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회 장애인문학제 대상 수상 작가 ‘나다’

이른 아침, 갑작스럽게 아이와 나, 남편 세 가족은 제주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언제나 미래를 대비하며 하루하루를 계획하며 살아왔던 내가, 그 어떤 여행 일정도 세우지 않은 채 제주도 여행을 떠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스르륵 잠이 쏟아질 것 같은 기내의 고요한 공기 소리를 들으며 창밖의 흰 구름을 보았다.
‘아…. 정말.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결혼 후 아이가 태어나고, 다사다난했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많은 생각으로 마음이 무거워지던 순간,
“엄마?” 하고 아이가 미소를 보이더니, “졸려요.”라고 말하곤 두 눈을 감았다.
그래, 그래도 잘 자라고 있어. 아이의 미소에 나는 조금 안도했다.
아이는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 있다. 병원에서 처음 자폐 진단을 받던 날은 정말로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아이는 다섯 살이 되어 가도록 ‘엄마’라는 말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마치 다리를 얻고, 목소리를 잃어버린 인어공주처럼.’
커다랗게 보름달이 뜬 밤이면 창문을 통해 새어 나온 달빛의 빛줄기를 따라서 인어가 달빛 아래에서 춤추듯 폴짝폴짝 뛰었다. 달빛을 두 손에 주워 담으려는 듯 짝짝 박수를 치며 침대 위를 돌아다녔다. 캄캄한 밤이면 예민함에 잠을 이루지 못한 자폐 아이가 빛을 쫓아 반복적으로 보이는 상동행동이었다.
아이의 그런 모습을 동화 속 인어공주의 춤처럼 바라볼지, 공포 영화 속 자의식을 잃은 몽유병 환자의 위태로운 모습으로 볼지는 오로지 그것을 지켜보는 엄마인 나의 몫이었다.
아이의 장애를 짊어진 남편과 나는 더 이상 쾌적한 30평대 아파트에서 잠드는 것이 행복하지 않았다. 우리는 신혼 때 꿈이었던 아파트를 팔고 낡은 빌라로 이사했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바라며 재활치료에 많은 돈을 쏟아부었다.
아이가 잘 클 것이라는 희망이 생겨서였을까. 종일 아이를 치료실에 데리고 다니며 뒷바라지하느라 지쳐서였을까. 낡은 빌라로 이사해서 집은 좁아졌지만, 아이에게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에 밤이면 그대로 쓰러져 두 발 쭉 뻗고 잠들었다. 이사한 새집은 달빛도 잘 들어오지 않아 아이가 밤마다 빛을 따라 춤추던 일도 자연스럽게 없어졌다.
온 힘을 다해 치료에 집중해도 아이는 여전히 ‘엄마’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정말 우울했다. 그렇게 슬픔의 땅굴을 점점 깊게 파내려가던 어느 날, 뉴스를 통해 간절히 소원을 빌면 일생에 꼭 한 번은 소원을 들어준다는 절이 땅끝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해 겨울,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가족을 데리고 그 절로 향했다. 나는 모태신앙의 기독교인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종교의 경계를 내려놓고 남편과 함께 소원초를 샀다. 우리는 초에 불을 켜고 간절히 소원을 빌었다.
“우리 아이가 엄마라고 말할 수 있게 제발 도와주세요. 아이가 말 좀 할 수 있게 정말 정말 도와주세요. 우리 아이의 목소리가 너무 궁금합니다. 부처님, 신령님, 옥황상제님… 제발 하늘의 온갖 신이시여 우리 아이의 잃어버린 목소리를 찾아주세요. 간절히 빕니다.”
나는 부처님 불상 앞에서 죽음을 앞둔 사람처럼 간절하게 빌고 또 빌었다. 그리고 그 소원은 다음 해, 코스모스가 예쁘게 피어 하늘하늘 춤추는 가을, 아이와 공원 산책을 하던 어느 오후에 이루어졌다.
“엄마!”
해질녘 저물어가는 햇빛이 우리를 비췄다. 코스모스 꽃밭에 키가 커져서 나란히 누워 있는 우리의 그림자. 나보다 작은 아이의 그림자가 나를 꼭 안아주었다.
“엄마!” 아이의 목소리가 뚜렷하게 들려왔다. 소원이 정말로 이루어졌다.

“엄마!” 비행기에서 곤히 잠들었던 아이가 깨서 나를 불렀다. 이젠 아이의 목소리를 또렷하게 기억할 수 있다. 하지만… 하지만, 내가 기대했던 건 이게 아니었다. 소원을 잘못 빌었나 보다. 그냥 그때 아이의 자폐증이 낫게 해달라고 할 걸. 아이의 장애가 사라지게, 평범한 아이로 자라게 해달라고 빌 걸. 아이는 내 마음도 모른 채 여전히 나를 보며 해맑게 웃는다.
“엄마, 루나폴! 루나폴! 가고 싶어요.”
“알겠어. 엄마가 꼭 데려갈게.”
루나폴은 예쁜 밤 산책로와 커다란 달 조형물로 유명한 제주도의 관광지다. 아이는 제주도 여행 전부터 유난히 커다란 달이 있는 루나폴에 가고 싶다고 반복해서 말했다.
밤이 되자 하늘에서 한 방울 두 방울씩 비가 뚝뚝 떨어졌다. 비가 왔지만 우리는 그대로 루나폴을 즐기기로 했다. 우비를 사서 입었다. 아이는 장애인 복지카드가 있어 입장료를 할인받을 수 있었다. 그래, 입장료도 할인받고… 이런 건 또 좋은 점이지. 입구를 지나 더 안으로 들어가자 환하게 빛나는 커다란 달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우리는 루나폴 샵에서 빨간색, 노란색, 민트색 조명 목걸이를 세 개 샀다. 조명을 켜면 알록달록 색이 너무 예뻤다.
“여보. 저기 루나폴 입구에 말이야. 커다랗게 있는 달이 왜 있는 건 줄 알아?”
“그냥 관광 사진 찍으라고 있는 거겠지.”
“에휴, 그 말도 맞긴 하지, 하하. 근데 그거 말고… 많은 사람들이 밤마다 달을 향해 소원을 빌었대. 그래서 소원이 쌓이고 쌓여서 어느 날, 쿵! 저기 떨어졌대. 소원을 잔뜩 품은 달이 너무 무거워져서 지구에 떨어진 거야.”
“우리가 소원초에 태워 보냈던 소원만 해도 무게가 상당할걸.”
“오늘은 루나폴 걷는 내내 소원 빌자.”
“아니야… 난 이제 소원 안 빌어도 괜찮아. 다 이뤄졌어.”
“여보, 소원이 뭔데?”
“그냥 우리 가족이 항상 건강하고, 행복한 거… 그거면 돼.”
남편은 더 이상 나처럼 아이가 말할 수 있게 해달라거나, 자폐증을 완치해달라는 소원은 빌지 않는다. 남편의 소원을 듣는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게 무슨 소원이야… 소원은 원래 거창해야 하는 거야… 난 그런 소박한 소원 싫어…”
“이 정도면 행복한 거지 뭐…”
“싫어… 난 아이가 더 컸으면 좋겠어. 어른이 되었을 땐 내가 기댈 만큼 든든한 어른으로 자라줬으면 좋겠어. 지금 모습으로만 자라는 건 싫어. 엄마라고만 말할 줄 아는 것도 싫단 말이야. 그럴까 봐… 무서워.”
“알겠어. 그럼 여보는 오늘 또 소원 빌어.”
“이제 여보도 내 소원 아니까 걷는 내내 같이 소원 빌어줘.”
“알겠어. 나도 같은 마음이지 뭐…”
우리는 구불구불 반짝이는 길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밤의 루나폴은 정말 아름다웠다. 모든 소원을 품고 있는 듯, 밤인데도 포근하고 따뜻했다. 아이의 목에 걸린 노란색 조명 목걸이가 걸음에 맞춰 흔들렸다. 마치 아이가 어렸을 때 밤새 박수를 치며 붙잡으려고 했던 달빛이 목에 걸려 다시 빛나고 있는 것 같았다.
소원을 빌고 또 빌며, 마지막 아주 커다란 달 앞에 섰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소원이 정말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아이는 내 소원대로 엄마 아빠보다 열 배나 큰 모습으로 나타났다.
“거인이다!”
나는 아이 앞에서 아주 작은 어른이 되었다.
달 앞에는 조명기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아이가 그 앞에 서자 그림자가 거인처럼 커져 보였다. 코스모스 꽃밭에서 나를 안아주던 작은 그림자의 아이가 거인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이번 소원도 루나폴에서 이루어졌음을 알았다. 아이는 듬직한 어른으로 잘 자랄 것이다. 비로소 나도 남편처럼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제 더 이상 아이의 자폐증이 완치되게 해달라는 소원은 빌지 않을 것이다.

