용자가 앉은 상태에서도 첫 화면을 조작할 수 있도록 높이와 각도를 표준화했다. 혼잡한 점심시간에도 접근성 모드 선택이 흐름을 방해하지 않도록, 토글 후 단계 수를 최소화하고 오류 복구 버튼을 고정 위치에 두었다. 접근성 진입 자체의 학습 비용을 없앤 셈이다.
TfL은 소음 많은 역 환경을 고려해 단순화에 집중했다. 티켓 키오스크 첫 화면 하단에 ‘고대비’, ‘확대’, ‘스크린리더’ 아이콘을 크게 배치해 손 닿는 곳에서 전환할 수 있도록 했다. 음성 안내는 음량 조절과 시각 피드백을 동시에 제공한다. ‘간소화 모드’로 문장을 짧게 다듬고 단계 수를 줄였다. 역 직원이 접근성 버튼 위치를 바로 가리킬 수 있도록 물리적 위치를 표준화했고, 원격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언어와 테마를 빠르게 확장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했다.
BVG는 인지 부담을 줄이는 데 집중했다. 첫 화면에서 ‘쉬운 독일어’와 다국어 모드를 선택할 수 있게 해 이용자의 여정을 새롭게 설계했다. 접근성 모드는 단순히 텍스트 크기나 색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절차를 줄이고 실수를 회복하기 쉽게 만드는 체계다. 항상 노출되는 ‘되돌리기’ 버튼과 최근 선택 재확인 단계가 대표적이다. 장애인 단체와의 반복 테스트를 통해 버튼 크기와 대비, 위치를 검증하며 표준을 다듬었다.
미국 ADA와 유럽의 접근성 지침에 따르면, 접근성 옵션은 여러번 눌러야 하는 하위 메뉴가 아니라 첫 화면 즉시 접근 가능한 위치에 있어야 하며, 화면 조작부 및 정보 표시는 휠체어 기준 높이(최대 1,220mm 이내, 하단 최소 380mm) 내에 설치되어야 한다. 소프트웨어만으로 보완 불가한 물리적 한계는 설치 단계에서부터 반영되어야 한다.
접근성 기능은 확대·고대비, 음성 안내, 버튼 크기·배치 표준화, 버튼·이어폰잭 등 물리 입력, 다국어·쉬운 언어, 오작동시 실시간 복구 안내 등이 포함된다. 장애인 집단과 반복 실증 테스트가 국제 표준의 필수 절차임이 강조된다.
용자는 첫 터치 이전부터 이미 제약을 가진다. 기본 모드를 먼저 거쳐야만 옵션에 도달할 수 있다면, 이는 선택이 아니라 강요다. 매장과 역의 현실은 소음과 혼잡, 시선 분산이 기본값이다. 탐색을 요구하는 순간 실패가 발생한다. 접근성이 첫 화면에 있어야 하는 이유다. 첫 화면 고정 배치는 직원 교육과 안내, 유지보수단순화와도 이어진다.
접근성은 사후적 보정이 아니라 시작의 조건이다. 버튼 하나의 위치를 바꾸는 일 같아 보여도, 이는 누군가가 출발선에 서지 못하는 근본적인 차이를 없애는 일이다. 결국 첫 화면의 설계는 기술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접근성을 어디에 두는지는 곧 누구를 사용자로 상정하는지의 답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