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고용 인증제 전면 개편 나선 영국… “채용 넘어 장기근속·승진까지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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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연금부, ‘장애인 확신’ 프로그램 기준 강화 발표… 고용 데이터 제출 의무화
채용 실적 중심 한계 벗어나 고용의 질로 기준 전환…한국 의무고용제에도 시사점

영국 정부가 장애인 고용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국가 차원의 장애인 고용 인증 제도를 전면 개편한다. 단순 채용 실적이 아니라 장애인의 장기근속과 경력 발전까지 평가하는 방향으로 기준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영국 노동연금부는 최근 장애인 고용주 인증 제도인 ‘Disability Confident’ 프로그램을 전면 개편해 기업과 공공기관에 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

노동연금부는 이번 개편이 형식적인 참여에 그쳤다는 지적을 받아온 기존 제도의 한계를 보완하고, 장애인 고용의 지속성과 질을 높이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Disability Confident’ 프로그램은 2013년 도입된 국가 인증 제도로, 현재 약 1만9천 개의 기업과 공공기관이 참여하고 있으며 약 1천100만 명의 유급 직원이 혜택을 받고 있다. 정부는 제도 개편을 통해 더 많은 근로자에게 실질적인 효과가 확산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개편안에는 고용주 중심의 제도 개혁과 함께 ‘워킹 리뷰 뱅가드’에서 진행 중인 시범 작업 결과가 반영됐다. 노동연금부는 “현장 중심의 개선 방안을 제도 전반에 적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개편의 핵심은 인증 단계 요건 강화다. 기존에는 고용주가 초기 단계 인증에 최대 3년까지 머물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이를 2년으로 단축하고 갱신 옵션도 폐지해 상위 단계로의 이행을 유도한다. 중간 단계 이상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장애인 채용뿐 아니라 장기 근속 지원, 직무 개발, 승진 기회 제공에 대한 구체적 성과를 입증해야 한다.

또한 모든 규모의 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기업의 필요와 역량에 맞춘 맞춤형 지원이 제공된다. 노동연금부는 고용주 간 네트워크를 구축해 동료 간 지원과 우수 사례 공유를 확대하고, 실질적인 자료와 지침을 통해 제도의 활용도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제도 전반에 장애인의 의견과 경험을 반영해, 지침과 평가 기준이 실제 근무 환경을 충실히 반영하도록 개선한다는 방침이다. 고용주들은 장애인 고용 현황과 관련한 세부 데이터를 보다 체계적으로 제출해야 하며, 정부는 이를 통해 제도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높인다고 설명했다.

스티븐 팀스 영국 사회보장·장애인 담당 장관은 성명을 통해 “이번 개편은 장애인 일자리의 양적 확대뿐 아니라 질적 개선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장애인이 직장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영국 경제 성장에도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영국 정부는 이번 개편을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 고용 격차를 줄이고, 장애인 인재를 채용·유지하려는 고용주를 보다 적극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정부는 “이번 조치가 전국 장애인의 고용 성과와 생활 수준을 개선하고, 영국 내 280만 명이 넘는 장기 질환 보유자를 안정적인 일자리로 연결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정책은 영국 정부가 추진 중인 ‘영국을 일하게 하는 계획’의 일환이다. 노동연금부는 노동시장 참여 확대와 전반적인 고용 수준 제고를 위해 복지 및 노동 정책 전반에 걸친 개혁을 병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영국의 이번 개편은 한국의 장애인 고용 제도를 되돌아보게 한다. 한국은 현재 민간기업에 3.1%, 공공기관에 3.8%의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제도는 ‘채용’이라는 결과만 요구할 뿐, 채용 이후 장애인 근로자가 얼마나 오래, 어떤 조건에서 일하는지는 사실상 묻지 않는다.

의무고용률을 채우지 못한 기업은 미달 인원 1인당 매월 고용부담금을 납부하면 된다. 사실상 ‘돈으로 대신하는 고용’이 법적으로 허용되는 구조다. 그 결과 일부 기업은 단기 계약직이나 자회사 고용 방식으로 수치만 맞추고, 실질적인 고용 환경 개선에는 손을 놓는 편법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공공기관의 경우도 장애인 근로자 가운데 비정규직 비율이 높다는 우려가 장애인 단체와 노동계 일각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의무고용제 개선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부담금 제도 보완과 고용의 질 지표 개발 등을 중장기 과제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장애인 적합 직무 발굴의 어려움과 중소기업의 수용 여건 등 현실적 제약이 제도 개선 속도를 늦추는 요인으로 꼽힌다.

장애인 고용 현장에서는 법정 기준 충족에 급급한 채용 관행이 여전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입사 후 직무 교육이나 승진 기회가 실질적으로 주어지지 않아 장애인 근로자가 스스로 이직을 선택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고용의 문턱을 낮추는 것만큼, 일터에서 버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현장 관계자들 사이에서 나온다.

제도가 측정하는 것은 결국 제도가 만들어내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의 의무고용제가 ‘몇 명을 채용했는가’만 묻는 한, 기업은 채용 이후를 관리할 유인이 없다. 장애인이 입사한 뒤 직무 교육은 받고 있는지, 승진 기회는 주어지는지, 1년을 버티고 3년을 채우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지 하는 질문들은 현행 제도의 시야 밖에 있다.

영국 사례는 한국 제도 개편의 방향을 가늠케 한다. 핵심은 평가 기준의 전환이다. 채용 인원 수라는 단일 지표를 넘어, 근속 기간·직무 다양성·승진 여부 같은 ‘고용의 질’ 지표를 제도 안에 담아야 한다는 논의가 한국에서도 이미 시작됐지만, 제도 변화는 더디다.

인증제 도입도 검토할 만하다. 영국의 Disability Confident처럼, 단순히 법정 기준을 충족하는 기업과 장애인 고용 환경을 선도적으로 개선하는 기업을 공개적으로 구분하는 체계는 기업에 자발적 참여 유인을 제공한다. 부담금을 내고 끝내는 것보다, 우수 고용주로 인정받는 것이 기업 이미지와 채용에도 유리하다는 인식이 확산된다면 제도의 실효성은 달라질 수 있다.

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를 제도 설계에 반영하는 것도 빠진 고리다. 영국은 이번 개편에서 장애인의 실제 근무 경험을 평가 기준에 녹여내겠다고 명시했다. 한국 역시 정책 수립 과정에서 장애인 근로자의 경험을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반영하는 창구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